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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0, Jan 2015

폴 매카시의 초콜릿 공장

France

Paul McCarthy : Chocolate Factory
2014.10.25-2015.1.4 파리, 파리조폐국

지난해 10월 17일 인적 드문 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들이 모여 숨 쉬고 있는 파리의 방돔 광장(Place Vendome)에서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2014년 피악아트페어(FIAC)을 위해 앞서 설치된 폴 매카시의 조각작품 [트리(Tree)](2014)가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것이다. 고무모형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24m의 높이로 제작된 이 대형 트리는 설치 전부터 구설수에 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품의 외관적 형태가 섹스토이와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다름 아닌 예술계의 반항아, 폴 매카시다. 그가 선보인 작품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논란의 여지에도 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 불협화음은 늘 그래왔듯, 서서히 잠잠해질 것이라 예상했건만 이번엔 좀 사태가 심각했다. 트리가 설치된 첫 날, 폴 매카시는 파리 시민에게 작가 자신과 작품에 대해 쏟아지는 폭언을 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뺨 세례를 맞는 수모까지 당해야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여느 때보다 삼엄해진 보안요원들의 감시를 뚫고, 작품에 구멍을 내어 바람을 빼버리는 과감한 테러까지 자행했다. 작품의 형태를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은 순식간에 별 의미 없는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렸다. 작품이 사라진 이 마당에, 더 이상 그것이 트리인지 섹스토이인지 판단할 근거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바람이 모두 빠진 채 땅으로 주저 앉아버린 폴 매카시의 [트리]는 한낱 고무덩어리에 불과했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Peres Noel etageres' in 'Chocolate Factory' Courtesy de l'artiste et Galerie Hauser & Wirth ⓒ Didier PLO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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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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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아트페어를 코앞에 두고, 폴 매카시의 말 많고 탈 많았던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렇게 파리에서 사라졌다. ‘타인’에게 늘 관대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아량이 넘칠 줄만 알았던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폴 매카시의 조각은 트리이기 전에 거대한 섹스토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예술이기 전에 외설이었다. ‘섹스토이를 닮은 크리스마스트리’로 뜨거운 주목을 받은 매카시의 작품은 ‘방돔광장 트리사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로 또 다른 스캔들을 몰고 왔다. 문제적 작가의 문제적 작품이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꼴이 되었지만, 덕분에 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던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게 됐다. 


공공예술품 설치 외에도, 개축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재단장한 파리조폐국(Monnaie de Paris)에서 매카시의 전시가 때마침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다. 세느 강변을 끼고, 루브르 궁과 퐁네프를 마주보는, 그야말로 파리 심장부에 위치한 조폐국은 주화를 발행하는 주요한 장소임에도,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게다가 조폐국은 문화예술활동으로는 이미 고배의 잔을 마신 것이 여러 번이었다. 18세기에 처음 세워져 프랑스의 화폐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던 이 공간은 2008년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의 변모를 꾀했다. 하지만, 조폐국에서 그간 진행해온 프로그램들은 목적과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혼란함으로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1년 예술감독을 교체하는 상황까지 전개되면서, 건물 일부를 개축하기에 이르렀다. 예정보다 길어진 개축공사 기간 동안만큼, 대중들에게 공개할 첫 프로그램에 대한 조폐국 측의 심리적 부담은 늘어만 갔을 것이다. 실패와 좌절의 쓴 맛을 경험한 조폐국이 그토록 고심해서 준비한 첫 전시, 바로 매카시의 <초콜릿 공장(Chocolate Factory)>(2014)이다. 




<Tree> Courtesy de l'artiste et galerie 

Hauser&Wirth ⓒ Marc Domage




‘위험요소가 크다’,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인지도면에서 안정적이다’ 등 조폐국의 첫 전시를 앞두고 작가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했지만, 방돔광장에서 일어난 트리스캔들로 적어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는 성공했다. 작가 개인의 차원에서는 악재였을 수도 있겠지만, 전시를 기획한 조폐국 입장에서는 예상치도 못한 홍보효과를 제대로 누리게 된 셈이다. 7년 전, 뉴욕에서 한차례 선보인바 있는 매카시의 <초콜릿 공장>은 말 그대로 초콜릿을 대량생산해내는 공장을 재현한 것이다. 과거의 전시와 비교해보았을 때, 작가의 제작의도와 전시내용의 큰 맥락은 동일하다. 관람객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보이는 무한 반복되는 초콜릿의 제작과정,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초콜릿들이 전시공간을 빼곡히 메운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장소’다. 뉴욕의 화이트큐브 속에서 선보인 초콜릿 공장은 눈부신 샹들리에와 코린트 양식의 기둥, 큰 벽을 덮은 거울들로 호화스럽게 장식된 네오클래식 풍의 조폐국 내부로 이전한 셈이다. 갤러리 공간에 재현된 뉴욕의 초콜릿 공장이 차갑고 현실적이었다면, 파리의 초콜릿 공장은 좀 더 연극적이고 공상적이다. 빨간 옷을 입고 초콜릿을 제조하는 금발의 여자들, 목재로 설치된 제조공장현장, 초콜릿이 나란히 진열된 철제선반의 투박함은 화려함으로 뒤덮인 조폐국의 내부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마치 촬영 세트장을 방문한 듯한 묘한 이질감을 준다. 공장 뒤편으로 펼쳐지는 각각의 방들 안에는 작가가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하여 써내려가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영상을 배경으로, 이미 제작된 초콜릿들이 늘어서있다. 편집증적으로 써지는 괴기스러운 문구와 그림들, 어두운 방안에서 울려 퍼지는 정체 모를 작가의 음성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매카시는 크리스마스를 타깃으로 연말까지 진행되는 전시기간을 고려해,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모델로 한 초콜릿을 제작했다. 




'Chocolaterie vue du dessus' in

 <Chocolate Factory> Courtesy de l'artiste 

et Galerie Hauser & Wirth ⓒ Didier PLOWY 




두 종류의 모양으로 제작된 초콜릿은 12월 길거리에 즐비해 있는 귀여운 크리스마스용 초콜릿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작가의 초콜릿이 19금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방돔광장에서 이미 한바탕 소동을 치른 바 있는 트리초콜릿에 이어, 세상에서 가장 막돼먹은 산타클로스 초콜릿을 선보인 것이다. 은밀한 자신의 그 곳을 종으로 살포시 가린 채, 다른 한 손에는 애널플러그를 트리인 양 당당하게 들고 서서 관람객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산타클로스를 보며 우리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발칙하고, 난폭하며, 가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하는 매카시의 ‘거침없는 표현’은 내일모레 일흔을 바라보는 그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거친 만큼 그가 관람객에게 던지는 메시지 역시 강렬하다. 파리에 세워진 매카시의 초콜릿공장 역시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사하는 대신, 크리스마스 뒤에 감춰진 과잉생산과 소비문화행태를 비꼬아 폭로한다. 생산과 재생산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공장이라는 곳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소비사회의 시스템과 그 단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태어난 차갑게 굳어버린 대량의 크리스마스용 초콜릿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날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세계 곳곳에 장식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그 앞에 쌓여있는 선물꾸러미들, 밤하늘을 수놓는 불빛들은 해마다 돌아오는 12월 25일의 풍경이다. 




'Chocolaterie' in <Chocolate Factory> 

Courtesy de l'artiste et Galerie 

Hauser & Wirth ⓒ Didier PLOWY




이 익숙한 풍경 속에 등장하는 각종 제품들은 초콜릿처럼 달콤해 보이지만, 그 달콤함 역시 자본의 힘에서 비롯된다.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 역시 이제는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큰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아, 소비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었다. 매카시의 초콜릿 공장이 보여주는 크리스마스의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관람객들이 과연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마냥 즐거운 기분으로 떠올릴 수 있을지 갑작스러운 의문이 든다. 어쩌면 반대로, 카톨릭 문화와 전통이 오늘날까지 뿌리 깊게 남아있는 프랑스에서 오히려 화나버린 관람객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초콜릿이 생산되는 공장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갔던, 또 거쳐 갈 동전과 지폐들이 만들어지고 보관되어 있다. 돈이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다. 세상에 돌고 도는 돈, 급속화되는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그 돈에 사람이 돌고 도는 일도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씁쓸하지만 달콤한 돈의 유혹은 매카시의 초콜릿 맛과도 어쩐지 닮아있는 듯하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기계시대의 해체미학」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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