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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8, Sep 2020

정광희
Jeong Gwang Hee

느림의 미학

한 중년의 남자가 커다란 흰 종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명상을 하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남자는 앞에 놓인 커다란 달항아리를 두 손으로 번쩍 집어 들었다. 긴장된 몇 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때 남자가 갑자기 두 손을 놓자 달항아리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순간, 달항아리의 파편이 사방에 튀면서 그 안에 담긴 먹물이 종이 위로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참으로 예상치 못한 충격적이며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상은 요즈음 한창 국내외 미술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작가 정광희가 펼친 퍼포먼스 장면을 간략히 묘사한 것이다. [나는 어디로 번질까(Where Will I Spread?)]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는 정광희가 지향하는 예술의 본질을 잘 설명해 준다. 이른바 ‘일획론(一劃論)’, 이는 중국 청나라 초기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의 『고과화상어록(苦瓜畵尙語錄)』에 나오는 유명한 화론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생각이 대상을 벗어나다' 2014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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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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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태고 시절에는 무법(無法)이었다. 태고에는 순박함이 흩어져 있지 않다가, 한번 흩어짐에 법()이 생겼다. 법은 어떻게 세워 졌는가? 일획(一劃)에서 비롯되었다. 일획이란 온 무리의 밑바탕이요, 만 가지 형상의 뿌리이다. 그 작용이 신에게만 드러나고 인간에게는 숨겨지니,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일획의 법은 자기 스스로 세워진 것이다. 일획의 법이 세워짐으로써 무법이 유법(有法)을 낳고, 유법이 많은 법과 통하게 된다. 무릇 획이란 마음에 따르는 것이다.”1)




<자아경(自我經)-자아경(自我鏡)> 2019 전시 전경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 일획론의 요체는일획의 법은 자기 스스로 세워진 것이란 구절에 있다. 그것은 석도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남이 한 것을 따라하지 않는 것, 즉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나온다. 작가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뜨거운 긍정을 통해 남이 가지 않은 새 길을 개척해 나가는 불굴의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촉매가 된다2). 이른바 전위적(avant-garde)인 삶과 예술, 다시 말해서 삶과 예술이 다르지 않고 혼연일체가 돼 박진감 있게 밀고 나가는 가운데 형성되는 창조적 예술의 세계를 이르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정광희는 지난 15년의 세월을 이처럼 일관된 자세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일궈왔다. 앞에서 소개한 퍼포먼스는 바로 그처럼 일관된 저항과 도전의 세계, 다시 말해서 한국화의 현 상황에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온 신산했던 그의 삶과 예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정광희는 장차 한국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고뇌를 했다





<나는 어디로 번질까> 2018 한지에 수묵, 달항아리 130×162cm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화단이 여러 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날로 그 위기적 징후가 짙어만 가고 있는 이 때, 그 핵심은 서세동점 이후 불어 닥친 서양의 연이은 문화적 공세이다. 즉, 서양 대 동양이라고 하는 문화적 헤게모니 싸움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광희에게 있어서 그 과제는 가장 큰 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예술을 통해 풀어가야 할 필생의 과업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광희가 취한 전략은 일단 동양의 서예와 한국화의 전통을 품고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동안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해 온 기존의 작업이나 운동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는 자각에 도달한 것이다. 가령 아크릴을 비롯한 서양식 재료들의 사용이 한국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할 때,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켰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한국화가 지닌 고유의 정신적 영역, 나아가서는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자각에 도달한 것이다.


 



<인식으로부터의 자유> 2009 한지에 수묵 200×300cm 




광희의 초기 쪽 그림은 바로 그러한 문화적 반성에서 도출된 것이다. 새로운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담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처럼 새로운 형식을 낳은 것이다.  정광희는 일단 평평한 한지에 그리는 동양화의 오랜 관행을 버렸다. 그는 두꺼운 장지를 일정한 두께로 접어 만든 수많은 쪽들을 잇대어 평면 오브제를 만들었다. 드디어 그는 전통적인 화지(畵紙)를 버리고 그 대안으로써 오브제의 개념을 수용한 것이다. , 아방가르드적 관점에서 동양화의 전통을 이으면서 동시에 전복시킨 것이다. 이후 그는 전위적 관점에서 오브제,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수용하면서 한국화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작업에 주력한다. 고서에서 뜯어낸 한지의 파편들을 붙이는 작업에서부터 전통 초상화에서 사용되는 기법인 배채법(背彩法)의 사용, 서예 수업에서 익힌 각종 서체의 도입 등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사용에 걸맞는 다양한 기법의 활용은 정광희의 작품세계를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게다가 그는 각목 형태의 수많은 한지 쪽판을 잇대서 일정한 크기의 작은 판들을 만든 뒤 여기에 수많은 일획의 변주를 그려넣는 등 다양한 내용의 실험을 하고 있다. 일종의 오브제 서예이자 오브제 추상인 셈이다. 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본 적이 없거니와, 이는 정광희 예술의 독창적인 면모이다최근에 정광희는 또 다시 새로운 실험에 몰입하고 있다. 이것 또한 오브제(입체) 추상회화의 일종인데, 판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부착된 둥근 형태의 입체물들은 먹물을 머금은 채 서로 다른 표정을 띠고 있다. 한지를 둥글게 만든 뒤 이를 먹물에 담가 꺼내면 사람의 얼굴 모습처럼 각기 다른 형태와 표정을 띠게 된다.






 <자성의 길5> 2019 한지에 수묵 194×130cm





지난 15년 간 정광희는 일관성 있게 한국화 내지는 서예적 관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진척시켜 왔다. 그는 매우 주체적인 시각에서 한국화의 미래에 대해 고뇌하는 작가이다. 그런 신념이 그로 하여금 다양한 방법론을 개척하게 만들었으며, 그렇게 해서 일군 방법론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그에게 초점을 맞추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작년에 아트 바젤 홍콩에서 북경 차오창디에 있는 중국의 묵제(墨齊) 갤러리(Ink Gallery)가 출품한 정광희의 쪽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예의 추상 오브제 작품인 그것은 한지를 각목 형태로 말아 잇대서 캔버스 형식으로 제작한 것인데, 작은 크기의 9점이 모여 큰 작품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바닥에 놓일 수도 있고 더욱 확장된 형태로 커다란 벽 전체를 덮을 수도 있는 가변적인 형식의 것이며, 매우 창의적이고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즉 형식과 내용 양 측면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고 변형이 가능한, 참으로 유연한 세계를 창안한 것이다. 다음은 10여년 전 정광희의 개인전을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그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15년 간 힘든 작가적 삶을 용케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본다. 





<성찰 1> 2016 한지에 수묵 264.5×192cm 





정광희의 그림은 그 표정에 있어서 약간 어눌하며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자신이 좀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우직하게 자기만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찾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말할 때, 그는 자신의 피 속에 유전자처럼 녹아있는 한국의 고유한 정서, 이를테면 자연과의 동화라든지, 우현 고유섭 선생이 말한 것처럼구수한 큰 맛’, ‘어른 같은 아이’, ‘비균제성과 같은 미적 특질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의 쪽 그림은 이를테면 자연석을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돌의 아귀를 맞춰 성을 쌓는 우리의 전통 축성방식을 연상시킨다. 그의 고색이 창연한 쪽 그림들은 세월에 마모되거나 이끼가 끼고 누렇게 퇴색한 우리의 성벽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퇴적된 역사에 대한 은유로서의 그것들은 속도가 생명처럼 여겨지는 현대적 삶에 대한 완곡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느림의 미학이 어떤 것인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각주]

1) 이태호, 화가는 첫 붓에 예술혼을 적신다, 석도(石濤),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의 「일획론(一劃論), http://sambo love.blog.me/220410985854

2) 윤진섭, 「지움의 비움/조용익의 회화세계」, 『조용익_지움의 비움』, 성곡미술관, 2016, p. 24

 



 

정광희





작가 정광희는 1971년 생으로 호남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한국화 전공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를 수료했다. 2007년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첫 개인전 <생성과 소멸의 은유>를 시작으로 광주무안뮌헨에서 총 여섯 차례 개인전을 선보였다. 2015 ‘6회 북경비엔날레’,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019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과 상하이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West Bund Art & Design)’, 뉴욕 한국문화원 <“一息天面한국수묵예술>전 등 한국을 넘어 국제무대를 종횡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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