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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1, Apr 2019

취미관 TasteView 趣味官

2018.12.19 - 2019.4.21 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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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노 유키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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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방과 재떨이 앞/전 단계에서



‘모든 생산물은 나름의 가치를 보유한다’는 전제는 그 가치를 얼마나 알아보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일반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감상에 따르는 심미적 가치도 해당한다. <취미관>전은 바로 이 문제의식을 관람객에게 제공한다. 요컨대 전시는 ‘이미 알아본 것들’의 ‘분류’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람객들의 ‘알아보는’ 태도, 바꿔 말하면 취미를 통해 생산물에 가치를 (재)발견하는 공간이다. 관람객은 이 공간에서 여러 생산물을 볼 수 있는데 전에 봤던 전시의 도록, 작년에 본 작업, 재미있는 굿즈, 신작처럼 보이는 작업, 깔끔한 인테리어 등등 다양한 작업을 볼 수 있다. 먼저, 진열장 안에서 과거(예전 작업)와 미래(실험 단계인 작업)에 현재(에 완성된 형태로 나온 작업)가 나란히 서는 경우, 이를 생산물 자체의 시간성이라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 전시에 부여되는 시간성도 존재한다. 지난번보다 3개월 더 길게 잡은 전시 기간 동안 팔리면 그 물건은 사라지고 또 작가들은 같은 혹은 다른 생산물을 입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시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 진열되는 작업과 디스플레이 자체에 변화가 생긴다.


이러한 복잡한 시간 축은 태그에 연도를 명시하지 않은 채 진열장 안에 공존하게 된다. 시간 축에 따른 분류뿐만 아니라 <취미관>은 생산물을 유형별로 분류하지 않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제작 시기도 각기 다르고 유형, 그러니까 작품과 굿즈, 파생물, 도록 등으로 구분하지 않은 채 결과적으로 모든 것들은 진열대 안에서 수평적으로 전시된다. 여기서 생산물들은 판매와 입고를 통해서 상하좌우로 섞이고 이전 작업과 굿즈, 실험한 신작과 도록 등의 우연한 조합으로 동일한 선반에 규칙 없이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분류되지 않은 채 한 데 모인 생산물들은 순서와 질서를 부여받지 못한 채 쌓여간 퇴적물이다. 일반적인 퇴적물이 시간과 순서대로 쌓여간다면, 진열장 안에서 생산물들은 시간성이 파기되었거나 그 시간성에 아직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취미관>은 그 어감과 달리 박물‘관’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 시대적 위치와 ‘역사적’ 가치를 부여받은 박물관의 유물들과 달리, <취미관>에서 생산물들은 역사로서 맥락화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까지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것으로 전시된다. <취미관>은 취미 자체를 진열장 안에 가두지도 않았고 박물관처럼 역사의/역사적 유물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취미관(趣味官)’의 ‘관’자가 ‘館(집 관)’이 아니라 ‘官(벼슬 관)’인 이유는, 생산물의 가치를 주체적으로 알아보는 역할의 수행자(官)로서 관람객-소비자/구매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진열장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꺼내야만 기능(사용하거나 감상)할 수 있는데, 가치가 억눌려 있는 이 상태에서 어떤 대상에 가치를 부여하려면 ‘알아볼’ 눈이나 지식이 필요하다. 거기서 생각과 감각의 양자 중 하나가 발휘되면, 작품은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취미관>은 “‘보니까’ ‘그게’ 좋았다”와 “‘지켜봐 온’ 작가의 ‘작업’이었다”라는 판단을 기다리는 생산물들로 채워진 수평적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다시 처음에 제기된 문제로 돌아오자. 만약에 보는 단계에서 알아보는 단계까지 가지 못해 생산물들이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이때 생산물의 가치는 몰가치=무가치, 즉 가치가 있는데 억눌리고 결국 아예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만다. 진열장 내부의 공간에서 생산물은 취향을 통해 알아보는 판단을 받기 전 단계, 다시 말하면 가치가 억류된 상태로 나란히 있다. 


같은 진열대에 올려진 윤영빈의 <보석방>과 글로리홀의 <재떨이>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윤영빈이 어쩌다 갤러리2에서 2018년에 선보인 페인팅 작업과 형식이 다른 <보석방>은 과거 작품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관람객과 감상적 거리를 ‘비유적으로’ 두고 있으며, 옆에 있는 글로리홀의 <재떨이> 위에 담뱃불은 아직 피우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다른 생산물, 밑의 진열대에 올려진 것들, 그 옆에 진열대와 맞은편의 진열대 안의 것들 모두 거기서 가치들은 무중력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공중부양을 계속한다. 역사적이거나 심미적 가치로 판단되지 못하는 것들은 언제 착륙할 수 있을까? 무(비)-시간적 퇴적물은 알아보는 시선을 통해,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구매행위를 통해 ‘비로소’ 혹은 ‘다시’ 구제된다.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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