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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5, Jun 2020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

2020.4.18 - 2020.5.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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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남선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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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그의 유령 외투



태양 아래 얼음처럼 금방 녹아내릴 것 같은 일시적인 상태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흐르는 것을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썩어 사라질 것만 같은 공고한 상태도 있다. 그러나 만년설이나 지층처럼 굳건한 상태도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녹아내리거나 다시 단단해질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중성적 법칙에마침내’, 또는맥없이등의 미사여구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상상일 뿐이다.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은 조각과 회화라는 장르를, 혹은 자국(지표)과 이미지라는 영역을 정해진 경계나 틀로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오래 공고할 수도, 때로는 금방 바뀌기도 하는상태처럼 여긴다기획자 노해나와 참여작가 권세정, 권동현, 소민경, 이유성 그리고 작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스티치 그룹은 회화나 조각을 단순히 학제가 부여한 틀로도, 허물고 확장해야 할 경계로도, 파고들 여지가  아직 많이 남은 대상으로도 다루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회화와 조각은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고 덩어리를 따라 고체가 되는 슈가의 상태를 반영할 수 있을까?”라는 전시 서문의 질문은 유연하게 뒤엉켜 있는 대상들의 상태와 그 분기점을 더듬어보려는(그러나 그 더듬거림의 목적이 구분에 있지는 않은) 섬세하면서도 유희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유령사과는 나무에 달린 사과 표면에 내린 비가 언 상태에서 그 안의 사과가 썩고 흘러내려 사과형태의 얼음만 남은 것을 본 누군가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어릴 적, 풍선에 종이죽을 처덕처덕 붙여 말린 후 풍선을 터뜨려 빼내고, 그 안에 무거운 돌을 집어넣어 오뚝이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령사과는 사과의 모양을 그대로 캐스팅한 지표적 조각이자, 사과의 모양을 떠낼 수 있는 몰드이다. 권세정과 권동현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조각 <소사본동N 37°28′56″, 126°47′48″> <용두동N 37°34′42″> 에서도 이런 이중적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두 작가는 제목의 좌표에 위치한 건물의 층과 층 사이 계단을 몰드 삼아 모양을 떠내고, 다시 그 결과물을 틀 삼아 빈 공간을 메워 한 몸을 만들었다.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청동, , 실리콘, 혹은 유토 중 어떤 것이 틀이고 어떤 것이 알맹이인지는 모호하다. 마치 사과와 그의 투명한 외투처럼 말이다. 권동현은 건물 층과 층 사이 계단을 브론즈로 반복해서 떠내는 수행적인 작업을 해왔고, 권세정은 반려견 밤세의 몸을 모델링 하며 사랑하는 대상의 모양과 그것을 만질 때의 감각을 보존하는 작업을 해왔다. <용두동> <소사본동>을 가운데 두고 대각선으로 마주 본 두 작가의 개인작업 <모각> <가슴에서 배>는 이 협업에서 각 작가의 역할에 대한 실마리처럼 작용한다.


소민경의 <Evidence Store>는 껍데기와 내용물의 모호한 지시 관계에 대한 한층 더 강력한 단서, 혹은 회화 버전의 유령사과처럼 보인다. 밖을 내다보는 것인지 안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확실치 않은 인물과 일상에서 수집한 듯한 이미지들이 포개진 이 작업은 동일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를, 그것을 옮겨 그린 종이로 포장한 것이다. 작가가 수년간 지속해온 이미지와 그것을 닮은 껍질을 만드는 작업은 쉽게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그리고 때로는 몇 번의 클릭으로 감춰져 버리는 오늘의 이미지들에게로 관객의 생각을 연결한다. 이유성의 <Un and heli>는 나무판에 바람개비가 도는 듯한 형상을 저부조로 새기고, 그 형상을 만드는데 사용했을 법한 금속 날을 프로펠러처럼 박아 완성한 조각이자 드로잉, 혹은 작가가 낸 자국이자 그림이다. 나무판의 패인 곳은 석고 또는 금속 날로 메워져, 이 작업의 표면은 거의 평평하다. 파묻힌 프로펠러는 옆면의 두께 때문에 이제 돌 수 없는데, 그 위에 색연필로 그린 드로잉들은 또 회전과 운동을 암시한다. 빠름과 답답함이라는 두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작업의 형태는 공고해 보이지 않는다. 영도를 넘으면 얼음이 녹듯이, 정지한 프로펠러는 그 회전력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 상태가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일시적인 상태의 유동적인 것들로 채워진 전시장과 그 안의 다른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권세정+권동현 <용두동N 37°34'42", 127°1'42"> 2020 청동유토 52×16×3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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