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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6, Nov 2018

대한민국 비엔날레 ②

Korean Biennale

SPECIAL FEATURE Ⅲ
부산비엔날레, 인터내셔널과 내셔널 사이_ 문선아

SPECIAL FEATURE Ⅳ
불발된 계략: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_ 양지윤

* 대한민국 비엔날레 ①에서 이전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좌) 노메다 & 게디미나스 우르보나스(Nomeda & Gediminas Urbonas) 'TRANSmutation' 2018 Multiple channel synchronised video installation, HDPE pipes Courtesy of artists Architecture: Indre Umbrasaite Video: Rainar Aasrand Camera: Rudolfas Levulis and paulius Mazuras (PVZ) Image archive: Lithuanian Central State Archives, The State Scientific Research Institute Nature Research Centre (NRC), Nikola Boji´c/ Anthropocenarium project ‘2018 부산비엔날레’ (우) 박상화 '2018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 2018 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handmade mesh screen ‘2018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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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기자, 문혜진 미술비평가, 문선아 독립 큐레이터,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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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부산비엔날레, 인터내셔널과 내셔널 사이

 문선아 독립 큐레이터

 


2018 부산비엔날레의 전시감독과 큐레이터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리쿠페로(Cristina Ricupero)와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외르그 하이저(Jörg Heiser)가 맡았다. 부산비엔날레 측은 오랜만에 다시 전시기획서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한 공개모집방식으로 이들 팀을 채택했는데, 리쿠페로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비평가로서 영국 런던 ICA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전시 부디렉터, 핀란드 헬싱키의 NIFCA (Nordic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의 큐레이터를 역임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2006 광주비엔날레 유럽 섹션 커미셔너와 2012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심사위원, 미디어시티서울2016의 큐레이토리얼 자문을 역임하는 등 한국 예술계와 깊은 인연을 맺어오기도 했다. 


런던 기반의 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의 에디터로 약 20년간 활동했던 하이저 역시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Berlin)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측의 게스트 큐레이터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했던 박가희가 참여했다. 기획자들은 2018 부산비엔날레 <비록 떨어져 있어도> (Divide We Stand)의 주제를 분열된 영토들(Divided Territories)로 제시했다. 정치적·역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쟁이나 식민지화, 적대적 외교 관계 등에 의해 분열된 영토 혹은 분단을 겪은 국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단연 차고 넘친다. 아니, 결국 모든 국가나 민족, 개인들이 행위자나 피행위자의 입장에서 분열을 기반으로 세계의 역사를 그려갔다는 지점에서 그 영향 관계를 피할 자는 없다. 그리고 한반도는 냉전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그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올해 4월 이루어진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의 국내외적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을 상기할 때, 주제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기획자들은 이 분열이 사람들의 심령에도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떻게 정치적경제적군사적 권력이 이 세계를 작금의 양태로 직조하고 장악하게 되었는지 자문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그 과정 속에서 분열이 한층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는지를 고민한다. 




최선아 <부산 1:10,000> 

2018 Blueprints on Aluminum panel 

110×800×5cm 2018 부산비엔날레Courtesy of the artist 





아마도 모두가 비엔날레의 정의를 다르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의를 아젠다를 제시하는 국제적 규모의 격년제 전시로 환원시킨다면, 이미 이번 비엔날레가 주제적 차원에서 국내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획으로 마련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실행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비엔날레를 전시라는 행사로 치환한다면 이를 위해 공간과 동선, 작가구성, 스토리텔링 방식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꼽자면, 2000년 이래로 전시를 해오던 부산시립미술관이 아닌 부산비엔날레 전용관으로 계획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였다는 점이다.


도심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널찍이 자리 잡은 부산현대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보기 전의 기대감을 고무시키면서도 한층 여유를 선사하는데, 기존 관람객들은 그 차이를 꽤 크게 느꼈으리라 판단된다. 추가적으로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다른 전시공간으로 마련해 1회 부산청년비엔날레를 상기시키고, 부산을 찾는 관람객들이 그 역사와 문화, 도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내용면에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과거 냉전 시대를 비롯해 오늘날 다시 냉전 상태로 회귀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현재의 정황을 과학소설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를 토대로 구상한 대안적미래지향적 시나리오를 점쳐볼 수 있도록 구획됐다전시는 동선을 신경 써 꾸민 티가 난다. 먼저, 각 전시장의 도입부와 결말부에서 이를 잘 찾아볼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위하여 부산시민들과 함께 완성한 오귀스탱 모르(Augustin Maurs) <나는 할 말이 없다. 


프로파간다용 확성기와 노래하는 목소리를 위하여>를 부산현대미술관의 건물밖에 위치시켜 정치성을 환기시키면서 관람객을 유도한다. 이어,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관람객들은 공항 체크인 구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길고 지루한 바리케이드 통로(에바 그루빙어(Eva Grubinger) <군중>)를 지나게 되는데, 이 시간동안 비엔날레를 감상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군중을 통제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일면 속세와 구분된 예술계라는 구조와 연동시켜 생각하게 된다. 이 고민의 끝에서 관람객들은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유로파>의 최면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비엔날레가 직조해 놓은 예술계에 초대된다. 




주황 <민요, 저곳에서 이곳에서

2018 4K video 6min 45sec Dimensions variable 

Editing: Jun Hwa Jung Production: 

Complex Special thanks to Kwon Jin 2018 부산비엔날레 

All courtesy of the artist 





영상 작업을 어찌 저리 척박한 환경에 두었는가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영상 자체는 도입부로서 아주 효과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통과의례적 전략은 전시의 결말부로도 이어진다. 관람객들은 냉전시기 프로파간다를 상기시키는 이미지의 파편들이 크게 프린트된 다층적 가벽 설치물, 가브리엘 레스터(Gabriel Lester) <조절하기>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어떤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고민하며 공간을 빠져나가게 된다. 한편,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초현실 공상과학 영화 <자도즈>로 부터 영감을 받은 장-뤽 블랑(Jean-Luc Blanc) <비록 떨어져 있어도>가 도입부 역할을 하고, 인터넷 세상의 바이럴적 특성에 착안한 이민휘 & 최윤의 6부작 음악 영상 <오염된 혀>가 전시 동선의 결말부로, 간략하게 부산의 역사를 담아낸 라운지와 분열된 영토들을 주제로 시네마프로그램이 열리는 아트 & 시네마 살롱이 전시장의 결말부로 배치된다.


 <오염된 혀>가 비엔날레 오픈 전 예고 영상으로 인터넷에 짧게 공개됐던 점과 아트 & 시네마 살롱이 공간과 출입구가 함께 있는 열려있는 디자인으로 구성된 점에서, 기획자들이 어떻게 부산현대미술관과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공간성을 차별화하고 후자의 경우, 인터넷공상과학 시대의 대중관람객들과의 어떤 관계성을 염두에 두고 대안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엠엔엘피(MNLP) 건축사무소와 협업 진행했다는 전시장의 공간은 작가별로 비교적 크게 할당되어 각 작가들이 원하는 바를 그리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으리라 파악된다. 초대형 전시의 시대가 이제는 끝났다고 굳게 믿는다는 전시감독과 큐레이터는 다소 적은 수인 66팀의 작가군을 선정해 관람객들이 여유 있는 공간감을 느끼도록 했다. 


헨리케 나우만(Henrike Nauman)은 신작 <2000>에서 실내디자인을 파노라마처럼 설치하고 이미지, 사운드, 오브제, 영상 등과 배치시켜 공간감을 여실히 살려냈다. 이를 통해 독일 통일 이후 극우파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젊은 세대 사이에서 번져 갔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를 지나 그 끝에 위치한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스마다 드레이푸스(Smadar Dreyfus) <어머니의 날> 역시 공간성을 잘 살린 예다. 드레이푸스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샤우팅 힐에서 어머니의 날 떨어진 서로의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아우성치는 현장을 시청각을 통해 극대화하고, 그 정치적 정서를 관람객에게 체감시킨다. 임민욱 역시 삼성미술관 플라토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한 <만일의 약속>을 확장하여 보다 부피감 있는 설치로 선보이며, 서민정은 <순간의 총체-기둥들>에서 넘어지고 부서진 대형 기둥들을 천장에 통해 매달아 세대 간, 사회 간의 단절을 보여준다.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Prologue of Europa> 

1991 Single channel video, 

excerpt from 113min Licensor: Trust Nordisk Aps

 2018 부산비엔날레





한편, 필 콜린스(Phil Collins)는 영상 설치 작업 <딜리트 비치>를 통해 종국으로 치달은 인간과 화석 연료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파손된 기름통, 타이어, 해수욕장 시설물들이 배치되고, 매캐한 연기가 전체 공간을 메운다. 또한, 공간과 동선 구성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이번 전시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제공하여 그 큰 틀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고안됐는데, 이 지점에서 구 한국은행 부산 본부의 공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는 기존의 공간성을 그대로 살려 현장감과 역사성을  담아내고 있고, 또 일부는 화이트 큐브로 깔끔하게 꾸며내 작업을 돋보이게 했다. 이를 통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감이 형성된다. 특히, 구 한국은행 부산 본부의 방 한편에 위치한 임영주의 신작 <객성>은 초신성에 대한 믿음과 냉전시기에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날쌘 갈색 여우가 게으른 개를 뛰어 넘는다라는 문장, 올해 4 27일 남북한 정상의 도보다리 회담의 이미지들을 교차시켜 우주와 지구, 세계와 한국,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내고, 부산과 판문점사이에 또 다른 다리를 형성해낸다


전시는 비교적 꽤 잘 알려진 작업들을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새로운 작업들과 병치하여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같은 작가의 작업들을 다른 공간에서 선보이기도 했는데,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비어있는 미떼>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전후의 변화를 이주민의 시각을 통해 필름 에세이 형식으로 드러내고, <특별우주선>을 통해 이라크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나뉘어 버린 쿠르드인의 영토에 대한 이야기를 공상 과학적 요소와 섞어 영상 설치 작업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꾸준히 다뤄온 최원준은 남북한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담은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국제적인 우정>을 아카이브 설치 작업으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치적사회적 구조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보여주는 <나의 리상국>을 영상 설치 작업으로 구현한다. 이 밖에도 멜릭 오하니언(Melik Ohanian)은 고향인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파리까지의 여정을 겪은 본인의 삶을 설치 작업 <콘크리트 눈물방울 3451>과 영상 작업 <국경지대-나는 먼 거리를 걸었네>로 다르게 선보이며, 하나의 테마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에바 그루빙어(Eva Grubinger) 

<군중(Crowd)> 2007/18 Tensabarriers 

Dimensions variable 2018 부산비엔날레 

Courtesy of Galerie Tobias Naehring, Leipzig  




 34개국 66팀이 125점의 작업을 선보이는 가운데, 한국 작가는 총 13팀이 참여했는데, 비엔날레는 국제적 이슈들을 다루는 작업들을 한반도의 이슈를 다루는 작업들과 교차배치하여 지금까지 서로 무관했던 다양한 지역 및 사회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예컨대, 슈타이얼의 <비어있는 미떼>는 류연복과 김용태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선전용 전단지들을 DMZ 알파벳 형태로 콜라주한 맞은 편의 <메아리>와 연동되며, 탈식민지화의 일환으로 완전히 파괴된 거리의 조각상들을 꾸밈없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한 킬루안지 키아 헨다(Kiluanji Kia Henda)의 사진 연작 <권력의 재정의>는 동선상 북한이 아프리카에 세운 기념비를 같은 형식으로 담아낸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양한 작가의 영상 작업들이 서로 방해를 받지 않는 구조로 단독 공간들에서 선보여져 작업들이 여실히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사실 역시 특기할 만하다. 바니 아비디(Bani Abidi) <뜻밖의 상황>, 샹탈 애커만(Chantal Akerman) <동쪽>, 슈 챠-웨이(Hsu Chia-Wei) <정보국의 흔적>, 와누리 카히우(Wanuri Kahiu) <불모의 땅>,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 <시즌 아웃사이드>, 권하윤의 <489>, 박경근의 <군대: 60만의 초상> 등이 선보여 분열된 영토들이라는 주제를 한층 심화한다. 앞서 볼 수 있듯, 이번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심도 있게 주제 분열된 영토들에 접근한다. 주제에 직접적인 작업들이 있는가 하면, 파생되는 하위 주제를 검토하여 정신적, 역사적 혹은 개념적 방식으로 작용하는 작업들도 있다. 전시의 관점에서 총평하자면, 이번 비엔날레는 주제를 기점으로 잘 기획되고 잘 실현된 비엔날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지구가 공감할 수 있는 난민, 전쟁 등 다양한 분열에 대한 이슈를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섞어 국내외적으로 유의미한 기획의 발판을 잘 마련했을 뿐 아니라, 공간과 동선 구성, 작가 구성, 스토리텔링 등의 실행적 차원들을 잘 구현해냈고, 최종적으로 전시 실행이 완료된 시점에서 보자면 그 완성도 면에서 미술관형 전시로 읽어내기에도 손색이 없다. 다만, 여전히 아쉬운 점은 비엔날레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들을 전시 감독과 큐레이터로 선정한 만큼, 굉장히 유럽중심적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획자 선정 단계에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큐레이터들을 초대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바니 아비디(Bani Abidi) <An Unforeseen Situation> 

2015 Single channel video 6min 52sec 

2018 부산비엔날레 Courtesy of Dallas Contemporary




기획자들의 의도와 일면 다르게 읽어본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크게 개인과 군중, 테크놀로지와 포스트 인터넷, 형식주의와 그 반발이라는 현재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범주들로 귀속되며, 여기에 한국의 분단'이라는 소재를 아주 적절히 녹여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유럽중심적인 전시를 구현해내는 것에 대해 옳다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오히려 한국의 이슈와 작가들을 국제적인 맥락에 담아내고 소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지점에서 다시 한국예술계는 본인들의 영토에서 외부자들로서 존재하게 된다. 서구에서 시작된 현대미술은 한계에 부딪힐 때, 타자를 찾아 엮어 내 전시하는 구조를 답습해왔다.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아젠다를 던진다는 국제 유수의 비엔날레들 역시 그러하며, 그 기원 때문일지 한국의 다양한 비엔날레들 역시 해외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큐레이터들을 초청하여 서양의 현대미술과 연동돼 그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자주 선보인다. 


그러나 외국인 큐레이터를 초대하여 한국의 예술을 소개하는 비엔날레는 주체성이 상실된 채 그 역사적 맥락 깊이로는 들어갈 수 없는 한계를 지니며 소재주의적 관점에 그친다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1981년 시작된 부산청년비엔날레는 부산비엔날레의 모태로, 정치적 상황이나 지방자치단체 정책의 필요에 의해 창설되지 않고, 동시대 조형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정신을 추구하면서 부산 미술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추진된 행사라는 기원을 지닌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비엔날레들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얼마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 어떻게 한반도상의 현대미술에 대한 고민들을 비엔날레적 차원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사색은 고스란히 우리의 문제로 다시 남았다.    

 

 

글쓴이 문선아는 독립 큐레이터로, 철학과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월간 「퍼블릭아트」의 기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플라스틱 신화들>(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5)의 기획에 참여했다. 암스테르담 데 아펠 아트센터에서 큐레이터 과정을 거쳤고, 해당기관에서 <Brace for Impact>(2018)를 공동기획했다. 현재, 세대론과 미디어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시대정신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으며, <시대정신: -사이키델릭; 블루> (아마도예술공간, 2016) <시대정신: 비디오 제너레이션>(대안공간루프, 2018)을 선보였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Special feature 

불발된 계략: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이하 미디어시티 2018)의 관람에 앞서 무수한 뒷말과 풍문들부터 접했다. 그 상당 부분은 비() 미술계 인사를 다수 포함한 6 디렉토리얼 콜렉티브가 선정된 이유에서부터, 개막이 임박해서 4인으로 줄어든 사정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콜렉티브 중 하나인 경제학자가 라파엘 전파 라파엘 이전 시기라 번역할 만큼 미술에 문외한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었다. 무수한 풍문들에 비해 공적인 비판과 토론은 기이하리만치 없었다.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무시한다, 얘기할 가치가 없다 같은 태도가 있을 뿐이다. 물론 비판과 토론의 부재는 비단 이 행사에 국한한 게 아니라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 관습이기도 하다. 청년 예술인들 사이에서 진지한 비판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 공고한 관습의 벽을 넘어서긴 어려운 듯 보인다비판과 토론이 없는 본질적 이유는 본질적 질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미술계는 비엔날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잊은 지 오래다. 물론 이는 현대미술(컨템포러리 아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잊은 지 오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질문을 잊은 대신 우리는 비엔날레를 둘러싼 사적 네트워크나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뒷 담화에 집중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디렉토리얼 콜렉티브


미디어시티 2018은 기존의 1인 감독 기획 체제가 아니라 이른바 디렉토리얼 콜렉티브가 진행했다. 시각예술 기획, 무용 평론, 경제연구소와 서점 운영에 종사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선택한 주제인 좋은 삶은 고대 그리스어 Eu Zen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좋은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를 질문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보도자료에는 한 명의 두뇌보다 여러 명의 두뇌를 자율적으로 연동하여 서로 다른 OS(Operating System)의 공유지를 찾아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모험이라고 적고 있다. 콜렉티브는 이번 비엔날레의 키워드로 뉴 노멀, 새로운 인간의 모습, 좋은 삶을 선정한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파국, 지구의 생태 및 환경적 파국, 그리고 인공지능의 특이점 등 디렉토리얼 콜렉티브가 경고하는 현 단계 삶의 파국적 위기 국면에서 비엔날레는 정체된 예술의 장을 환기하는 개량주의적 태도보다 그 장을 그 아래에서 감당하고 지탱해주는 마치 인도 거북이 같은 삶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는 태도를 지향한다. 국내외 16개국 68()  74점을 선보이는 이번 행사에 서울 시비 17억 원이 투입됐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비엔날레란 무엇인가


비엔날레라는 형식은 격년으로 치르는 대규모 국제 전시를 말한다. 1893년 이탈리아 국왕의 25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예술 비엔날레가 베니스에서 기획되었다. 이듬해 이 행사에 해외 예술가들을 초대한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의 시초다.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비엔날레가 갖는 국가주의적 관점에 혁신을 가져온 것은 1984 1회 하바나 비엔날레(1st Havana Biennale). 현재 시점에서 비엔날레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바로 이 하바나 비엔날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의 붕괴, 천안문 사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열린 1989 3회 하바나 비엔날레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국제미술계의 유럽 중심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주류 국제 미술계가 주변화시킨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비엔날레로 구현한다. 하바나 비엔날레가 만들어 낸 또 한 가지 중요한 혁신은 학술 컨퍼런스, 강연과 토론, 워크숍을 비엔날레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3 세계 미술에 관한 담론을 토론하는 장을 비엔날레에서 만들어 냈고, 행사가 종료된 후에도 광범위한 지적 미적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1990년대 생겨난 무수히 많은 비 유럽권 비엔날레에 중요한 롤모델이 된다. 비 유럽권 비엔날레들은 주류 국제 미술계에 대항하여 예술적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미디어시티 2018이 그 주제를 굳이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 질문한 좋은 삶이라는 서구 문명의 기틀에서 가져온 건 의아한 면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 공간에 일종의 의회인 아고라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공간은 철학이란 사유의 오염이 극심하지 않을 때의 생각하는 방식, 고대적 생각 방식을 참조한다는 뜻이다. 하바나 비엔날레의 영향을 받은 비유럽권 비엔날레는 서구의 미감과 사고 체계가 태생적으로 제국주의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고 저마다의 고유한 미감과 담론을 현대적 상황에 복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예술적 실천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무시한 채 (혹은 모른 채), 고대 아테네 시대를 사유의 오염이 극심하지 않을 때라 정의하는 것은 딱한 일이다미디어시티 2018은 제 가능성을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전시라는 형식을 버림으로써 시작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그 구현된 모습을 보면 디렉토리얼 콜렉티브가 비엔날레의 역사와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전시라는 형식을 버리고 시작한 방식이야말로 일반적 비엔날레식 전시이기 때문이다. 강연, 토론, 워크숍을 비엔날레 안으로 가져오고 예술()의 정의와 범주를 확장하는 것은 하바나 비엔날레 이후, 비엔날레의 보편적인 경향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남성들의 연대


미디어시티 2018의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는 그 시작부터 6인의 중년 남성으로 구성되었다. 준비 과정에서 한 명은 타의에 의해 다른 한 명은 자의에 의해 사퇴하면서, 결국 4인의 중년 남성이 기획한 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미투 운동의 가해자(혹은 가해 지목자)들이 모두 중년 남성들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구성은 매우 야만적인 느낌마저 든다. 비엔날레가 동시대의 주요한 사회적 이슈를, 주제는 물론 기획과 구성에 수용하는 건 이미 상식에 속한다. 또한 비엔날레의 역사에서 젠더는 가장 주요한 주제 중 하나다. 이를테면 2009년 제11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ale) <무엇이 인류를 살아남게 하는가?>는 비엔날레를 둘러싼 남성을 중심으로 한 현실 사회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대안을 찾고자 했다.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인 WHW(What, How & for Whom)은 비엔날레의 주제로 젠더 이슈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동시에 비엔날레를 현실적으로 실현한 예술 제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비엔날레의 마지막 공간에는 2009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가능하게 한 객관적 정보를 공개한다. 여기에는 참여 예술가의 젠더, 국적, 나이는 물론이고, 작품 제작비와 제작연도, 나라별 지원금의 액수, 비엔날레의 전체 예산과 그 사용 내용을 공개했다. WHW는 스스로 기획한 비엔날레를 둘러싼 현실 상황들, 예컨대 젠더의 불평등, 지원금 제도의 비합리성, 글로벌 시대 국가 간의 격차를 비엔날레의 메타-주제로 가시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미디어시티 2018은 여성이 팀의 멤버로 참여하는 경우를 포함해서 여성의 전체 참여율은 30%에 그친다. 이는 4인의 중년 남성이 젠더 문제에 기본적 개념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근래 필자가 대화를 나눈 외국 미술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실을 지적하며 의문을 표시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참정권은 성인 남성에게만 제한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미성년자, 노예, 외국인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혹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좋은 삶을 화두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의 성 평등 의식, 젠더 감수성까지도 답습하려는 걸까.





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쿤치, 리드인 공동 편집

CATALOGUE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예술과 비예술


미디어시티 2018에는 잡지 편집자, 환경 운동가, 청년 벤처사업가 등 비 예술인이 참여작가로 초대받았다. 그러나 작품 선정이나 예술성에 대한 일관성 있는 기준과 관점이 존재하기보다는, 콜렉티브 멤버들 각각의 개인적 취향이나 정치적 올바름 과시 같은 것들을 늘어놓은 느낌을 준다. 철 지난 문화 상품과 공허한 캠페인 문구들이 현대예술작업들과 뒤엉켜 있는 산만한 작품 배치는 이를 더욱 가시화된다. 그중 하나는 <무중력지대 양천>이라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청년 공간이다. 청년을 구속하는 사회의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이들이 말하는 모토다. <무중력지대 양천>은 미술관 1층의 아고라에서 뉴노멀 시대에 청년들이 추구하는 독립은 무엇인지에 관한 함께 고민을 나누어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 공간이 청년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 펼치는 청년 지원정책에 혜택을 받는다는 객관적 정보는 누락된다. 독립은 경제적 자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 이유는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무중력지대 양천>은 관에 의한 청년 정신 진열장처럼 보인다. 진정한 독립은 오히려 관의 지원이나 기금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좋은 삶을 만드는 활동가 되기 ABC> 2 3일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을 3시간으로 줄인 것이라 한다. 캠페인의 기본, 트레이닝과 비폭력 직접행동 등의 내용이다. 시민운동은 물론, 어떤 사회적 주제도 예술일 수 있다. 그러나 프로파간다가 예술을 대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술을 전문가의 전유물로 삼고 시민과의 경계를 만드는 태도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 지향과 극복은 어디까지나 예술적이어야 하고, 예술적 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함이다좋은 삶을 비엔날레의 주제로 정한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술과 예술가를 고사시킨 스탈린주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그 원래 의미는 시민(인민) 건강하고 좋은 삶을 위한 예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비엔날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부재는 이번과 같은 난망한 상황을 낳는다. 건강한 비판과 토론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쓴이 양지윤은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이며, 사운드이펙트서울의 디렉터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수석큐레이터로 근무했고, 암스테르담 데 아펠 아트센터에서 큐레이터 과정에 참여했다. 기존 현대미술의 범주를 확장한 시각문화의 쟁점들을 천착하며, 이를 라디오, 인터넷, SNS를 활용한 공공적 소통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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