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193, Oct 2022

게임의 논리 그리고 예술의 논리

Germany

Worldbuilding: game and art in digital age
2022.6.5-2023.12.10 뒤셀도르프, 율리아 슈토셰크 갤러리

● 한정민 독일통신원 ● 이미지 Julia Stoschek Foundation 제공

Danielle Brathwaite-Shirley 'SHE KEEPS ME DAMN ALIVE' 2021 Unity-Game installation, infinite duration, color, sound; 'DECISION MAKER' 2021 Unity-Game installation controller Installation view of 'WORLDBUILDING' JSC Düsseldorf Photo: Alwin Lay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한정민 독일통신원

Tags

독일의 율리아 슈토셰크(Julia Stoschek)는 유명 컬렉터 중에서도 미디어아트 작품만 소장하는 인물이다. 보존도 까다로운 데다 현대 미술계에서 완전히 주류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미디어아트만 고집하는 데에는 작품이 사용하는 매체가 가지는 ‘동시대성’이 큰 매력으로 작용할 터. 뒤셀도르프에서 시작해 6년 전 수도 베를린까지 전시 공간을 확장한 컬렉션이 15주년을 기념하며 전시 <Worldbuilding: game and art in digital age>를 열었다. 총감독은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rlich Obrist).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예술감독은 컬렉션의 15년을 조망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게임’을 선택했다.

슈토셰크가 주력하고 있는 ‘시간기반(time-based) 미디어아트’는 소리, 영상, 필름, 프로그래밍, 스트리밍 등을 매체로 활용하며 연속된 시간성이 작업을 구성하는 예술을 뜻한다. 게임은 위에 언급된 미디어아트의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집약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미 미국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나 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센터(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ZKM)과 같은 거대 기관들에서 이것을 현대 예술의 한 부분으로 다룬 바 있다.




Danielle Brathwaite-Shirley
<SHE KEEPS ME DAMN ALIVE> 2021
Unity-Game installation, infinite duration, color, sound
Installation view of <WORLDBUILDING>
JSC Düsseldorf Photo: Alwin Lay



비록 엄연하게 존재하는 예술과 게임의 개념 차이가 있으나, 글에서는 전시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게임이라는 매체를 예술의 형태로 변모시킬 수 있었는지 전하고자 한다. 오브리스트가 벌린 판에는 34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이들은 게임 엔진 프로그램에 인공지능까지 동원하면서 기존의 디지털 게임의 지배적인 논리를 전복, 탈맥락화 시키는 방식으로 각각 다양하게 작품성을 성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는 게임 전시회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현대적인 시각 문화를 재료로 활용하는 예술 전시다.


21세기 사람의 시간은 더 이상 신체가 위치하고 있는 물리적인 세상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이 디지털로 형성된 세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동시에 매체마다 다양한 정체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게임으로 구축된 가상현실 역시 게이머들이 거주하는 하나의 세상이며 그들은 나름의 생존 방식과 질서를 배워가며 불특정 다수와 일종의 사회를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들에는 무기를 사용해서 살아남거나 주어진 퀘스트(quest)를 수행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의 단선적인 전개가 생략되어 있고 무한한 디지털 세계를 배경으로 작가들마다 주장하는 새로운 세계관이 드러난다.




Ed Fornieles <Falling> 2015

HD video, color, sound 3min 3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Cabinet, London




먼저 테오 트리안타필리디스(Theo Triantafyllidis)의 <Pastoral> (2019)은 제목 그대로 ‘목가적인’ 정서를 구현한다. 얼핏 RPG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 장면에는 과도하게 근육이 강조된 괴물 같은 캐릭터가 비키니를 입고 벌판에 우두커니 서있다. 관람객은 설치된 조이스틱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조종해 벌판을 달리게 할 수 있지만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캐릭터 뿐, 일몰과 갈대 밖에 없는 배경은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밭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꺾인 깃발을 보면서 그곳이 이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다른 게이머들이 신나게 게임을 하고 떠난 장소에 10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그 괴물 캐릭터가 홀로 나타나 폐허 위를 황망하게 달리기만 하는 듯한 상황이 상상된다. 게임 세계관에서 주로 괴물적인 개체는 게이머가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작품에서는 그것이 사용자가 유일하게 조작할 수 있는 아바타가 되어 있고 목적도, 전투도 그 어떤 내러티브도 제거된 화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Meriem Bennani <Party on the CAPS>

2018 Video, color, sound 25min 28sec
Courtesy of the artist, BIM 2018 and
C L E A R I N G, New York/Brussels




라투르보 아베돈(LaTurbo Avedon)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보인다. <Permanent Sunset>(2020-)은 조작이 불가능한 영상 작품으로 판타지 장르에 어울리는 화려한 복장의 캐릭터가 가만히 서서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만 끊임없이 재생된다. 여기에 사용된 시청각적 요소들이 주로 게임을 하다가 다음 퀘스트로 넘어갈 때 재생되는 아주 짧은 영상처럼 보이는데, 본래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을 작가가 영원처럼 늘려 영상 작업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또한 디지털로 재현된 아름답고도 무한한 자연을 마주한 인물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마치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19세기 회화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역시 작품설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지만 작품을 통해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숭고’와 거기서 확대된 ‘기술적인 숭고’ 개념에 공감되기 보다는,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며 미션을 수행할 것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만 보여주는 전개로 기존의 게임 관념을 전복하는 지점이 오히려 흥미롭다.




Rebecca Allen <The Bush Soul #3>
1999 Interactive software installation,
infinite duration, color, sound Courtesy
of the artist and ZELDA




한편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Danielle Brathwaite-Shirley)의 작품이 구사하는 전략은 조금 다르다. <She Keeps Me Damn Alive>(2021)에는 총으로 보이는 게임을 진행시키는 일종의 조이스틱이 함께 설치돼있다. 그런데 무기가 내장 같은 유기적인 형태에 선명한 핑크색, 노란색을 띄고 있다. 무기성을 버리고 대신 생체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는 게임이 시작되면서 깨닫게 된다. 시작 전, 관람객은 흑인 트렌스젠더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주변 방해물을 제거해달라는 안내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총을 드는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에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쏘는 것에 익숙한 관람객들은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화면에서 무엇이 유해하고 무해한지를 판단할 여유가 없이 총을 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럴 때면 ‘제발 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뜨면서 서서히 주변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게임에서 무엇이 적인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관점으로 게임 속 환경을 파악해가면서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본인이 어떤 대상에 적대감을 느끼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무엇을 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작가는 관람객에게 결국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어보고 있다. 참고로 게임 환경에서 등장하는 요소들은 모두 흑인 트렌스젠더에 관련한 아카이브에서 차용된 것이다.




Jacolby Satterwhite

<We Are In Hell When We Hurt Each Other>

2020 Video and virtual reality installation, color,

sound 24min 22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Mitchell-Innes & Nash, New York




이안 쳉(Ian Cheng)이 구축한 디지털 생태계 <BOB(Bag of Beliefs)>  (2018-2019)는 AI를 매개로 참여자들이 앱에 접속해서 뱀처럼 보이는 BOB에게 어떤 신념과 동기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BOB는 마치 생명체처럼 성격을 형성한다. 비록 AI와 관람객 참여라는 테크놀로지를 사용한다지만 형식적으로는 ‘다마고치’처럼 캐릭터를 양육하는 - 이 작품의 경우에는 공동양육의 형태가 되겠다 - 고전 게임의 형식과 유사해 즐거움을 주지만 먹이, 청소 등의 단순한 실행이 아니라 ‘신념’을 인공지능에게 심어준다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관람객에게 설득적으로 다가갈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이 외에도 게임이라는 키워드 없이 이미 현대미술 현장에서 종횡무진 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지하에 단독으로 위치하고 있는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Serious Games I: Watson is Down>(2009-2010)은 그의 영상 속 장면처럼 마치 전쟁 상황실에 진입한 무거운 느낌을 준다.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놀랍도록 정교한 아프가니스탄의 입체 지형도가 한 채널에, 바로 옆에는 그 지형도안에서 게임을 하는 듯이 전쟁 상황의 시뮬레이션을 하는 미 해병들의 모습이 보인다.




Theo Triantafyllidis <Pastoral> 2019
Video game, infinite duration, color,
sound Installation view of <WORLDBUILDING>
JSC Düsseldorf Photo: Alwin Lay




파로키가 작품에 사용한 3D 입체 이미지, 조감도 등이 뒤섞여 있는 화면에 존재하는 시각 요소들은 오로지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러니까 식별하고, 추적하고 조준하기 위한 목적만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에드 앳킨스(Ed Atkins)는 그가 천착하고 있는 컴퓨터로 렌더링 된 인물들의 과장되고 어색한 감정 표현과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 CF 등에서 사용하는 오디오 비주얼 편집 기술을 <Even Pricks>(2013)에서 차용한다. 특히 작품에서 내내 반복되는 ‘좋아요(Like)’ 모티브가 손가락, 풍선, 바나나 등의 시각적 연속성으로 구성되며 영상을 내내 이끌어간다. 디지털 현실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좋아요’를 욕망하는 생태계를 작가 특유의 경쾌함으로 보여준다.


앳킨스처럼 게임이라는 형식을 명확하게 반영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친숙한 시각 문화를 풍성하게 사용하는 작가 김희천은 <썰매>(2016)에서 게임 방송, 르포, 음성변조 인터뷰, 유튜브 방송 형식을 사용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어느 날 핸드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리면서 자신이 세상으로 흘러들어가 모두가 나로 보인다는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얼굴을 거리의 사람들과 심지어 전광판의 인물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디지털 환경에 ‘저장된’ 자신의 존재가 상실되어 알지 못하는 타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에 실제로 거주하는 현실 세계에서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는 데이터로 치환되어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존재론적 현상을 영리하게 담아냈다.




Harun Farocki
<Serious Games I: Watson is Down>
2009-2010 Video, color, sound 8min Courtesy
of Harun Farocki Filmproduction, 2022




당연히 VR 체험 작품도 있고, 누워서 감상하는 테라피적 작품도 있어 관람객들은 입고, 쓰고, 벗느라 분주하다.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도 눈길을 끈다. 전시에는 조이스틱 컨트롤러부터 VR 오큘러스(Oculus)까지 있는데, 이러한 매체 앞에서 관람객은 나이가 너무 많아지기도 하고 어려지기도 한다. 고전 게임 팩맨을 실행하는 아타리 2600(Atari 2600)를 반가워하는 중년의 관람객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젊은 관람객의 어색한 공존은 오큘러스를 쓰고 가상현실을 탐험해야 하는 작품에서도 반대의 형태로 벌어졌다. 게임, 미디어아트의 매체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그것을 같이 한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 자본력의 차이가 작품의 퀄리티로 직결되는 현상도 볼 수 있다.


3D 이미지를 사용하는 작품 특유의 어색하고 과장된 질감과 움직임은 작가들이 일부러 선택한 전략이자 디지털 이미지의 편린으로 현대 디지털 문화의 시각적인 특징으로 설명되곤 했지만 사실 이는 부족한 제작환경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녹화되어 재생되는 영상이 아니라 게임 환경을 구축해 관람객들이 그 안에서 플레이를 해야 하는 작품이 많았던 본 전시의 작품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보였다. 거대한 게임 회사만큼의 엔지니어, 3D 디자이너 그리고 매체의 풀 퍼포먼스를 감당해야 하는 예산이 개인 작가에게 허락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LuYang
<The Great Adventure of Material World>
2019 Video game and 3-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 sound 26min 22sec
Installation view of <WORLDBUILDING>
JSC Düsseldorf Photo: Alwin Lay




그렇기 때문에 이미 유명 게임들이 생생하게 구현하는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관람객들은 작품의 퍼포먼스가 예술적 가치와는 별개로 많이 뒤쳐진다는 것을 금방 파악하게 된다. 그렇다면 점점 첨단기술을 작품에 도입하려는 현대의 미디어아트가 이러한 물적, 인적 자원의 한계를 돌파하고 얻을 수 있는 예술적 함의성은 결국 예술계의 몫이 될 것이다. 슈토셰크는 게임은 복수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장소라고 했다.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조망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장한다는 그의 신념처럼 1년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본 전시를 통해 미술계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해나가기를 바란다. ‘뉴(new)’ 미디어의 사용이 작품의 ‘새로움’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한 가지, 슈토셰크 컬렉션의 베를린 미술관은 올해를 끝으로 폐관한다는 소문이 돈다. 이유는 베를린의 부동산 상황 때문이라고. 상황이 이러니 2023년 예정된 전시를 보고 싶다면 잊지 말고 뒤셀도르프 미술관으로 걸음하길 권한다.PA




Frances Stark <My Best Thing>
2011 Video, color, sound 99min 17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Brussels/New York




글쓴이 한정민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핀란드 알토 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현대미술과 이론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독일에 머무르며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