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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5, Oct 2013

차승언
Cha Seungean

PUBLIC ART NEW HERO 2013
그라운드 제로, 회화 형식 실험

‘이것은 캔버스가 아니다.’ 차승언의 작업 아래, 이렇게 써 붙이고 싶다. 그의 작업은 벽면에 걸려 여느 캔버스인 듯 회화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업은 성긴 직조로 내부의 나무 뼈대까지 드러내며, 회화의 바탕(ground)이기만 한 캔버스가 아님을 강렬히 어필한다. 그러나 이는 조각이라고 규정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바탕과 이미지가 구분되지 않는 다만 하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어떤 것(thing)’임을 강조하던 미니멀리즘의 사조를 떠올리게 한다. 물성을 강조하며 조각도, 회화도 아닌 ‘그 자체’로 스스로를 정의하고자 한 미니멀리즘. 차승언의 작업은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추며 말이다.
● 문선아 기자 ● 사진 서지연

'HE三三三三三' 2012 면사, 폴리에스테르, 아크릴물감, 염료 61×46cm, 2 pieces,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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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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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실에는 커다란 베틀이 놓여있다. 그것으로 그는 캔버스의 나무틀 위에 올릴 작업을 짠다. 차승언은 캔버스를 직접 짜면서 씨실과 날실에 직접 염색을 하거나, 색실을 계산해 넣어 무늬를 만들거나, 짜인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작업을 완성한다. 흔히 캔버스를 물감이나 다른 매체를 올리기 위한 바탕으로 여기지만 작가는 캔버스 그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인식한다. 보통은 잘 신경 쓰지 않는 캔버스의 조직이나 질감, 구성이 관심거리였던 그에게 ‘베틀질’이라는 노동은 최적의 프로세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볼 때, 밖의 환영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유리창이 그 환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매체와 그 구조를 살펴보자고 이야기 했던 모더니즘 미술의 전형으로 읽힐 수 있다. 모더니즘 시기의 작가들은 매체성에 대해 반성하면서 회화나 조각 자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는데, 차승언의 작업이야말로 캔버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회화의 본질을 물을 뿐 아니라,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리드, 평면성, 바탕과 이미지의 통일 그리고 액션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



<천막-3> 2013 면사, 비닐 직조 61×92cm



환영을 만들기 위해 원근법의 프레임으로 사용되던 수평·수직의 그리드는 모더니즘 미술에 이르러 노골적으로 회화의 표면에 드러나면서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바 있는데,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지는 차승언의 작업은 당연히 그리드를 포함한다. 그는 이미지 혹은 무늬로써 그리드를 강조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회화의 평면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직조된 작업은 따로 배경을 가지지 않고 그 자체가 전체의 이미지이자 하나의 작업이 되는데, 이로써 바탕과 오브제는 통일되며 ‘회화는 평면’이라는 모더니즘 시기의 진리를 다시 향한다. 또한 한 줄 한 줄 떠나가는 그의 작업형태는 노동이자 액션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미지를 떠나 인덱스(index)로 향한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업형태를 환기시킨다.



<천막-1><천막-2> 2012 면사, 
폴리에스테르, 아크릴물감, 염료 61×46cm  



물론 작가가 처음부터 미술의 형식에 대한 공공적 물음을 지닌 작업에 열중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공통적인 것은 작가가 본래 섬유와 천이라는 매체의 물성에 빠져 있었다는 것.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초현실주의적면서도 표현주의적인 작업에 몰두하며 매체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입체적인 봉제작업들을 통해 왜곡된 신체의 이미지들을 표현했는데, 천이 만들어내는 말랑말랑한 질감은 내장기관과 같은 그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매체에 의해 자신이 구획·제한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매체를 선택하기를 갈구하면서 모든 것을 비우고 원점(ground0, 그라운드 제로)에서 회화의 형식을 실험하는 작업으로 들어선다.



<Being aware of the Energy> 부분이미지 
2011 Monofilament, 소금 24×500×600cm 
한전아트센터설치  



현재 작가가 열중하고 있는, 말하자면 ‘캔버스 시리즈’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틀에 대한 연구와 기존의 오브제를 따른 연구가 그것. <프레임12P-1>, <아그네스 패치> 등 틀에 대한 연구에서 차승언은 모더니즘의 그리드를 해체시킨다. 그리드는 더 이상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어지며 파괴된다. 수평·수직으로 교차하지 않고 캔버스의 표면을 가로지르며 어그러진다. 한편, <천막1>, <BR-1> 등 기존의 오브제를 따른 연구에서는 천막과 같은 값싼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무늬나 버버리 같은 기존의 명품브랜드의 이미지를 베틀로 한 땀 한 땀 직조해내며 차용을 표방한다. 그리드로 대표되는 고결한 모더니즘의 가치가 천막과 버버리의 무늬를 따라하면서 과연 그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묻는다. 작가는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에 포스트 모더니즘적 내용을 담아 모더니즘 미술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작가는 직접 한 줄 한 줄 뜨는 과정을 통해 그 개념을 스스로에게도 육화시킨다. 미니멀리즘이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같은 ‘것’을 생산해내며 결과적으로 세상의 가치를 무화시킨데 반해 차승언은 한 발 더 나아가 공예적 수공업을 통해 가치를 한 땀 한 땀 뜨고 있는 것이다.



<영> 부분이미지 2013 
직조기, 면사 가변설치, 경기창작센터  



모더니즘 미술이 회화는 물감으로 이루어진 평면에 불과하며 조각은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외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매체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성’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이자 우월감이었다. 그리고 그 이성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붕괴했다. 모든 것이 매체이자 사물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보다 그 스스로 역시 도구화 시켜 소외시켜 버렸기 때문. 따라서 모더니즘에 머무르지 않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숙연한 노동을 통해 캔버스를, 말하자면 특정한 이미지를 띄는 유리창을 직접 직조하고 있는 차승언의 작업은 이제 곧 어떤 진리의 일면을 보여줄 것만 같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말로 언어와 이미지 그 매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마그리트처럼, 차승언 역시 캔버스 같지만 마냥 캔버스만은 아닌 작업으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매체에 대한 그리고 진리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차승언



2013 퍼블릭아트 선정작가 차승언은 홍익대학교 섬유미술과와 동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회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 9회 섬유조형 대상전에서 특선한 바 있으며, 제23회 중앙미술대전 작가로 선정됐다.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도스에서 개인전을, 한국의 대전시립미술관, 경기창작센터, 미국의 설리반 갤러리(Sullivan Gallery), 1366 스페이스(1366 Space) 등 다수 갤러리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의 레지던시를 거쳐 현재 신당창작 아케이드에 입주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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