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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9, Feb 2019

예술과 철학Ⅲ-미국편, 미국: 미학에서 비평으로

Art & Philosophy

이번엔 미국이다. 2016년 프랑스 편을 통해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와 라깡(Jacques Lacan) 등의 이론을 살피고 2017년 6월 헤겔(Georg Wilhelm Friedfrich Hegel), 니체(Friedrich Nietzsche),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로 대표되는 독일 미학을 훑었던 ‘예술과 철학’ 시리즈가 이번에는 아메리칸 인상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추상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예술 이론을 살핀다. 미국에서 생각을 다지고, 비평의 근간을 만든 수많은 학자 중 우리는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아서 단토(Arthur Danto), 그리고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예술 철학과 비평론을 들여다본다. 알다시피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미국으로 넘어왔고, 여기서 자신들의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특집에서 제대로 짚어보는 인물 중 그린버그는 ‘모더니즘(Modernism)’에 대한 가장 ‘모던’한 정의를 내렸다는 점과 현대미술을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꼭 다뤄야했다. 그는 평면성과 2차원적인 부분에 대한 강조가 19세기, 20세기 근대 회화의 자가인식(self-identification)을 구축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즉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한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좀 더 현대적 인물인 아서 단토는 1949년부터 50년까지 메를로-퐁티의 지도를 받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 및 미국 철학회 부회장과 회장, 미국 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사고와 감정 표상이론, 심리학, 예술 철학, 헤겔의 미학, 메를로-퐁티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철학까지 두루 섭렵한 인물이다. 끝으로 에세이와 소설 작가이자 예술 평론가로 활동한 수전 손택도 빠질 수 없다. 그가 남긴 「사진에 대하여」와 「타인의 고통」은 폭력적 이미지들이 인간의 감수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분석, 제시한다. 이 세 사람이 영미 미학과 비평을 완전히 대표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조지 디키(George Dickey)와 토마스 크로우(Thomas Crow),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d Krauss), 할 포스터(Hal Foster), 벤자민 부흘로(Benjamin Buchloh) 등 여러 대표 인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셋을 꼽은 이유는 현대미학을 넘어 ‘예술 비평’이란 장르에 발판을 두껍게 쌓은 선두자라 볼 수 있고, 또 그들의 시대가 비록 저물었음에도 지식은 남아 이어지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기획 편집부 ● 진행 정송 기자

캐니 샤프 'Cosmic Cavern' 2018 Dimensions dependent on the space ⓒ Kenny Scharf 2018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onor Fraser Gallery Photo: LOTT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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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연 미술이론가, 장민한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이영욱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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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미술 비평가 중의 비평가_ 조주연

 

SPECIAL FEATURE Ⅱ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예술철학과 역사철학에 대하여_ 장민한 

 

SPECIAL FEATURE Ⅲ

수전 손택(Susan Sontag) / 캠프_해석에 반대하는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_ 이영욱





페어필드 포터(Fairfield Porter) 

<Portrait of Ted Carey and Andy Warhol> 1960 Oil on linen

 40×40 1/8in (101.6×101.9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gift of Andy Warhol 74.117 ⓒ 2017 The Estate 

of Fairfield Porter/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NY 

 



Special feature Ⅰ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미술 비평가 중의 비평가

 조주연 미술이론가

 


세상에 미술 비평가는 많다. 얼추 두 부류가 있는데, 미술 비평을 통해 자신의 미술 이론을 발전시키는 자와 남들의 미술 이론을 받아들여 미술 비평을 하는 자다. 두 부류는 각자 특장점이 있다. 만일 작품에 충실하면서 독자를 이해시키는 글을 쓰는 것이 비평의 임무라면, 후자가 유리하다. 세상의 모든 미술 작품을 다 꿰뚫으며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미술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각 작품에 가장 합당한(물론 비평가가 그렇게 믿는) 이론을 소환해 쓰는 것은 미술 작품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유연하고 또 생산적인 대처법일 것이다. 전자도 기본적으로는 후자가 하는 일을 하지만, 여기에 더하기와 빼기가 있다. 더하기는 개별 작품을 넘어서고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논리를 발견해서 주장하는 것이고, 빼기는 이 주장이 대개 그 논리에 맞지 않는 작품은 배제(더 나쁘게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전자, 즉 비평가 겸 이론가의 전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 미술(modern art)에 관한 한 전자의 전형을 최초로 세운 사람, 그뿐만 아니라 정면으로도 또는 반면으로도 후대의 비평가들에게 이 전형의 사표가 되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가의 시대

 

동시대 미술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날은큐레이터의 시대라고들 한다. 미술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같은 미술 제도의 확장과 더불어 전시가 중요해지고, 주로 대규모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들이 던진 화두가 미술 현장을 이끌어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그린버그가 활동했던 20세기 중엽은비평가의 시대였다. 이 비평가의 시대에 활약한 미술 비평가가 그린버그뿐인 것은 물론 아니다(잘 알려져 있듯이, 그린버그만큼이나 당대에 유명했고 유력했던 미술 비평가로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가 있다. 누군가는 1950년대의 미국 미술 비평계에 빨간 산과 파란 산이 있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추상표현주의라는 미술로 미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서양 미술의 첨단에 난생처음 서게 된 그 역사적인 시점을 비평가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비평가는 단연 그린버그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외적인 이유. 그린버그는 아무도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회화를 우러러보기는커녕 눈여겨보지도 않을 때, 심지어 추상표현주의 자체도 아직 발아 상태에 있었다고 할 1940년대부터 혼자 새 미술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또 두둔하는 비평을 썼다. 1947년에 그는미국 미술의 미래가 달려있는 일단의 젊은 미술가들이상상을 초월하는…. 파멸적인 고립상태에 있다고 썼는데(The Present Prospects of American Painting and Sculpture), 이 미술가들이나 그 상황을 개탄하는 그린버그나 외로운 목소리로 울부짖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시대가 몰라보는 미술가의 출현과 그 재능을 홀로 알아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비평가의 혜안이라는 구도는 그린버그 이전에도 여러 선례가 있다


거의 현대 미술의 공식이다시피 할 정도다. 대중의 몰이해와 심지어 조롱에 맞서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를 옹호했던 에밀 졸라(Émile Zola), 마네와 더불어 인상주의 화가들을 옹호했던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후기 인상주의 미술을 옹호했던 로저 프라이(Roger Fry)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불우한 미술가-항변하는 비평가라는 이 현대 미술의 면면한 전통으로부터 그린버그는 곧 벗어난다. 냉전의 정치학이라는 미술 외부의 요인이 크게 작용한 탓이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소련과 미국의 소리 없는 전쟁 속에서, 거침없는 자유를 구가하는 듯한 모습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 전후 미국의 문화 정치적 필요와 더없이 잘 맞았다. 미술가들의 본의와는 무관한 일이었으나, 『라이프(LIFE)』 지 같은 대중매체,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같은 미술 제도를 통한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이 미술에 쏟아졌고, 곧 추상표현주의는 대중이 환호하는 현대 미술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이에 따라, 일찍부터 이 미술을 옹호해온 그린버그도 일약 예언적 통찰력에 빛나는 비평가의 지위로 오른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

전시를 위한 <포스터 속의 포스터> 1963 오프셋 석판인쇄 포스터 

87.5×69.1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Gift of Jacqueline, Paul, 

and Peter Matisse in memory of their mother, Alexina Duchamp, 1998 ⓒ 

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추상 미술의 역사적 정당화

 

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듬뿍 받는 현대 미술이라? 이전 100여 년 동안 대서양의 저편에서는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던 낯선 상황이다. 왜 그럴 수 없었는가? 현대 미술의 출발점은 고전주의 미학과 아카데미라는 사회제도의 부정(negation)이고, 이는 이상적인 (주로 과거) 세계에 대한 재현의 거부를 의미했는데, 재현이란 소중한 대상을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적 욕구가 낳은 미술의 가장 기본인 개념인지라, 재현을 거부하며 고전주의를 따르지 않는 현대 미술은 아카데미의 지지는 물론 대중의 지지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50년대 미국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것이 바로 후기 모더니즘(Late Modernism), 19세기 후반의 초기 모더니즘(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으로부터 20세기 전반의 전성기 모더니즘(입체주의, 절대주의, 신조형주의)을 거쳐 모더니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가 되는 미국 판 모더니즘이다. 


그런데 그린버그가 비평가 중의 비평가가 된 것이 그저 추상표현주의를 일찌감치 알아본 혜안 때문이기만 할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 내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린버그는 현대 미술의 역사적 특수성과 미학적 정당성을 둘 다 정립하는 미술사 자체의 논리를 제시했던 것이다. 현대 미술의 역사적 특수성은 미술이 사회를 등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현대 사회가썩어가고 있기때문인데,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키치(kitsch)라는 가짜 문화, 상업 문화, 선전 문화가 판치는 사회 속에는진정한 문화의 설 자리가 없다. 해서, 이런 문화적 타락을 거부하는 예술가들은 사회를 떠나보헤미아로 이주했으며, 이들이다락방에서 굶주리는 삶을 무릅쓴 것은예술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여우리가 바로 지금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문화를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이 된 예술은 문화를 위기에 빠뜨린 사회와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해나갔는데, 여기서 순수한 예술이 나왔다


순수 예술이란자연이 그 자체로 정당한 것처럼, 그러니까 풍경이 미적으로 정당하듯이 오로지 그 자체로 정당한예술이다. 미적인 풍경을 그려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인 그림을 추구한다는 말인데, 이런 순수 예술이 자의성이나 우발성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제 외부 세계는 순수 예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순수 예술은 더 이상 외부 세계를모방하지 않으니까. 대신, 예술이세계를 모방할 때 사용했던 과정이나 규율이 새로운 근거가 되는데, 바로 이 매체에 복종할 때만비재현적인 것이나추상적인 것’”은 미학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아방가르드와 키치」 1939).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Four Rounds: Equal Weight, Unequal Measure> 2017 

Installation view <Richard Serra: Sculpture and Drawings> 

David Zwirner, New York, 2017. Photo by Cristiano Mascaro ⓒ

 2017 Richard Serra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 / London





대단히 통찰력 있는 설명이다. 세계를 재현해온 현대 이전의 미술사와 재현을 거부하고 추상 양식을 만들어낸 현대 미술을 분리하고, 추상 양식의 근거를 매체에 대한 순수한 탐구로 정립하며, 이 매체에 점진적으로 복종해간 과정을 추상 미술의 역사적 논리로 제시한 것인데, 이는 최초의 현대 미술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린버그 이전에도 현대 미술을 논한 비평가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폭넓은 역사적, 미학적 관점에서 현대 미술의 기원과 전개의 논리를 제시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린버그는 미술사학을 전공한 학자도 아니었다(그는 어린 시절 스케치에 몰두했으나, 청년기로 접어들며 문학에 심취했고, 시라큐즈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부모의 모국어인 이디시어에 능통했고, 불어와 라틴어,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도 독학으로 익혔다). 사실, 당시는 미술사학이 현대 미술을 연구의 주제로 삼지 않았던 시절이다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처럼 추상 미술에 대해 논한 미술사학자가 없지는 않았으나, 역사적 연구의 대상이 되려면 시간적 거리가 필수라는 전제 아래 미술사학계는 현재 진행 중인 현대 미술은 논외로 두었던 것이다.(이 전제는 1960년대 말에야 깨진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d Krauss)가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추상표현주의 조각을 연구한 논문으로 1969년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다.) 따라서 그 자신의 표현으로사람들과 부대끼며 스스로 배워나간 독학 비평가”(『예술과 문화』 서문 1965)라고 했던 그린버그의 통찰력은 비단 추상표현주의의 잠재력을 알아본 비평가의 것만이 아니라, 이 새로운 미국 미술에 이르기까지 대서양 저편에서 19세기 중엽부터 추상 미술이 발전해온 과정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역사적 논리를 최초로 제시한 이론가의 것이기도 한데, 굳이 따진다면 후자가 더 크다.

 


그런데 추상 미술만 현대 미술?

 

그린버그의 논리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엄연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1960년대에 문학사 출신의 그가 하버드 대학교 미술사학과에 초빙되어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현대 미술론을 가르쳤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이 세미나의 학생들 가운데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있었다). 문제는 순수 미술의 등장과 발전을 이토록 설득력 있게 제시했던 그린버그의 현대 미술론은 현대 미술의 일부인 추상 미술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는 추상 미술만을 유일한 현대 미술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미술의 역사에는한낱 현상에 불과한 역사질적으로 수준 높은 역사가 있으니, 현대 미술에서 높은 질적 수준을 담보하는 미술은 추상 미술뿐이라는 이유였다(Complaints of an Art Critic 1967). 그린버그의 관점, 즉 문화를 위기에 빠뜨린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문화를 지키려면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순수한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당연한 주장이었고, 또 추상 미술이 현대 이전의 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 미술의 독보적인 미학적 성취인 것도 맞지만, 추상 미술의 모더니즘이 곧 현대 미술과 등식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상 양식이 완성되었던2차 세계대전(World WarⅡ)’ 이전 유럽의 전성기 모더니즘 시절에 이미 이 순수주의 미학에 반발하는 또 하나의 미학적 흐름이 현대 미술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 <Untitled #579> 2016

 Dye sublimation metal print 148.6×118.7cm 58 1/2×46 3/4in

 152.8×123×5.1cm (framed) 60 1/8×48 3/8×2in (framed), Exhibition 

<Eau de Cologne> 3.26-4.12 Sprüth Magers Gallery, Hong Kong 

ⓒ Cindy Sherman Courtesy the artist, Sprüth Magers and

 Metro Pictures, New York

 




다다(Dadai), 구축주의(Construc- tiv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같은 반예술(anti-art)의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그것이다. 여기서반예술이란 사회를 저 멀리에 내버려 두고 예술의 세계에서만 초월적 성전을 쌓는 순수 예술을 반대하며 다시 사회로 나아가 비판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미학적 입장을 말한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사회 둘 다를 비판하는 양날의 검인데, 그린버그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순수 미술의 전제를 사회와의 단절로 보는 그린버그였으니, 반예술을 부인하는 그의 입장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추상 미술에 대한 확신이 지나쳤던 나머지 그는 현대 미술의 역사에 실재했던 현상들을 배제하기에 이른 것인데, 본인은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겠지만 이런 것이 바로 역사 왜곡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그는 아방가르드를 미술 바깥이나 기웃거리며 퇴행을 부추기는 불순한 시도 따위로 비난했지만, 그가 일편단심 옹호했던 모더니즘도 추상표현주의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거리를 두기는커녕 사회와 더없이 밀착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린버그에게는 물론 이를 방어할 논리가 있었다. “어떤 문화도 사회적 기반 없이는, 즉 안정된 수입원 없이는 발전할 수 없, 과거에 이는 부르주아 사회의 엘리트층에 의해 제공되었다. 따라서 순수 미술은 보헤미아로 떠나 사회를 등진 척 했어도항상 황금의 탯줄로 이 엘리트층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 이 엘리트층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전전까지 추상 미술의 위기 상황이었다(「아방가르드와 키치」 1939). 그러나 전후의 상황은 달라져, “산업의 융성 덕분에 이제 과거에는 적은 소수의 배타적 특권이었던 종류의 문화를 적어도 열망할 수는 있을 만한 물질적 위치에 있게 된중산층 대중이 출현(The Plight of Our Culture  1953)했으며, 이에 따라우리나라에서 나는 굉장한 포도주만큼이나 고도로 탁월한 미술”(미국형회화」 1955)도 미국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Installation view <Bruce Nauman: Disappearing Acts> 

at MoMA PS1, New York (2018.10.21-2.25 at MoMA and MoMA PS1) 

ⓒ 2018 Bruce Nauma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igital image ⓒ 201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Martin Seck





그러나 이 탁월한 미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리라 그린버그가 기대했던 중산층 대중은 후기 모더니즘을 계속 지켜주지 않고, 1960년대에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으로, 197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그린버그가 그토록 무시하고 배제했던 아방가르드가 복귀하더니 급기야는 모더니즘 자체를 종식해버렸던 것이다. 이런 격변 속에서도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회화」(1961), 「추상표현주의 이후」(1962) 「후기 회화적 추상」(1964) 같은 글과 전시를 통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자신이 신봉하는 순수 미술, 혹은 미술의 질적 수준을 지켜내기 위해. 대단한 지조라고 아니 할 수 없으나, 잘못된 지조다. 이론은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의 추상 진영과 카스텔리의 팝아트 진영 사이의 전쟁에서 패한(토마스 크로우(Thomas Crow) 60년대 미술』 1996/2007) 후 그린버그는 급전직하퇴물이 되었다. 고집을 꺾지 않고 우기는 바람에, 심지어는타도의 대상마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집쟁이가 없었다면 로절린드 크라우스와 마이클 프리드 같은 걸출한 학자-비평가들이 그가 사라진 다음 현대 미술의 역사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풍부한 연구로 밝혀갈 수 있었을지는 정녕 의문이다.  

 

[읽을 만한 책]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 옮김 개정판 경성대학교출판부 2019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2017 글항아리

할 포스터 『실재의 귀환』 이영욱 외 옮김 개정판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0

토마스 크로우 『60년대 미술』 조주연 옮김 현실문화연구 2007

래리 샤이너 『순수예술의 발명』 조주연 옮김 인간의 기쁨 2015

 


글쓴이 조주연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술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대 미술의 미학적 기원과 전개를 밝힌 『현대미술 강의』(2017)를 썼다. 이후 현대 미술의 마지막 단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미술의 중심 매체로 등극한 사진을 중심으로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이 연접 또는 이접하는 지점을 새로운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술의 혁명! 혁명의 예술』(공저) 『미학으로 읽는 미술』(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실재의 귀환』(공역), 『예술과 문화』, 『순수예술의 발명』, 『강박적 아름다움』 등이 있다.

 




윌리엄 이글스톤(William Eggleston) 

<Untitled from The Democratic Forest>

 c. 1983-1986 Exhibition <William Eggleston: The Democratic Forest> 

2016.10.27-2016.12.17 David Zwirner, New York ⓒ Eggleston Artistic

 Trust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 / London





Special feature Ⅱ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예술철학과 역사철학에 대하여

 장민한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1. 머리말 -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서 얻은 예술에 대한 두 가지 통찰

 

아서 단토가 주장하는예술의 종말은 예술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뜻이다. 오늘날은예술의 종말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창작, 예술비평, 예술교육, 예술 제도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주장하는예술의 종말의 의미를 규명함으로써 그의 예술철학과 역사철학을 이해해보자. 단토는 워홀(Andy Warhol) <브릴로 상자>에서예술의 종말을 보았다. “<브릴로 상자>는 브릴로 수세미를 담아 공장에서 창고를 거쳐 슈퍼마켓으로 운반하는 평범한 포장 상자와 지각적으로 아주 똑같아서 그 둘을 무엇으로 구별하는가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고, 나는 그것을 예술과 현실을 구별하는 문제로 받아들였다.” 1)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일상의 사물인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눈으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단토로 하여금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예술에 대한 두 가지 통찰을 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눈으로 구분할 수 없고, 예술 일반이 무엇인지 말하려면 우리의 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토는 이제부터 진정한 의미에서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 즉 예술 철학이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통해 예술작품은 역사에 의해 규정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예술로서 인정을 받지만, 100년 전인 1864년에 등장했다면 그것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단토로 하여금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고, 이와 동시에 예술이 역사에 의해 구속된다는 점을 파악하게 했다. 이에 대한 단토의 성찰의 결과가 그의 예술 철학이고, 미술사의 철학이다.

 




앤디 워홀 <Self-Portrait> 1964 Acrylic and silkscreen

 ink on linen 20×16in(50.8×40.6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gift of Edlis/Neeson Collection,

 2015.126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2. 예술 철학 - 시각적 식별 불가능성과 예술의 본질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나오기 전까지 예술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질문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눈으로 볼 때 식별 불가능한 두 대상이 하나는 예술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 대상으로 등장할 때, 비로소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브릴로 상자>의 흥미로운 특징은 그것이 미술과 현실 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독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미술이라면 지각적인 면에서 어떠한 흥미로운 차이가 없는 워홀의 상자들과 달리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상자들이 왜 예술이 아닌지를 효과적으로 질문함으로써 그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브릴로 상자>로 구체화시켰다는 것이다.” 2) 예술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다르다. 후자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브릴로 세제의 판매를 촉진하도록 잘 구성된 디자인이라면, 전자는 그 이미지를 이용하여 그 당시 미국의 풍요로움을 나타내고 있는 예술작품이다.


 <브릴로 상자>는 그의 <캠벨 수프 통조림>, <코카콜라>처럼 미국의 풍요로운 일상을 찬양하고 있는 예술작품이다. 단토는 <브릴로 상자>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보고 있다. “지각적으로 식별 불가능한 두 대상 중 한 대상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단토는 그 답을구현된 의미에서 찾고 있다. 그는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의미구현이라고 보고 있다나는 예술 철학에 관한 첫 번째 저서에서 예술작품은 어떤 것에관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의미를 추론하거나 파악하지만, 의미는 전혀 물질적이지 않다. 그래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는 문장과 다르게, 의미는 그것을 담고 있는 사물로 구현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작품은구현된 의미라고 선언했다.”  3)





캐니 샤프 <Frosty Fuzzy Family + Furry Friends>

 2014 Oil on found painting 64×54cm ⓒ Kenny Scharf

2018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onor Fraser Gallery 

Photo: Joshua White / JWPicutres.com 

 




예술 철학은 예술이 언제 어디서 제작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예술작품들이 공통으로 가진 속성을 포착해야 한다. 눈으로 식별 불가능한 두 대상, 즉 예술작품과 그와 지각적으로 식별 불가능한 일상의 대상을 비교 분석하여 예술작품의 필요조건을 도출해낸다. 단토는 피카소(Pablo Picasso)가 푸른색을 칠한 <넥타이>와 어떤 아이에 의해 우연히 푸른색으로 칠해진 넥타이를 비교한다. 둘이 우연히 동일하게 칠해져서 피카소조차 자신의 것을 구분해낼 수 없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반드시 지각적인 속성일 필요는 없다. 단토는 그 성질 중 하나를관함(aboutness)’으로 규정한다. 피카소의 <넥타이>는 무엇에 관한 작품이다.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항상 다른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토는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두 번째 속성으로구현을 말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재현물은 예술작품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 지도, 신호등 등 다양한 재현물이 있을 수 있다. 단토는 재현물들 중에서 특별한 방식의 재현물을 예술로 보고 있다. 예술작품은 세계를 재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나 비전을 갖고 세계를 보도록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가는 양식이나 재료 등을 이용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무엇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단토에게 있어서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은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의 의미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4)


 

3. 역사철학 - 예술계의 변화와 예술의 종말 

 

단토의 역사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용어 중 하나가예술계(artworld)’이다. 그가 말하는 예술계란 시대마다 세계를 바라보는 각각 다른 패러다임이 있듯이, 시대마다 예술을 바라보는 특정한 패러다임을 말한다. 어떤 것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눈으로 알아낼 수 없는 어떤 것-예술 이론의 분위기와 예술사에 관한 지식 즉, 예술계를 요구한다.” 5) 한 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지각적인 정보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동일하게 생긴 두 대상이 한 대상은 예술작품이고, 다른 한 대상은 아닐 수 있다. 전자가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고 이와 동시에 해당 시대에 그것을 예술로써 인정했는지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 1964년이 아닌 1500년대나 1800년대에 제작되었다면 이 대상을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는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1500년대에는 세계를 정확하게 혹은 아름답게 모방하는 것을 예술의 기준으로 보았고, 1800년대에는 작가 개인의 개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기준으로 보았다. 이 시대에는 상품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복사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을 것이다예술계는 제도화된 이유의 담론이며 따라서 예술계의 성원이 되는 것은 한 문화에 대한 이유의 담론에 참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우는 것을 뜻한다. 어떤 의미에서 주어진 문화에 관한 이유의 담론은 놀이 규칙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언어 게임이다. 즉 게임이 있는 곳에만 승리와 패배 그리고 경기자가 존재하듯이, 예술계가 있는 곳에만 예술이 존재하게 된다.” 6)





백남준 <퐁텐블로> 1988 비디오 조각

 백남준아트센터 <다툼소리아>전 설치 컷





단토가 말하는예술계는 개별 예술작품의 의미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예술로서 정당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한 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예술로써 정당화시키는 예술계가 반드시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예술계와 단토가 말하는 역사 철학, 더 나아가예술의 종말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단토는 역사를서사(narrativ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사건을 직접 경험했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정보만을 가지고는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30년 전쟁은 1618년에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은 당시 그 전쟁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 전쟁이 끝나고, ‘30년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에나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문장은 그때의 사건을 ‘30년 전쟁이라는 서사 틀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후에 ‘30년 전쟁이라는 서사가 아닌 더 중요한 서사가 만들어진다면, 1618년에 발생한 특정한 사건은 새로운 서사 틀 아래서 기술될 것이다. 단토가 말하는예술의 종말예술 서사의 종말을 의미한다


예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의 종말을 뜻한다. 이야기 하나가 끝났다. 나의 견해는죽음이라는 말이 확연하게 암시하듯이 이제 더 이상 예술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예술이든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야기 전개 과정상 적절한 다음 단계로 보여 질 수 있는 모종의 확증적 서사에 더 이상 힘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종말에 이른 것은 그 서사이지 그 서사의 주제가 아니다.” 7) 예술의 종말예술 이야기의 종말이라면, 그 이야기의 종말은 화자가 예술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그 끝은 각각 다르지 않겠는가? 자연의 완벽한 모방을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는 역사가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에서 예술의 종말을 볼 것이고, 환영이 아니라 매체의 매체다움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이 예술의 목표라면 단색의 사각형 추상화에서 예술의 종말을 보지 않을까? 단토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예술의 서사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서구에서는 예술에 대한 믿음 체계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실제 구조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는 이 구조를 당시의 예술계에서 찾고 있다. 서구에는 르네상스 이후 600년 동안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공예품과는 다른,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었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시대마다 다르게 설명되었지만, 실용적 목적을 지닌 공예품과는 지각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기 동안 예술가는 지각적인 속성을 이용하여 예술다움을 드러내야 했다. 이 믿음이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등장하면서 붕괴되었고, 이와 더불어예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끝났다는 뜻이다.

 


4. 나가는 말 - 다원주의와 개별 서사의 시대

 

예술이 지각적으로는 일상 사물과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예술이 종말을 고했다. 이때 종말을 고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술이 지각적인 특성을 통해 예술만의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의 종말이다. 예술의 종말이 최종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이 시점부터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역사적 방향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예술은 철학적 자의식을 향해 나아갔던바, 이것은 예술가란 모름지기 예술의 철학적 본질을 구현하는 예술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잘못된 이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예술의 역사가 취할 수 있는 방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명료한 이해력을 갖고서 인식할 수가 있다.” 8) 


이제는예술이 주인공이 되는 거대 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관심을 가진 미술사가들이 자신의 흥미에 따라 페미니즘 미술사, 마르크시즘 미술사, 남도 미술사 등 다양한 서사들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개별 서사는 개별 작품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 주고, 그 가치를 보증하는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동시대 예술가들은 예술의 철학적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는 목표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시대를다원주의 시대로 규정한다. 미술이 나아가야 할 역사적인 방향이 없다는 의미에서탈역사적 미술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오늘날은예술의 거대 서사를 대신하여 예술가의 관심에 따라 구성된 다양한 개별 서사가 동시대 작품을 정당화하는 기준으로 작동될 수 있다.   

 

[각주]

1) 아서 단토, 김한영 역 『무엇이 예술인가』 은행나무 2015 p.209

2) 아서 단토, 정용도 역 『철학하는 예술』 미술문화 2007 p.97

3) 아서 단토, 김한영 역 『무엇이 예술인가』 은행나무 2013 p.68

4) 아서 단토, 이성훈 외 역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p.353-354

5) 아서 단토 「The Artworld, The Journal of Philosophy Vol. 61, No.19, 1964 p.5 80

6) 아서 단토 『Beyond the Brillo Box: The Visual Arts in Post-historical Perspective. New York The Noonday Press Farrar, 1992 p.46

7) 아서 단토, 이성훈 외 역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p.41-42

8) 아서 단토, 이성훈 외 역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p.96

 

[읽을 만한 책]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이성훈 외 역 미술문화 2004

아서 단토 『일상적인 것의 변용』 김혜련 역 한길사 2008

아서 단토 『무엇이 예술인가』 김한영 역 은행나무 2015

장민한 『아서 단토』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글쓴이 장민한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아서 단토의 표상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연구: 미술의 종말과 다원주의 미술로의 귀결』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과장과 제5서울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미학 이론, 전시기획론, 동시대 미술 비평방법론, 미디어아트 이론 등을 연구하고 있다.

 




헬렌 리바이트(Helen Levitt) <New York> c. 

1940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The Language of Vision: 

early Twentieth-Century Photography> 2018.8.17-1.13 Jepson 

Center, Telfair Museums Gift of Philip Perkis, 1998.13.1 

ⓒ Film Documents LLC



 


Special feature Ⅲ

수전 손택(Susan Sontag) / 캠프_해석에 반대하는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이영욱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강사

 


수전 손택은 1966년 『해석에 반대한다』 평론집에서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와 예술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서 예술창작과 비평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 고급과 저급문화의 이분법적인 구별을 비판하면서 현대예술의 특징을 새로운 감수성, 캠프(camp) 개념으로 설명한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로 진단한다. 그는 작가와 비평가로 활동하면서예술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 경험해야 한다라는 예술론을 주장했다. 손택이 언급하는예술 자체로서의 경험예술작품에 해석에 반대한다는 명제는 탐미주의자로서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예술지상부로의 회기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손택은 오히려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창작과 비평을 지향하던 전통에서서 탈주하기를 바란다. 이는 주관적 감성의 소비적 지성 주의와 낭만주의 예술관을 해체하고 다양한 감수성의 회복이 가능한 비()예술로서의 스타일과 반()쾌락주의자로서의 탐미주의자다


그의 예술 철학은 기본적으로 현대사회가 대량생산과 소비사회가 파괴해버린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그가 주장하는 예술 실천의 문제는 지나치게 무절제한 고급(고상한) 순수예술창작의 허위의식과 과잉된 해석의 비평 방식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길 바라는 것이다. 손택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비평문을 발표했는데 주로 문학과 영화, 사진, 미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평과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는 그가 세 번째로 출간한 비평문 『우울한 열정』(1980)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다. 특히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1977)는 벤야민의 탁월한 에세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거론하는 사진과 영화 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일대 혁신의 예술개념의 변화에 대한 예언을 마치 실천을 하려는 듯이 이어받고 있다


문체에서도 파편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전형적인 논문형식의 이분법적 사고 논리에서 벗어난다. 때로는 『일방통행로』에서 수행한 벤야민의 알레고리적 수사법을 방법론으로 차용하기도 하면서 권위적이고 은유적 해석의 재현체계의 방법적 논리를 반박한다. 더불어 바르트가 구조주의 관점에서 사진을 비평한 논리를 스스로 뒤엎고 기호화될 수 없는 사진의 메시지를 흔적개념으로 논한 『밝은 방』(1980)에 앞서 사진의 지표적 속성을 새롭게 거론한다. 이는 사진 이미지가 기호화될 수 없는 흔적개념을 단순히 사진 매체에 대한 이론을 열거한 것이 아니라 그가 줄기차게 주장한내용형식의 이분법적 구별과 예술작품의 해석에 반대하는 새로운 감수성의 회복을 주장하는 캠프의 감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사진은 예술과 일상(현실)의 구별을 할 수 없는 세계와 이미지가 전도된 사물(현실)로 묘사하면서 사진 이미지에 중독된 현대인 특징을 한마디로 감각을 상실한 우울한 군상으로 규정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사회는 이미지 중독을 해독할 방법으로 이미지 생태학을 주장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그가 타개하기 1년 전 비평문집 『타인의 고통』에서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어조로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호소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2013 solo exhibition

 <Thomas Ruff: photograms and ma.r.s.>

 at David Zwirner, New York





손택은 예술은 의식의 자양분이고 의지의 산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조응하면서 적극적 의지의 산물로 예술작품을 만들지만, 이는 단순히 예술작품이 이 세계를 진술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뜻이기 하다. 또한, 그는 예술작품을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적 구별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사진예술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든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보여주는 글은 회화나 데생처럼 손으로 만든 시각적 진술이 그렇듯이 일종의 해석이다. 이와는 달리, 이 세계의 일부이자 누구나 만들거나 얻을 수 있는 현실의 소형 모형 같은 사진 이미지는 세계에 대한 진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데 관심을 가지고 투명하고 진실하게 기록하려 해도,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에서까지 벗어날 수는 없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사진 작업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사진도 회화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회화와는 다르게 대상에게서 나온 빛의 발산을 기록한 것, 즉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나 발자국처럼 현실을 직접 등사한 그 무엇, 혹은 현실의 흔적이다. 회화가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다 해도 피사체의 물리적 자취를 기록한 사진만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진은 이미지의 유사성의 해석된 도상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을 드러내는 지표인 것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사진을 해석의 차원으로 메시지를 가공해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사진의 의미소통 구조는 다분히 정치, 역사적인 맥락과 연결되면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사진 이미지의 대량소비와 현실이 이미지 환상으로 대치된 상황에서 우리들은 도덕 불감증에 사로잡힌 이미지 중독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의식을 행동으로 표출해주는 양식인 도덕은 의식에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심미적 경험과 대립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몰입하는 이에게 총체적이거나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진리의 보조 역이 되려는 것이 예술의 목적은 아니다. 손택의 예술 철학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서구미학의 오랜 전통인 플라톤(Plato)의 모방 재현의 논리를 전복하는 것이고, 예술작품의 은유적 메타비평을 과잉된 해석으로부터 탈주하는 예술 그 자체의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새로운 감수성의 스타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을 내용 중심으로 해석하거나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형식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때 형식은 익숙한 스타일화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 그 자체가 내용과 조우하는 충격을 주는 낯선 감각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 캠프라고 지칭되는 개념의 감성은 고통을 주는 감각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지각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다. 이는 마치 벤야민이 낯선 도시에서 의도적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고 사물을 새롭게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을 터득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지적인 논리적 사유방식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는 감성의 회복을 말한다. 따라서 현대 예술작품의 특징이 이 앞서 언급한 예술을 모방 재현 논리로 귀결되는 유사성의 은유적 수사법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 





헬렌 리바이트 <New York> c. 1940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The Language of Vision: early Twentieth-Century Photography> 

2018.8.17-1.13 Jepson Center, Telfair Museums Gift of Philip Perkis, 

1998.13.3 ⓒ Film Documents LLC

 




영화의 등장으로 연극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사진과 회화의 갈등은 만약 화가의 작업이 정말로 유사성을 날조해 내는 것에 불과했다면, 카메라의 발명에 의해서 회화는 실제로 퇴화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화라는 것은 단순한그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사진의 뛰어난 사실성이 회화를 사실성에서 해방해 추상으로 향하게 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실제로 회화와 사진은 경쟁상대도, 교체 상대도 아니고 오히려 공존으로 발전해 왔음을 동시대의 현대미술의 경향은 이를 잘 입증한다. 손택은 196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현대미술의 해프닝을 역사적 관점에서 초현실주의와 연관시키고 아르토(Antonin Artaud)의 잔혹극에서 그 시발점을 찾는다


해프닝은 단순히 연극과 미술의 장르 간의 결합이 아니며, 따라서 영화의 등장으로 연극이 사라지 않았던 것처럼 사진의 등장 또한 회화가 재현예술에서 추상으로 나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는 1960년대 이후 플럭서스(Fluxus)로 대변되는 해프닝 형상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현대 관람객의 취향이 엄숙하고 고상한 순수 고급예술의 취향, 계몽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에 더는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는다. 손택은 이러한 현상을 「해프닝, 급진적인 병치의 예술」에서 처음으로 관람객의 캠프적 취향을 언급한다. 이후 「캠프에 관한 단상」에서 키치와 구별되는 캠프형식의 스타일을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에서 구체화한다. 여기에는 스타일과 스타일화의 차이를 구별했던 초기 손택의 이론을 더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손택이 주장하는 스타일(형식과 내용)은 사진의 기표와 기의는 구별되지 않는 것과 같이 내용과 형식의 구별이 없다. 따라서 사진은 장르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매체다. 사진의 메시지는 사진 안에 없다. 사진의 의미는 언제나 다른 텍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로 이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랄프 슈타이너(Ralph Steiner) <Untitled> 1929 (negative), 

1980 (print) Gelatin silver print <The Language of Vision: 

early Twentieth-Century Photography> 2018.8.17-1.13 

Jepson Center, Telfair Museums Gift of Dr. Marvin and 

Norma Rappaport, 2017.9.4 ⓒ Courtesy of the Estate of 

Ralph Steiner


 



사진은 캠프와 키치의 감성을 다 함께 가지고 있다. 키치의 슬픔은 고급예술을 따라 하는 어설픈 흉내에서 오는 열등감이라면 캠프는 고상함에 대한 조롱이고 솔직한 태도에 대한 당당함이다. 사진이 예술을 지향하는 것은 키치다. 사진이 예술 논쟁 속에서 당당히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었을 때 사진은 전통적인 회화의 정신과 방법을 모방하려 했다. 소위 회화주의(pictorialism)계열의 사진은 정확히 예술 살롱의 성전으로 입성하고자 한 키치적 욕망이었다. 그 이후 사진은 지속해서 당대 유행하는 예술사조에 편승해 예술로서 정당하게 인정받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매체로 이용하는 미술가들은 사진을 방법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사진 그 자체가 예술성이 있고 없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 매체는 전통적 예술개념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고 믿고 진지하고 엄숙한 예술개념에 도전하는 중요한 무기로 사용했다. 이것이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로서 캠프의 감성 실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 작업은 발견된 오브제로서 정확히 사진적인 것이다. 손택은 사진처럼 일상적이고 파편적인 성격을 비()예술로서 캠프의 감성으로 읽는다. 캠프로 보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작품이 고급예술이어서도 안 되며, 그 취향이 정상적인 의미에서 훌륭해서도 안 된다. 심하게 경멸받을 만한 소재일수록, 진부하게 그 정서를 표현할수록,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사진을 좋아했다. 만 레이(Man Ray)가 앗제(Eugene Atget)의 사진을 수집하고 브르통(Andre Breton)이 사진과 함께 시집『나자(Nadja)』를 낸 것도 마찬가지다. 캠프의 감성에 눈을 뜬 현대의 관람객들은 사진 이미지에서 충격을 주는 것들을 즐긴다. 그러나 그것은 양심을 고양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도덕과 윤리적 관점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손택은 캠프를 초현실주의 전통의 급진적인 병치 기법을 통해 충격을 주고자 하는 감수성에서 찾았다


사진의 시공간의 파편적 성격은 몽타주와 콜라주 원리를 통해서 인습적인 의미를 깨부수는 초현실주의 새로운 의미와 무의미의 반()미학적 특성은 매우 사진적인 것이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으레 그럴 것이라고 믿는 상투적인 감성을 뜻밖에 공격하는 사진의 충격은 현대미술의 장르 간의 병치와 매체 간의 결합을 통해캠프의 미학을 낳았다. 정신분석학의 자유 연상조차도 급진적 병치라는 사진의 속성과 매우 닮아있는 바 이는 현대미술의 원리로모순의 배후에 숨어 있는 통일성이라는 현대 예술의 친숙한 논리와 동일한 기초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진 이미지에서처럼 캠프의 감수성을 현대도시의 일상에서 수많은 인공 물속에서 콜라주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스타일과 크기가 엉망진창인 건물들, 조잡하게 배열된 상점 간판들, 신문과 잡지, 인터넷의 가짜뉴스 편집 등에서 모두가 제멋대로 정한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Untitled (Believe / Commit)>

 2019 Print on vinyl 243.8×254cm(96×99.88in) Exhibition 

<Eau de Cologne> 3.26-4.12 Sprüth Magers Gallery, Hong Kong

 Courtesy Sprüth Magers 





오늘날의 예술은 사진처럼 해석을 피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패러디가 되기도 한다. 아니면 추상적으로 흘러버리거나, 그저 장식적인 요소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비예술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해석에서의 탈주는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추상미술은 일상적 의미에서 아무런 내용도 담지 않으려는 시도다. 내용이 없으니 해석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팝아트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얻는다. 너무나 뻔한, ‘보이는 그대로를 내용으로 썼으니, 여기에서도 결국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손택은 해석에서 벗어날 이상적인 방법은외형이 통일성을 갖추고 군더더기 없으며, 말하는 바가 신속하고 너무도 직선적이어서 작품이 작품에 있는 그대로일 뿐인 예술작품을 만들면 된다고 한다.” 오늘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진 이미지의 속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가 아직껏 해석자들의 침략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손택은 영화를 고급문화 반대편에서 일반 대중의 삶을 이루는 일부로 이해됐으며,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지식인이 그냥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결국 손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당연히 비평의 대상이고 해석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올바른 비평의 역할 새로운 해석의 자리를 지식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손택은 어떤 종류의 비평이, 어떤 종류의 주석이 바람직한가? 질문하면서 예술작품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이바지할 비평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술의 형식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용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태도는 해석의 오만을 일으키는 동시에, 형식에 대한 더욱 확장되고 더욱더 철저한 설명을 간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상의 비평이란 내용에 관한 언급 안에 형식에 대한 언급을 녹여낸 비평이다. 이와 동시에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예술작품의 외형을 정확하고 예리하면서도 애정 어리게 분석한 비평을 예로 든다. 이는 형식 분석보다도 훨씬 힘든 작업이 될 것이지만, 예술의 감각적인 표면을 드러내 주는 평론이다. 손택은 투명성을 비평에서 가장 고상하고 의미심장한 가치로 본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감각을 깨워 이 세계의 실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또한 사진 이미지의 투명과 닮아있다. 그런데 정말 사진은 투명한 매체인가?   

 

[읽을 만한 책]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 한다』 이후 2008

수전 손택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현대미학사 2004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후 2013

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 시울 2009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참고할만한 사이트]

http;//www.susansontag.com/

 


글쓴이 이영욱은 중앙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대학에서 사진학을 강의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오늘을 찍다프로젝트 진행과 수업을, 인천대 문화대학원에서 지역문화연구를 강의하고 있다. 주로 사진아카이브 예술적 변주 방법론을 연구하면서 전시기획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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