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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4, Mar 2021

세실리아 비쿠냐
Cecilia Vicuña

흩어진 날개를 찾아서

“아직 형성되지 않은 미래의 잠재력, 소리와 짜임 그리고 언어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그곳에 나의 작업이 있다.” 시와 회화, 영상, 조각, 퍼포먼스 등을 아우르는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의 작업은 고대 직조 기술의 실천과 기억을 통해 현대의 정치, 환경파괴, 인권 훼손, 문화 동질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다방면으로 펼쳐 보인다. 공공의 의식을 바탕으로 시간의 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삶과 공간을 이루는 추상적 배열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의 작품은, 마치 커다란 숲속 한가운데에서 여러 갈래의 길을 마주하듯 각기 다른 풍경과 장면으로 끝없이 변주된다. 가시적이고 드러난 사실이 아닌, 지워지거나 가려진 혹은 잃어버렸거나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대상으로 향하는 비쿠냐의 작업은 1970년대 초반부터 망명 생활을 해왔던 자신의 삶처럼 흩어져버린 흔적을 쫓는 과정, 그 자체와 같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Lehmann Maupin 제공

Installation view of 'Cecilia Vicuña: About to Happen' 2017 Contemporary Arts Center New Orleans March 16-June 18 2017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Alex M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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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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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가득했던 가족들 영향으로 비쿠냐는 일찍이 책과 예술이 연결된 환경에서 글쓰기, 드로잉, 페인팅, 공연 등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고 행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60년대, 즉 칠레가 정치적으로 가장 격동했던 시기에 성인이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 비쿠냐가 행동주의(activism) 그리고 칠레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가령 광부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거리에 나가 함께 시위하며 그들과 다름없는 하나의 노동자임을 느끼곤 했고, 단결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이 아닌, 자신이 살아오고 살아갈 삶으로 여겨졌다. 이후 1972년, 비쿠냐는 런던 슬레이드 미술학교 입학을 위해 영국으로 떠나는데 이듬해 9월 자국에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를 향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며 망명 생활이 시작된다. 시를 외우고 예술을 이야기하던 그의 삶에 점차 복합적 혼란이 더해졌고, 이는 작가로서 사물과 행동의 연결점 그리고 창조적 삶의 기원을 추적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Camilo Torres> 1978 Oil on cotton canvas 

139.4×118.7cm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Matthew Herrmann




비쿠냐의 초기작은 과거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징표로 활용하며 다분히 비밀스러운 저항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970년대 초 페인팅 작품을 보면,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Marx)부터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초대 국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콜롬비아의 혁명가 카밀로 토레스 레스트레포(Camilo Torres Restrepo)가 차례로 작품에 등장해 사회주의 혁명의 비극적 종말에 부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이슈만큼이나 그의 그림에서 토착민과 여성의 삶은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는데, 이 두 가지 개념이 집약된 작품이 <콜롬비아 해안의 황갈색 혼혈 여인(La Mulata Costena de Colombia>(ca. 1977)이다.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은 혼혈 여성이 오로지 앞만 바라본 채 당당하게 전진하고 있고, 그런 그를 막아내려는 듯 다리와 몸통 그리고 주변으로 농부와 공장 근로자, 군인들이 촘촘히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숨 쉴 틈 없이 답답하고 억압된 상황, 그럼에도 여성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탄력적으로 빛나고, 그의 손에 들린 아침 햇살은 여성의 힘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혁명적인 소명을 표방한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비쿠냐는 말한다. “자유를 위한, 정의를 위한 운동은 아직도 우리의 삶 가장 가까이에 있다.”




<Self Portrait with Humps> 2021 Oil on canvas

 101.6×6.2cm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작가의 작업 출발점을 살펴보자. 1966년 칠레 콘콘(Concón)의 한 해변, 당시 17살이었던 비쿠냐는 과거엔 제의를 올렸으나 공장으로 변해버린 건물의 그림자가 해변으로 내려앉은 것을 보게 된다. 그림자를 거점으로 작은 나무 막대기를 세운 그는 파도의 물결에 의해 막대기의 위치가 변하고 바람에 흔들려 스러지는 모습에서 사라지고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 대한 의식을 자각한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 진행 중인 작가의 대표적 작품 시리즈 ‘로 프레카리오(Lo Precario)’로 연결된다. 모래 위에 세워진 막대기에 조심스럽게 묶인 조개껍질, 플라스틱, 유리 등은 자연 요소에 의해 감싸지거나 혹은 파괴되고, 끈으로만 느슨하게 연결된 각각의 오브제들은 물성의 연약함, 가치의 불변성을 상징한다. 


또한 언어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프레카리오가 ‘기도’를 지칭하는 라틴어 ‘Précis’를 어원으로 하는 ‘불안정한, 일시적인, 잠정적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이 세상을 향한 일종의 기도를 암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작에서는 독자적인 프레카리오 설치에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하기도 했다. 선과 제스처로 이루어진 프레카리오 드로잉과 한 장의 수제 종이 위에 설치된 발견된 오브제, 나비가 엮인 철사 조끼를 입고 허드슨강 강둑 위를 걷는 비쿠냐의 모습이 담긴 아이패드가 나란히 전시장에 놓여 있다. 허드슨강은 기후변화와 살충제 사용, 서식지 손실로 인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황제나비가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하던 길로 알려져 있는데, 작가는 이를 영상에 등장시키며 버려진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범국가적인 언어로 표상하고 생태 파괴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을 상기시킨다.




<El Paro / The Strike> 2018 after the lost original 

1977 work Oil on linen 137.2×161.3×2.5cm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한편 고대 안데스의 언어 체계 ‘키푸(Quipu)’는 비쿠냐의 작업 전반에 주요 제재로 등장한다. 오직 줄의 매듭으로 시촉각적 의사소통을 꾀하는 체계에 대해 작가는 “노트와 색실로 된 ‘쓰기’ 시스템”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매듭이 있는 색실은 통계나 숫자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이야기, 시, 계보를 기록하는 복잡한 기능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16세기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1,000개 미만의 키푸만이 남아 있다. 키푸 제작은 숙련된 키푸카마요크(quipucamayocs), 즉 키푸 전문가들의 노동이 집약된 과정이었다. 하버드 교수이자 대표적 키푸 학자인 게리 어튼(Gary Urton)에 따르면 컴퓨터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잉카인들은 복잡한 이진코드(binary code)를 사용해 키푸에 정보를 저장했다고 한다. 처음엔 키푸와 토착 행정 시스템을 이용해 지리적으로 큰 영토를 지배했던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은 이후 공식적으로 키푸를 금지시켰고, 키푸카마요크들은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며 무덤 속에 묻히게 됐다. 이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키푸의 메시지와 의미를 거의 해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비쿠냐는 “세상의 지식은 부당하다”고 이야기한다. 키푸는 그의 작업에서 식민지 서술에 대한 시적 저항을 촉진하고, 잊혀진 선대 문자 체계를 되찾으려는 스스로의 바람을 투영하고 있다.





Installation view of <Cecilia Vicuña: Quipu Girok (Knot Record)> 

February 18-April 24, 2021 Lehmann Maupin Seoul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OnArt Studio




지난달 18일부터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키푸 기록(Quipu Girok)>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동명의 작품은 오래된 직조물 위에 일종의 토속화를 연상시키는 채색한 거즈, 한복에 사용되는 실크 폴리에스테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직조에 사용되어 온 면으로 구성된 대형 설치작이다. 1970년 ‘태양 회화(Solar Painting)’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안료와 파스텔 크레용으로 채색한 투명한 천의 줄기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 이전에 제작된 안데스의 초기 직물 회화와 같이 단순화된 표식 및 기하학적 기호와 도식을 특징으로 한다. 역사에 기초한 전시는 시공간을 시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기억, 여러 언어가 한데 모인 작품들은 세상을 향한 비쿠냐의 너그럽고 애정 어린 시선을 한껏 느끼게 한다. 고대 기억의 실타래를 현재의 바늘로 꿰뚫어 보는 비쿠냐의 작업은 서구 문화, 현대 문명이 야기한 과거의 역사와 언어, 문명, 자연의 사라짐에 대해 확고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의 존재, 영혼, 정신 그리고 몸이 작금의 세태를 온전히 느끼고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금 마주하는 고통을 부정하고 현실을 부인한다면 냉혹하고 잔인한 제멸의 행위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이다. 함께 더 멀리, 높게 날기 위해 끝없이 갱신되는 비쿠냐의 선험적인 시선은 소멸의 바람을 타고 흩어진 우리네 날개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PA





세실리아 비쿠냐

Cecilia Vicuña's performance during Documenta 14, Kassel 

 ©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Daniela Aravena





작가이자 시인, 영화 제작자, 사회 운동가로 활동 중인 세실리아 비쿠냐는 194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1971년 칠레대학교 국립미술학교(National School of Fine Arts, University of Chile)에서 수학하고 1972-1973년 영국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칠레 산티아고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미국 마이애미 노스 마이애미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North Miami),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7년 독일 카셀,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도쿠멘타 14(Documenta 14)’, 2012년 ‘시드니 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 1997년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를 포함해 다수의 비엔날레와 그룹전에 참여했다. 올해 국내에선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리만머핀 서울에서의 개인전과 ‘제13회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비쿠냐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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