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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May 2021

원초적 감정을 포착하는 객관적 관찰자

U.S.A.

Alice Neel
People Come First
3.22-8.1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앨리스 닐(Alice Neel, 1900-1984)의 작업은 예술가라는 직업,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때론 집착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닐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말을 거는 것 같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우울하게, 때론 불편하거나 편안하게 보이는 그림 속 인물들이 낯설지만 동시에 가까운 사람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예술가로서 그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통찰력이 아닐까? 그가 인터뷰에서도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면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니 말이다. 닐은 누군가를 그리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를 원했다. 닐은 스스로를 ‘영혼의 수집가’라고 말한다. 작업할 때 상대방의 영혼에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에는 애절한 화음과 존재론적인 전율이 있다. 'Alice Neel: People Come First'는 20년 만에 뉴욕에서 선보이는 닐의 첫 대형 회고전이다. 전시 제목인 ‘사람이 먼저다(People come first)’는 1950년 그가 실제 인터뷰에서 한 말을 가져온 것이다. 이번 전시는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초상화 작품뿐만 아니라 정물화, 뉴욕의 도시 풍경, 수채화 그리고 드로잉 등 약 100점의 작품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공

Installation View of 'Alice Neel: People Come First' at The Met, 2021 © Ta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 Anna-Marie Ke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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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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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의 초상화는 꾸밈이 없다. 진실하고 사실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을 현실주의 예술가라고 말한다. 화폭 안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친구, 가족, 인권운동가,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또한 예술가이자 인권 운동가였으며 여자이자 엄마였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독창성은 그의 색과 형태에 대한 독특한 비전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압도적으로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Margaret Evans Pregnant>(1978)다. 여기서 닐은 임신이라는 인생의 큰 드라마틱한 변화에서 오는 특유의 복잡함, 삶의 변화와 동시에 신체 변화에 집중한다. 쌍둥이를 임신한 에반스의 커다랗게 부푼 배, 만삭의 배에 나타난 임신선, 유방 위에 보이는 핏줄과 젖꼭지, 붉은 피부, 다리의 부종 등을 표현하기 위해 신비롭고 묘한 색채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마치 차곡차곡 겹쳐진 나이테처럼. 임신은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극단적인 변화의 몸을 가지는 시기이자 가장 신비로운 상태의 인체를 경험하는 때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에반스는 태어날 아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인 불안함이 그의 눈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James Farmer> 1964 Oil on canvas

111.1×76.8cm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 Gift of Hartley S. 

Neel and Richard Neel © The Estate of Alice Neel




뉴욕은 닐의 가장 위대한 뮤즈이자 1930년대 초 그가 포착하기 시작한 삶의 드라마의 큰 무대였다. 닐의 예술에는 미국 대공황(Great Depression), 사회주의의 부상, 페미니스트와 시민운동 등 20세기의 떠들썩한 사건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미술사적 의미의 그림으로 묘사했다. 대공황 시대의 뉴욕 도시 풍경엔 어두운 거리 속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닌다.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지속하는 뉴욕의 풍경은 그의 삶과 환경에 늘 공존해있었다. 닐의 삶과 예술은 뉴욕을 떠나 설명할 수 없다. 뉴욕에서 모든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사람들을 그렸다. 작가는 스페인 할렘에서 만난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다양한 배경과 계층의 사람들을 그렸다. 초상화 작업을 할 땐 그 자신을 떠나 상대방에게 빠져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는 항상 사람이 먼저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주장하려고 노력했다. 20세기 가장 급진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서 인도주의 원칙에 대한 오랜 헌신이 그의 삶과 예술에 영감을 주었을 정도로 닐은 사회의 정의를 중요시했다. 닐은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웠고 작업실을 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방을 작업실로 두고 작품에 몰두했다. 그렇기에 ‘집(Home)’은 항상 그를 위한 무대이자 큰 작업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식탁 위의 모습은 곧 정물화가 되었고,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델 그리고 집 밖의 풍경은 중요한 주제였다. 또한 닐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특히 육체적인 사랑, 육아를 집중해서 그렸다. 그중 흥미로운 부분은 1930년대 중후반의 수채화 작품이다. 미술 역사 속에서 여성은 항상 객체로서 남성의 시선, 성적 대상으로 등장하지만, 그의 작품 속에선 스스로가 욕망의 주체가 되고 있다. 1938년 닐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경력을 차츰차츰 쌓아 올린다. 실제로 대공황 동안 공공 미술품 프로젝트(Public Works of Art Project, PWAP)와 공공사업 촉진국(Works Project Administration, WPA)에 참여해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Federal Art Project’에 참여하면서 미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Blue House> 1963 Oil on canvas 

127×83.8cm The Brand Family Collection 

© The Estate of Alice Neel




1935년에는 사회주의 운동의 일원이 되기도 했는데, 닐이 제작한 에로틱한 수채화 작품도 같은 시기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그에게 일어났던 모든 변화와 정치적 혁명, 성적 자유로움이 작품들 속에서 나타난다. 닐은 인종평등회의(Congress for Racial Equality, CORE) 회원들이 세계 박람회에서 인종차별과 폭력에 항의하다 체포된 해에 시민운동가 <제임스 파머(James Farmer)>(1964)를 제작했다. 눈썹 사이에 주름이 깊고, 결의에 찬 자세, 눈의 초점은 강렬함과 결단력이 느껴지는데 이는 닐이 초상화를 그릴 때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성격, 신념을 강력하게 나타낸 것이다. 닐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신비롭고 묘한 색채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입방체의 여러 색이 눈에 띈다. 세심하게 구성된 모든 색채 요소는 모델들의 성격과 평범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닐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 동성애 해방운동, 여성 해방운동에 해당하는 반문화 또는 저항 문화를 지지했다. 배우 재키 커티스(Jackie Curtis)는 맨해튼의 로워 이스트사이드의 반문화(Lower East Side Counter Culture)에서 유명한 인물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 드나드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재키 커티스와 리타 레드(Jackie Curtis and Ritta Redd)>(1970)에서 커티스는 레드 옆에 꼿꼿이 앉아있고 두 사람 모두 관람객을 응시한다. 커티스의 억누를 수 없는 강한 성격과 자신감,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욕구는 앞으로 내민 몸과 한 다리로 상대방을 밀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으며, 그의 화려함은 빨간색 매니큐어와 입술 그리고 찢어진 스타킹 사이로 보이는 엄지발가락에서 더욱 돋보인다. 닐은 플럭서스 예술가 제프리 헨드릭스(Geoffrey Hendricks)와 그의 파트너 브라이언 부작(Brian Buczak)을 1977년 가을에 처음 만났다. 식탁에 앉은 헨드릭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관람자의 시선을 이끌고 있고, 몽환적인 눈빛과 붉은 격자무늬 셔츠를 펼쳐 풍성한 가슴 털이 드러나는 가운데, 사랑스러운 포옹으로 헨드릭스의 어깨를 감싸 안는 부작이 보인다. 닐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인간의 상태를 시각화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초상화를 선택했다. 사람의 감정은 희로애락 외에도 다채롭고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거쳐 가는 닐의 작품들 역시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Margaret Evans Pregnant> 1978 Oil on canvas 

146.7×97.8cm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Boston, 

Gift of Barbara Lee, The Barbara Lee Collection of 

Art by Women © The Estate of Alice Neel




20세기 뉴욕에 뿌리를 둔 닐은 고통과 상실뿐 아니라 아낌없는 솔직함과 예리한 공감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이어나가고자 했다. 그가 1970년에 제작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모습의 앤디 워홀이 아니다. 작품에서 보이는 워홀은 1960년대 팝 아트의 거장, 시대의 아이콘과 무관할 정도로 고요한 공허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은 명상 혹은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는 상의를 벗은 채 앉아있다. 눈을 감고 있는 워홀은 수동적이고 연약한 모습으로 얼굴은 창백하고 움직임이 없다. 닐이 그린 방식은 워홀의 나약함과 취약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워홀의 몸을 둘러싼 가느다란 파란색 외곽선이 위태로운 생명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68년 6월 발레리 솔라나스(Valerie Jean Solanas)에게 총격당한 상처가 워홀의 몸통을 가로지르고 있다. 총격 후 중상을 입고 의료용 허리 보호대를 계속 차고 있는 모습, 복부 위 상체에 드러나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하고 하얀 살결은 더없이 나약해 보인다. 닐은 캔버스의 반 이상을 비워두고 미완성으로 남겨뒀다. 나이가 들면서 닐은 보다 많은 그림을 완성하지 않고 남겨두는데, 이는 붓의 흔적과 그림의 방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신만의 현대미술 제작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예술 삶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전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성애(Motherhood)’다. 닐 자신도 엄마였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지는 가장 복잡하고 다이내믹한 경험인 임신에 대한 솔직하고 거침없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임신한 여성의 복부, 흉터가 남은 신체, 만삭의 배에 나타나는 임신선, 커다란 유방과 신체적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닐은 자신과 같은 개인적 경력에 야망을 품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에 모성애를 동반한 신체적, 심리적 압박을 함께 이해하고 공감했다. 특히 <스페인 가족(The Spanish Family)>(1943)에서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지쳐 보인다.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무표정은 엄마라는 이름의 고단한 짐과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랄까? 닐은 여성 작가로서의 모성애적 바탕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나갔다. 수많은 사람을 그리고 탐구하며 신체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누드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누드화는 닐과 같은 여성 예술가에게는 특별한 도전이기도 했다. 여성 누드화는 예전부터 아름다움과 수동적이고 ‘몸’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닐의 작품에선 로맨틱한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다. 




<The Spanish Family> 1943

 Oil on canvas 86.4×71.1cm

 Estate of Alice Neel © The Estate of Alice Neel





특히 그만의 재치와 공감으로 표현한 남성 누드는 여성 누드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관습을 위트 있게 표현하여 관람자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닐의 작품에선 인물들의 신체적 특징과 더불어 주인공들이 앉은 의자나 벽의 패턴도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디테일의 즐거움을 더한다. 그의 작품 안에선 모두가 정직하고 진실하다. 그가 80세 때 그린 누드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 주름진 뱃살과 젖가슴이 축 처진 본인의 모습을 엄격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서 대표되는 ‘젊고 날씬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늙고 살이 늘어진 여성을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줌으로써 성차별적인 인식을 겨냥한다. 닐은 안경을 쓴 채 오른손엔 붓을, 다른 한 손엔 흰색 낡은 천을 들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담담하고 직설적으로 그려냈다. 직설적이라 더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본질에 대해 그 스스로 새로운 문을 열었다. 


닐이 예술가로 활동하던 때는 비구성 형식의 추상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개념미술에 밀려 전통 회화가 환영받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만의 개성과 독창성이 담긴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자신도 “추상은 인간을 외면한다. 나는 휴머니즘을 지향한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 주류와 거리를 두었다. 그는 어떠한 관습에도 구애받지 않고 여성 화가로서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면서 당시 남성 위주의 화단 풍토에 당당히 도전했다. 또한 성별, 인종, 계급, 성의 제약으로부터 개인적, 집단적 자유의 중요성을 주장하려 노력했다. 닐은 사람들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현했고,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의 화폭 안에선 모든 사람이 평등했다. 모두가 외면하고 숨기려고만 하는 외로움과 슬픔을 바탕으로 인간의 이면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탐구한 닐은 작품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PA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어와 텍스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하였고, 2016-2017년에는 문화역서울 284 <다빈치 코덱스>전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현재, 뉴욕 첼시의 작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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