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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1, Dec 2020

조덕현
Cho Duck Hyun

시간과 낭만과 사건의 병치, 천일야화

인류는 이름 속에 조상들의 DNA를 둘러놓는 기지를 발휘해왔다.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 그리고 자신의 애칭을 모아 생애 최초의 회심작인 이름을 만들었다. 기원전 47년 폰투스 전쟁에서 승리하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편지를 보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처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은 이름에 조상의 내력을 내비치는 일에 집착한다. 이는 자신의 혈통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며, 이 좋은 자질은 바로 세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이 나오기도 전에 유전자 결정론을 애초에 감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 조덕현의 화면엔 인류의 그 오랜 노고가 단번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감하게 한 곳에 존재한다. 귀족과 천민, 폭군과 성(聖)인이 한꺼번에 등장함으로써 모든 욕망이 존재하고 서로 얽히고설킨 기상천외의 현재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인류가 뻗어나갈 수 있는 그 모든 유전자를 하나의 프레임에 섞어놓는 그는, 일천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만들어 왕을 현혹했던 세헤라자데(Scheherazade)와 닮았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 대구미술관 제공

'조덕현: to thee 그대에게' 전시 전경 2020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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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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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름 속에 조상들의 DNA를 둘러놓는 기지를 발휘해왔다.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 그리고 자신의 애칭을 모아 생애 최초의 회심작인 이름을 만들었다. 기원전 47년 폰투스 전쟁에서 승리하고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편지를 보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처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은 이름에 조상의 내력을 내비치는 일에 집착한다. 이는 자신의 혈통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며, 이 좋은 자질은 바로 세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윈(Charles Darwin)진화론이 나오기도 전에 유전자 결정론을 애초에 감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 조덕현의 화면엔 인류의 그 오랜 노고가 단번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감하게 한 곳에 존재한다. 귀족과 천민, 폭군과 성()인이 한꺼번에 등장함으로써 모든 욕망이 존재하고 서로 얽히고설킨 기상천외의 현재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인류가 뻗어나갈 수 있는 그 모든 유전자를 하나의 프레임에 섞어놓는 그는, 일천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만들어 왕을 현혹했던 세헤라자데(Scheherazade)와 닮았다





<음의 정원 I, II> 2020 

혼합재료, 오브제, , LED조명, 음향, 가변설치 가변 크기

 




가로 970cm 높이 390cm에 이르는 초대형 신작 <플래시포워드>(2020)엔 신성일, 엄앵란, 김지미, 최무룡 등 1950-1960년대 한국영화 배우들이 <최후의 만찬>의 참석자들을 대체하고, ‘카인과 아벨이 인류 최초의 살인을 자행하는 와중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벌어진국경없는의사회(MSF)’ 병원 폭격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현재는 폐허로 남아있는,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교역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팔미라(palmyra)의 존재가 인식되는가 하면 미국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뉴욕 인종차별 관련 요소도 프레임에 실재한다. 마직캔버스에 수천 년의 시간과 수십 가지 이야기를 정교하게 그려 넣은 작가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수평으로 드문드문 박고 빛을 비추면 99.995%를 흡수하는 ‘Black 3.0’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다. 예수가 있어야 할 지점을 검은 배경보다 더 검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통로처럼 비워둔 것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과 그 혼란을 상기시키는 작가의 의도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이 그랬듯 이 작품 역시 여러 시공간에 걸쳐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을 마치 영화촬영이나 연극을 시연하듯 하나의 시공간에 병치시키는 구도로 제작됐다. 폭이 넓은 시공간을 하나로 압축하는 이 같은 과정은 일견 디지털시대의 흔한합성과 비견되지만, 작가는 그러한 합성들의 특징인 얇은 느낌 그리고 기이함을 독특한 회화의 태도로 극복한다. 화면에 나타나는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들의 경계가, 사진이나 그래픽에서처럼 분명하지 않고 회화적으로 얼버무려지게 함으로써 그의 화면은 관람객들로 하여금그림의 진실이라는 고도의 잣대로 접근케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접근법이 작동될 때, 보는 이는 이 거대한그림을 감상하는 와중에 전체를 하나의 장면으로, 그리고 그 안의 각 사건들을 저마다의 무게로 이해하게 된다. 





<모래성> 2020 

조형물, 내성천 모래, 거울, 철제구조물 가변 크기




사람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할지, 냉소적일 것인가 다정할 것인가, 청순할 것인가 혹은 섹시할 것인가 등을 정하듯 그는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작품을 완성할 때 이 작품에 자신의 어떤 요소를 더 투여할지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에 적합한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가동시킨다. 이번 개인전 제목 ‘to thee 그대에게는 한두 해 전부터 작가의 머릿속을 떠돌던, 어떤 뿌옇고 뭉글뭉글한 불안과 느낌의 기묘한 아이디어에서 추출됐다. 어느 순간인류의 전체적 삶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불길한 느낌이 담론이 아니라 서서히 현실로써 옥죄어 왔다. 이게 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미들을 초치함에 인색하게 굴어서 그런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스스로의 원론부터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당연한 것 같은 작고 소중한, 일견 도달점이기도 하고 절실함을 발현하게 하는그대들을 말이다. 그리고 하나하나 작업들을 기획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을 캔버스와 장지 등에 재현, 시간의 흐름 속에 잊힌 인물들과 기억들을 서사적 구조로 다뤄온 작가는, 그간 천착해온 거대 역사로부터 누락된 부분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가상의 역사와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하는 프로젝트의 파이를 넓혔다. 또 다른 신작 <음의 정원>(2020)이 그렇다. 전시장 한 중앙에 커다란 흰색 구조물이 놓여있다. 그 물체는 공간 안쪽과 바깥쪽 자연을 연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앞쪽에서 뒤쪽으로 관심을 이동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사한 반투명의 벽 안엔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물체들이 놓여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설치물은 꽃 같기도 하고 뉴런의 구조와 닮은 것도 있다.






<에픽상하이-1935> 2017 캔버스/장지에 연필

120 F 9: 나무구조물 390.9×581.7cm





윤이상과 드뷔시(Claude Debussy)의 음악, 특정 오브제, 그리고 빛과 그림자로써 연출하는 이 공감각의 풍경은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감상 행위가 여하히 공명하고 교차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왜 윤이상인가? 지식과 믿음의 구조를 푸는 작가 조덕현은 우연히 윤이상의 말을 접하고 그의 음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인간은 땅에, 땅은 하늘에, 그리고 하늘은에 종속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너무 짧은 인생을 살며, 너무 무기력합니다. 사람이 현재 몰두하고 있는 일은 자연의 거대함에 견주어 보면 그저 보잘 것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커다란 언어에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1)” 서구 주류 음악사에 뚜렷이 자리매김한 음악가지만 조국에서의 평가는 음악 외적으로 극단적인 윤이상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고 흔적을 더듬기 시작한 작가는 윤이상이 출생하고 성장한 통영에서 각종 오브제를 수집해 와 대형 설치로 완성했다


작품 <음의 정원>의 얼개는 일찍이 윤이상이 드뷔시와 자신의 음악을 비교하며음향의 공간성과 구체성, 상상적인 접근과 멀어짐, 빛과 음영이 어우러지는 관계, 일종의 정지 속의 움직임, 평온하고 침착하게 느껴지는 전체적인 인상은 비슷하다고 한 말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한국 전쟁에 군목으로 참여한 미군 장교 에드가 테인튼(Edgar Tainton, Jr) 1952년 대구 능금시장에서 찍은 사진(더글라스 프라이스(Douglas Price) 소장)을 바탕으로 한 <1952, 대구>(2020)는 조덕현 작품으로서는 의외의 색감으로 완성됐다.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게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군중의 모습과 거기 넘실대는 희망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는 이 사진을그림picture’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원본 사진의실존적 진실이 유지되도록 주의했다고 한다


이런 작업에서회화를 지나치게 주장하다 보면, 자칫 작가 개인의 감정에 의한 허구의 장면으로 격하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사진의 원본성에 집착하다 보면 그 결과물은 사진의 가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회화가 도달하지 못하는 사진의 리얼리티와 사진이 도달하지 못하는 회화성이라는 두 가치를 균등하게 유지하기 위해 작가는 80호 크기의 그림으로 완성한 각 그림이 독립적 구도를 지니면서도 다양한 조합이 가능토록 설계했다. 이 작업을 진행하며 이인성과 박수근 등 선배 화가들 작품의 깊이가 새삼 이해되었다는 그는 그림에 담긴 모습들이 그 당시 그들의 삶의 현재적 모습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플래시포워드> 2020 

마직캔버스에 아크릴릭, 혼합재료 390.9×969.5cm




구체적 대상이 화면에 등장하지만 대단히 추상적이며 광범위한 시간을 내포하는 작품에 대해 묻자 작가는 대답한다. “추상은 그 서사가 숨 쉬는 공간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형상)기호가 일방적인 서사를 읽혀지게 함에 추상은 그것을 숙성시키고, 유예하고, 개별적 상상으로 이끄는 고마운 장치이다.” 전 우주,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시각화시키는 역사와 철학 등을 그림, 조형 그리고 공간으로 풀며 장대한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작가 조덕현은 자신의 폭넓은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들로 작업의 주제를 우주와 같이 계속해서 확장, 진화시키고 있다. 그의 주제들은 정치, 폭력을 넘어 종교와 주술행위, 영지주의적(gnostic)인 전통과 과학적 요소 등으로 분류된다. 그에게 작품은 인간의식의 광대함을 이해하려는 시도와 한계일 뿐 아니라 우주의 형성을 설명하는 과정인 것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나 고통과 희열의 시공간을 자양분으로 끌어낸 그의 작업은 내밀하고 정교한 근거로 생성된 끝없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미술품이나 사진 등 시각적 증거로 남은사건들은 보는 이들의 각기 다른 상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 터에 그것을 동원하고 짜 맞추어 그림의 내용을 추정하는 것은 천태만상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열 명이면 열 가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그것이 조덕현의 그림이다.  

 

[각주]

1) 잘츠부르크 모짜르테움 음악공연 예술대학(Mozarteum University Salzburg)에서의 윤이상 초청 강연나의 음악에 대하여(ber meine Musik)” 1993 5 17 1철학(Philosophie)’ 일부

 



 

조덕현




작가 조덕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대부터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ial)’,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Johannesburg Biennale)’ 등에 참가하며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은 그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님의 정원-조덕현 아카이브>, 2018 PKM갤러리 <에픽상하이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리움미술관허쉬혼 미술관(Hirshhorn Museum), 후쿠오카 미술관(Fukuoka Art Museum)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9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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