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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1, Dec 2020

샤넬의 알뤼르

France

Gabrielle Chanel Manifeste de Mode
2020.10.1-2021.3.14 파리, 팔레 갈리에라 파리 시립 패션 박물관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나서서 쟁취하라. 주어진 삶에 만족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직접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라. “벽을 두드리며 그것이 문으로 바뀌기를 소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 사람. 일생을 바쳐 이러한 태도를 증명해낸 ‘코코 샤넬’. 스스로 이름을 짓고, 옷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촘촘하게 엮었던 여자의 이야기다.
● 이가진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Palais Galliera, Musée de la Mode de la Ville de Paris 제공

André Kertész Coco Chanel in 1930s © Ministère de la Culture -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André Kerté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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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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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주어진 성의 중간에 붙은 ‘s’를 떼고, 즐겨 부르던 노래의 제목에서 딴코코(coco)’라는 예명을 합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snel)은 자신의 운명을 코코 샤넬(Coco Chanel)의 것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와 동시에 20세기 복식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내가 바로 패션이다라는 선언에 걸맞게,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신종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프랑스 내 대다수 미술기관이 사전 예약제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하지만 확연히 줄어든 관광객 수 때문인지 많은 전시를 당일 예약으로 볼 수 있는데, 팔레 갈리에라에서 열리고 있는 <Gabrielle Chanel. Manifeste de Mode>전만은 예외다. 이미 몇 달 치 예약이 꽉 찬 것은 물론이고 소수로 제한된 현장 입장은 늘어선 줄이 무색하게 금세 마감된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일까?




Hat between 1913 and 1915 Black braided straw, black 

silk satin ribbon Paris, musée des Arts décoratifs © Julien T. Hamon

 




우선 현실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팔레 갈리에라는 지난 2년 동안 문을 닫고 1,000만 유로(한화 약 133 3,000만 원)를 투입해 보수를 마쳤다. 공사비용은 샤넬 하우스의 기부와 파리시의 자금으로 충당했다. 그렇게 갈리에라 공작의 대저택에파리 시립 패션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더해졌고, 첫 재개관전의 주인공은마드모아젤 샤넬이 되었다. 그간 샤넬과 관련한 크고 작은 기획전이 줄곧 열려온 것에 반해 아카이브를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은 파리에서 처음 개최되는 터라 패션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사람들은 샤넬에 관한 전시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다시금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블랙 미니 드레스, 트위드 재킷, 2.55 퀼팅백, 향수 N°5, 베이지와 검정 투톤으로 배색한 구두, 인조 진주 목걸이 등이 떠오른다


패션의 역사에서클래식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런 상징적인 제품들 모두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상품을 진열하는 쇼윈도 대신 작품을 보호하는 유리관 안에서 팔리기 대신 감상되기를 기다린다회고전의 문법에 충실하게 시대별주제별로 나눠 역사를 복기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350여 점의 옷과 보석액세서리향수와 소품을 살펴볼 수 있다이를 위해 샤넬 자체 아카이브는 물론 전 세계의 패션 미술관과 개인 소장품을 한데 모았다. 전시의 초입에 위치한 전시품이자 가장 오래된 옷은 1916년에 제작된 세일러복인데 프랑스어로는 마리니에(Marinière)라고 불린다극도로 단순하지만 유려하게 흐르는 저지 실크의 질감과 엄정한 재단 솜씨에 눈길이 한참 머문다





Anne Sainte Marie in a Chanel suit Published in Vogue UK, October 1955 

Paris Musées © Henry Clarke, Musée Galliera / Adagp, Paris 2020





코코 샤넬은 등장과 동시에 당시 폴 푸아레(Paul Poiret)가 지배하던 여성복 시장의 추세를 혁명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부자연스러운 선을 정리하고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샤넬의 디자인은 무엇보다 여성의 신체를 존중해 옷을 입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를 쓰면서 자연스럽고 단순한 형태를 통해 구축한 절제와 정교함에서 비롯된 변화는새로운 우아함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것은 샤넬이 커리어 내내 지켜낸 정신이었다. “금세 사라져버리는 유행이 아니라 영원히 남는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기치는 이내 많은 여성의 지지를 얻었다1920년대 등장한리틀 블랙 드레스또한 당대의 가치를 뒤흔든 전복적인 시도였다


복식사가들은성별이나 계급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깨버렸다고 기록할 정도다. 사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개념이지만검은색단순함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은 그때만 해도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검은색은 애도와 관련되어 있었다. 패션의 차원에서는 광적일 정도로 색채와 반짝임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했던 시기다. 가브리엘 샤넬이리틀 블랙 드레스로 창조해낸 것은 바로 세련되고, 사려 깊은 기품과 장식 없는 단순함이었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팔레 갈리에라의 소장품 관리 책임자인 베로니크 벨루아(Véronique Belloir)가 『보그 파리(Vogue Paris)』에 전한 설명이다. 벨루아는 프랑스 내에서 명실 공히  샤넬 전문가로 꼽힌다.





Edward Steichen The actress Alden Gay wears a Chanel dress 

Published in Vogue Paris, October 15, 1924 

© Edward Steichen, Vogue © Condé Nast





주머니의 활용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대단치 않은 장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주머니는 귀족 그리고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샤넬은 트위드 수트 재킷의 겉면은 물론 바지나 치마에도 주머니를 달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여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절이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샤넬의 모습을 찍은 만 레이(Man Ray)의 사진처럼 그는 자신의 룩을 통해 어떤 현대적인 태도를 전파하는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트위드 재킷 역시 남성복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했다


스코틀랜드산 방모직물을 통칭하던 트위드는 남성용 사냥 의상에 주로 사용되었던 소재다. 가볍고 부드러운 트위드에 모헤어, 버튼, 입체적인 재단을 더해 샤넬 특유의 여성용 투피스가 완성됐다. 지하 전시장의 절반을 메운 트위드 세트는 마를렌 디트리히(Marlène Dietrich),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등이 직접 착용했던 것을 포함해 칠레, 독일, 벨기에, 미국 등에서 공수한 것이다. 색감, 소재, 실루엣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섬세하게 변주한 완성도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무엇보다 샤넬이 직접 입었다는 두 벌의 수트와 한 벌의 파자마 세트가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화려한 색도, 장식도 없이 담백하면서도 여전히 그 옷을 입었던 주인의 존재감이 남아있는 것처럼 강렬하다지하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전시품 중 하나는 베이지색과 검은색 투톤 구두의 원형(1960-1962)이다. 신발의 몸체에 사용한 베이지색은 다리를 더 길어 보이게 하고, 끝부분에만 포인트로 사용된 검은색은 발을 좀 더 아담하게 만드는 동시에 밝은 색 신발이 너무 금방 낡아 보이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Marinière, Summer 1916 Ivory silk jersey Paris, 

Patrimoine de CHANEL © Julien T. Hamon




안정감과 착화감을 고려해 굽은 5cm로 했다. 현재까지 출시되고 있는 이 구두는 초기 모습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다. 새롭고, 독창적이면서, 동시대적일 것.” 샤넬이 선보인 디자인들이 심플하고 실용적인 차원에만 치우쳤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궁극적으로 샤넬이 이룬 것은 디자인의 문법을 새로 씀으로써 아름답다는 기준이나 잣대를 바꿨다는 점에 있다. 옷이라는 영역의 가능성을 넓힌 것, 그럼으로써 행동과 생활의 변화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패션의 역사가 샤넬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일지 모르겠다<Gabrielle Chanel. Manifeste de Mode>전 곳곳에는 샤넬의 핸드 프린트나 친필로 작성한 아이디어 노트, 장 콕토(Jean Cocteau)가 그린 초상화 등 디자이너 생애의 보다 내밀한 지점과 연결된 오브제들이 놓여있다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아닌 한 인간을 상상케 하는 이런 요소들 덕분에 몰입도는 한층 높아진다. 평생 독립적이고, 야심만만했으며, 자유로웠던 여인은 남다른 스타일을 만들었고, 자신의 일생 동안 그것에 충실했다. 그 스타일을 말할 때, 세상은 ‘allure’라는 표현을 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철자는 같아도 영어의 얼루어(allure)와 프랑스어의 알뤼르(allure)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는 것. 영단어는매력을 통칭해 뜻하나 프랑스어 알뤼르는 걸음걸이, 태도, 외양 등 복합적으로 해석 가능한 명사다. 결국 얼루어는 알뤼르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드모아젤 샤넬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한 사람이었다. “패션은 옷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와 공기 중에 머문다. 우리는 그것을 짐작한다. 패션은 하늘에 있고, 거리에 있다.”  

 


글쓴이 이가진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에드워드 루셰(Edward Ruscha)의 초기 아티스트북」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퍼블릭아트」 기자로 동시대 미술 신에 관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으며 예술과 텍스트라는 두 가지 영역에 관심을 두고, 그 사이를 잇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긴 호흡의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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