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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5, Aug 2019

과정추적자

2019.5.8 - 2019.7.27 우민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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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내 미술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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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 위에서 미끄러지기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고 말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무언가 쉽게 부스러지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 변하는 물성 자체에 집중하는작업’, 또는 그 과정 자체를 실험 중인 어떤 퍼포머(performer)의 제스처들이 떠오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흰 벽에 물감을 퍼붓고 있는 사진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이미지에서 세라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영원히 물감을 뿌리기 직전의 상태에 고정된 채로, 그 이전과 이후는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작업이 지속되는 순간 자체를 표상한다. 그래서 꽤 쉽게 그 흑백 사진은 정지되어 있을지라도, 그 이미지는 움직이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우민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전시는 직·간접적으로 공간과 관계를 맺은 작가들로 꾸려진 기획전이다. 지난 8년 동안 우민의 공간에서 전시했던 30여 명의 유망 작가들 중 갈유라, 곽상원, 이경희, 이상홍, 그리고 이선희가 이번 기획전에 선정되었다. 서문과 제목이과정 미술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것과 무관하게도, 기획전에서 사용하는과정이라는 단어는 사조의 그것과 별 관련이 없다. 이 전시에서 추적하는과정이란 작가의 작업 궤도를 말하는 것이며, 그저 개인의 작품 세계가 변화한 궤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과정으로서의 작업을 의미하기보다는작업의 과정자체를 펼쳐내려는 시도이다. 이를 보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작가들은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어떤 작업이 내 작업 방향을 바꾸어 놓았고 어디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명징하게 설명하는 선회점(turning point)을 가정하고 말한다.(이는 구체적인 기획 의도 아래에서 공통적으로 작가들에게 주어진 질문 중 하나였다.)





곽상원 <Big bird and jet lags> 2019 장지에 

아크릴릭 145×210cm ⓒ wuminartcenter 2019 





그러나 이 개념은 예상할 수 있듯, 모두 제각각이며 또한 자의적이다. 이선희는 헌옷을 수집하여 뜨개질 작업이나 직물을 이용한 작업을 지속해 오다가 뜨개직물의 소재 자체에서 압박을 느끼고, 더 이상의 직조를 포기한다. 그리고 대신, 짜인 것들은 풀어내는 방식으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경희는 작가 개인의 기억을 추적하는종암동 프로젝트이후로 작업의 주제를 주한 미군 부대로 관심을 옮겼고, 이러한 주제의 변화가 개인의 기억 영역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작업의 방향을 선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작은 소품과 오브제들을 이어 붙이면서 작업을 전개하는 이상홍은 선회점을 하나로 정의하지 않고 실제의 오브제들이 계속 덧붙여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행의 흔적 자체를 자신의 선회점이라고 말한다. 느슨하게 묶인 소규모 기획전의 특성상, 주제나 형식, 소재 면에서 다섯 작가의 작업들은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저 개인의 변화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다.


하지만 그대단치 않음은 자의적으로 세워진선회점이라는 개념이 매우과정적인감각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이다. 사실 짜임과 풀어짐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크지 않다. 짜이기 때문에 풀어지고 풀어진 실에는 영원히 짜임의 감각이 기입되어 있다. 개인의 기억에서 공동의 기억으로의 변화는 아주 미세한 제스처이다.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변화가 역사의 변혁이 되는 과정들을 아주 숱하게 보아왔다. 갈유라와 곽상원이 각각 객관적 재현 시점에서 내부로, 또는 각각의 개별로 그 주제를 좁혀 나가는 방식은 동시에 자아를 통해 그 주제를 확장 시켜 나가는 방식과 동일하다. 이처럼 연대기가 아닌 주관에 의해 배열된 작업들은 선후에 대한 감각을 읽기 어렵게 하며, 작가가 선회점이라고 말하는 지점들을 계속해서 무화시킨다. 대신 각각의 작업들이 작업과 작업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더 자명하게 알린다. 작가들이 짚는 선회점은 어떤 뚜렷한 하나의 꼭지점이라기보다 아주 느슨하고 완곡한 커브다. 그 커브에는 수많은 꼭지점들이 있고 그 점들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찰나에 박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리처드 세라가 마초적으로 물감을 흩뜨리는 그 흑백 스틸 컷이 담아낸 그 장면이 단순히 순간의 포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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