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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1, Aug 2022

의미 있는 타자

Australia

Rauschenberg & Johns: Significant Others
2022.6.11-2022.10.30 캔버라, 호주국립미술관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제공

Jasper Johns, Gemini G.E.L. 'Color numerical series' 1968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Canberra © Jasper Johns/Copyright Agency, 2022 © Gemini Ltd/Kenneth E. Ty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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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은 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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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늦가을, 뉴욕의 한 길모퉁이에서 일어난 우연한 만남이 20세기 미국 미술의 궤적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에게 재스퍼 존스(Jasper Johns)를 소개해 준 예술가 수지 개블릭(Suzi Gablik)은 이 두 사람이 훗날 미국 미술의 거장이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을까?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예술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야심을 품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었으나 그들의 상황은 절망에 더 가까웠다. 라우센버그는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Gallery) 개인전에서 단 한 점의 작품만 판매한 채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존스는 예기치 못한 병으로 미술학교를 그만두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가 될 운명에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만남을 계기로 이 둘은 뉴욕의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아이디어, 비평 그리고 물리적인 자료들을 교환하면서 상호적으로 작업했고 일상적인 사물, 사인, 미디어 등을 작품에 도입해 예술과 삶의 경계를 붕괴시켰다. 세상과 격리된 채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창조적 환경으로 인해 이들은 대중의 비판 없이 자유롭게 실험적인 작업할 수 있었고, 이것은 두 예술가 모두에게 예술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from left) Robert Rauschenberg, Gemini G.E.L.

<Publicon - Station IV> 1978 and <Publicon - Station I>

1978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Canberra

© Robert Rauschenberg/Copyright Agency,

2022 © Gemini Ltd/Kenneth E. Tyler




라우센버그와 존스, 각자의 삶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이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사안은 서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에선 동성애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성에 대한 공개적인 표현을 금지하는 동성애 혐오 사회에서 그들만의 성적 표현을 탐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1950년대 이후 뉴욕 미술은 자아를 드러내거나 잠재의식의 세계를 표출하는 추상표현주의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의 변방에 있던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유행처럼 번진 주제를 무시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작품에 개인의 이야기나 개성을 반영하지 않으려 했다.


라우센버그의 언급대로 “추상표현주의에 도취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날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벗어나야”하는 자기 검열을 필요로 했다. 이처럼 작품에서 자신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작품을 중립적이거나 수동적인 것, 더 나아가 무심한 것으로 특징지으면서 모이라 로스(Moira Roth)와 같은 평론가들로부터 새로운 비평을 이끌어냈다. 개인적인 의미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암호화한 라우센버그와 존스. 그들의 작품은 때때로 시각적으로 달리 보이지만 동일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Installation view of Jasper Johns,

Gemini G.E.L. <Cardbird door; from Cardbird>

1971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

Canberra © Jasper Johns/Copyright Agency,

2022 © Gemini Ltd/Kenneth E. Tyler




이러한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예술적 대화를 다룬 전시 <Rauschenberg & Johns: Significant Others>가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이하 NGA)에서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NGA의 케네스 타일러 컬렉션(Kenneth Tyler Collection)을 중심으로 1967년부터 1973년 사이 제작된 두 예술가의 프린트 작업과 멀티미디어 작품을 한데 모은다. 여기에는 라우센버그의 걸작 <Booster>(1967)와 존스의 ‘Color Numeral Series’(1969)는 물론 그들이 동경하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그들과 동시대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도 포함된다. 큐레이터 데이비드 그린할(David Greenhalgh)은 <Rauschenberg & Johns: Significant Others>가 라우센버그와 존스가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한창일 때 어떻게 그들의 사적 담론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는지, 확장된 아이디어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전시라고 설명한다.


전시는 뒤샹의 예술적 업적을 요약한 작은 휴대용 미술관 <여행 가방 속 상자(Boîte-en-valise)>로 시작한다. 원본과 기계적 재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이 작업은 단순히 뒤샹의 작품을 축소 복제한 것 이상의 역할을 하며 현대 미술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술사학자 조너선 캣츠(Jonathan Katz)가 지적했듯이 뒤샹은 냉전 시대의 퀴어 예술가들에게 계시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의 예술 전략은 당연히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뒤샹의 작품을 연구하던 두 예술가는 일상적 재료, 콜라주, 물리적 과정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무심한(indifferent)’ 시각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작품은 곧 새로운 스타일의 팝아트를 선보이는 다음 세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Installation view of

<Rauschenberg & Johns: significant others>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

Canberra, 2022




한편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타일러와 함께 작업하며 1960년대 미국의 석판화 부흥을 일으킨 핵심적인 예술가들이 되었다. 타일러는 로스앤젤레스의 교육 기관인 타마린드 리토그래피(Tamarind Lithography)의 예술 감독으로서 사라져가는 미국의 인쇄술을 되살리려는 패기 넘치는 프린트 메이커였다. 전기 작가 캘빈 톰킨스(Calvin Tomkins)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라우센버그가 타일러와 함께 일하면서 타일러가 제작한 예술이 인쇄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타일러 역시 라우센버그엥 대해 확실한 명인으로, 함께 일하면 그의 정신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인쇄의 과정과 재료에 크게 관여하면서 판화라는 새로운 방식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를 탐구했다.


라우센버그는 타일러와 협력해 그 유명한 <Booster>를 완성한다. <Booster>는 작품에서 늘 전기(傳記)적인 흔적을 부정했던 그가 자화상을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엑스레이(X-ray)로 촬영한 라우센버그의 신체가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있는 이 작품은 예술가의 몸에 대한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의미가 내포돼있는데, 아픈 사람 혹은 사체(死體)의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중심 모티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스포츠 사진, 두 개의 드릴, 텅 빈 의자 그리고 다른 모호한 사진들로 그의 신체와 무관해 보이는 수많은 이미지다.




Jasper Johns <The critic smiles> 1969

from Lead reliefs series, sheet lead relief,

tin relief, gold casting 58.6×43.2cm published by

Gemini Graphic Editions Limited, Los Angeles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Canberra,

purchased 1973 © Jasper Johns /

Copyright Agency, 2022




전체 구성 위에 빨간색으로 그려진 달과 행성 지도는 1967년 천체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다. <Booster>의 전반적인 인상은 기술과 인체에 대한 것 그리고 우주 탐사에 대한 냉전 시대의 집착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한 정보도 숨겨져 있다. 죽음에 대한 경험, 움직이는 인체에 대한 관심, 성적 의미, 동성 연인과의 결별,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 그렇기 때문에 <Booster>는 라우센버그의 위기의 시기를 관통하는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존스는 타일러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의 첫 번째 석판화 시리즈인 ‘Color Numeral Series’를 완성했다. 숫자는 감정이 없고 숫자 자체에 대한 생각 이상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소재인 것 같지만 때로는 이러한 소재들이 더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중에서도 ‘Color Numeral Series’의 ‘7’은 존스의 작품에 비유적 이미지를 재도입하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La Joconde)> 철제 스티커가 박혀 있고, 그 옆에는 흰 잉크로 그린 작가의 손자국이 있으며 작품 하단에는 인치(inches)를 측정할 수 있는 자가 배치돼있다. 인쇄물 안에 있는 이 ‘프린트’들은 모두 우리의 계산 시스템과 인간 신체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십진법은 인간의 손가락 수에서 유래됐고, 인치는 원래 엄지손가락 끝에서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지는 첫 번째 관절의 길이에서 파생된 측정 단위다. 존스는 각각의 숫자 앞에 ‘figure’라고 제목을 붙였고,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의 회화 같은 일련의 인물화를 원했던 것으로 보아 그는 이 숫자 연작으로 인간의 형상을 암시한 듯하다.




Robert Rauschenberg <Booster> 1967

from <Booster and 7 studies series>

colour lithograph, screenprint 183×89cm

published by Gemini Graphic Editions Limited,

Los Angeles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Kamberri/Canberra, purchased 1973

© Robert Rauschenberg / Copyright Agency, 2022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관계는 7년 후 막을 내렸다. 1958년에 이르러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Leo Castelli Gallery)가 그들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두 예술가를 둘러싼 담론이 늘어났다. 이후 그들이 받은 대중의 관심과 예술 비평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관계가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견됐다. 비록 그들의 분열은 다시 화해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예술은 서로 평행하게 전진했다. 또한 작품이 계속 발전하는 동안,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함께 창작하던 초창기 대화에서 얻은 예술적 방법론을 유지했다.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눈부신 성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당시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수년 동안 서로의 주요 관람객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PA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면서 국내 매체에 호주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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