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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0, Jan 2020

문화로 가는 길의 장벽을 허물다: 배리어프리 뮤지엄

Barrier-Free Museum

유복한 가정에서 건강하게 태어나 성취를 거듭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누구나 거주하고 싶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잘 모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장벽이 있는지를 말이다. 결핍에 처해 불편과 위험을 몸으로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몰인정했는지 생각한다. 2018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운데 ‘등록’ 장애인이 250만 명이다. 전체 국민 가운데 4.9%에 해당하는 수치다. 2011년 영국의 센서스에서 전체 인구의 18%가 장애인으로 조사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실제 장애인은 이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50만 명도 이미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은 많은 경우 정치적 약자요, 교통 약자며, 사회적 약자다. 장애인은 문화적 약자기도 하다. 이 다중 약자들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배려는 아직 만족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 진행 편집부 ● 기획·글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Water fountains of the Accessibility features around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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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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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지난해 서울역사박물관이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관을 운영한 것은 작지만 아름다운 시도다. 장벽(barrier)을 없애기(free) 위한 노력은 건축에서 먼저 일어났다. 슬로프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점자블록을 마련해서 사용자들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높이려는 건축가들의 고민은 이제 그 어떤 장애의 소유자까지도 포용(inclusion)하려는 시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배리어프리 설계는 어느덧 유니버설(universal) 설계로 넘어가고 있다우리나라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이런 시도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경험으로는 그렇다. 예산과 설계와 조직운영에서 앞선 경험을 답습하는선례의 덫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례의 덫에서 탈출하는 첫 번째 방법은 눈을 들어 먼 곳에서 좋은 사례를 찾는 일이다. 이제 독일의 벤츠 자동차박물관(Mercedez Benz Museum, 이하 벤츠 박물관), 캐나다의 인권박물관(Canadian Museum of Human Rights: CMHR),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Tactile-Braille iBeacon marker of the Accessibility features around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독일 자동차 공업의 산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벤츠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시실 곳곳에 마련해놓은 경사로다. 독일표준화기구(DIN) 규범에 따라 설치된 경사로는 휠체어 높이의 손잡이나 중간 플랫폼과 더불어 전시실 안에서 장애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준다. 장애인 방문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박물관의 배려는 구조설계에서 끝나지 않고, 건축과 인테리어 소재 선택에서도 확인된다. 그중 하나가 미끄럼 방지 바닥이다. 쾌적한 장애인 전용 화장실, 전시장 입구의 여유로운 회전문, 넉넉하게 구비해놓은 휠체어,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구도 관람객의 편이성을 한껏 높여준다


어쩌면 이러한 하드웨어적 요소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인적 요소일지 모르겠다. 장애인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면제해주고, 대기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입구를 사용토록 하며,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직원을 배치해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구조와 시설만이 아니라 박물관 내의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다른 박물관과 비교되는 벤츠 박물관의 강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촉수엄금표지가 없다. 방문객은 전시실 내의 오브제 가운데 일부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 반려견의 동반도 허용된다. 여기에 더해 벤츠 박물관은 2010년부터 매년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관람의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온 덕분에 벤츠 박물관은 2007년에배리어프리 설계상(Exemplary Barrier-free Construction)’을 받았고, 2013년에는 장애인 조직 ‘ABS’로부터황금휠체어 상(Golden Wheelchair)’을 수상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주목할 곳은 2014년 캐나다 퀘벡주 마니토바의 위니펙에 설립된 캐나다 인권박물관이다. 설립 이듬해에 장애인 권리 증진을 목표로 제정된조디상(Jodi Award)’을 수상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캐나다 인권박물관은 접근성에 관한 한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고 있다.





The view of visitors experiencing tactile art ⓒ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인권박물관은 인권신장을 위한(for) 장소인 동시에 인권에 관해(of)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장소인 만큼, 장애인과 더불어 장애인의 권리를 충분히 고려하는 사람들에 의해(by)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 믿음이 바로 캐나다 인권박물관의 출발점이었다. 처음부터 박물관은 장애인 전문가 9인으로포용적 디자인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상의 접근성과 모든 사람을 위한 설계(Design for All)’ 원칙을 실현할 전문가들을 고용했다그 후 4년 동안 다양한 구상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 적용되고, 다시 수정하는 수고로운 과정이 반복되었다. 모든 초점은 장애인의 접근성과 편이성 향상에 두었다. 그 결과 확보된 120개의 범용접근지점(Universal Access Points: UAP)에 점자표기, 촉각 감지용 숫자, 지팡이를 짚는 바닥 스트립이 설치되었다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TSI)를 사용할 수 없는 방문객을 위해서 범용 대화키패드(IUK) 같은 장치까지 갖춰놓았다. 박물관의 배려는 세심했다. ‘포용적 설계원칙에 따라 100시간 이상의 비디오 화면에 영어 수화(ASL)와 퀘벡 수화(LSQ)를 삽입했고,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을 알려주거나 자막을 읽어주는 해설 오디오도 설치했다. 모든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TSI)에 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키패드를 마련해서,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조절이 가능하게 했다. 음성지시도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 내용의 의미구조와 연동시켰다


기획팀의 고심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박물관 앱을 통해 빛을 발했다. 여행계획 수립과 온라인 티켓 구매를 위해 다양한 정보를 수화와 문자와 오디오에 수록했고, 이미지와 비디오를 활용해서 제작한 여행안내 자료와 인터랙티브 지도도 앱에 포함시켰다. CMHR 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니어 미(Near Me)’ 기능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이 모드는 저주파아이비콘(iBeacons)’을 통해 방문객의 디바이스를 박물관 내의 범용접근지점들과 이어준다. 박물관 공용 공간 인터랙티브 지도는 방문객이 현재 있는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길 찾기에 도움을 주거나, 문자 기반 안내를 통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알려준다.





The view of the visitors experiencing Universal Keypad(UKP) ⓒ The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





세밀한 작업은 전시공간 전체에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전시의 글씨체는 가독성과 명료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와 글자 비율 같은 활자 요소들을 고려하여 선정했다. 글자의 크기와 위치도 장애인이 바라보는 위치와 거리를 측정해 결정했다. 방문객의 피로를 줄이고 좀 더 수월하게 내용을 읽도록 하기 위해 문단 정렬과 줄 길이 같은 사항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텍스트와 배경 간의 대조를 충분하게 하기 위해 색채의 대비와 빛 반사율 값 대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캐나다 인권박물관은 이처럼 다양한 장애인의 입장에서 구조와 기능을 설계하고, 시험을 통해 수정하는 작업을 거듭함으로써 방문객의 편이성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공로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조디상이 접근성 증진에 대한 공인이었다면, ‘국제디자인소통상(The International Design and Communications Awards)’ 금상은 혁신적인 앱 개발에 대한 보상이었다배리어프리 박물관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더 높은 접근성과 더 큰 포용성이다이 목표는 문화시설에 도착할 때까지의 교통장애, 도착 후 컬렉션에 근접할 때까지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접근성의 보장은 어떻게든 포용성의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에 주목하여 컬렉션을 향유하는 방식까지 확대함으로써 배리어프리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한 곳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다.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2015 <손으로 만져보는 프라도(Touching the Prado)>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기획된 이 전시회에는 프라도가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작품 가운데 3D 기법으로 모사된 6개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파라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제자가 그린 <모나리자>, 반 더 하멘(Juan van der Hamen)의 정물화,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àzquez) <불카누스 대장간의 아폴로>,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 코레지오(Antonio da Correggio)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는 예수>가 바로 그것이다.





ⓒ ONCE Typhological Museum





이 기획은 수년 전부터 미술관 측이 추진해온모든 사람을 위한 프라도 미술관(El Prado for All)’ 프로그램의 완결판이었다. 프라도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청각장애인, 자폐증 환자, 신경쇠약 환자와 치매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온 터였다. 그러나 <손으로 만지는 프라도>는 이전의 기획에 비해 난이도가 높았고, 준비과정도 복잡했다. 이를 위해 미술관은 빌바오 부근의 특수인쇄회사가 개발한 릴리프 인쇄기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원작 그림에서 해상도 높은 사진을 확보한 후 증강해야 할 질감과 특징을 선택해서 특수 잉크로 인쇄본을 제작할 수 있었다


여기에 화학 공정을 더해서 밋밋한 인쇄본에 입체감을 부여했다전시의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시각 장애인들은 촉각을 통해 붓놀림의 윤곽을 느끼면서 각자의 마음속에서 원작을 재현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은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을 주었다. 미술관은 관람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점자와 오디오 가이드까지 제작했다기획팀은 뿌연 안경을 비치해서 일반 방문객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그림을 체험해볼 기회도 제공했다. <손으로 만져보는 프라도> 기획은 미술관 공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작품을볼 수 있는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이 특별전과 연계하여 프라도 미술관은 소장품 가운데 53개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새로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소장품을 골고루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장르와 주제를 달리했다. 이러한 미증유의 기획과 실행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스페인의 국립 맹인기구에 속한 기술자들도 협력했다. 전시 디스플레이 설계에 참여한 이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장애인 방문객이 3D 복제 예술품을 손으로 만지기에 적절한 높이를 결정했다.


이 세 개의 사례는 모두 진정성 있는 시도여서 아름답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아직은 대세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박물관과 미술관 전체를 돌아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박물관 접근성에 관한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역에 있는 1,718개의 박물관 다섯 곳 가운데 하나는 장애인 접근성과 관련한 그 어떤 정보도 온라인상에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 활동이 확대될수록, 정보의 사각지대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캠페인이 이어진다면, 공공 부문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노력도 더 커질 것이다. 배리어프리 박물관 만들기가 반드시 엄청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겠지만, 이 역시 회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많지 않은 비용으로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설비 개선과 소프트웨어의 보완이 그렇고, 인식의 변화와 전시 방식의 혁신이 그렇다. 장애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할 때 최대의 장애가 편의시설 결핍이 아니라 박물관 측의 이해 부족이라고 밝힌다. 휠체어 없이는 아예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면 많은 예산이 따르겠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루프 보급과 수화 안내는 그렇지 않다. 모든 종류의 장애를 넘어 문화자산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길은 포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첩경이다. 기회균등은 교육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보장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기회균등은 어쩌면 교육 기회 균등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편인지도 모른다.  

   

 

글쓴이 최호근은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 베버(Max Weber)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이후 홀로코스트(Holocaust)와 제노사이드(Genocide)에 관한 다수의 책과 글을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기념시설 조성에 힘쓰면서 동서양의 기념문화 비교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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