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Issue 94, Jul 2014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 기록자

Memory Chroniclers of Disappearing Space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경제성장과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다. 이 엄청난 변화를 서울을 기점으로 하여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기적이 으레 신기루를 동반하듯, 이후 도시는 꽤나 많은 후유증을 토해내고 있다. 기억의 상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낡고 고장 나면 보수하기보다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개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장소들이 사라졌고, 이에 더불어 곳곳에 담지 됐던 우리의 공동-기억도 함께 사라졌다. 이로 인하여 개인은 ‘상실’을 경험하고 보다 개인화 된 자아로 도시를 떠돌고 있다. 여기, 사라져가는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작가들이 있다. 사진, 영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이들은, 장소를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에 내재됐던 기억까지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사회의 공동-기억을 다시 환기하면서, 개인을 다시 사회로 불러들이고 있다.
● 기획 · 글 문선아 기자

장민승 '4-301' ‘수성십경-In between times’ 연작 2010 코튼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95×155cm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이성휘 미술이론가

Tags

‘기록’이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사진이라는 매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속적 응시’와 ‘객관적 시선’이라는 카메라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한 장소를 수년 간 지긋이 추적해온 작가가 있으니, 바로 안세권이다. 그는 특정한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기억들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와 변화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풍경들을 고해상도의 대형사진으로 재현한다. 주로 높은 장소에서 장시간 노출을 통해 도시의 모습을 조망하는데, 풍경 속 건물과 사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숨 쉬고 있듯 세밀하게 고해상으로 기록된다. 작가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완전히 철거된 청계고가를 카메라에 담아냈고, 동시기에, 교각을 세우고 있던 내부순환로의 건설 과정을 카메라로 포착하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삼각산과 불암산에 이르는 월곡동 뉴타운의 풍경을 8×10인치 대형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의 작품들은 도시가 품고 있는 에너지만큼이나 강력하고 초월적이다. 이런 도시의 변이에 대한 기록은 끝없는 변화와 인간의 욕망, 행복한 미래와 꿈, 유토피아적인 환상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며,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인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역사적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세권은 서울의 개발, 변천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기억들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 속 공간들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의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진 장소가 됐다.   




안세권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 2004>

 2006 C-프린트 127×278cm




안세권이 한 발 떨어져서 장소를 카메라의 객관적 시선으로 관조했다면, 정지현은 내부에 침투해 집요한 시선으로 장소를 담아낸다, 그 역시 ‘지속적 응시’라는 카메라의 특성을 잘 이용하지만 ‘행위’를 장소에 새롭게 덧입히면서 개발의 폭력성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작가는 페인트와 카메라를 들고 재개발 지역의 철거현장에 침투한다. 사람들이 살았던 철거 예정인 지역에 빨간색으로 내부를 칠한 뒤 촬영을 하고, 실제 철거가 이루어진 다음에 다시 그 곳을 찾아 빨간 페인트의 흔적을 찾는다. 빨간 방은 점차 건물이 철거되면서 작은 덩어리로 쪼개져 색의 흔적들로만 남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며 결국 재개발이라는 체제 앞에 무기력하게 사라지고 마는 개인 공간의 운명을 추적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공간인지, 공동체의 장소로서의 도시가 어떻게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처럼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도시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즉, 작가가 스펙터클한 재개발 철거현장 속에서 개인의 삶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도시를 인간의 삶의 공간으로 회복하고 재인식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을 대변한다.


한편, 장민승의 공간 기록법은 조금 특별하다. 작가는 ‘수성십경(水聲十景)-In between times’ 연작에서 종로구 옥인동 소재의 옥인시민아파트 9개동 291세대 중 특정한 10세대가 떠나고 남은 공간을 60인치가 넘는 대형사진으로 기록했다. 특히 이 아파트가 1971년 낡은 한옥을 철거하고 서구식 공동주택을 보급하기 위해 서울시가 1세대 도시정비정책으로 지은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 연작에서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은 화면 정 중앙에 커다랗게 위치한 창문틀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풍경으로, 한 편의 산수화를 걸어 놓은 듯, 사람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자연은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와 대조되게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아파트는 내부가 텅 비어있다. 뜯기고 남은 일부 도배지나 깨진 유리창의 파편, 미처 챙겨가지 않은 커튼 등 소소한 사물들만이 본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소소한 사물들에서 각기 다른 취향을 가졌던 입주자들의 개인적 기억들이 묻어난다. 




정지현 <Demolition Site 01 Inside> 

2013 피그먼트 프린트 120×160cm




작가는 옥인시민아파트와 자연의 모습을 대조시키면서 장소의 안과 밖의 기억을 드나든다.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곳을 드나들며 작가가 담고자 했던 것은 삶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있는 철거 현장이 아니라, 이 아파트 입주자들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을 인왕산의 풍경이자 공동의 기억이다. 작가는 철거 공간의 기억을 건물의 내-외부를 분리키고, 자연에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을 통해, 철거 공간의 기억을 담아낸다. 비교적 객관적 매체인 사진에 비해 회화는 근본적인 기분을 보다 잘 드러낸다. 이 회화의 양식으로 장소의 기억을 환기하는 작가들도 있다. 김잔디는 ‘장소’와 관련해 기억과 허구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그 장소만의 정체성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이 작업의 주요 소재였고, 그러다 보니 새로 생긴 건물보다는 오래되거나 그 지역과 일체감을 이루는 장소가 자연스레 작품 안에 담기게 됐다. 이제는 철거되었을 염창동 저층아파트의 옹벽(<Play ing>), 한남동의 곳곳(<한남역 방문기>), 면목동의 작은 골목과 놀이터(<1983Playground>) 등이 작업에서 재현됐다. 


아현, 동작 등 작업을 위해 작가가 찾아다닌 장소는 유년 시절 각인된 1980년대 산업화시대의 서울풍경의 건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거대한 다리기둥이나 공장 건물 등 시멘트 구조물이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작가는 특정한 장소감을 지닌 곳으로 작업을 시작하지만, 작업의 과정을 거쳐 이는 ‘기억의 원형’으로 변모한다. 장소정체성을 이루는 각인된 장면들은 사생되지 않고 모두 기억으로만 재현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기억하는 오래된 골목이나 집들의 모습은 추상의 과정을 다소 겪으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모습이 된다. 작가는 “특정 개인 혹은 세대만이 아는 공간정체성이 있다. 사라짐과 변화가 정체성인 이 도시를 경험한 자만이 터득한 공간기억과 표현의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핍과 부재가 절실함을 만들어내므로 또 누군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이 사라짐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라지는 공간을 기록하는 작가로 강홍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린벨트,’ ‘그 집,’ ‘사라지다: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기록’ 등 

그의 연작들은 갑작스러운 도시개발 열풍 속에 소외된 사각지대를 

사진으로 담고 있다. “찍을 때는 현실이었는데, 지금은 대상이 사라져서 

기억이 되고, 노스탤지어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작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강홍구 <영도04> 2012 피그먼트 프린트 100×120cm   




정재호는 역시 회화로써 이 사라짐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의 기록 방법은 김잔디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는 철저한 자료 조사를 작업의 기반으로 삼는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1970년대 광폭한 개발의 산물인 시민 아파트를 다큐멘터리적 접근법으로 조사·관찰해 객관적 존재로 다루었으며, <황홀한 건축>에서는 단층 주택을 중층적으로 쌓아올려 초현실적 집적체로 재구성했다. 1960년대의 한국의 풍경을 담은 ‘혹성(Planet)’시리즈에서는 주로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차용했는데,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사진에서부터 기업의 홍보용 사진, 광고 이미지, 주한미군이 사적 기록으로 남긴 사진, ‘대한 늬우스’ 등의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작가는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흩어져있는 이미지들을 결합하거나 배열하고, 때로는 고의적으로 낡게 만들어 폐허의 이미지로 제시하기도 한다. <회현동 기념비>, <대성 맨션>, <천변 호텔>, <청계 타워> 등의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구체적 대상을 기반으로 사실적 묘사를 가미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록은 그러나 실상 삶의 체취가 어우러져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즉, 정재호는 다큐멘터리적 조사·접근법과 초현실적 재현법을 오가며 장소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강용석 작가는 영상과 설치로 장소에 대한 기억을 제시한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제작된 5개의 퍼포먼스 영상 시리즈 ‘Take Place’에서 공간의 정체성은 육체의 ‘활동’을 통해 등장한다. 영상의 배경은 도시 재건축을 위해 지금은 사라져버린 ‘골프연습장’, ‘동대문운동장’, ‘현저동무허가집촌’, ‘배다리지역’, ‘아현동주택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마술 같은 이미지의 합성과 기존영화에 대한 오마쥬, 사운드 실험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재건축이란 장소에서 시작된 도시의 질문들을 우리의 존재, 삶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2007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는 서울의 철거지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400여개의 폐형광등을 이용한 작업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욕망으로 포장된 ‘재개발’이라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사이의 빛으로 상징화되고, 동시에 만질 수 없는 비물질성을 지닌 빛은 ‘신기루’와 같은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특정장소가 있었고(과거), 그것이 없어지고(현재),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이라는 암시(미래)만 있는 상황에서 공간은 수백 개의 형광들에 의해 밝혀지지만, 오히려 아주 밝은 빛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는 철거의 슬픔, 변화에 대한 희망등과 같은 이중적이고 모호한 상황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윤병주 

<Exploration of Hwaseong_The Face on Hwaseong> 

2014 잉크젯 프린트 74×111cm  




한편, 일상적인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상상을 덧입혀 유희적 측면을 강조하는 작가도 있다. 윤병주는 최근 선보인 ‘화성탐사(Exploration of Hwaseong)’ 연작에서 현재 도시개발이 진행 중인 경기도 화성(Hwaseong)의 모습을 기록해 선보였다. 단, 기본 공간의 기록에 또 다른 허구의 기억을 도입해 새로운 거짓 기억을 만들어냈다. 이 연작에서 작가는 ‘화성’이라는 동음이의어에 착안하여 우주의 화성(Mars)과 경기도 화성의 이미지를 중첩시켰다. 경기도 화성의 이미지에 색을 가미하여 우주 화성의 이미지와 유사하게 만들어내고 여기에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이미지를 첨가해, 마치 우주 화성을 인간이 탐사한 것 같은 상상 가능한 거짓 기억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마치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돌입하듯 RC(Remote Control car)에 카메라를 장착하여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화성을 탐사 영상으로 기록한다. 영상작품 <Rover Mission>은 실제 NASA에서 우주의 화성을 탐사하는 방법(Mars Explora tion Rover mission)을 일부 차용하거나 비슷하게 흉내 냈다. 


화면을 통하여 전송되는 이미지와 실제 우주탐사선과의 교신에서 발취된 무전 사운드는 이러한 차용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경기도 화성에서 채집한 오브제와 해당 오브제에 대한 분석 자료를 수집, 탐구하여 이를 박물관류에서의 전시형태인 좌대와 유리관을 활용, <The Collection>이라는 작품으로 설치했다. 이 작업을 통해 경기도 화성에 대한 기억은 우주 화성에서의 시간, 기억으로 전이된다. 작가는 화성탐사와 도시개발의 목적을 결부시켜 인류의 새로운 생존지역과 도시개발지역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동의 기억으로 유희하고 있다. 현실과 환영이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라져 가는 공간을 기록하는 작가들은 분명, 그들이 겪는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함에 따라 그들의 기록은 이내 물거품 같은 환영이 되고 만다. 작가들은 이 환영을 끝없이 환기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