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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0, May 2023

불온한 세상의 고요한 풍경

U.K.

Peter Doig: The Morgan Stanley Exhibition
2023.2.10-2023.5.29 런던, 코톨드 갤러리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The Courtauld Gallery 제공

'ALPINIST' 2019-2022 Pigme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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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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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계를 이끄는 작가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삶은 이동으로 점철돼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미술 공부를 위해 20살에 런던으로 건너간 그는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의 부흥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비롯한 개념미술의 유행에도 전통 회화를 고수하며 실재 장소와 상상의 영역을 혼합한 풍경화로 일찌감치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2년부터 20년간 트리니다드에 정착해 살며 섬에서의 경험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는 최근 2021년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3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친 런던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는 재개관 이후 첫 현대미술작가 전시로 도이그의 개인전을 택했다.



<ALPINIST> 2019-2022 Pigme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 코톨드 갤러리 제일 끝 층에 다다르면 도이그의 회화 12점이 두 공간에 나눠 펼쳐져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전시는 그가 트리니다드 생활 끝 무렵에 그린 작업과 런던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신작으로 구성됐다. 출품작 대부분에 트리니다드 풍경과 문화적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일부는 트리니다드에서 시작해 런던에서 완성됨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장소와 사람, 기억의 회로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중 작업과 가장 강력하게 연결되는 주제는 바로 음악이다.

대표적으로 <MUSIC (2 TREES)>(2019)은 흐릿한 풍경을 배경으로 두 명의 음악가가 당나귀를 타고 지나가는 한 여성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목가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마치 곧 녹아 없어질 듯한 색채의 스며듦으로 그 분위기가 배가된다. 여기서 여성은 작가의 아내인 큐레이터 파리나즈 모가다시(Parinaz Mogadassi)이며, 왼쪽 음악가는 그의 친구 엠헤요 바하바(Emheyo Bahabba)의 작업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중앙에 트리니다드 민속 음악 칼립소(Calypso) 연주가는 상상 속 인물로 1960년대 초에 활동했던 그룹 로카펠라스(Rockafellas)의 무대 의상을 입고 있다.



<MUSIC SHOP> 2019-2023
 Pigme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그런가 하면 <MUSIC SHOP>(2019-2023)은 트리니다드의 유명 가수 섀도우(Shadow)가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한 오래된 음악 가게 앞에 서 있는 형상을 담는다. 트레이드마크인 해골 의상을 입고 어깨에 기타를 맨 채 흘깃 돌아보는 그는 칼립소 장르를 현대화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며 1970년대 트리니다드 음악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얼핏 트리니다드 음악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가게 창문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며 작품은 또 다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HOUSE OF MUSIC (SOCA BOOT)>(2019-2023) 역시 섀도우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SOCA BOOT’는 그의 노래 <Dat Soca Boat>(1979)에서 차용한 것으로 ‘SOCA’는 소올과 칼립소가 융합된 음악의 일종이다. 작가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사진을 참고해 작업에 돌입했는데, 어부를 음악가로 변화시킨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Dat Soca Boat를 침몰시키고 싶지 않다”는 섀도우의 노랫말처럼 소카 음악을 바다의 배로 상정하고 시각적인 형태를 부여했다. 이처럼 기억과 관찰, 감정부터 음악, 시, 영화 등에서 비롯한 영감과 상상을 엮어내는 도이그는 구체적인 것과 암시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탁월함을 드러낸다.



<PAINTING ON AN ISLAND (CARRERA)> 
2019 Oil pai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inault Collection



전시 메인 이미지로도 사용된 <ALPINIST>(2019-2022)는 아마 관람객 대부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트리니다드에서 시작해 스위스 체르마트에서의 작업 과정을 거쳐 런던에서 최종 완성된 작품은 마테호른이 솟은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중앙에 스키어가 할리퀸 복장을 하고 있는 형태가 눈에 띈다. 이러한 독특한 의상은 폴 세잔(Paul Cezanne)이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같은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장치이기도 하다. 일견 거대한 파도가 집어 삼키는 듯 장엄한 산을 배경으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의 스키어를 보고 있자면 캐나다에서의 오랜 거주로 평생 스키를 타온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산 정상에 서 있지만 뿌듯함이나 성취감을 자랑하는 대신 그저 안도와 함께 다음 목적지를 위한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 태도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산 정상 너머, 그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계속되는 탐색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한편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포인트는 64세 나이인 그가 귀환과 함께 작업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냈다는 점이다. 도이그의 최근작을 살펴보면 인물의 흐릿함이 경계를 지우고 독자적인 팔레트가 더해져 사진의 즉시성(photographic immediacy)이 마구 뒤틀리는 현상이 보다 강조된다.



<ALICE AT BOSCOE’S> 2014-2023 
Oil pai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가령 10년에 걸쳐 마침내 이번 전시를 위해 완성한 <ALICE AT BOSCOE’S>(2014-2023)를 보자. 트리니다드에서 살았던 집의 정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무성하게 뒤덮인 나무와 오렌지 컬러 패치워크 장식과 더불어 한 소녀, 즉 작가의 딸이 해먹에 누워있다. 불분명한 땅의 존재, 캔버스 전체를 잠식하는 어두운 빈 공간, 찢어진 페이지처럼 희미해지는 배경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 유령 같은 소녀의 존재는 모호한 공간 속 왜곡되고 계층화된 시간의 감각이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2021년 돌아온 후 런던을 주제로 처음 그린 <CANAL>(2023)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아들을 위해 만든 생일 카드에서 출발한 작품은 북부 리젠트 운하를 배경으로 선명한 색상과 유동적인 붓놀림이 매혹적인 구성의 토대를 구축한다. 빨간색 다리가 주변의 풍경을 보다 부드럽고 자연적으로 인식케 만드는 듯도 보이나, 이 역시 배경은 밤인데 아이는 아침을 먹고 있는 다거나, 왼쪽으로는 겨울 빛이 반짝이는데 오른쪽으로는 붉고 푸른 잎들이 피어있는 등 모순적 요소들이 캔버스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가 인상주의 화가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상상하며 시대를 오가는 회화의 세계 연결성을 위시해 만든 그림이기도 하다.


 <SELF-PORTRAIT (FERNANDES COMPOUND)> 
2015-2023 Oil paint on canvas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도이그 전시의 시작과 끝은 코톨드 갤러리 그레이트 룸에 전시된 세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폴 고갱(Paul Gauguin) 등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과 연결된다. 인터뷰에서 도이그는 코톨드 갤러리 컬렉션에 대해 “당신이 회화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저 전시실에 있다(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painting is in that room)”고 하면서도, 오랫동안 시금석이 되어온 작품들과 함께 보여지는 것에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그 부담감이 오히려 작가로 하여금 10년 만에 작품을 완성하고 거장들과의 회화적 연결성을 탐구케 한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OUSE OF MUSIC (SOCA BOAT)> 
2019-2023 Pigment on linen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시끄럽고 어지러운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미술관에 들어서면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혼자여도, 둘이여도 외롭지 않은 그곳엔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해사한 세상만이 있을 뿐이다. 이번 작가의 개인전은 현대회화가 가지는 매력과 그것이 전하는 위로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불온전한 세상 속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 움직임으로 가득한 삶과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정적인 풍경을 그리는 도이그는 자신이 창조한 세상으로 우리를 힘껏 이끈다. 그리고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벗어난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온전히 감각할 수 있다. PA



<NIGHT STUDIO (STUDIOFILM & RACQUET CLUB)>
2015 Oil paint on canvas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23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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