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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2, Jul 2018

낯선 익숙함에 대해

U.S.A

Before/On/After:William Wegman and California Conceptualism
2018.1.17-2018.7.15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The Me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2층, 유럽 고전 회화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복도에는 다양한 시기의 사진과 드로잉 작품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관람객은 'Before/On/After: William Wegman and California Conceptualism'전을 마주하게 된다. 이 특별전은 세 개의 갤러리로 이뤄진 크지 않은 규모이다. 그러나 전시 입구에서, 윌리엄 웨그만(William Wegman)의 사진 시리즈 ‘Before/On/After’(1972) 중 한 장면을 따온 포스터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그 이전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이 포스터는 한눈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 정하영 미국통신원 ● 사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공

'Before/On/After'(detail) 1972 Gelatin silver prin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urchase, Vital Projects Fund Inc. Gift, through Joyce and Robert Menschel, 2016 ⓒ William Wegman. Courtesy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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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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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은 자신의 애완견들을 모델로 한 유머러스한 사진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 작가다. 1997년 발간된 사진집 『Puppies』는 작가의 애완견의 모습을 여러 가지 소품과 포즈로 담아내며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그의 애완견들이 출연한 에피소드(예를 들어, 그의 애완견 중 하나인 맥 페이(McFay)가 40개의 레몬과 라임, 바나나의 개수를 세는 장면이 나온다)로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2007년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웨그만의 한국 첫 전시 <웃기고&이상한>전을 기획할 때 애완견을 찍은 그의 초기 흑백 사진, 회화, 드로잉 및 콜라주를 중심으로 전시했다는 점도 무엇이 그를 대중에게 친숙하게 했는지 보여준다.그러나 이번 전시는 단순히 웨그만의 작품을 나열하고, 관람객의 정서적 공감을 얻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근 웨그만과 그의 아내 크리스틴 버긴(Christine Burgin)은 작가가 1970년부터 199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작한 174점의 비디오 아트와 몇 점의 드로잉, 사진 작품을 The Met에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The Met는 이번 기증품의 일부와 기존 미술관 소장품 중 1970년대 초반, 웨그만과 함께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을 마련했다.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에드워드 루샤(Ed Ruscha) 등 크게 서부 개념미술 그룹으로 묶을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그들 사이의 대화를 만들어 내며, 웨그만이 본격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비야 셀민(Vija Celmin)의 석판화 <Untitled (Desert)>(1971)는 웨그만의 사진 <Inverted Plywood>(1973) 옆에 걸려 있다. 언뜻 보기에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더그 에클룬트(Doug Eklund)는 실제 둘 간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두 작가 모두 개념미술 작품이 종종 전시 공간에 잘못된 방식으로 놓인다는 점에 착안해, 회화 혹은 조각에서 위/아래와 같은 방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각자의 작품에 녹여내려 했다는 것이다. 





<Before/On/After>(detail) 1972 Gelatin silver prin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urchase, Vital Projects Fund Inc. 

Gift, through Joyce and Robert Menschel, 2016 

 William Wegman. Courtesy the artist




미술사적으로는 개념미술이라는 사조를 논할 때,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해 왔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작품에 보다 익숙하다. 1967년 솔 르윗(Sol LeWitt)은 예술잡지인 『아트포럼(Art Forum)』에 자신의 글, 「개념미술에 대한 소고(Paragraphs on Con-ceptual Art)」를 게재한다. 이 글에서 르윗은 “아이디어나 개념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한 미술가가 개념적인 미술의 형식을 사용할 때, 모든 계획과 결정은 이미 사전에 이루는 것이며, 제작을 실행하는 일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전통적 미술의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이러한 생각은 일련의 논리적 규칙을 근간으로 하는 철학과 수학의 체계를 미술에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뉴욕 작가들이 추구한 개념미술은 표현성이 배제된 건조한 결과물을 낳았으며, 실제 르윗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가 이성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감정적으로 메마르게 하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했다.반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의 개념미술 작가들은 아이디어, 개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표현 방식에 있어 뉴욕 작가들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동부의 작가들이 건조하고 정보 전달에 집중하는 양식을 보였다면 서부의 작가들은 여러 개의 층위를 가진 내러티브를 통해 감성적인 울림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웨그만의 사진 <Light Off / Light On>(1970)이 대표적인 예이다. 관람객은 같은 방의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사진 앞에서 멈칫하며, 작품의 타이틀을 읽고 난 후에야 두 사진이 가지고 있는 미미한 차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타이틀은 두 장의 사진에 드러난 공통점과 차이점을 넘어선 층위로 관람객을 이끈다. 


감상자는 스위치를 끄고 켠다는 단순한 행위와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물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특정 행위를 ‘한다’라는 어구가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웨그만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위트 또한 눈여겨 볼만 하다. 1968년 개념주의 작가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는 그의 책 『선언문(Statements)』에서 예술 작품이란 그것을 접한 관람객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고 이야기했다. 웨그만의 <Untitled (“I know tomorrow is your day off...”)>(1970-1971)는 이러한 와이너의 관점을 오롯이 녹여낸다. “나는 내일 당신이 휴가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일단 우리는 이 메모들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사무실에서 사용할 법한 용지에 활자로 인쇄되어있다. 




<Before/On/After>(detail) 1972 Gelatin silver prin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urchase, Vital Projects Fund Inc. 

Gift, through Joyce and Robert Menschel, 2016 

 William Wegman. Courtesy the artist





이 글을 읽으며, 관람객은 코미디 스크립트에서 보일 법한 아이러니뿐 아니라 어그러진 소통에서 오는 씁쓸한 유머까지 발견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감상의 과정이 결코 딱딱하거나 심각하지 않으며, 일정한 양의 재치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전시된 아일린 세가로브(Ilene Segalove) <Todays Program: Jackson Pollock, Lavender Mist>(1973) 또한 미술계 내의 권위에 대한 물음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석판화에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보는 기내 영화 화면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회화를 콜라주로 덧입혔다. 말끔히 차려입은 승객들이 영화 대신 미술 작품을 보고 있는 장면은, 당시 미술 평론가들의 ‘문화에는 서열이 있으며 미술의 가치가 대중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져 판단될 수 있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지적하되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소극장을 연상시키는 암실로 이뤄진 전시의 중앙 갤러리는 개념미술 작가로서 웨그만이 지닌 색깔을 보다 뚜렷이 보여준다. 암실 전면 스크린에는 웨그만이 1970년에서 1977년까지 촬영한 여덟 개의 릴(Reel)이 차례대로 상영된다. 5 34초로 이뤄진 <Spit Sandwich>(1970)를 포함한 이 비디오 릴들은 5분에서20분여에 이르는 길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릴은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특정한 상황을 그려내는 비네트(vignette)들로 채워진다. 웨그만은 1970년 무렵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에서 페인팅을 공부하며, 비디오 아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당시 많은 개념미술 작가들은 새로운 미디엄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기존에 저급하고 대중적인 매체라고 여겨진(재생산이 가능한) 비디오나 사진도 그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적합하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웨그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디오는 저음질, 저해상도 영상으로 촬영한 대상을 재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매체가 가지고 있는 반 예술적(anti-artistic) 특질에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웨그만은 필름은 촬영 결과물을 다시 보기 위해서 현상과 같은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비디오의 경우 촬영 직후 바로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Light Off / Light On> 1970 Gelatin silver

 prin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ift of William Wegman and Christine Burgin, 2017 

 William Wegman. Courtesy the artist





실제 그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관람객은 웨그만이 비디오카메라를 마치 스케치북처럼 활용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완전하게 짜인 구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촬영 시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장면들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동시에 웨그만은 이러한 장면들이 쌓아 올리며 종국에는 그의 아이디어를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모색한다. 그 일환으로 비디오에서 주로 보이는 소재로 작가는 자기 자신,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품(램프, 가방 등), 그리고 자신의 첫 애완견인 만 레이(Man Ray)를 선택한다. 이러한 우연성과 친숙한 소재의 사용은 단순한 규칙을 시각화하는 대부분의 스킷(skit)에서 유머러스함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비디오 아트 <Coin Toss>(1972)에서 웨그만은 손등에 연거푸 동전을 던져 특정한 면이 나올 때마다 반 시계 방향으로 만 레이가 서 있는 방향을 바꾼다. 


말없이 동전을 던지는 작가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꼬리를 감춘 채 굳어있는 만 레이의 모습은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전시의 끝 무렵 세 개의 갤러리를 돌아본 뒤 이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었던 전시 포스터가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은연중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efore/On/After(1972) 시리즈의 한 작품만으로 포스터를 채웠기에, 관람객은 사진에 담겨있는 만 레이와 그 앞에 놓인 표식을 분리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전시 공간 내 전체 일곱 점의 시리즈를 마주할 때 관람객은 잠시 동안의 관찰로 만 레이의 자세와 위치가 표식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규칙을 알아채며 개념미술 작가로서의 웨그만을 만나게 된다. 전시를 돌아보며 웨그만의 작업이 단순히 애완견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동시대 작가들과의 교류 안에서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그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며 낯선 익숙함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되듯 말이다.  

 


글쓴이 정하영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한동안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이론 석사 취득 후 구겐하임 및 현대미술관(모마)에서 뮤지엄 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트투어/컨설팅 회사 ITDA(잇다)를 운영하며 뉴욕 미술 시장에 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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