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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0, Sep 2021

전복된 성(性) 이데올로기

Australia

Sarah Lucas
8.7-2022.4.18 캔버라, 호주국립미술관

사라 루카스(Sarah Lucas)의 팬이라면 자신의 가슴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려놓은 그 유명한 사진 자화상을 기억할 것이다. 다리를 넓게 벌려 마초적인 포즈를 취한 루카스가 당돌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바로 그 이미지 말이다. 허름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묵직한 신발을 신은 그는 중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관람객을 마주하는 시선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단호해 보인다. 하지만 심각한 표정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가슴을 덮고 있는 달걀프라이 두 장이다.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제공

Installation view of 'Project 1: Sarah Lucas'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2021 ©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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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은 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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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묵직한 신발을 신은 그는 중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관람객을 마주하는 시선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단호해 보인다. 하지만 심각한 표정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가슴을 덮고 있는 달걀프라이 두 장이다. 루카스는 성적인 신체 부위를 종종 음식으로 대체하여 다소 무겁고 비판적일 수 있는 주제를 위트 있게 다루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달걀프라이를 붙인 자화상(Self Portrait with Fried Eggs)>(1996)이고 이 같은 코드라면 피터 존슨(Peter Johnson) 큐레이터의 말대로 호주인들 또한 루카스를 좋아하게 되리라.


거칠면서도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통해 성(性)을 탐구해 온 영국 작가 루카스. 오랜 침묵을 깨고 그의 작품이 호주에 왔다.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이하 NGA)이 현재 진행 중인 초대형 기획전 ‘Know My Name: Australian Women Artists 1900 to Now(이하 Know My Name)’의 첫 번째 프로젝트 작가로 루카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2019년 NGA는 컬렉션 및 프로그램, 전시와 조직 내에서 성 형평성을 조화롭게 구현할 것을 약속한 이후 ‘Know My Name’을 통해 호주 여성 예술가들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NGA의 소장품을 비롯해 호주 전역의 미술관들로부터 대여한 350여 점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선보이며 NGA 역사상 여성 작가만을 소개하는 전시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Know My Name’의 ‘Part 1’이 약 7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지난 6월 12일 ‘Part 2’가 시작되었다. 




<DORA LALALA> 2020 

© the artist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 Robert Glowacki




‘Part 2’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루카스는 성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페미니즘 아트에 대한 해석을 풍요롭게 하면서 호주 여성 예술가들과의 창의적인 관계를 제시한다. 루카스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인간의 몸을 잠재적인 욕망의 장소로 표출하며 사진, 조각, 퍼포먼스를 통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슈에 도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첫 번째 사진 자화상인 <바나나 먹기(Eating a Banana)>(1990)와 함께 1997년부터 만들어 온 ‘버니 연작(Bunny series)’의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달걀프라이를 붙인 자화상>을 포함하여 사진 자화상은 1990년대 초부터 루카스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바나나 먹기>에서 그는 자신의 남성적인 외모를 예술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남성성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제작된 다양한 사진 자화상은 그의 조각과 설치 작업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바나나 먹기>에서 그는 터프하면서도 남자다운 느낌을 전달함과 동시에 도전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형화된 성 정체성에 도전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바나나가 남성의 성기를 은유적으로 상징한다면, 바나나를 먹는 행위를 통해 그는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자신의 힘을 장난스럽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바나나 먹기>는 원본 사이즈와 달리 전시장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는 7m 이상 높이로 새롭게 제작되어 압도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화려한 버니 시리즈의 근사한 배경으로서 조각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CROSS DORIS> 2019

 © the artist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 Robert Glowacki




이토록 거대한 자화상에 둘러싸인 ‘버니들’은 1997년 런던 사디 콜 갤러리(Sadie Coles HQ)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루카스가 현재까지 천착하고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대중문화에서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만 묘사되는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를 희화화할 의도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잡지 『플레이보이(Playboy)』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토끼’에서 제목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루카스의 토끼들은 매우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현되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없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가진 여성의 형상이 의자에 고정된 형태를 취한다. 여기에 유혹적인 매체인 스타킹을 이용하여 요염한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하지만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마른 여성을 선호하는 패션계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여성의 다리를 기형적일 정도로 길게 늘려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관능적인 여성의 몸을 추구하는 대중의 욕망은 말 그대로 텅 빈 머리에 축 처진 형태를 한 버니들과 코믹한 대조를 이룬다. 


한편 초창기 버니들이 스타킹에 솜을 채워 넣은 부드럽고 가벼운 박제 형상이었다면 이후의 버니들은 콘크리트 및 청동으로 제작되어 보다 단단하고 강하게 변형됐다. 루카스는 초기 버니 연작에서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묘사한 반면 NGA에 전시되고 있는 세 점의 새로운 청동 조각 <DICK ’EAD>(2018), <TITTIPUSSIDAD>(2018), <ELF WARRIOR>(2018)에서는 성적인 매력과 강력한 힘을 모두 지닌 혼성적인 존재로 표현했다. 한 형상 안에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를 전부 드러나게 하기 위해 남녀의 해부학적 구조를 하나로 통합시킴으로써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페니스가 동시에 존재하는 혼종의 대상을 만든 것이다. 남녀를 표현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성별 간의 차이를 허물고자 한 이 작업에서도 그는 역시 유머를 잃지 않았다. 여성의 가슴이 여러 개 존재하거나 남성의 페니스가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어난 모습은 시각적인 충격을 주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러한 표현 방식이 오히려 해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SUGAR> 2020

 © the artist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 Robert Glowacki




루카스가 자신만의 버니들을 창조한 것처럼 여성을 인형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언제나 존재했었다. 한스 벨머(Hans Bellmer)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하던 마네킹, 1960년대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가 만든 아상블라주 조각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루카스의 버니들은 과거 인형 이미지의 혈통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그는 이러한 버니들을 성적 표현에 대한 틀에 박힌 관습과 고정된 성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장치로 활용했다. 전통적인 남성의 시선을 해체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언어와 이미지를 비틀면서 전형적인 성 담론에 도전하는 루카스는 예술이 반드시 심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상의 소재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연극의 한 장면처럼 희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에게는 작품의 의미만큼이나 중시하는 요소가 있는 듯하다. “유머가 생기면 작업이 잘 풀리죠. 덜 우울해지고요. 일종의 마술이라고나 할까요.” PA




<ALICE COOPER> 2020 

© the artist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 Robert Glowacki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면서 국내 매체에 호주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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