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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9, Dec 2014

생트 오를랑
Saint Orlan

오를랑, 성(聖)과 속(俗)을 매개하는 여사제

현실과 가상, 장주의 ‘호접몽(胡蝶夢)’ 우화를 연상시키는 시공간의 이 극명한 대비는 그러나 이제 우리의 현실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장주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꿈속의 나비가 진정한 나인가, 현실에 존재하는 내가 나인가?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사진 갤러리 세줄·작가 제공

Installation view at Michel Rein Galler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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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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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문을 몸소 실천하는 작가가 바로 프랑스의 예술가 오를랑이다. 세계의 100대 여성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한 그녀는 이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예술을 전파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남미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이국의 풍물에 교접(交接)시키며 문화와 예술의 하이브리드를 실천에 옮긴다. 그 매개체가 바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현실과 가상(꿈)을 잇는 가교이자 꿈을 현실화하는 매개물이다. 우리는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환상적인 꿈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African, Self-hybridizations> 2000-2003




Ⅰ. 오를랑이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 작품은 증강 현실이 무엇이며, 디지털 문명이 낳은 이 희대의 기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의 국면을 열어 보여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자신이 소지한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이용, 증강 현실 앱을 다운받아 오를랑의 환상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예컨대, 오를랑의 <오를랑의 가면, 북경 오페라, 얼굴 디자인과 증강현실(Pecking Opera Facial Designs)> (2014, 이하 ‘오를랑의 가면’으로 칭함)이란 작품은 중국의 경극에 사용하는 다양한 가면을 디자인한 것으로 관객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이 가면의 이미지를 스캔하여 화면 속에서 오를랑이 마치 저글링을 하듯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스마트 폰의 공유기능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하임(Michael Heim)은 『가상현실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Virtual Reali ty』이란 책에서 가상현실적 체험이 불러온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가상공간 속의 이미지들은 20세기의 마지막 30여 년 동안에 나타난 폭넓은 문화현상, 곧 ‘컴퓨터화 되어가는 현상’에 속한다고 한다. 그 극명한 예가 바로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이다.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컴퓨터 매트릭스 상에 나타난 사물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가 늘상 겪는 일상적 경험은 오히려 지루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와 허구를 구분할 줄 아는 우리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의 조건하에서 우리는 결국 인공적인 경험의 산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령 걸프전에 참전한 조종사의 경우처럼, 실제 행위가 모의된 움직임의 반복에 불과하다면 그 행위는 직접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마이론 E. 크루거).  그러나 오를랑의 이 가면 작품에서 화면에 나타난 오를랑의 모습은 실제처럼 똑같이 묘사돼 있지 않다. 호이징가(Huizinga)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언명하고 있듯이, 인류의 문화 속에 깊숙이 내재된 놀이정신이 엿보이는  <오를랑의 가면>은 희화적으로 표현된 오를랑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친숙히 다가간다. 




<Tentative pour sortir du cadre> 1965  




Ⅱ. 오를랑의 <오를랑의 가면>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디지털 방식에 의한 이미지 합성으로 이루어진 오를랑의 시바크롬(Ciba chrome) 사진들은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 벌어지게 되는 주객의 전도현상에 대해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멕시코, 콜롬비아의 방문은 오를랑으로 하여금 고대 이방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의 절개된 아래 입술에 흙으로 빚은 원반을 끼워 넣는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은 그녀에게 강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문신, 피부절개, 반인반수(半人半獸), 가면, 입무식(入巫式), 희생제의(犧牲祭儀) 등등 이국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은 얼굴 이미지 합성에 필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이마에 봉긋이 솟은 두 개의 부드러운 뿔은 이제 오를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실제의 얼굴에 솟아오른 뿔과 사진 속의 뿔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실제와 가상을 혼동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컴퓨터는 그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제와 가상을 혼합하는 최적의 매체이다. 


자신의 얼굴에 고대 부족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을 혼합하는 그녀의 방식은 미래의 미술을 향한 하나의 전략이다. 문신, 피부절개, 뿔 이식, 귀 장식, 보석 상감과 같은, 희생제의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은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서 그녀의 얼굴 이미지와 합성되어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바뀐다. 반인반수에 가까운 오를랑의 끔찍한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미학적 충격을 준다. 그녀의 <재형상, 전콜롬비아 자기복제(Refiguration, Self-Hybridi zations, Pre-Columbian Series)>(1998) 연작은 서구 문화의 역사를 통해 오랜 동안 유지돼 온 재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이의제기이자 미의 기준에 관한 기존의 미학에 대한 도전이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천사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자칼이다.”, “나는 악어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잡종개이다. 


나는 검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백인이다. 나는 여자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남자이다. 나는 결코 나의 피부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그녀의 발언에 나타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수술을 통해 ‘여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되는’ 맥락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미의 절대적인 가치와 범주에 대한 그녀의 이러한 저항은 <자기복제> 연작을 통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다양한 종류의 괴수(monster)와 인간, 신과 인간을 결합해 놓은 듯한 기묘한 형상들은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대해 던지는 그녀의 의문부호이다.




<Refiguration, Self-Hybridizations, Pre-Columbian Series> 

1998 Cibachrome 150×100cm




Ⅲ. “오를랑의 작품들은 존재와 실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자 예술적 실천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끝없는 탐색은 컴퓨터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미학적 논제에 속한다. 다시 마이론 E. 크루거의 말을 빌리면, 만일 실제와 맞먹을 만큼의 인공경험이 우리를 둘러싼다면 존재와 실재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일은 더 이상 비현실적이거나 허황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오를랑의 반인반수 이미지들이 동영상으로 나타나는 극적인 가상현실 속으로 깊숙이 몰입해 들어간다면, 그 이미지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미학적 질문이 가능하다. 그만큼 가상현실의 문제는 이미 우리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 오를랑의 디지털 시바크롬 작품에 대해 쓴 나의 이러한 견해는 이제 그녀의 근작 <오를랑의 가면>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오를랑은 ‘자신의 모습을 희화화함으로써’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리고 있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희화화를 통해 관객이 노는 세계가 여전히 가상임을 알려준다. 그녀는 가상적 놀이터를 관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환경 속에서 관객의 미적 체험이 어떻게 하면 새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좌) <Peking Opera Facial Designs NO.4> 

2014 Color photograph 120×120cm  

(우) <Peking Opera Facial Designs NO.9> 

2014 Color photograph 120×120cm




Ⅳ. 금세기의 저명한 예술가인 오를랑의 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미술이 야기한 중요한 미학적 쟁점에 접근해 들어가는 일과 직결된다. 지금까지 많은 이론가들이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무수히 해명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인 해석에 그치고 만 것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매우 암시적이며 다면체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론, 정신분석학, 기호학, 사회학, 젠더이론 등을 동원한 여러 분석들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지닌 의미심장함을 완벽한 담론의 형태로 담아내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과 관련된 대다수의 비평들은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완전한 분석을 가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몸의 정체성, 권력, 종교, 미/추, 선/악, 성(聖)/속(俗), 소통, 성(性), 젠더 등의 범주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그녀의 미적 담론은 하나의 척도로 접근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도 광대하기 때문이다. 


오를랑의 몸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바쳐진 하나의 제물이다. 그녀는 마치 인류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해, 혹은 미의 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태어난 성녀와도 같다. 그녀는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미래를 기억하라”고. 이러한 그녀의 예언은 이미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생트 오를랑(Saint Orlan)’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 제시된 바 있다. 성(聖)과 속(俗)의 문제는 오를랑 작품세계의 주된 테마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절개하는 희생제의를 통해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가는 국면의 전환을 반복한다. 언젠가 오를랑은 “나는 나의 몸을 예술에게 바쳤다(I have given my body to art).”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이 말속에는 봉헌(奉獻)이라는, 다소 엄숙하면서도 비장한 뉘앙스를 풍기는 종교적 아우라와 함께 몸의 신체성(corporeality)을 강조한 신념이 담겨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수술대에 맡김으로써 단지 말뿐이 아닌 실천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입증해 왔다. 


그녀의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단지 전통적 미의 관념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제단에 몸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희생을 통해 세계를 정화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의 소산이다. 그녀의 퍼포먼스가 지닌 이러한 희생제의적 측면은 몸의 제시를 통해 다양한 담론의 생성을 유도함으로써 관람자들과 적극적 소통을 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언젠가 그린버그의 메마른 형식주의에 심한 거부감을 표명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예술이 삶을 떠나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삶에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 그녀의 예술관이 담겨있다.   


오를랑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연민과 공포를 통한’ 심미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혐오, 그리고 공포의 감정이 어느덧 연민으로 바뀌어 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고대 희랍의 비극이나 디오니소스 축제에 있어서처럼 연민과 공포를 통한 카타르시스는 오염된 사회를 정화하는 심리적 기제이다. 혼돈(카오스)에서 질서(코스모스), 일상공간과 신성공간의 사이에 문턱이 존재하는데, 그 인류의 반성을 위한 마당에 오를랑이 있다. 그녀는 샤먼인 동시에 종교이다.  




Saint Orlan

<The Draped-the Baroque> 1983




194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 생트 오를랑은 1999년 함부르크 그리플쿤스트 대상과 아르킴볼도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퐁피두미술관, 미국 게티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있는 그는, 스스로 성형수술을 받고 그 과정을 선보인 <Omnipresence>(1993) 퍼포먼스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명화 속 미인들의 얼굴에서 한 부위씩을 조합해 성형수술 했는데, 이는 남성 예술가가 이 그림들로 미의 기준을 삼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예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행위예술의 대가인 그는 사진, 비디오, 설치 등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최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99년 함부르크 그리플쿤스트 대상과 아르킴볼도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이 글은 윤진섭이 오를랑의 작품세계에 대해 쓴 자신의 여러 평문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재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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