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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7, Oct 2019

홍기원_아파셔나타 변주곡

2019.9.7 - 2019.10.6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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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림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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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경꾼들



전시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어떤 것은 전시의 출발점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전시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내기도 한다. 가끔은 내용과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이름이 그 자체로 이야기와 역사를 갖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홍기원 개인전의 제목은 <아파셔나타 변주곡(Appassionata variations)>이다. 이는 음악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시력과 청력을 잃어가면서 작곡한 음악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하반신 마비와 재활이라는 사적 경험을 베토벤의 그것과 병치시킨다. 예술이라는 공통 지반 위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공감의 감각은 그 자체로 너무 선명한 나머지 얼핏 그 이면에 놓인 다양한 발화들을 발견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게 드리운 장막을 걷어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작가 개별로부터 출발해 사회라는 묵직한 덩어리로 뭉쳐지는 여러 조형적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변주란 변화와 다르다. 이는 전체를 모조리 바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변형의 과정에 있어 전제되고 선행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작업은 오랜 시간 예술이 가진 고질적인 고민을 여실히 떠안는다. 이 중 제일 먼저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물음, 자전적 이야기가 예술의 주제로서 갖는 미학적 당위성에 관한 논의는 어떤 면에서는 꽤 식상하기까지 하다. 홍기원은 이 지점을 특정 은유를 통하여 꽤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고통과 욕망의 인과를 사회 구조로부터 설정된 것, 즉 자신을 욕구하고 행동하게 하는 무언가로 확장하고자 한다. 〈무제〉(2018)은 현대사회와 인간, 신화와 철학 등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그 ‘something’에 관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키네틱 작업이다. ‘이해할 수 없는’, ‘Facebook’, ‘hate’, ‘애매한등 마흔여 개의 주물글자들은 철골들 위에 고정되어 1분 간격으로 스프링에 의해 퉁겨지고 흔들리면서 견고하지만 위태로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적 전략은 조형과 이미지에서 텍스트가 갖는 직접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무제> 2018 황동주물, 솔레노이드, 콘트롤러, 

스프링, , 목재, 페인트 각 30×35×170cm





이번 전시에서 조형 작업은 총 두 개로,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작업과 동일한 제목인 〈무제〉(2019). 제작연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텍스트를 이용한 추상적 구조로부터 경주마 출발대라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오브제로 발화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텍스트의 제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상을 전시장으로 옮겨오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직접성의 측면에서 오히려 실험적인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변화의 맥락 위에서 작업들은 공통적으로 키네틱이 갖는 특유의 스펙터클을 바탕으로 차가운 금속성 매체 사이의 동적 파열음을 통해 텅 빈 공간을 세계에 관한 감각들로 채우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조각과 신체감각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과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설치작업들의 친절함과는 다소 상반되게 연달아 상영되는 두 영상은 상대적으로 이해를 위한 지적 배경을 요구한다. 영상 〈아파셔나타 변주곡〉(2019)과 〈아파셔나타#3 마이테민두(사랑고통)(2018-2019)는 스페인 북부 사부세도(Sabucedo)의 야생마 축제와 팜플로나(Pamplona)산페르민 축제(Festival of San Fermin)’를 담고 있다. 작가는 축제의 성스러움과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정치성의 발현, 황소와 말에 대한 잔인한 행태와 이를 즐기는 문화적 행위를 통해 극단을 넘나들며 인간사와 사회적 구조 사이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전시는 동적(moving) 매체들을 관통하여 사적 서사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거시적 관점의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 보인다.       


예술의변주속에는열정으로부터 야기되는 무수한 장면들이 있다. 그 중 예술가의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느 지점을 부유하고 있을지 헤아려본다. 영상의 어느 장면에서 닫힌 광장의 말은 울리는 함성 속 붉은 천 사이를 헤매다 끝내 바닥에 드러눕는다. 말 못하는 말의 고요한 눈을 떠올리며 텅 빈 화이트큐브 안을 빙빙 돌다 결국 홀로 쓰러지는 자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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