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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5, Feb 2022

공예와 미술

CRAFT AND ART

공예는 입고,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실생활에서 기능을 가진 물체를 손을 이용해 생산하는 장르를 지칭한다. 단어 자체가 일이나 기능을 뜻하는 ‘공(工)’, 기술이나 재주라는 뜻의 ‘예(藝)’를 품고 있듯, 공예는 인류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 발전을 함께 해왔다. 예술의 영역에서 공예를 바라보는 관점은 과거 회화나 조각 등과는 달랐으나, 20세기 들어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기 시작했고 공예의 관행을 예술 영역에서 실험하는 시도 역시 늘어나게 되었다.
● 기획 · 진행 김미혜 기자

김헌철 '시간의 흐름' 2020 유리, 조명, 스테인리스 와이어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동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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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박남희 미술비평가,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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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날 공예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우리는 ‘손’의 문명사적 테제를 통해 그 가치와 뿌리를 살피며 공예의 정의와 확장성을 사유하고, 동시대 미술과 함께 변화해온 공예 작품과 그것의 의미를 알아본다. 끝으로 현재 한국공예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와 방향성을 살피고 미래에 관한 제언으로 마무리한다. 공예와 미술이 공유하는 역사적 동시성을 탐사하며 그 확장과 변용을 함께 목도해 보자.




SPECIAL FEATURE No. 1
문명의 그늘, 버려진 손, 치유의 소임_최공호  

SPECIAL FEATURE No. 2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과 공예적 물질성_박남희  


SPECIAL FEATURE No. 3  
공예 오디세이: 한국 공예의 향방_최범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전시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Special Feature No. 1

문명의 그늘, 버려진 손, 치유의 소임

● 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한 다이빙선수가 화제에 올랐다. 영국인 남자 선수가 관람석에 앉아 뜨개질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시대의 뒷전에 밀려난 손뜨개와 올림픽의 조합이 뜬금없지만, 그가 젊은 남자라서 더욱 도드라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뜨개질은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시 성행하고 있다. 근래에 ‘손’이 문명사의 테제로 부상하고 있다. 손을 찾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근대가 폐기한 손을 다시 호출하는 연유는 손을 대체한 기계의 불안정성에서 비롯한다.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기술 과잉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손으로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깨워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있다.


손의 작용을 건강하게 되살리려는 노력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손으로 풍요한 삶을 꿈꾸는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과 탈성장(de-growth),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적정기술과 같은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무명의 청년이 문명과 절연된 숲에 들어가 원시 기술로 자생하는 모습을 비추는 유튜브 채널이 1억 뷰를 기록하고, 자연인을 다루는 국내 TV 프로그램에 쏠린 관심도 문명 너머의 손의 가치를 주시하는 흐름을 반영한다. 제작문화를 이끄는 현장의 실천가를 비롯하여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나 매튜 B. 크로포드(Matthew B. Crawford),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같은 철학자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손의 가치’는 자못 의미심장하다.1) 단순한 손재주의 부활을 넘어 대안문명의 유효성까지 한껏 확장된 시각을 선보인다. 손의 문명사적 테제는 미술의 울타리에 갇힌 공예 영역의 재구성을 촉구한다.




이선미 <안경알 땅빛 육각문 항아리>

‘2021 청주국제공예공모전’ 금상작




손으로 사유하기

과학이 배태한 기술 과잉의 시대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여러 경로로 시도되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신흥기술의 갈망이 클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은 사물의 원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문화 이론가 이광석은 이를 ‘암흑상자’라 부른다. 검은 천을 두른 상자에 손을 넣는 것처럼 무지에 뿌리를 댄 두려움이다. 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것은 결국 손이 제작에서 배제되고 소비의 선택만 강요받는 데서 비롯한다. 손의 가치와 작용을 앞장서 일깨운 윌리엄 코퍼스웨이트(William Coperthwaite)는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손을 쓰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2) 장인이 가진 창의력의 발원을 찾으려 한동안 골몰했었다. 학교 공부와 거리가 먼 장인이 절륜한 솜씨로 문명을 이끈 놀라운 능력을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필자가 ‘솜씨의 지혜’라는 말로 얼버무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손의 능력에 대한 과학계의 해명으로 이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손의 놀라운 능력을 입증하는 의과학계의 증언이 줄을 잇는다. E. F. 쇼 윌기스(E.F. Shaw Wilgis)와 미국 커디스국립손센터(Curtis National Hand Center) 전문가들이 함께 엮은 『손의 비밀(The Wonder of the Human Hand)』에서 복수의 저자들은 ‘손이란 시각적으로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한목소리를 냈다.3) 손이 몸 밖에 나온 뇌의 일부라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주장과 일치한다. 손이 뇌의 통제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동작을 결정한다는 프랭크 윌슨(Frank Wilson)의 주장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증한다.4) 인간의 손이 머리 이상으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데 중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뇌과학자 구보타 기소우(久保田競)는 “창의성은 손에서 나온다”고 단언했다. 세넷이 사물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눈이 아닌 손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맥락이 같다.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한다’는 뜻을 가진 ‘파악(把握)’이 ‘손으로 물건을 움켜쥔다’는 뜻에서 비롯하고, 영어의 ‘catch’도 ‘이해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은 동서양 사이의 우연한 일치가 아닐 것이다.


“손을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의 진화도 멈출지 모른다”는 구보타의 언표는 자못 진지하다.5) 그는 심지어 ‘출입문이나 청소기, 자동차조차 손 하나 까딱 않고 작동시키는 스마트 시대일수록 진화를 멈추기 전에 연필깎이보다는 칼로 연필을 깎고, 컴퓨터보다는 연필로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손과 뇌가 서로의 진화를 돕는 공진화의 상생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화가 존 브램블릿(John Bramblitt)은 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6) 눈을 대신하여 그를 화가로 만든 것은 손이었다. 손끝으로 물감의 색을 구분하여 그린 인물묘사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손작업 가운데는 즉흥으로 연주하는 재즈의 난이도가 으뜸으로 꼽힌다. 찰나의 순간에 악보 없이 상대의 음률에 반응해야 하기에 손이 훈련된 대로만 뇌의 지시를 따른다면 협연하기 어렵다.




<공예실천 工藝實踐 the praxis>

전시 전경 2019 KCDF 갤러리




손을 폐기한 근대문명의 패착

“서구문명은 손과 머리를 같이 연결해 쓰고 장인의식을 인정하고 고무하는 일에 원천적인 장애를 겪어 왔다.” 세넷의 지적이다. 근대문명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손의 배제와 결부시킨 분석이다. 손대신 기계를 선택한 결정적인 패착이 서구인이 자랑하는 문명화의 실체임을 고백한 셈이다. “손과 머리가 분리될 때 결정적 타격을 입는 것은 오히려 머리”라고 적시한 그는, 나치의 살인 기술자와 원폭을 발명한 과학자도 결과적으로는 손과 머리가 분리되어 생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7) 연관하여 아렌트는 ‘하늘의 신을 거부하며 시작했던 근대의 인간해방과 세속화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의 모태인 지구를 거부하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로 끝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8)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말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과학 기술을 통해 다양한 도구를 개발했으나, 그들이 보유한 재능으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이 만든 사물로 자신의 집인 자연 세계를 파괴하여 문명 종말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그의 지적이, 오늘날 기후위기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범지구적 위험과 정확히 중첩된다. 해체된 손과 머리를 다시 결합해야 한다는 세넷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손이 문명의 폐해를 복구할 유효한 대안이라는 필자의 생각도 이와 맥락이 같다. 손이 생산 주체에서 배제되면서 문명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인류의 공적이 되었다고 본다. 인간의 삶은 지구를 구성하는 만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기반하여, 전쟁이나 도전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코퍼스웨이트의 생각이 인간중심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최근의 반성을 떠올리게 한다.




<공예실천 工藝實踐 the praxis>

전시 전경 2019 KCDF 갤러리




행위주체성의 회복과 공예의 확장  

‘어쩌다 우리는 불편함마저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철학하는 정비사로 이름을 알린 크로포드는 손의 가치를 누구보다 곡진하게 전한다. 스마트폰으로는 작은 못 하나도 박을 수 없다는 깨달음과 손이 함께 할 때 사고도 한층 깊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 그가 마침내 선망하던 직장을 벗어나 지역에 바이크숍을 연 이유였다.9) 그는 손으로 작업하는 기쁨에 대해 ‘잃어버린 행위주체성(agency)의 회복이 주는 안도감’이며 ‘자존감이 채워지면서 생긴 행복감’이라고 해석한다. 그 대상은 솜씨가 뛰어난 장인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라 했다. 책상 위의 지식노동보다 몸의 감각을 사용해야 창의성도 증폭된다는 것이다. 기름 묻은 손으로 체득한 소중한 사유의 결실이다.


국외에서 일고 있는 최근의 메이커 운동과 국내의 제작문화 운동은 손으로 문명사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 실천으로서 주목된다. 제작문화는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에 도움이 될 모든 사물을 재구성하고 고쳐서 오래 쓸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이 활동을 통해 근대문명의 폭력으로 기형이 된 신체의 불균형과 잃어버린 창의적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들은 손을 쓰는 제작 활동을 통해 공생공락(conviviality), 탈성장, 회복력(resilience)을 지향하며, 궁극적으로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기술과 몸의 앙상블’이라는 문명의 지혜를 찾는다.10) 국내의 DIY나 목공, 도시농업 인구 증가세가 가파르고, 뉴욕의 아파트 옥상에서 농사를 짓거나 닭을 기르는 사람이 느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손과 연관된 의제가 이러할진대, 솜씨가 핵심인 공예가 중대한 시대의 고뇌 앞에서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창작’이라는 좁은 개념을 ‘제작’으로 넓혀 다변화하고 ‘기능’을 ‘기술’로, ‘작품’에 ‘기물’을 포함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중도에 버려진 사물의 ‘유지’와 ‘수리’의 영역까지 크게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흑상자에 손 넣기처럼 두려움은 용기를 내어 실행하는 순간 사라지게 마련이다. 문화는 바라보기보다 참여와 실천이 중요하다. 프로 선수의 경기를 관람했다고 내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200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쓰임’ 전시 전경



다시 공예의 소임을 생각하며

제작문화 담론에서 공예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예상 밖이다. 모더니즘의 이분법이 공예를 산업과 예술로 분절하여 기형화했다면, 공예의 본디 형질을 복원하는 것이 마땅한 우리 소임이다. 그럼에도 공예 담당층은 제작문화가 내미는 손길을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미술임을 부정하거나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라 외연을 확장하자는 제안이다. 공예 바깥의 제작문화 운동이 공예 내부를 향해 공예다운 소임을 일깨우는 형국이다. 손을 쓰는 일에 가장 익숙한 존재가 바로 장인이고 공예가다. 솜씨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특별한 일을 꿈꾸기 마련이지만, 그 특별함이 예술가의 길만은 아닐 것이다. 행위주체성의 회복을 통해 우리 몸의 감각을 되살리고 거기서 얻은 결실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은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훌쩍 넘어선다.


공예가 미술에 속한 기간은 문화와 문명을 아울러온 세기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공예의 본디 속성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금 문명사적 책무가 증폭되는 느낌이다. 시대적 과제를 읽는 데 실패하면 예술도 생명을 이어가기 어렵다. 공예의 지위를 미술의 변방에 묶어두려는 관성은 문명사의 과제를 외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가 분절한 이분법에 무기력하게 함몰됨을 의미한다. 손의 감각으로 몸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제작문화가 공예의 소명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공예가의 변화는 공적 소임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는 좋은 공예가가 되려면 공예를 넘어 인간의 삶 전체를 통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기술의 쓰나미가 인류의 존재 불안을 키우는 시대에 공예가 이 땅에 존재하는 참다운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요청한다. 공예 담론은 심오한 사변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이고 상식이며, 소요유(逍遙遊)가 아니라 몸을 써서 깨우치는 진실한 체득이다.11) 공예가 문명의 중심에 호출된 지가 한 세기 만이다.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는 한 나와 이웃을 위한 공예의 소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PA



[각주]
1)  공예와 손에 연관된 문명사적 사유는 다음의 책을 참고할 것.
William S. Coperthwaite, A handmade life: 이한중 옮김, 『핸드메이드 라이프』, 돌베개, 2004 Richard Sennett, The Craftsman: 김홍식 옮김, 『장인』, 21세기북스, 2010  Matthew B. Crawford, Shop Class as Soulcraft: 윤영호 옮김, 『손으로 생각하기』, 사이, 2017 이광석 외, 『사물에 수작 부리기』, 안그라픽스, 2018 박영숙, 『메이커의 시대』, 한국경제신문, 2015 Hannah Arendt,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이진우 옮김,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7
2) 코퍼스웨이트, 위의 책, p. 18
3) LG Science Land, “제2의 몸, 첫 번째 이야기, 손”, lgsl.kr/story/detail/sto/sto/28/STOR2021030016
4) 프랭크 윌슨(Frank Wilson)은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신경과 의사로 『손(The Hand)』(1998)이라는 책에서 손의 자율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했으며, 인간의 말이 손동작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5) 久保田競, 手と腦: 고선윤 옮김, 『손과 뇌』, 바다출판사, 2014, p. 54
6) 일요신문, “맹인 화가 ‘난 촉감으로 그려요’”, 2015년 4월 8일, ilyo.co.kr/?ac= article_view&entry_id=120994
7) 세넷, 위의 책, p. 27
8) 아렌트, 위의 책, p.35
9) 크로포드, 위의 책, 서문

10) 이광석 외, 위의 책, 서문 참조; DIY의 활성화나 목공기술, 뜨개질, 도시농업 인구의 증가세가 제작문화의 현주소를 말한다.

11) 조형예술의 열망 뒤에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묻어있다면, 산업화의 초입에서 “우리 모두 특정한 공예 기술을 배워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업신여기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존 러스킨(John Ruskin)의 간절한 바람을 떠올려 보자.


글쓴이 최공호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공부한 뒤 이론과 현장을 아울러 공예의 사회문화적 과제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200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무형문화유산 분야로 관심을 넓혀 무형유산학과를 신설하고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고등교육네트워크(APHEN-ICH)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 기획전 전경





Special Feature No. 2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과 공예적 물질성

● 박남희 미술비평가


동시대 미술의 풍경은 어떠한 장면들로 이루어지는가? 지금, 여기의 미술이라 칭하는 현상을 아우르는 특별한 언어나 관점이 있는가? 동시대는 어떤 시점이 기준이며, 미술은 어떤 내용이 포함되는가?1) 동시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양상을 논하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미술의 종말론이 대두되면서였다. 한스 벨팅(Hans Belting)이 1983년 미술사의 종말을 논한 게 시작이었고, 아서 단토(Author Danto)가 이어나갔다. 벨팅의 『미술사의 종말: 10년 뒤의 수정(Das Ende der Kunstgeschichte: eine Revision nach zehn Jahren)』2)이나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는 합리적이고 목적론적인 미술사 전통에 종말을 고했다. 벨팅의 말을 빌리면, 오늘날 “미술가와 미술사가 양자는 모두 미술의 역사의 어떤 합리적이고 목적론적인 진보(a rational, teleological process)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였다. 이는 “모든 것이 끝났다(alles aus ist)는 뜻이 아니라 담론(Diskurs)의 변경을 권유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낡은 틀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즉 종말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의미한다.



동시대 미술의 영역들,

탈경계의 혼종성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동시대 미술이란 무엇인가(What is Contem -porary Art)』에서 동시대라는 통제변수 속에서 미술은 전 지구적 움직임으로 시간, 공간, 이주, 역사, 계층, 젠더 등을 주제로 기존의 폭력적이고 단선적인 세계화에 탈식민적으로 저항하고 있음을 피력한다. 그의 동시대 미술의 조건은 정치적, 지역적이고,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방관자적 다원주의를 넘어 적극적 상대주의로 삶과 역사에 개입하는 것이다. ‘회화와 조각, 회화와 사진, 조각과 가구, 미술과 디자인, 미술과 상품,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미술과 음악, 미술과 무대미술, 시각언어와 언어 등의 경계-틈, 간극-이 문제로 떠올랐고, 경계를 포함한 제 영역 간의 ’이행(passage)’이나 ‘월경(transgression)’의 다양한 복합형식이나 혼종성이 동시대 미술의 주역이 된다.3) 특히 동시대는 정치 사회적 조건에 생산적으로 개입될 수 있으며 ‘공격적 논쟁(agonism)’, ‘개별화(disaggregation)’, ‘특수화(particularization)’를 시연하는 미술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켈리 바움(Kelly Baum)은 말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미술이 ‘맥락을 흉내내는 것’이라 한다.4)


장르 간의, 제 영역 간의 월경과 이행은 동시대 혼종적이거나 이질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설사 특정한 프레임으로 ‘맥락을 흉내내는 것’의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다 할지라도, 서유럽 모더니즘 형식주의의 거대서사보다는 민족지학적이거나 인류학적 담론에 참조점을 두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4차산업혁명 이후 가속도가 붙은 디지털라이징과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NFT, 메타버스까지 가세하여 동시대적인 것들의 주제, 표현방식, 대상, 제도, 시장 등 제작과 소통의 방식은 경계 너머의 경계가 있을 뿐이다. 각 영역 간의 경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도로교통 표지의 점선처럼 모든 분야는 넘나들고, 다만 미술관/화랑. 전시, 비평, 언론, 시장의 룰에 따라 실선의 프레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공예는 그런 넘나듦을 본질적으로 가장 많이 공유하는 영역으로, 거의 모든 장르에 점선으로 개방된 상황이다. 공예는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과, 제조나 유통의 디자인과, 질료나 구축의 실천성 건축 등과 제도적으로 여전히 실선의 경계를 유지 중인 듯하지만, 본질적으로 제작이나 질료 영역의 점선들은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는 어느 한 분야의 희생이나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 패러다임의 혼종적 속성이자, 이미 전시라는 제도가 사회적· 철학적 발언과 관계적이며, 형식들의 패턴이 상호교차하고 상호개입하여 개별적·지역적·사회적·정치적 아젠다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하지훈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HANDS+ 확장과 공존’ 기획전

확장섹션 설치 전경




동시대 미술에서

물질성과 제작의 공예적 개입들

동시대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서도호, 잉카 쇼비바레(Yinka Sho nibare), 양혜규, 조안나 바스콘셀러스(Joana Vasconcelos) 등의 작업은 개별적·지역적·사회적·정치적 아젠다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이들의 발언은 역사적, 민족지학적 배경과도 관계되는데, 공통적인 재현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공예적 문법에서 찾을 수 있다. 공예의 오랜 역사에서 정체성을 이루는 형식, 기능, 물성, 제작 방식의 특성을 담고 있는 것을 공예적이라 할 때, 이들 작가는 공예적인 특성을 가진 이들로 손꼽힌다. 그렇다고 이들을 공예가라 부르거나, 이들의 작품을 공예라 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동시대가 개진되는 데는 1989년 5월 퐁피두센터와 라빌레트 그랜드홀에서 개막한 전시 <지구의 마법사(Magiciens de la Terre)>가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이 전시에서 최초로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제3세계 지역의 작가 100여 명의 작품이 한자리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장-위베르 마르탱(Jean-Hubert Martin)은 그간 ‘민속 미술’로 치부되던 비서구권 미술까지 전시 작품을 확장하면서 서유럽 중심의 모더니즘 문법에 저항을 표했다. 민속미술과 공예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물질적 소재나 제작 문화의 원형적 산물에 관심이 확장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불합리한 체제와 권력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은 형식적 경계 없이 자신의 발언을 위한 다양한 표현을 이어왔다.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설치, 도자, 출판 등 장르적 경계도, 철재, 나무, 해바라기 씨, 도자, 유리, 구명조끼 등 작업을 위한 어떤 대상이나 질료의 선택에서도 자유롭다. 그의 작업은 대규모 사이즈로 인해 범접할 수 없는 숭고의 정서를 경험케 하면서 대부분 물질성과 제작의 공예적 속성과 반복적 행위와 축적 등을 지닌 것이 많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무라노 유리 공예기법으로 제작한 <검은 샹들리에>(2017-2021), 중국 경덕진의 청화백자 제작 형식으로 완성한 3.1m 높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을 보자. 전통적인 공예 제작 방식을 활용해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도발적으로 제기하는데, 난민의 실상, 어둠 속의 인류를 직면하게 한다. 중국의 연을 만드는 기법을 응용한 거대한 오브제나 나무 스툴이나 해바라기 씨 가득한 공간 등 시도되지 않은 이질적 질료들의 혼종성과 공예적 제작 방식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임을 반복적으로 교감시키는 데 유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재성 <희망>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HANDS+ 확장과 공존’ 알랭 드 보통 특별전

설치 전경





다른 한편으로 양혜규의 ‘문화적 평준화’와 물질성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공존 회복을 얘기했던 전시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Shooting the Elephant 象 Thinking the Elephant)>(리움미술관, 2015) 역시 눈여겨볼 사례다. 서구 모더니티의 역효과, 그리고 세계화에 따른 문화적 평준화의 모순에 질문을 던진 그는 짚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2015)을 드러내며 민속적이거나 공예적인 제작의 한 상황을 예시한 것이다. 짚풀이 갖는 인류학적 보편성과 민족적 개별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나 문화권마다 다른 특징을 보이는 짚풀 유형을 통해 작가는 각각 지역의 성격을 주지케 했다.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피어나는 튤립’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수직적인 개별 조각 6점으로 구성되었다.


쇼니바레의 경우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강렬한 패턴의 천들로 옷을 입은 형상을 제작하여 침략과 약탈을 통한 역사적 단절, 정신적 약탈 현상을 드러낸다. 쇼니바레가 아프리카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서구열강과의 관계성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맥락과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 뿐 아니라 서도호나 바스콘셀로는 공예적 물질성과 제작 방법이 두드러진 인물들이다. “Well Making, Well Finishing”의 공예적 가치를 지니면서도, 그들이 발신하는 메시지의 확장에 환원되는 상황들이 전부다.





이광호 <집착 연작> 2020-2021 나일론, PVC,

전선,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폰지 폼

가변 크기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공예의 동시대적 발언과 실험들

동시대 미술의 탈경계적이고 혼종적인 특성은 공예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미술로서의 공예 운동(crafts-as-art movement)의 여파로 공예가 미술에 동화하는 양상이 195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공예와 동일시되는 재료를 택하기 시작한 미술가들이 출현하는 한 방향과 미술의 양식과 비기능적 목적을 택하기 시작한 공예가들이 다른 한 방향으로 드러났다.5) 대표적으로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와 같은 인물은 유약의 추상표현주의적 표현 양식을 도입하여, 포터(potter)가 아닌 도자 조각가(ceramic sculptor)로 불렸다. 직조(weaving)는 섬유예술(fiber art)로, 가구는 아트 퍼니처로 변모하며 실험적인 공예부흥이 1970년 이래 꾸준히 진전되었다. 1971년 아메리칸 퀼트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입어 여성 노동과 편견과 마주하기도 했다. 예술로서 공예는 1990년대 강렬해졌고, 공예 전문 미술관에서조차 기능이 아니라 ‘예술’과 ‘미학’에 수집의 우선권을 부여하며 공예의 일상적 기능성의 발전이나 기술적 수준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역사적 과정에 동시대적 발언의 수위를 강력하게 함으로써 주목하게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와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다.


1970년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페미니즘 논의가 확산되면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시카고의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1974-1979)였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배척당한 39명의 여성을 저녁 만찬에 초대한다는 의미의 설치는 16m나 되는 각각의 테이블에 39명의 여성을 위해 한 면에 13개씩 나비 형태의 접시가 세팅되어 있다. 5년간 400여 명의 협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풍요의 여신에서부터 아마존 여전사,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Theodora),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8세기 영국 여성 인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20세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등의 이름을 수놓은 식탁보가 식탁에 덮여 있고, 그 위에 둥근 도자기 접시, 세라믹 포크와 나이프, 와인잔 등이 그 주인공의 시대와 업적에 어울리는 당대의 디자인으로 완성되어 있다. 시카고는 존중받지 못한 ‘여성의 노동’을 공예와 직접적으로 연결해 보여주었던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창균 <Remains&Hive> 2020 대나무,

자작나무, 라탄 서울공예박물관 전시동 로비




영국 작가 페리6)는 공예적인 속성에 기반하여 회화적 혹은 평면의 다른 형식이나, 조각, 건축과의 혼종성을 분명한 특징으로 한다. 태피스트리, 도자기, 주철 조각, 영화, 드레스, 심지어 완전한 집까지 다양한 기술과 재료를 사용한다. 동서양의 기형을 모사한 후 혼란스런 내용의 그림을 그려냈는데, 빅토리아 시대와 동시대 장면이 중첩되는가 하면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포르노그라피 이미지가 뒤섞인다. 일상과 전쟁, 폭력 이미지가 교차한다. 2003년 ‘터너상(Turner Prize)’의 수상의 영광을 가져온 <금빛 유령(Golden Ghosts)>(2000)과 <당신 아이의 시체를 발견했소(We’ve Found the Body of Your Child)>(2000)에는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과 대조적으로 어린이들이 등장하여 두 손이 잘린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거나 무언가를 상실한 듯 공허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작은 관들이 패턴처럼 화면 한편을 뒤덮는다. 타자성, 소수자에 대한 종교와 신화, 정체성과 젠더, 예술과 예술 세계, 계급과 소비주의, 갈등과 전쟁과 같은 그의 주제는 삶의 공명판이다.


페리를 얘기했지만, 동시대의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The event of a thread>(뉴욕 파크애비뉴, 2012)는 5,000평 넘는 공간(Wade Thompson Drill Hall)을 흰색 커튼으로 나누며 42개의 나무 그네를 설치하고 이를 즐기도록 만든 기념비적 작품이다.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의 퍼포먼스와 오브제들, 에드문드 드 왈(Edmund de Waal)의 공간 설치 내에 등장하는 도자 풍경, 마리안느 조르겐센(Marianne Jørgensen)의 탱크 위를 덮는 핑크색 니트 조각보 등 여전히 많은 공예적 작업은 동시대적 실험을 멈추지 않고, 사실상 그 점선의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에 있다. PA


[각주]
1) 동시대(contemporary)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로 현재의 시점을 역사에 포함시키는 연속성의 시대 개념이다.
근대, 현대, 동시대가 구분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현재의 순간까지 영향을 미치거나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동시대라 일컫는다. 시간 혹은 시대를 공유하거나 문화사적 개념과의 연관도 생각해야 한다.
2) 벨팅이 1983년 『미술사의 종말?(Das Ende der Kunstgeschichte?)』을 통해 주요 이슈를 제기하고,
12년 뒤인 1995년 자신의 테제를 보다 구체적 근거로 명확하게 하여 이 책을 출간했다.
3) 마츠모토 토오루(Machimoto Toworu), 「동시대 미술의 동 시대성에 관하여」,
『현대미술학 논문집』 10, 현대미술사학회, 2006, pp. 140-142
4) Hal Foster, Contemporary Extracts, e-flux, January 2010, 
e-flux.com/journal/12/61333/contemporary-extracts
5) Larry Shiner, The Invention of Art: 조주연 옮김, 『순수예술의 발명』, 인간의기쁨, 2015, p. 421

6) “Memory Maps: Grayson Perry's autobiography by Wendy Jones”, vam.ac.uk/content/articles/m/contemporary-prose-on-essex-grayson-perry-moonbow-by-wendy-jones



글쓴이 박남희는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 감독, 2016-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본부장을 지냈고 현재 홍익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재직 중이며 동시대 전기기획과 담론연구를 하고 있다. 미디어아트 관련 국제전시 ‘액트페스벌’(2018/2019)과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2019)을 총괄했고, 예술과 사회적 변화에 주목해왔다. 도시와 예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갖고 물질성과 제작 문화의 관점에서 동시대 미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크래프트 리턴> 

전시 전경 2018 KCDF 갤러리





Special Feature No. 3

공예 오디세이: 한국 공예의 향방

● 최범 디자인 평론가



공예의 귀환?

“공예가 돌아오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으로 내몰렸던 공예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일상과 사회에서 공예가 재조명되고 있다. 메이커 문화 붐이 일고 핸드메이드페어가 열리고 공예가로 전향하는(?)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 공예의 귀환(Craft Return)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전시 <크래프트 리턴>을 준비하면서 기획의 글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탈산업화(Post-industrialization)다. 산업의 첨단화는 산업화를 뛰어넘음으로써 탈산업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전반적인 디지털화는 아날로그적인 반작용을 불러오며 감성적 균형을 추구한다. 하이테크는 하이터치를 요청한다. 그런 가운데 유연 생산과 디지털 팩토링 및 메이커 문화 등이 공예의 복권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탈산업화는 전산업화와 일정한 친화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생태적인 전환(Ecological Turn)이다. 전 지구적 산업화가 초래한 환경 위기는 생태적 과제를 요청하며, 이러한 생태 환경 테제는 공예로의 회귀에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는 메가 트렌드다. 애드호키즘(Ad-hocism), 셀프에이드(Self-aid), DIY, 메이커 문화와 핸드메이드에 대한 관심이 모두 이로부터 나온다. 셋째는 제도 디자인의 자기 성찰(Reflexive Design)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양적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디자인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을 뿐 아니라, 산업화를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적 목표에 종속되면서 생활로부터의 분리, 사회와의 괴리를 초래했다. 이제 한국 공예와 디자인은 생활과 사회의 접점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예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 눈에 띄는 디자인의 공예로의 회귀 현상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공예의 귀환은 단지 귀환의 공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감각 또는 삶의 방식의 귀환을 의미한다. 그것은 섬세함의 귀환이며 소박한 삶의 방식의 소환이다. 산업화가 초래한 삶에 대한 양적 가치판단과 그로 인해 무뎌진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고, 삶의 섬세함과 미세한 일상성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귀환인 것이다. 이제 산업사회의 양적 발전을 넘어서, 국가주의적인 규모의 삶을 넘어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미시적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적정기술적인 삶이자 동시에 적정감성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1)




한창균 <Remains&Hive> 2020

대나무, 자작나무, 

라탄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창가




공예의 추방

공예의 귀환은 공예의 추방을 전제로 한다. 돌아오기 위해선 먼저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는 공예가 추방된 역사였다. 사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가 추방되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적인 수공업의 산물인 공예는 기계생산이 일반화되는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계생산 시대에 공예는 경쟁력이 없다. 전통사회의 생활문화였던 공예는 디자인으로 대체됐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용어를 빌리면 산업사회의 공예는 ‘잔여적인 것(the Residual)’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많은 공예는 사라졌지만 일부 공예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다. 공예는 일상생활을 담지하는 역할을 상실하는 대신에 다른 역할을 획득해야 했다. 마치 회화가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현실 재현의 역할을 사진에 내어주고, 추상미술과 같이 비재현적인 세계를 포착하는 것에 주목했던 것처럼 말이다.


디자인 이후의 공예가 나아간 길을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술화고 다른 하나는 특수화다. 공예의 미술화는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미술의 구심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고, 특수화는 전통문화화, 문화재화, 기념품화, 고급화, 명품화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비주류적인 차별화다. 그러니까 근대 이후의 공예는 전통적인 생활문화의 역할을 디자인에 넘겨주는 대신에, 이 두 가지 방향을 따라서 변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변용된 공예를 전통공예와 구별하여 근대공예라고 부르기로 하자. 따라서 이러한 공예의 근대적 변용2)을 참고하지 않고서 근대공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근대 이전의 공예와 근대 이후의 공예를 아무런 구분 없이 하나로 묶어서 논의하는 것은 비역사적이다. 그것은 공예에 관한 고고학적, 인류학적 담론일 수는 있어도 역사적, 현실적 담론일 수는 없다.




<자수, 꽃이 피다> 

전시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공예의 복권

근대화 과정에서 추방된 공예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일정한 복권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 이른바 ‘근대공예운동(Modern Craft Movement)’이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The Arts and Crafts Movement)’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민예운동(民藝運動)’이 대표적이다. 근대공예운동은 중세와 근대, 수공업과 기계공업의 교체기에 공예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근대공예운동은 공예의 위기상황에서 생존을 모색한 것으로서 일종의 공예 신원운동3)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싶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등장으로 인해 공예는 미술에 비해 열등한 영역으로 추락했는데, 이러한 구조는 18-19세기에 이르면 순수미술(Pure Art)과 응용미술(Applied Art)이라는 형태로 고착됐다. 한편 19세기의 산업화는 공예를 아예 생활로부터 추방했다. 공예는 산업사회의 잉여가 된 것이다.


근대공예운동은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공예의 복권을 시도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예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회복하는 것이 시급했다.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은 미술과 공예의 일치를 통해 순수미술=고급/응용미술=저급이라는 차별적인 위계 구조를 혁파하고자 했다.4) 야나기의 민예운동 역시 ‘미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소수에 의한 미술이 아니라 다수에 의한 공예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공예의 가치 승격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미술문화에서 공예문화로 나아가는 방향, 여기에 문화의 올바른 방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5)라는 대목에 이르면 야나기가 미술보다 공예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나기에게서 공예는 미술과 동격이 아니라 더 우위에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근대공예운동은 르네상스와 산업화 이후 추락한 공예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위상을 복원시킴으로써 전통공예의 가치를 현대화하는데 교량 역할을 하는 한편, 20세기에 등장하는 모던 디자인 운동에도 정신적, 실천적 영향을 미쳤다. 최초의 디자인사 저술로서 모던 디자인의 계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니콜라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의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1936)6)의 부제가 ‘윌리엄 모리스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까지’인 것만 보아도 모던 디자인에 끼친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신상호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 기획전 설치 전경




한국 근대공예의 행로

하지만 한국 공예의 행로는 좀 달랐다.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의 몰락은 세계사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그러한 과정의 구체적 양상은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구나 일본과 다른 한국 근대공예의 특수성은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미술의 등장과 산업화의 충격이라는, 서구 조형예술의 역사에서 공예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사건이 한국에서는 동시에 일어났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이 사건들이 왜 근대 한국에서는 동시에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지 않고서 한국 근현대공예7)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근현대공예를 이해하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것은 결정적이었다.”8)


그런데 한국의 근대에서 미술의 등장과 산업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한국의 근대공예가 거의 전적으로 미술의 구심점으로 빨려들어 갔다는 것이다.9) 이것은 한국의 근대화가 식민지적 방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서구와 일본처럼 전통공예와 근대 산업이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공예가 어떻게 현실로부터 소외되고 미술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증언한다. 그러면 이제 한국 공예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외된 근대화의 저 지루한 과정을 우회하여 정말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강기호 <풍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현대공예의 향방

흔히 공예가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공예 담론에는 생활예술 담론이 많다.10) 그런데 과연 오늘날 공예는 생활예술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이러한 담론은 모리스류의 중세적 낭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첨단 기술과 디지털 시대에, 생활예술로서의 공예란 그저 손으로 만든 작고 예쁜 물건으로서 집안에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은 액세서리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과연 그런 것이 동시대의 생활예술로서 공예의 모습이어야 할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잔인한 농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예는 역시 사라져야 마땅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분명 공예는 되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그 돌아온 공예는 과거의 공예(전통공예)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예가 돌아온 자리도 예전의 그곳(생활문화)이 아니다. 그렇다면 ‘돌아온 공예’는 과연 어떤 공예이며, 공예가 돌아온 자리는 진정 어디인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는 ‘근대 조형예술 체계’ 내에서 공예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동시대 공예에 대한 사유는 조형예술의 역사 속에서 변용되어온 공예의 위상에 대한 이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의 공예, 즉 현대공예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작금의 상황은 근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박제된 전통과 예술로 위장해온 사이비 공예의 가면이 벗겨지면서,11) 공예의 본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달콤한 말로 공예의 현실을 기만하고 위로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12) 왜냐하면 그러한 이데올로기로는 결코 오늘날 공예의 현실을 직시할 수도, 창조해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진짜 공예란 없다.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공예가 있을 뿐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공예가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무엇이든 공예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역시 달라진 시대의 달라진 공예를 정의하는 다른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공예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근대 조형예술, 미술과 디자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13) 그럴 때만이 공예는 단지 ‘잔여적인’ 전통문화도, 산업사회 속의 ‘작고 예쁜 물건’도 아닌, 동시대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A


[각주]
1) 최범, <크래프트 리턴>(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갤러리, 2018) 전시 기획의 글

2) 공예의 근대적 변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최범, ‘미와 실용성’, 「공예의 가치」, 『공예를 생각한다』, 안그라픽스, 2017
3) 신원(伸寃)이란 가슴에 맺힌 원한을 푼다는 뜻인데, 한국사에서는 19세기 말 동학교도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명예를 회복하고 포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벌인 운동이 유명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공예 신원운동을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추락한 공예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복권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4) 흔히 미술공예라고 번역되는 ‘Art and Craft’에서 ‘and’의 의미를 ‘미술과 공예’라는 식의 나열이 아니라 ‘미술=공예’라는 식의 동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Art and Craft는 미술과 공예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임을 표시한다.

‘예술가로서의 장인(Artisan Artiste)’과 ‘장인으로서의 예술가(Artiste Artisan)’라는 모리스의 언명 또한 공예가와 예술가가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5) 柳宗悅, 工藝文化: 민병산 옮김, 『공예문화』, 신구문화사, 1999, 서문
6) Nikolaus Pevsner, Pioneers Of Modern Design: 권재식 외 옮김,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 비즈앤비즈, 2013, 참조
7) 근현대공예는 근대공예와 현대공예를 함께 일컫는 말인데, 근대공예와 현대공예의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잠정적으로는 19세기 말 이후 전통공예가 붕괴하고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의 영향으로 변용되어가는 단계를 근대공예,

해방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교육의 실시와 서구의 영향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경향을 현대공예라고 부르기로 한다.
8) 최범, 「한국 현대공예의 상황- 비교문화사적 관점」,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서울공예박물관, 2021, p. 245

9) 한국 근대공예의 미술화에 대해서도 다음을 참조할 것. 최범, 위의 글

10)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날 공예 담론은 대부분 예술 담론의 일부(식민지화)이며,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생활예술 담론이 제기된다.

11) 이러한 과정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 공예의 몰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12) 현대공예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최범, 위의 글, p. 248

13) 이와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역시 다음을 참조할 것. 최범, 위의 글



글쓴이 최범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과 ‘200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미술, 디자인,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안그라픽스, 2006) 외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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