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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3, Feb 2021

불협화음이 만들어 낸 화음

Germany

At 30 Paces She could Split a Playing Card
2020.5.1-2021.4.30 베를린, 쾨니히 갤러리
2020.5.1-2021.4.30 3D VISIT1)

2020년 한 해는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데믹으로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문을 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에 그로세는 독일 베를린의 함부어거 반호프(Hamburger Bahnhof)와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 이탈리아 로마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미국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미술관(Baltimore Museum of Art)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베를린의 두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는 언제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캔버스와 패널, 대형 설치물, 전시장 바닥, 건물 외벽, 야외 도로 등을 가리지 않고 색면추상회화를 소개했다. 기차역을 개조하여 높은 층고와 넓은 면적을 지닌 함부어거 반호프 미술관의 전시장은 바닥에서부터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스펙터클한 조각을 휘감아 밖으로 길게 뻗어나간 그로세의 스프레이 페인팅을 소개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쾨니히 갤러리에선 그의 평면작업으로만 승부수를 띄운 전시가 열렸다.
● 박은지 독일 통신원 ● 이미지 König Galerie 제공

'At 30 Paces She Could Split A Playing Card' 2020, KÖNIG GALERIE Nave, exhibition view © Katharina Grosse and VG Bild-Kunst, Bonn, 2020 Courtesy of KÖNIG GALERIE, Berlin/London Photo: Jens Zie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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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독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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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즘(Brutalism) 양식의 육중한 갤러리 공간에서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카타리나 그로세의 색면 패턴들은 캔버스와 여러 개의 합판 패널이 조합된 지지체 위에 그려진 것이다. 작품마다 유사하게 형성된 이 패턴들은 프레임 안에서 완결되기보다 밖으로 확장된 회화 공간을 연상시키고, 프레임 안과 밖을 속도감 있게 오가며 채색했을 작가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캔버스와 패널의 표면을 깊게 파낸 듯한 음각효과는 지지체 위에 오브제를 올린 후, 여러 색채의 아크릴 물감을 분사하고 다시 그 오브제를 제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표면 아래 겹겹이 쌓여 있던 색상의 층위들을 노출시켜 작가의 반복적인 노동과 시간의 무게를 유추하게 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AT 30 PACES SHE COULD SPLIT A PLAYING CARD>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여성 명사수, 애니 오클리(Annie Oakley)의 뛰어난 실력을 표현하며 스프레이 건(spray guns)을 사용한 작가를 비유한 것이다


그로세의 첫 스프레이 페인팅은 1998년 쿤스트할레 베른(Kunsthalle Bern)에서의 전시에서 소개됐고, 단색조의 유화물감을 사용해 붓질로 캔버스를 채우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시장 천장의 한구석을 녹색으로만 물들인 것이었다. 이후 붉은색과 노란색, 보라색, 주황색 등 강렬한 색채들이 그의 작업에 점차 추가되었고, 작가의 아파트 내부와 대형 커튼, 스티로폼 설치물, 건물 파사드, 대형 광고판 등 스프레이 활용이 가능한 오브제나 장소라면 무엇이든 지지체로 활용됐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1999년 자신의 기획전 <긴급한 회화(Urgent Painting)>에서 그로세의 작품을 포함한 다른 월 페인팅에 대해전시가 종료되면 소멸되는 이 작품들이 회화의 상품화 또는 회화를 팔릴 만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에 저항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2)





<It Wasn’t Us> Ausstellungsansicht Hamburger Bahnhof –

 Museum für Gegenwart – Berlin, 2020 / 

Courtesy KÖNIG GALERIE, Berlin, London, Tokyo / 

Gagosian / Galerie nächst St. Stephan Rosemarie Schwarzwälder,

 Wien © Katharina Grosse / VG Bild-Kunst, Bonn

 2020 / Foto: Jens Ziehe


 



주류 미술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기법과 재료가 사용되었고, 영구적으로 소장되거나 판매가 어려운 지지체를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작품은 전시 이후 일부 재활용했거나 설치를 달리하여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되기도 했고, 판매 역시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제도권 미술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보다 오히려 대상과 직접적인 접촉이 불필요한 스프레이를 사용해 지지체의 형태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회화적 조건을 실험한 것에 더 가깝다. 


그로세의 스프레이 페인팅은 그 형태와 기법, 전시 장소 등이 미술사의 여러 장르와 오버랩 되지만 동시에 어느 카테고리에도 쉽게 포함되지 않는다. 특정한 서사나 재현이 배제된 추상미술이라는 점에서 종종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식의 모더니즘 회화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앞서 보았듯, 스프레이로 인해 경계가 불분명한 색면들, 특히 밝고 어두운 색채 사이에 생기는 원근감과 패턴이 만들어내는 운동성, 오브제를 활용하여 깊이감을 드러내는 방식들은 그와 무관하다. 공공장소에 그려진 페인팅에 대해서도 작가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생각하기보다 회화의 색채와 구성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한다.3) 


물론 그래피티와 같이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레퍼런스 삼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제스처 또한 작가의 작업에는 전무하다. 결국 어떤 형태의 작품이든 작가가 회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며 건축적 공간과 조각적 요소를 자신의 회화에 적극 개입시키고, 이를 통해 전통적인 미술 장르로써 회화의 임계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장소 특정적인 작품에서도 작가는 실재하는 3차원적 공간과 2차원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환영, 외부적 변수들 간의 불협화음을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활용한다. 그로세는 함부어거 반호프 미술관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표현대로 축구선수가 필드를 누비듯, 전시장 구석구석을 걷고 또 관찰했다.4)





<At 30 Paces She Could Split A Playing Card> 2020,

 KÖNIG GALERIE Nave, exhibition view 

© Katharina Grosse and VG Bild-Kunst, Bonn, 

2020 Courtesy of KÖNIG GALERIE, Berlin/London 

Photo: Jens Ziehe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건축적 공간과 비가시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회화에 반영하기 위한 사전작업인 셈이다. 전시장의 구조와 크기, 볼륨을 몸소 체득한 작가는 전시장 입구부터 미술관 밖까지 연속적으로 채색된 스프레이 페인팅을 선보였다. 바닥에 그려진 추상 패턴은 깊이감 있는 3차원의 환영을 만들어냈고, 반대로 대규모로 설치된 추상 조각은 회화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했다. 관람객들은 조각에 가까이 다가가 날카로운 표면에 입혀진 색채를 유심히 보거나 그 주변을 배회하며 공간적 깊이를 경험한다. 그 뒤로 이어진 패턴들은 전시장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며 관람객을 미술관 밖으로 안내하는데, 미술관 외벽과 도로에 가득 찬 페인팅은 야외 날씨와 주변 건축물, 작품 위를 걸어 다니는 행인들과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사전에 레퍼런스가 될 만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참고하지 않는 작가는 이번에도 장소가 주는 의미나 컨텍스트에 매달리기보다 외부에서 비롯된 시각과 청각, 촉각적인 요소들을 포함하여 지각적인 경험이 가능한 회화를 제작했다. 이질적인 요소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조형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전략은 캔버스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3차원의 오브제와 실제 세계를 매개로 한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데 주효한 듯 보인다. 오늘날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은 원색채로 가득한 그의 회화적 공간을 걷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PA

 

[각주]

1) www.koeniggalerie.com/exhibitions/28966/current-katharina-grosse-at-30

2) www.artspace.com/magazine/interviews_features/expert_eye/supercurator-hans-ulrich-obrist-on-what-makes-painting-an-urgent-medium-today-54218

3,4) 작가 인터뷰 영상 참고(2021 1 21일 접속

www.smb.museum/en/museums-institutions/hamburger-bahnhof/exhibitions/detail/katharina-grosse



글쓴이 박은지는 성신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인턴을 거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제교류를 위한 전시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DK) 미술교육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아티스트 북을 리서치하고 그것에 관한 이론 및 전시기획론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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