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수도이자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한 암스테르담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도시다. 17세기 초 해상무역의 틀을 갖추고 영국에 앞서 아시아와의 무역을 통해 대대적 성공을 거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 혹은 VOC)의 저력 또한 고스란히 내뿜는다. 골목골목 아름다운 운하가 흐르고 이 물길을 따라 빼곡히 자리한 17세기 가택들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물길은 도로나 인도처럼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배의 동력과 협업해 암스테르담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여유롭게 와인을 즐기며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이방인(외국인)인 내게는 이색적인 낭만을 선사한다. 이처럼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네덜란드의 역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네덜란드 영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인 까닭에 침수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수문학 공학(Hydrological Power)이 이용됐다. 네덜란드인들은 물가에 벽을 세우고 풍차를 이용해 물을 퍼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땅을 만들어냈다. 또한 도시가 확장되면서 벽으로 둘러싸인 운하를 건설했다. 17세기, 도시에 인구가 급증하자 관료들은 도시계획을 수립해 외곽으로 넓혀 나아갔고 운하를 통해 교통과 무역을 활발하게 하고자 했다. 암스테르담 운하는 또한 자본주의 역사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로 동남아시아 무역 항로를 개척하며 17세기 유럽의 해상무역을 장악했다. 이들은 향신료, 커피, 사탕수수 등을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거래했고, 벌어들인 수익을 투자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대만 등지에 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주식과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현 자본주의 체계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네덜란드의 무역을 이끈 상인들은 운하 옆에 지어진 주택들을 자신이 수입·수출하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다. 대개 수입한 상품은 운하를 이용해 바로 창고 앞까지 배달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암스테르담의 운하가 무역을 위한 최적의 루트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암스테르담 운하 옆에는 17세기에 지어진 한 가택이 있다. 이 가택은 당시 상인이었던 카렐 제라드(Karel Gerards)의 집으로 1663년에 암스테르담의 주요 건축가 중 한 명인 필립스 핑크본스(Philips Vingboons)에 의해 지어졌다. 그리고 2012년에 운하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박물관은 400년의 역사를 보존하고 동시대인들에게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점에서 특별하다.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은 먼저 상설전 <The Amsterdam Canals>을 마주하게 되는데, 전시는 시청각적 자료와 건축 모형을 애니메이션화하여 운하와 암스테르담 도시계획의 역사를 설명한다. 관람객들은 각 전시실에 들어갈 때마다, 입장할 때 받은 오디오 가이드의 센서를 인식해야 한다.
Exhibition view of <The Amsterdam Canals>
Photo: Thijs Wolzak
첫 번째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은 420여 년 전(15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암스테르담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알게 된다. 암스테르담은 1,000년 동안 유입 인구가 증가해왔고, 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는 계속 확장되었다. 특히 1585년 이후 스페인에 의해 앤트워프, 말린스 그리고 브뤼셀이 정복되면서 이주민들이 급증해 전보다 3배나 많은 사람이 이 도시에 살게 되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3D 모델을 이중 투영한 옛날 암스테르담 집들을 스토리텔링해 형상화 한다.
두 번째 전시실은 암스테르담의 도시계획 뒤에 숨겨진 비전과 의사 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탁자 위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당시 시장이 건축가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도시 확장 계획을 작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도시계획을 위해 만들어졌던 지도도 곳곳에 붙어있다.
세 번째 전시실에선 운하 옆에 건설된 주택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애니메이션과 건축 모형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바닥에 깔린 모래는 관람객에게 실제 건축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방의 정면과 후면 스크린에서는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고 있고, 운하박물관과 그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건축물들을 모형으로 제작해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건축 단면 또한 볼 수 있다.
네 번째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은 운하 주택에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방의 중앙에는 운하박물관 모형이 세워져 있고, 이 건물의 각 방에는 페퍼의 유령 기술(Pepper’s Ghost Technique)이 사용되어 실제 거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3차원으로 보여진다. 특히 건물 내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과 그들의 생활 단면이 17세기부터 현시대 모두를 포괄하고 있어 흥미롭다.
마지막 전시실은 거대한 운하 모형과 원형 벽에 투영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지역이 형성된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와 소통하게 된다. 전시를 다 보고 1층에 내려오면 고세 보우마(Gosse Bouma)의 사진전 <Waterkracht>이 마련돼있다. 전시 주제는 운하의 수질과 이에 의한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20세기 초부터 향상된 수질과 운하에서 사는 생물의 모습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다양한 단체들이 수질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운하 곳곳을 담은 다양한 사진과 함께 이야기한다. 특히 작가는 동시대 사물, 사람의 모습을 운하와 함께 보여주려 했는데, 2021년 제작한 사진 작업 <Convertible>이 이를 잘 드러낸다. 작품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운하 옆에 세워진 차 한 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Gosse Bouma <Convertible>
© Gosse Bouma
“중세 시대 암스테르담의 수질은 너무 좋아서 사람들은 이 물로 맥주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물은 오염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운하에 버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세기 도시는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비로소 나쁜 공중보건이 질병의 발병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06년 도시는 현재의 하수도를 짓기 시작했다.”
이런 줄거리 전개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운하가 막 건설되었던 과거의 역사를 상상하게 한다. 또 전시장 내부에 1776년 줄리앙 안드리아센(Jurriaan Andriessen)이 완성한 프레스코 벽화를 함께 감상하다보면 400년 전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전시물이 된다. 운하 주택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과거를 보존한 실내 인테리어와 전시를 스토리텔링하는 방식 모두 관람객이 운하의 역사 안에 공존하게 만든다. 운하박물관은 암스테르담을 디자인했던 400여 년 전의 과거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 모두를 담고 있다.
필자는 이 두 전시를 통해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예술인가 삶인가(What is worth more, Art or Life)?”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지난 10월 14일 환경단체 저스트 스탑 오일(Just Stop Oil)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 <해바라기(Sunflowers)>에 토마토 수프를 던지며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두 전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내려주었다. 미술과 삶은 긴밀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우위를 매길 수 없다고 말이다. 당시 네덜란드인의 삶이었던 운하의 역사가 박물관을 통해 그 자체로 전시가 되고 예술이 된 것처럼,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전시는 이야기한다. PA
글쓴이 윤지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고,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교(Erasmus University Rotterdam) 대학원에서 미술, 문화 그리고 사회(Arts Culture and Society)를 전공(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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