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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2, Jan 2021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Australia

Know My Name, Australian Women Artists 1900 to Now
2020.11.14-7.4 캔버라, 호주국립미술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 이 같은 제목으로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1971년 『아트뉴스(ARTnews)에 기고한 글은 페미니즘 미술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노클린은 과거에도 분명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여성 예술가들이 많았으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피카소(Pablo Picasso) 등에 필적할 여성 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단순히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 제도와 여성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문제로 보았다. 기존의 예술은 여성을 그저 대상화의 존재로만 인식했을 뿐 예술가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노클린의 뒤를 이어 많은 여성 미술사가들이 백인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예리한 시선으로 활발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Broad Strokes』의 저자 브리짓 퀸(Bridget Quinn)도 그러한 미술사가 중 한 명이다. 그는 H. W. 잰슨(Horst Woldemar Janson)의 『서양미술사(History of Art for Young People)』를 살펴보던 중 책에서 소개하는 여성 예술가가 겨우 열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Broad Strokes』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퀸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2017년 미국 출판 당시 각종 매체와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퀸의 저서가 국내에 출판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제공

Installation view of 'Know My Name: Australian Women Artists 1900 to Now'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featuring works by Fiona Hall, Sally Ga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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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은 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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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여성 예술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17 3, 미국 워싱턴 DC의 국립 여성 예술가 미술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여성 예술가 다섯 명의 이름을 대시오라는 질문으로 소셜 미디어 이벤트를 진행했다. ‘여성 역사의 달(Women‘s History Month)’을 맞아 진행된 이 이벤트에는 전 세계 520여 개 기관과 1만여 명이 넘는 개인이 참여했으며 ‘#5WomenArtists’라는 해시태그를 남기는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다섯 명의 여성 예술가 이름을 떠올릴 수 없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여성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이하 NGA) 역시 #5WomenArtists로 대표되는 이 글로벌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2019 NGA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 호주 미술품 컬렉션에서 25%, 호주 원주민 미술품 컬렉션에서 33%에 불과하다고 밝히며앞으로 컬렉션 개발 및 예술 프로그램조직 구조 내에서 성 형평성을 조화롭게 구현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이는 우선 <Know My Name: Australian Women Artists 1900 to Now(이하 Know My Name)>라는 초대형 기획전으로 실현됐다호주 여성 예술가들을 알리고 호주 미술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줄 이번 전시는 NGA의 소장품을 비롯하여 호주 전역의 미술관들로부터 대여한 350여 점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선보인다





Roma Butler and Yangi Yangi Fox, from Irrunytju in Western Australia, 

with their sculptures 2017 Photo: Rhett Hammerton

 



NGA 역사상 여성 작가만을 소개하는 전시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Know My Name> 1900년부터 현재까지의 예술가들을 소개하지만 연대기적 나열이 아닌 원주민들의 협업 작품과 개별 작품, 초상화와 자화상, 사진과 조각 등 장르와 테마별로 구성된다. 방대한 전시 규모를 고려하여 전시에 참여한 큐레이터들이 추천하는, 현재 호주 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식민지, 전쟁, 환경 등 국제적인 이슈를 다루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피오나 홀(Fiona Hall) <Tender>(2003-2005)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홀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 화폐를 사용하여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태를 재현한다. 그는 미국의 달러를 얇게 분쇄해 작은 둥지를 다양하게 만들었고 이를 유리 진열장에 조심스럽게 전시함으로써 사라진 것을 보존하는 자연사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받아들인 홀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기업의 탐욕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 여기며 경제적 가치의 수단인 화폐를 아름답고 섬세한 방식의 미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전환시켰다. 경제 성장이 무성한 녹색 자연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그가 작품의 재료로 삼은 미국 달러의 녹색 컬러는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Tracey Moffatt <Something more #8> from Something 

more series 1989 Naomi Milgrom AO Art Collection





예술 사진의 한계를 실험하며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창의적인 서사를 창조해 온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은 그의 첫 번째 사진 연작이자 발표 당시 평단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던 ‘Something more’를 전시한다. 총 아홉 점의 이미지로 구성되는 시리즈는 모팻의 고향인 퀸즐랜드의 소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완벽한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강렬한 컬러와 선정적인 이미지로 멜로드라마를 그려낸 모팻은 순진한 시골 소녀가 길가에 버려진 타락한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고정된 줄거리가 없는 모호한 방식으로 연출했다. 영상매체의 영향을 받으며 1980년대 예술을 시작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영화광인 모팻은 몽타주라는 영화적 장치를 이용하여 시리즈를 구성하고, 이러한 장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의미를 부여한다. 독특한 그림일기 형식의 회화로 유명한 제니 왓슨(Jenny Watson)은 잔혹 동화의 주인공 같은 자화상을 선보인다. 그동안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왓슨의 또 다른 자아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도시 외곽에 살고 있는 소녀, 사이코드라마의 여주인공, (rock)스타 등으로 자아를 설정한 그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욕망을 무덤덤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그려낸다. 1975년 뉴욕을 여행할 당시 페미니즘 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를 만난 이후 여성을 주제로 한 작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게 된 왓슨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자화상의 주요 소재로 삼았고 이러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작업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Jo Lloyd <Jo Lloyd / Phillipa Cullen performance> 

2020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ommission supported 

by Phillip Keir and Sarah Benjamin Photo: Peter Rosetzky





40세가 채 되기도 전 돌연 사망해 호주 미술사에서 홀연히 사라진 바바라 클리블랜드(Barbara Clevelan).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 이 예술가를 복원하는 또 다른 바바라 클리블랜드가 있다. 프랜시스 바렛(Frances Barrett), 케이트 블랙모어(Kate Blackmore), 켈리 돌리(Kelly Doley), 다이애나 베이커 스미스(Diana Baker Smith)가 이끄는 예술가 그룹 바바라 클리블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퍼포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Bodies in Time>(2016)을 상영한다.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안젤라 고(Angela Goh)가 참여한 이 영상은 클리블랜드가 1973년에 발표했던 작업을 재연한 것이다. 클리블랜드처럼 검은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안젤라 고는 몽롱한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된 곳은 2016년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20 & 21세기 호주 현대미술 전시실이다. 여전히 남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지배적이고 회화 작품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Bodies in Time>이 이곳에 전시된 것은 미술관 소장품에 드러난 성별에 대한 편견과 퍼포먼스 아트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NGA에서 <Bodies in Time>은 여성 예술가들의 자화상과 초상화로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에서 동시에 전시되고 있다. 전시 동선상 가장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이 영상은 과거의 작품들과 함께 존재하며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들 간의 창조적이고 지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듯하다.





Carol Jerrems <(Vale Street)> 1975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gift of Mrs Joy Jerrems 1981 

© Ken Jerrems and the Estate of Lance Jerrems





<Know My Name>은 역사적으로 남성 예술가들이 우선시되었던 전시와 그 지배 구조에 대항하면서 더 넓은 세상에 여성의 예술을 알리려는 노력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기획한 NGA의 수석 큐레이터 데보라 하트(Deborah Hart)의 언급대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중요한 여성 작가들의 수를 감안할 때 이 전시 역시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재평가의 일부이기는 하나, <Know My Name>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모든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업적을 강조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인 호주 작가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가 전시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사실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PA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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