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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9, Dec 2019

패브릭하우스

2019.10.4 - 2019.11.9 씨알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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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산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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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늦게 도착한 전시



씨알콜렉티브의 기획전시 <패브릭하우스>공예적인 것의 범주로 소급할 수 있는 6명의 여성작가들의 작업들을 제시함으로써공예적인 것여성성을 유비시키고, 양자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결속하고자 한다. 전시의 서문은 본 기획이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건축 작업 <붉은 집(Red House)>에 대한 오마주임을 밝히는데, 이는 <붉은 집> 19세기 후반 영국 공예 운동의 시원이 되는 공간이자 산업혁명에 의해 질적으로 평준화된 생활 세계의 오브제들을 발본적으로 비판하고 공예적인 장식성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모리스의 기획이 태동한 장소라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패브릭하우스>는 산업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에코 페미니즘적 문제설정과 함께, 가능한 공예 커뮤니티의 모델을 표방하길 원한다. 즉 이때 작가들은 경제적 합리성과 관계하는 산업적 공산품의 세계와 구별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공예를 상정하고, 그것이여성성과 연동되는 지점들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승아의 <붉은 창>은 실 가닥들과 자투리 천들로 분해된 울의 부산물들을 스캔하여, 이들을 프린팅 한 기다란 원단이 전시장의 안팎을 연결하도록 설치됨으로- 외부로 확장되고 확산되는 담론적인 공예성에 대한 심상을 제시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김태연의 <미물(微物)을 위한 미물(美物)>은 비닐봉지를 얇게 떠서 제조한 실로 거미줄의 형상을 만들어 천장에 설치한 것인데, 이는 산업적 질료를 수공업적으로 전유해낼 가능성과, 이 과정에서 일어날 어떤 세계의 질적 전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순종의 <향유>는 향이 나는 기름을 머리카락에 발라 예수의 발을 닦았다는 여인의 일화를 모티프로 삼아, 엷은 회색을 띠는 비단 위에 위장, 여성, , 음부, 머리카락 등의 도상을 침을 꽂아 재현한 작업으로, 감각 깊숙이 파고드는 날카로운 심상을 주는과 고혹적인 여성성을 유비하며, 오화진의 <F요법>은 모직으로 여성의 신체부위와 이런저런 오브제 및 도상들이 뒤얽힌 기관을 제시함으로써 교란된 상태의 신체성이 갖는 ()가능한 여러 형상들을 탐구한다. 오세린의 <흙을 돌보는 시간>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옛집을 찾아 채취한 텃밭의 흙으로 만든 액자로서, 할아버지의 흔적들과 육성을 촬영한 영상 <담바구>를 볼 수 있도록 뚫려있는데, 이는 과거로부터 기억을 끌어올리는 시적 방식을 보여준다. 반면 신승혜의 <After all>은 섬유직물들을 바느질로 엮어, 내장을 연상시키는 도상들을 만들어 다발로 걸어둔 것이며, 섹스와 젠더의 분할 너머에 있는 인간의 공통기관을 주목하게 한다.


이처럼 이들이 말을 건네는 형식은공예적인 것의 언저리에서 조직되는데, 그들의 개별 의도가 다양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본 전시에서 여성성과 공예적인 것의 연결이 어떤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전제되어 있는 답처럼 제시된다는 점은 의아하다. 공예로의 회귀는 예술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영역이 된 이후 계속해서 반복되는 충동이며(초기 바우하우스에서부터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 1960-1980년대의 제2물결 페미니즘과 함께 적극적으로 호명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예에 대한 당대의 호명이 역사적이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기획으로서는 반복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 사이 공예적인 것이 문화적 재현의 측면에서여성성을 이루는 요소로서 재맥락화 되었던 것은, 수공업이 붕괴된 시점에서야 뒤늦게 발견되고 체험됨으로써 가능했기 때문이다. 가정(household)이 안정적인 동시에 구속적인 재생산 장치로 기능하는 시점에서, 공예적인 것은 가정주부의 취미이자 가내 수공업의 한 부문으로서 여성 고유의 영역으로 발명될 수 있었을 테지만, 현재의 사정은 어떨까. 1990년대 이후의노동력 시장의 여성화라는 현상이 암시하듯, 오늘날 여성은 공예적인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여성성이란 콜센터의 상담원에서부터, 쇼핑몰의 판매직에 이르는 서비스노동, 돌봄 노동 등의 핑크칼라(pink collar)의 어떤 수행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반면 공예적인 것은 일찍이 관광지가 되어버린 남반구의 제3세계 국가들의 기념품으로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패브릭하우스>는 어쩌면 다소 늦게 도착한 전시로서, 우리가 더 이상 공예와 연동된 여성성을 논할 수 없음을 적시하는 효과를 산출해내는 듯하다.         


 

*김태연 <미물(微物)을 위한 미물(美物)> 2019 비닐 봉지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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