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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0, Nov 2020

이명호
Lee Myoung Ho

지금 포착되는 것들의 비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3,200km 떨어진 초원에 홀로 선 발그레한 나무 뒤에 핑크색이 살짝 감도는 캔버스 천을 드리우고 셔터를 누른다. 그저 자연의 일원이었던 나무는 마치 캔버스에 그려진 것처럼 평면화되어 미술의 주인공이 된다. 2012년 이명호의 작품 [Tree...#2]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기획전 [Among the Trees]에 내걸렸다. 공교롭게도 팬데믹의 한 중심에서 맞은 ‘지구의 날’ 50주년을 기념하고자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감독한 랄프 루고프(Ralph Rugoff)가 헤이워드 갤러리 관장으로 직접 기획에 나선 전시다. 한편 11월 1일까지 개최된 ‘2020 창원조각비엔날레’에는 이명호의 신작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이 전시됐다. ‘사진-행위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는 이 야외 설치작업을 위해 작가는 용지공원의 어린나무 뒤에 6m 크기의 캔버스 구조물을 설치하고, 나무의 성장에 따라 5년 단위로 구조물의 크기를 확대하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제공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 2020 에이치빔, 철판, 홀로그램(페인팅), 우레탄(코팅), 콘크리트 기초, 기타 480×480×14cm 300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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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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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는 말한다. “작은 캔버스를 하찮은 것들 뒤에 드리움으로써 자연에 묻힌 그것들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캔버스에 그것들을 그리는 대신 그것들 뒤에 캔버스를 드리우는 일뿐이지만 예술 행위의 본래 뜻도 여기에 있다. 이 사람이 준 편지를 저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 내 어려서 꿈은 우편배달부였는데 가장 단순하고도 말초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아주 보람되고 내게 제일 알맞은 일이라 여겼다. 예술은 그 꿈의 다른 형태다. 세상의 한 구석을 들추고 환기하는 일, 이성과 감성을 객관화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게 예술이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느닷없이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생명체란 생각이 든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존재이자, 제 어미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일찍이 카뮈(Albert Camus)가 이방인의 뫼르소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것만큼 거창하게 인간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듯 말이다. 미술의 여러 층위에서 그 모호한 존재 인간은 대상이 되지만, 이명호의 사진엔 좀처럼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이미지와 오브제가 제각각 있을 뿐이다. 어떤 해석도 원치 않는다는 듯 담담하고 시크하게,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것만큼 크게 의미심장할 까닭이 없다는 듯 그렇게 존재한다. 




<Tree... #2> 2012 이에 잉크 104×152cm




작가 이명호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나무다. 사진을 행위로 환기하거나 사진을 하는 행위를 환기하고자 하는 뜻으로사진-행위(PHOTOGRAPHY -ACT)’ 프로젝트를 설계한 작가는 첫 작업으로나무(TREE)’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저 흔해서 나무를 피사체로 선택했을 뿐 꼭 나무라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행위에 방점을 찍고자 귀한 것을 피하고 흔한 것을 살피는 과정에서 골라진 게 나무였다그가 완성한 화면엔 구체적 대상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사뭇 추상적이며 시간을 내포한다. ‘사진은 시공간의 한 점에 필름을 잠시 담그고 다시 꺼내는 매체다. 소위, 피사체를 향한 무한의 관점 가운데 하나의관점을 드러내는작업인데, 역설적으로 그관점을 드러내는 즉시 피사체의 본질로부터 오히려 멀어지는모순에 빠진다. 보는 이에게 그 역설을 직시하도록 하는 작가적 태도가 작업에 오롯이 구상과 추상이 공존케 한다. ‘나무시리즈의 경우, 일견 나무를 잘 보여주기 위한 작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은 잘 보여주려 할수록 더 보이지 않는 역설을 볼 뿐이라 구상에서 추상까지 보이는 것이다




<Tree #2> 2006 종이에 잉크




앞서 나열했듯 국가와 장르를 넘어 종횡무진 하는 작가는, 그만큼 다작을 한다. 그러나 모든 작업은 분명한 형식과 구분을 따르는데, 우선 그를 대표하는사진-행위프로젝트는 세 개의 범주로 나뉜다. ‘나무시리즈 등을 담는재현(RE-PRESENCE)’의 카테고리, ‘신기루(MIRAGE)’ 시리즈 등을 담는재연(RE-PRODUCE)’의 카테고리,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 시리즈 등을 담는사이 혹은 너머(BETWEEN OR BEYOND)’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그리고 카테고리별 개념과 형식을 실험하는작명 안() (NOT TITLE(D))’ 시리즈 등을 담는무제 혹은 미제(UN-TITLE OR NO-TITLE)’의 카테고리, 사회에 사용하는적용 혹은 준용(USE AS THIS OR USE AS THAT)’의 카테고리 등 몇 개의 범주가 더 있다. 그런 그가 기존 작업의 스토리와 맥락은 유지하면서 전혀 색다른 형식의 작품을 최근 완성하고 있다. 9 22일부터 11 25일까지 선보이는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 내걸린 신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명호 작품과 사뭇 다르다. 근래 변화하는 작업 방식은 어떤 연유에 기인한 것이며 이러한 시도를 할 때 가장 중심에 두는 요소, 기준은 무엇일까?




<_[드러내다] #1'> 2020 전체(종이+잉크)-부분(종이+잉크) 104×104cm




새로운 연작 ‘_[드러내다]/_[drenæna]’에서 차용해 제목으로 내건 <[드러내다]>전은 그의 대표 연작인 ‘Tree’ ‘Nothing, But’을 비롯해 ‘_[드러내다]’까지 30여 점으로 구성됐다. ‘Tree’ ‘Nothing, But’ 연작에 나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얀 캔버스는 피사체가 된 나무를 단순한 풍경 속 정물이 아닌 회화와 같은재현적 이미지로 거듭나게 한다. 또한 광활한 사막 속 펼쳐진 캔버스는 예술의재연적 성격에 관한 담론을 상기시킨다. ‘[:야치]’, ‘[:마치]’, ‘[:야치()][:마치()]’로 이름 붙은 세 개의 공간에 따라 작업 범주를 나눈 전시는 각 범주마다 특정 색을 부여했다. ‘[:야치]’재현’, 예를 들어나무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WHITE’ 공간으로, ‘[:마치]’재연’, 예를 들어신기루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BLACK’ 공간이 되며, ‘[:야치()][:마치()]’사이 혹은 너머’, 예를 들어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GREY’ 공간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전시의 방점은 ‘_[드러내다]’란 표기가 붙은 9점의 신작에 찍힌다. 전체에서 부분을, 혹은 전체에서 전체를들어내서 드러내는작업들은 마치 하얗게 비어있는 종이를 액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데, 애써 사진을 만들고, 도로 사진을 없앤 이 작업은 사진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종이에 잉크를 얹는방법으로 사진을 만들고, 다시종이에서 잉크를 걷는방법으로 사진을 없앤 것이다[드러내다]는 동음이의어 드러내다들어내다의 발음 기호 표기로, 각각나타나게 하다사라지게 하다는 사실상 반대의 의미를 지닌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_[드러내다]’는 이명호 작가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캔버스-효과(canvas-effect) : 카메라-효과(camera-effect)’와 같은 철학적 개념과 그 형식을 고스란히 담은 표현인 셈이다.




<하찮은 것들> 2020 종이에 잉크 26×40cm




창원에 내건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은 그의 작업에 줄곧 등장하던 흰색 캔버스가 홀로그램 화면으로 바뀌고 평면의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야외에 설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2020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출품된 <하찮은 것들>은 하얀 캔버스가 피사체의 뒷면에 자리했던 기존 작업과 달리 작은 캔버스가 숲속의하찮은풀 따위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살피면 자연에 묻힌 것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고정되지 않은 재현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명호의 기조는 흔들림이 없다. 사진-행위프로젝트의 개념과 형식을 실험하는작명 안() 시리즈 등을 담는무제 혹은 미제의 카테고리, 사회에 사용하는적용 혹은 준용의 카테고리 등에 속할 작업을 준비하는 그는이명호라는 브랜드로 소통하는 갈래와 프로세스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PA

 



이명호




작가 이명호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연 <나무>를 비롯 열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자연에 대한 경의와 이미지의 재현혹은 재연에 관한 심오한 탐구를 결합한 ‘사진-행위 프로젝트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한 그의 작품은 장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 덴마크 왕립도서관(Danish Royal Library), 푸시킨미술관(The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암스테르담 사진 미술관(FOAM) 등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그는 한국의 문화재를 활용한 전시 <역사가 있는 풍경>을 기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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