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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5, Apr 2021

니콜라스 파티
Nicolas Party

풍경과 초상

2018년 봄,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재단 미술관(Fondation de l’Hermitage)에서 전시 [파스텔(Pastels)]이 열렸다. 제목 그대로 ‘파스텔’이라는 미디엄에 초점을 맞춘 이 전시는 16세기와 21세기 사이 제작된 여러 작품을 한 자리에 소환했다. 선구적으로 파스텔을 사용했던 페데리코 바로치(Federico Barocci)나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거장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계보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띈 이가 있었으니 바로 로잔 출신의 젊은 아티스트,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였다.
● 이가진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Hauser & Wirth 제공

Installation View of 'Nicolas Party: Pathway' Dallas Museum of Art, Dallas, TX 2017 © the artist and Dalls Museum of Art Photo: Chad Red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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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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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회화는 본래 작품 자체로서의 합목적성보다 어떤 장소나 인물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위해 존재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면서 회화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다. 파티는 미술사를 꼼꼼히 검토하지만, 회화가 이러한 입장을 확고히 다진 시대 이후에 활동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십분 누린다. 다시 말해 이 현대 미술가는 회화의 기본 요소에 충실하게 소재나 재료, 작업 방식을 선택하면서도 완성된 작품이 어떠한 환경에서 선보여지고,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까지를 고려해 ‘종합적 상황’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티의 그림은 종종 캔버스라는 틀을 벗어나 그것이 놓이는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음악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영화를 보면서 밥을 먹는 일상처럼 사람들이 멀티플레이에 익숙해질수록 한 점의 그림이 ‘관조’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림이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그것을 감각하는 방식이나 전달되는 강도가 달라질 수 있음에 집중해 더욱 적극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전시가 많아지는 이유다. 작품에서 그것을 둘러싼 벽과 천장, 때로는 건물 외관에 그려진 대형 벽화 등 유기체가 조용히 번식하는 것처럼 파티의 회화 또한 보수적인 공간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듯 보인다. 물론 작품이 노출되는 환경 이전에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만으로도 파티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대상은 자연(풍경이나 나무, 꽃, 일출과 일몰 등)이나 인물이다. 예술이 존재한 이래로 오랫동안 유명 혹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천착했던 주제다. 





<Landscape> 2018 Soft pastel 

on linen 110×180.5cm © the artist Photo: Adam Reich





꾸준히 참조하는 미술사적 아카이브와 작가 본인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전원 환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파티는 자연을 향한 애정을 확인했고, 끝없는 색채와 형태, 패턴이 펼쳐지는 자연 안에서 그는 일찌감치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발견한 셈이다. 본격적인 전원생활을 하지 않는다 해도 도시 한복판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온 마음을 집중해서 나무를 들여다보는 현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해진다. 그림 한 점, 나무 한 그루가 시신경을 붙들기엔 이미 인간의 감각은 온갖 자극에 동시다발적으로 반응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무엇을’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새로울 것 없는 이런 대상을 ‘어떻게’ 그리느냐는 데에 있다.


파티는 ‘소프트 파스텔’로 작업한다. 우리가 작품의 ‘미디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규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오늘날, 파티를 향한 관심과 이슈의 중심에 빈번하게 “파스텔을 쓰는 작가”라는 설명이 따라붙는 것은 그만큼 파스텔이 생경하다는 뜻일 것이다. 스테파니 로치(Stephanie Roach) 뉴욕 FLAG 예술 재단(FLAG Art Foundation) 디렉터는 “니콜라스 파티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매체인 파스텔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 그것을 동시대적이면서 신선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Portrait with Flowers> 2018 Soft pastel on linen 150×120cm 

© the artist and The Modern Institute/

Toby Webster Ltd, Glasgow Photo: Isabelle Arthuis 4





파티 역시 다른 작가들처럼 파스텔 외에 오일, 수채, 스프레이, 아크릴 등 다채로운 재료도 활용한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그라피티 등의 관심사로 작업 영역을 자연스럽게 넓히는 데에도 능하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어떤 형식이든 그것을 마주했을 때 실재와 가상 혹은 현재와 과거 등 인식의 준거를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원근의 경계를 흐리는 신비로운 색채와 명암으로 ‘언캐니(uncanny)’하다거나 ‘동화적이며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한 데에는 파스텔의 공이 혁혁하다.


피카소의 여인 초상화를 보고 압도되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는 2013년 이래로 파티는 본격적으로 파스텔이라는 매체와 인물화의 원형에 관해 탐구해나가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선으로 그려진 형체에 감정을 추측할 수 없는 표정, 성별을 파악하기도 힘든 모습이지만 한번 보면 각인될 독특한 얼굴이다. 머리 위에 새를 얹었거나, 버섯에 둘러싸이거나, 뱀에 감싸인 기묘한 상황에서도 인물들은 평정을 유지하는 듯 혹은 다른 차원에 가 있는 듯 무심해 보인다. 커다란 창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매진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 속에서 파티는 붓으로 물감을 섞어 선을 그리다가 파스텔을 집어 들곤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며 이목구비에 색을 더한다. 흡사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섬세한 터치가 이어지자 점차 일종의 캐릭터와 인상이 부여된다. 





<Portrait with Mushrooms> 2019

 Soft pastel on linen 149.9×127×2.5cm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eff McLane 5





2017년 허쉬혼 미술관·조각정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에서 치른 대규모 개인전 <Nicolas Party: Sunrise, Sunset>에서 작가는 자신의 주특기를 마음껏 발휘했다. 특히 미술관 내부 3층의 360도 원형 통로에 마련한 8개의 섹션은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로 다른 색 페인트로 여덟 군데 벽을 칠하고 그 위에 유화로 풍경을 표현했는데, 마치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는 듯한 장면이었다. 여기서 창문은 각각의 페인팅으로 사각, 원형, 아치형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그 안에는 산과 나무, 정글, 폭포, 일출과 일몰의 순간처럼 시공간이 혼재하는데, 작가는 이를 ‘샘플링’이라는 음악적 표현에 빗댄다. 


기존에 존재하는 종교화나 풍경화 등에서 고른 요소를 자신만의 기법과 ‘믹스(mix)’해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 한스 에메네거(Hans Emmenegger),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는 파티의 레퍼런스로 자주 언급되는 이들이다. 고유한 독창성을 외치기보다 전략적이고 비판적인 인용을 선택한 파티는 이들로부터 화면 구성의 전략이나 비전을 취하되 재료와 색, 구성을 자유자재로 변형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를 보여준다. 





<Head> 2018 Painted fibreglass 300×140cm © the artist and 

The Modern Institute/Toby Webster Ltd, Glasgow Photo: Patrick Jameson





노란 하늘, 보랏빛 산을 배경으로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은 춤이라도 추는 듯 넘실댄다. 파란 사과, 빨간 나무, 분홍빛을 주조로 표현해 언뜻 사탕이나 젤리처럼 보이는 사막의 암석들. 그래픽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그의 납작한 세상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한다. 파티가 펼쳐 보이는 것은 어떤 ‘분위기(atmosphere)’에 가깝다. 구체적인 시간과 계절도 알 수 없는 ‘언젠가의 어딘가’를 통해 관람객은 자신만의 순간과 마주한다. 작가는 “해가 뜨고 질 때야말로 세상이 진실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라고 말한다. 


광활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 개념을 상기시키는 묘한 풍경 앞에서야 우리는 드물게 세상의 참된 얼굴을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될까. 무채색의, 단조로운, 사소하고 뻔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를 원하는 대중도 앞다투어 SNS 피드를 파티의 작품으로 채우면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화려한 색채, 대담한 구성, 몰입을 권장하는 디스플레이까지 종합 세트를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재기발랄함이 소비와 경험을 일체화하는 데 익숙한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것.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컬렉터가 선호하는 구상화와 초현실주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그의 작품에 경매와 미술시장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그가 단지 포토제닉하거나 상업적인 성공이 담보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매체, 장르, 소재, 참고문헌 그것이 무엇이든 파티는 최대치의 소스를 활용하면서 그 범주 안에서 나름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노스탤지어와 참신함의 균형을 맞추는 영리함이 그를 어디로 이끌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방향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PA





니콜라스 파티

Photo: Axel Dupeux © Hauser & Wirth





작가 니콜라스 파티는 1980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생경한 풍경, 초상, 정물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하는 그는 회화라는 전통적 장르에 영리하게 도전한 젊은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허쉬혼 미술관·조각정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엠 우즈(M WOODS) 등에서 개인전을 치렀으며 2021년에도 프랑스 디종의 르 콩소시엄(Le Consortium), 독일 하노버의 케스트너 게젤샤프트(Kestner Gesellschaft) 등에서의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있다. 파티는 현재 브뤼셀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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