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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8, Mar 2023

고흐 가족에게 전하는 무한한 감사

Netherlands

Choosing Vincent
2023.2.14-2023.4.10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윤지수 네덜란드통신원 ● 이미지 Van Gogh Museum 제공

Campaign Image of [Choosing Vincent] Van Gogh 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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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 네덜란드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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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출신 작가로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한다. 그의 회화에서 느껴지는 미적 아름다움만큼이나 짧고 강렬했던 삶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왔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단 10년간의 전업 작가 기간 동안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의 삶은 비극적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고통스러운 정신질환 끝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자살하기 1년 전부터 극심한 정신병에 시달렸다. 프랑스 아를에 거주할 때 엄청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그는 이후 정신병동에 입원해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병이 재발하며 이내 목숨을 끊는다.


말년 행적에 비춰 많은 이들은 고흐가 고독한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에게는 평생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 친동생 테오(Theo van Gogh)가 있었다. 고흐에게 테오는 인생의 벗이자 직업적 후원자였다. 테오는 고흐를 경제적으로 지원했고, 그의 작품세계 확장을 위해 힘썼다. 설립 50주년을 맞은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은 2월 10일부터 두 달간 고흐를 평생 지지했던 테오와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헌신했던 테오의 아내 조 봉허(Joe van Gogh-Bonger) 그리고 테오의 아들이자 미술관 설립자인 빈센트(Vincent van Gogh)를 기리는 전시 <Choosing Vincent>를 선보인다.




‘Engineer’ Vincent van Gogh (right)

at the Van Gogh Museum building site,

1970 Van Gogh Museum, Amsterdam




15살 때부터 테오는 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리의 Goupil & Ciel’s 갤러리 중 한 군데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또한 고흐와 함께 살 무렵인 1886년에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당시 테오가 목격한 파리 미술계의 변화와 그의 작품 컬렉션은 고흐의 예술적 발전에 기여했다. 1860년대 파리에서는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고 산업이 발달했다. 도시개혁과 함께 튜브형 유화물감 그리고 휴대용 이젤이 발명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회화적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1874년 4월 15일에 첫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리는데, 이 시기는 테오가 파리의 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파리의 화단에서 살롱전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었고 관습에 얽매인 관전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를 포함한 젊은 작가들은 관전에서 요구하는 종교화, 역사화가 아닌 도시개혁으로 변화하는 파리의 풍경과 도시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회화를 제작했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과 인물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새로운 방식의 인상파 회화는 1874년 제1회 전시를 통해 정식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여졌다. 그리고 관람객으로부터 “대충 막 그린 그림이다”, “벽지 문양 습작이 이 그림보다 낫다”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인상파 작가들의 회화적 실험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886년 4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전시가 개최된 직후 즉시 성공을 거두며 ‘프랑스적 회화’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 사회에서도 인상주의 화파는 큰 인정을 받게 되었다.




<Quinces, Lemons, Pears and Grapes>

1887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이처럼 테오는 파리의 갤러리스트로 그리고 이후에는 아트 딜러로 일하며 파리 화단의 변화와 인상주의 화파의 성공을 목격했다. 그리고 고흐와 함께 직접 동시대 회화를 수집하며 작품세계 확장에 영향을 미쳤다. 그가 수집한 작품으로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The Rabbit>(1866), 테오필 드 보크(Theophile de Bock)의 <Lake with a Boat>(1880)가 있다. 고흐 또한 컬렉션의 확장을 위해 에밀 버나드(Emile Bernard)와 같은 동료 작가들과 그림을 교환하곤 했다. 그가 동료에게 받은 대표 작품으로는 <Breton Woman with a Parasol>(1888)이 있다.


1889년 테오는 조 봉허를 신부로 맞이한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결혼생활은 짧게 끝이 난다. 1890년 고흐의 죽음을 목격한 테오는 심한 충격과 우울감에 휩싸였고, 그로부터 6개월 후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테오의 죽음 후 조 봉허는 아직 갓난 아기였던 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그리고 생전 자신의 형 고흐를 유명 화가로 만들고자 했던 테오의 꿈을 자신이 이루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반 고흐의 전시를 열고, 아트 딜러로서 고흐의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관람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에 조 봉허는 고흐의 페인팅 200점과 드로잉 50점을 판매했다. 그와 동시에 판매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구분해서 최대한 많이 소장했다. 그리고 1914년에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책으로 출간한다.




‘Engineer’ Vincent van Gogh

(Theo and Jo van Gogh’s son, and founder of the museum)

shortly before the opening of the Van Gogh Museum,

1973 Photo: Jan Versnel




조 봉허와 테오의 아들 빈센트는 어린 시절부터 고흐의 그림에 둘러싸인 채 생활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빈센트와 조 봉허 그리고 그의 두 번째 남편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을 통해 그들이 고흐의 작품과 함께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빈센트는 고흐와 연결됨을 평생 느꼈을 것이다. 그는 빈센트라는 삼촌의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이를 통해 고흐에 대한 테오와 조 봉허의 사랑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고흐가 그린 그림에도 조카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대표작인 <Almond Blossom>(1888-1890)은 조카인 빈센트의 탄생을 축복하며 고흐가 그린 그림이다. 또한 전시장에는 빈센트가 델프트에 살던 시절 자신의 방에 걸어두었던 고흐의 작품 <Seascape near Les Saintes -Maries-de-la-Mer>(1888)도 걸려있다.


빈센트는 엔지니어로 일하며 부모님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했으나, 21살이 된 무렵 고흐의 작품 중 절반을 상속받았고, 1945년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컬렉션의 상속자로서 활동했다. 그는 상속인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1920년대부터는 고흐의 작품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에 고흐의 일부 작품을 빌려주고 전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고흐의 작품을 지하 벙커에 보관해 작품 훼손을 막았고, 네덜란드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60년에 반 고흐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반 고흐 미술관 설립을 추진하며 1973년 6월 2일에 첫 오픈식을 개최했다.




Exhibition view of <Choosing Vincent>

2023 Van Gogh Museum, Amsterdam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같이 느꼈다.”




Postcard of the Van Gogh Museum viewed

from Museumplein ca. 1973 Collection

Van Gogh Museum, Amsterdam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에는 도쿄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인 주인공 구보가 도시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묘사된다. 소설 속 구보의 모습에서 필자는 고흐가 연상되었다. 책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 시대로, 조선에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또한 인상주의 화풍이 조선 화단에서 많이 그려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인상주의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리고 조선에서도 도시 문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토머스 크로(Thomas E. Crow)는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이 제2제정의 정치적 권위주의를 묵인하는 대가로 소비문화를 향유하고 표상하며, 상실된 개인성을 이 자유 영역에서 보상받았다고 주장했다. 고흐가 살았던 시대의 프랑스는 도시 문명이 발달하고 소비문화가 시작되던 시기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러시아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공존했다. 그는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살고 작가들과 교류하며 새롭게 변화하는 미술을 목도했다. 그리고 화려한 도시의 삶과 그 도시에서 인정받는 작가들로부터 철저한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평생을 화가로서 인정받지도, 돈을 벌지도 못 했기 때문이다. 모델료를 줄 돈이 없어 자신의 얼굴을 모델 삼아 수많은 자화상을 제작했고, 화려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창녀, 농민, 오두막집 등 평범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평생을 소외감과 외로움을 겪으며 살아왔고, 이러한 감정이 스민 작품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




Vincent van Gogh, Jo Cohen Gosschalk-Bonger

and Johan Cohen Gosschalk in the dining room

of the house at 77 Koninginneweg, Amsterdam,
late 1910 or early 1911
On the wall behind them are the paintings

<The Langlois Bridge and The Harvest>
Bernard Eilers, Amsterda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소외감과 외로움에 잠식당해 생을 마감한 고흐가 사실 가족에게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그의 예술적 잠재력을 알아보고 평생을 도왔던 테오와 남편이 죽고 난 이후에도 평생 지지한 조 봉허와 빈센트의 노력에 크게 감동하게 된다. 그들 덕분에 현재 반 고흐 미술관이 존재하며,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Choosing Vincent>는 미술관이 고흐 가족에게 보내는 무한한 감사의 표시다.  PA
 


글쓴이 윤지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네덜란드 로테드담 에라스무스대학교(Erasmus University Rotterdam)에서 미술, 문화, 그리고 사회(Art culture and Society)를 전공했다. 「게이트 키핑 시스템에 대한 NFT 마켓」을 석사 논문으로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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