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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1, Apr 2019

삶에서 죽음, 그 무한한 경계

Japan

Leiko Ikemura Our Planet
Earth & Stars
2019.1.18-2019.4.1 도쿄, 도쿄 국립 신 미술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출신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케무라 레이코(Leiko Ikemura)라는 이름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이는 아마도 그의 주 무대가 유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낸 후 스페인 문학을 전공했고, 1970년대 초 스페인으로 옮겨가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그의 관심은 문학에서 시각 예술로 옮겨갔고 세비야 대학교(University of Seville)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79년 스위스로 거점을 옮긴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이 도쿄 국립 신 미술관에서 건축가 필립 폰 매트(Philipp von Matt)와 협업으로 구성된 16개의 섹션에서 선보이고 있다.
● 정하영 미국통신원 ● 사진 The National Art Center 제공

'Trees out of Head' 2015 Terracotta, glazed 30×37×24cm Private collectio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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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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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독일에 머문 이케무라 레이코는 자연스럽게 당시 유럽에서 활발히 전개된 신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을 접했다. 1970년대를 사로잡았던 추상미술에 반해, 독일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혹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로 대표되는 신표현주의는 대상의 형태를 화두로 삼았다. 이들은 종교나 사상에 상관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 가능한 비유적 형태를 주로 그림에 담아냈다. 특히 과감한 색과 구성이나 지푸라기, 깃털, 금속 등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를 통해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했고, 신표현주의에서 받은 영향은 이케무라가 당시 제작한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성이면서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된 불안감은 대형 회화뿐 아니라 이번 전시의 한 섹션을 채우고도 넘치는 방대한 양의 거친 드로잉으로 발현된다. 특히 드로잉에서 그는 목탄, , 파스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인체의 격렬한 움직임, 혹은 삶과 죽음을 연상케 하는 자연 이미지를 담아내며 관람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후 이케무라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더욱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특히 1990년대 그는소녀라는 모티프에 집중한다. 전시의 한 섹션을 차지하는 소녀 형상은에 가까운 검정, 혹은 단색 공간을 배경으로 소녀의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일어서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있거나 날아 내려오는 소녀의 모습에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기대와 불안감 같은 복합적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짙은 농도의 유화뿐 아니라 테라코타 기법을 이용한 조각상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시각화한다





<Ocean III (Between Horizons)> 2000/2001 Oil on jute 

120×160cm Hilti Art Foundation, Schaan, Liechtenstein 





점토는 그가 1980년대 말부터 집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매체이다. 흙덩이를 손으로 주물러 무에서 유의 형상을 빚어내는 작업 방식은 감정 표현에 치중한 그의 의도에 잘 들어맞는다. 이런 연유에서 조각이라는 매체는 곧 그에게 회화나 드로잉에 버금가는 주요한 매체로 자리매김한다. 테라코타 기법으로 제작한 조각상 <미코를 안고 드러누워>(1997)는 그의 손길로 빚어낸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조각의 소녀는 머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 누워있는 자세를 취한 소녀의 발 언저리에서 관람객은 조각 내부가 휑하니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의 여백을 사용해 보편적 인간이 느끼는 삶의 공허함 마저 잡아낸 것이다.한편 이케무라 내면의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최근작아마존’(2015-2018) 시리즈로 이어지며, 1990년대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소녀 섹션 바로 옆에 있는 판화 6점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존 부족을 모티프로 삼은 여전사의 모습이 잉크젯 프린트로 재현되어 있다. 높이 2미터가 넘는 스케일에 절제된 색감과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로 표현한 이들의 모습은 웅장한 사운드와 결합하며 관람객을 압도한다


금방이라도 전쟁터에 뛰어들 것 같은 (혹은 살아남아 온) 전사지만, 하이힐에 가까운 신발을 신고 여성 신체의 곡선을 그대로 지닌 모습은 여성이 유약하다는 통념을 깨는 동시에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이케무라 자신의 삶을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뿐 아니라 외부 세계로 이어진다. 특히 전쟁은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긴 역사에서 집단 간의 갈등이 극에 다다를 때마다 전쟁이 반복되었고, 이케무라가 나고 자란 일본 또한 전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표적 국가이므로 전쟁이라는 주제는 자연스레 그의 이목을 끌었다. 1980,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활동한 일본군 특공대 카미카제가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몰고 군함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카미카제>(1980)를 제작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 영웅 서사시에 묘사된 트로이 전쟁에 영감을 얻어 <트로이의 여신> (1986)과 같은 대형 유화를 그린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현재에도 이어지는 국가 간 긴장과 위기감을 드러내는마린시리즈를 제작하며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도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해낸다. 





<Motherscape> 2011/2015 

Oil on jute 90×180cm Collection of the artist





그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 붕괴 또한 이케무라 내면의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촉매였다. 2011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되며, 이어진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이어졌다. 실종자 약 2만 명을 낳은 비극은 이케무라를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아픔을 극복하고 작품 제작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토끼와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융합시킨토끼 관음시리즈에 착수한다. 토끼와 관세음보살은 그가 유년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접한 친근한 이미지일 뿐 아니라, 재해 때문에 피폐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전할 수 있는 그만의 매개였다. 2012년 일본 시가현 도예의 숲에서 현지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도자기로 만든 <토끼 관음>(2012-2014)을 만들고, 뒤이어 청동으로 보다 견고한 인상을 자아내는 같은 형태의 조각상 <토끼 관음 II>(2013-2014)를 제작한다이번 전시는 도자기 작품이 조경과 어우러진 건물 외부 뜰에, 청동 작품 역시 동일본지진을 주제로 한 영상 <아무 데도 없는> (2007)과 함께 실내에 배치하며 관람객이 다양한 층위에서 <토끼 관음>을 마주하도록 기획했다. 특히 높이 3m가 넘는 <토끼 관음>의 하체 부분이 텅 비어, 관람객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 듯한 위로를 얻는다.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제 저변에는 공통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맞닿은 순간을 더욱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최근 작품은 소재와 표현 면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한동안 머무르게 할 만큼 강렬하다. 한껏 조명을 낮춰 어둠이 드리운메멘토 모리섹션에는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격언에서 따온 동명의 조각 <메멘토 모리>(2013-2018)가 있다. 죽음 이후 부패하기 시작한 여인의 신체를 청동으로 형상화 하고 하얀색으로 겉을 씌워 관람객이 의문의 여지없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직면하도록 했다




 <Haruko I> 2017 Tempera on jute 120×120cm Private Collection, 

USA Courtesy of Jim Murren, Chairman of MGM Resorts 




같은 섹션의 벽은 이케무라가 2009년 제작한’(2009-2018) 시리즈가 장식한다. 그에게 화병에 담긴 꽃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는 훌륭한 오브제로, 죽음 이미지에 집중하기 위해 시들어버린 꽃을 흑백 사진에 담는다. 이케무라는 1900년대 초 유럽으로 건너와 로댕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일본 배우 하나코를 모티브로 삶의 증거라 할 수 있는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기도 한다. 붉은 배경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듯한 얼굴을 그려낸 <하루코>(2017)와 타오르는 촛불을 연상시키는 곧추선 긴 머리 여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 시리즈쉐도우 헤어’(1992-2018).


대부분의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지니지만, 관람객이 전시장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섹션 또한 존재한다. 작품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묘사하거나 혹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케무라는 시기에 따라 머물렀던 지역 풍광의 인상을 따온 회화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시작은 1989년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다. 그곳에서 반년가량 지내며 그린 작품 9점이알프스 인디언시리즈다. 당시 유럽 풍경화와 달리 이케무라는 동양 수묵화에서 찾아볼 법한 구성과 소재를 담는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예를 들어알프스 인디언시리즈 중 하나인 <말로야 호수의 스키어>(1990) 15세기 일본 수묵화의 대가였던 셋슈가 즐겨 사용하던 (거대한 산과 나무,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작은 집들을 묘사하는) 구도를 빌렸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초반 지평선과 수평선을 모티프로 한 회화로 이어졌다. 이케무라는 어린 시절 해안가 마을에서 자라나 늘 바다를 마주했다고 회고한다. 그에게 바다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앗아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인상은오션’(2000-2001) 시리즈에서 황마에 유화라는 다소 거친 느낌을 주는 재료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바다와 흐려진 수평선 위를 떠도는 어린 소녀의 형상으로 표현한다. 




<Genesis> 2015 Tempera on jute 

190×290cm Collection of the artist





전시의 마지막으로 접어들며 이케무라는, 그가 일생에 걸쳐 다뤄온 여러 소재를 넘어서는 초월적 모티브로 영역을 넓혔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여기는 동양의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끌어온 대형 산수화를 그린다. 이런 맥락에서코스믹 랜드스케이프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전시장 벽면은 관람객의 키를 훌쩍 넘어서 실제 눈앞에 펼쳐진 듯한 스케일을 지닌 회화들로 채워져 있다. 실제 이케무라는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놓고 풍경 안으로 녹아들 듯 이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 한다. 최근작 <넘실거리는 봄>(2018) 역시 인간과 동물, 온갖 식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세계관과 함께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가 드러난다. 경계인의 삶에서 비롯되는 정체성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모든 존재는 유기적으로 얽혀있다는 동양적 세계관으로 회귀까지, 이케무라는 삶과 죽음의 무한한 경계를 탐구하며 우리가 어쩌면 일생 동안 풀지 못할 삶의 의미를 묻는다.    

 

 

글쓴이 정하영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한동안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이론 석사 취득 후 구겐하임 및 뉴욕현대미술관(모마)에서 뮤지엄 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트투어/컨설팅 회사 ITDA(잇다)를 운영하며 뉴욕 미술 시장에 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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