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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8, Jan 2014

공공미술 걸작선
기울어진 호, 그 이후 ①

after, tilted arc

1989년 3월 11일, 뉴욕 맨하튼 연방 광장에 서 있던 리차드 세라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기울어진 호(Tilted Arc)'(1981) 앞에 크레인과 인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조각의 철거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급박해진 세라는 인터뷰를 통해 “이 정부는 야만적이다. 문화를 좀먹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대표작을 이렇게 함부로 파괴하는 것을 내가 과거에는 절대 본 적이 없다”고 격렬하게 비판했지만, GSA(미 연방정부 총무청)의 공무원 윌리엄 다이아몬드는 “작품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겠다”며 심드렁하게 받아칠 뿐이었다. 세라는 지지않고 “만약 이 사건이 소련에서 일어났으면, 우리 정부는 분명히 ‘반대자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했겠지요”라고 하며 정부를 계속해서 힐난했다. 그래서일까, 연방지방법원은 세라를 두번 죽였다. 같은 날 연방지방법원이 새로운 저작권법을 검토한답시고 철거를 중지시키며 한 차례 희망을 주는가 싶더니, 결국 같은 달 15일 밤, 연방 정부는 '기울어진 호'를 안전하게 세 조각으로 잘라 브루클린 소재의 정부 모터풀(motor-pool)에 차곡차곡 수장해버렸다. 이 조각은 세라가 본래 장소 이외에서 보여지길 절대로 원하지 않았기에, 다시는 어디에서도 똑바로 설 수 없었다.
● 기획·글 안대웅 기자

마사 슈바츠(Martha Schwartz)에 의해 다시 디자인 된 제이콥 제이비츠 플라자(Jacob Javits plaza) *일명 연방 광장 1993-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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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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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뉴욕 맨하튼 패더럴 광장을 크게 가로지르는, 무식하게 큰 철판이 들어섰다. 가로 36.6m에 높이 3.7m의 이 건축적 규모의 조각은 확실히 보기에도 부담스러웠으며 누가 봐도 통행자의 직선 거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었다. 이 조각을 만든 주인공은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1939-). 평소에 그가 GSA나 NEA(미 국립예술기금)의 권장 사항에 따라 주류로 부상하고 있던 기능적이고 장소통합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추세를 혐오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런 결과는 당연할 터다. 세라는 공히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특히 조각의 경우, 건축에 시중을 드는 작업을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구조가 모호하거나 도시 디자인의 원칙을 만족시키는 그런 조각에는 흥미가 없다. 



그래피티로 훼손된 <기울어진 호> 




내가 보기에 그런 조각은 항상 매너리즘의 양상을 띠게 되거나 기존 미학의 현재 상태를 강화할 뿐이었다. [...] 나는 비실용적이고 비기능적인 조각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GSA의 건축 속 미술 프로그램으로부터 커미션된 작업이었다.) 세라는 <기울어진 호>가 장소에 ‘순응’한다기 보다, 장소의 일부로서 개념적으로나 지각적으로 그 장소의 구조를 재구성하길 원했다. 이는 곧 조각이 장소에 통합되어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기보다는, 명백히 ‘반-환경(anti-environment)’적 조건을 만듦으로써 오히려 장소에 ‘개입’해 비판성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평론가 로잘린 도이치는 이를 정치적 장소특정성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야심찬 미학적 시도가 대중과 유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세라는 “이 조각을 보는 이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자신과 그 움직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가 이동함에 따라, 조각은 변화한다. 조각의 수축과 확장이 보는이의 움직임에 따라 귀결된다. 점진적으로 조각의 인식뿐만 아니라 전체 환경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다”라고 열심히 작업을 설명하고 다녔지만, 페더럴 빌딩을 매일 왔다갔다 해야 하는 공무원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후성 강판(Cor-Ten steel)이 부식을 일으킴에 따라 표면이 붉고 얼룩덜룩하게 변했으니, 민심은 흉흉했다. 



애디슨 톰슨(Addison Thompson: 1951-) 

<기울어진 호 흉터(Tilted Arc Scar)> 
1989 digital print 76.2×101.6cm 부분.  



곧 “미학 따윈 몰라도,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작업이다”라며 미 주택·도시개발청 공무원들의 1,000여건의 서명을 담은 탄원서가 제출됐고, 연거푸 미 환경보호국으로부터 ‘낙서-잡이(Graffiti-Catcher)’라는 다소 비꼬는 투의 제목으로도 이것이 날아왔다. 300여 건의 서명을 담은 이 탄원서에서는 “빌딩으로 가는 길이 막히니 이상하고 혼란스럽다", “광장의 경관을 파괴했다”, “불길하고 무서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시민의 세금으로 광장을 찢어놨다" 등등 갖은 비난이 쓰여 있었다. 처음에 연방 공무원들은  “빌딩에 10,000명의 공무원이 있으니 1,300명이 싫다면 1,300명은 좋아할 것이다”라며 앞으로를 낙관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무원이 쏟아지는 민원을 감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곧 총무청 공무원 다이아몬드의 주재로 공청회가 열렸고, 찬반 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1985년 5월,  <기울어진 호>의 이전이 결정됐다. 다이아몬드는 그들의 입장을 이렇게 변호했다. “저는 이걸 분명히 하고 싶어요. 이 결정은 미학이나 예술가에 대한 공격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고민한 것은 이 작품이 가져온 팩트입니다. 3년 반 동안 이 작품은 연방 커뮤니티와 대중이 광장을 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어요.”

세라는 정부가 예술을 광장의 매니큐어로 안다고 맹비난했으며, 곧바로 다이아몬드와 그의 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수년 간의 법정 싸움 끝에 세라는 연달아 두 번의 패소를 겪었다. 그 속에서 세라는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았으나, 법원은 세 가지 이유에서 총무청의 결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첫째, 표현의 주체가 세라가 아니라 정부이므로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 작품을 이전하기로 한 것이 작품 내용 때문이 아니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세라의 작품이 이미 6년 동안 광장에 세워져 있었고 이 기간 동안 세라가 공중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가졌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 



철거 및 설치과정




이렇게 1989년 3월,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이렇게 제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하지만 불굴의 예술가 세라는 이 사실을 절대 승복할 수 없었다. 가령, 같은 해 4월 『뉴욕타임즈』의 마이클 브레손(Michael Brenson) 기자가 <기울어진 호>의 오만으로 인해 오히려 오늘의 공공미술이 규제당하고 있다고 세라를 비난하자, 곧바로 세라는 같은 지면을 통해 “<기울어진 호>가 개인적인 이유나 자신의 정치적 혹은 이론적 글 때문에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법이 예술을 보호해줄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 사건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moral rights)에 대한 최초의 선례가 된 것”이라고 격렬히 반응했다. 세라는 끝까지 자율성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듬해 예일대학교에서 열린 세라의 특별 강연에서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순종은 문제의 핵심이다. 확실히 권력을 향한 순종에는 지원금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모순되는 정책을 하는 정부에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뺏겨야 하는가. 어떤 지점에서 정책 같은 것은 넌센스다라고 말해져야 한다. 만약 어떤 것이 침묵으로 남는다면 그리고 밖으로 말해지지 않는다면 책임을 버리는 것과 같다.”

한편, 다이아몬드는 <기울어진 호>가 철거된 같은 해 6월, 연방광장을 ‘보통’ 광장으로 다시 되돌리기 위한 계획, ‘새로운 예술 형식 - 열린 공간(new art form - open space)’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는 15개 벤치와 나무를 심겠습니다. 대중들이 다시 광장을 즐길 수 있게 말이죠. 7월 첫째주에 그걸 선사하겠습니다. ‘열린 공간’은 다른 예술 형식과 똑같이 존중 받는 예술 그 자체입니다.” 그리곤 평범한 수목과 의자가 설치되고 복개천이 재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광장은 종종 GSA의 40주년 기념 여름 콘서트 시리즈 등 정부 행사를 위해 활용되는 모습이었다.



MVVA에 의해 다시 디자인 된 제이콥 제이비츠 플라자

(Jacob Javits plaza) 2013-현재



기울어진 호, 이후

연방광장에서 1989년 <기울어진 호>가 철거된 이후, GSA는 총 2회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금부터는 짧게 두 프로젝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1992년 연방 정부가 연방광장 아래에 있는 지하 창고를 방수공사하며 시작했다. 공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광장이 헐어지게 됨에 따라, 세라의 조각 철거 이후 생긴 광장의 어떤 공허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연방정부는 조심스럽게 또 다른 공공미술을 제안했으며, 곧 GSA는 유명한 조경가 마사 슈바르츠(Martha Schwartz)와 조각가 베벌리 페퍼(Beverly Pepper)를 선정해 투입했다. 새로운 연방광장에는 슈바르츠가 디자인한 밝은 녹색으로 페인트칠 된 구불구불한 모양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대형 벤치가 꽉 차게 들어섰으며, 연방 빌딩 서쪽에는 “나는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밝힌 페퍼의 장소특정적 조각이 다소 온건한 모습으로 들어섰다. 그들 모두 세라의 패착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2008년 어느날, 광장 밑 40년 된 지하창고의 천장 방수막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슈바르츠의 디자인도 철거 위기에 놓였다. 때마침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경부양책에 따라 GSA 프로젝트에 펀딩이됐고, 방수와 배수 시스템을 개선시키려는 목적과 함께 건축가 그룹 MVVA (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가 새로운 디자인을 맡았다. 당시에는 슈바르츠의 칼라풀한 팝적인 광장이 세라의 조각과 완전히 상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가 ‘포스트모던’하게 뻗은 덕택에, 여전히 광장이 지나다니기 힘들다는 의견이 표출되고 있었다. MVVA는 광장을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주 인구를 소화하는 한편, 도시 환경과 더욱 연결될 수 있는 “곡선의 구성과 풍경의 조각들을 포용하는” 환대의 장소로 디자인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변형된 둥근 모양으로 구획된 플랫폼에 목련을 포함한 식물을 심었으며 목련꽃과 같은 빛깔의 대리석을 바닥에 설치했다. 그리고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네모, 동그라미의 의자도 빼놓지 않았다. 또 분수를 곳곳에 설치해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 가을에 착공해 2013년에 대중에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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