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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7, Dec 2018

신현정
Fay Shin

대기의 회화

PUBLIC ART NEW HERO
2018 퍼블릭아트 뉴히어로Ⅶ

신현정의 지난 작업을 돌아보면 날씨나 계절감에 관한 제목이 많다. '날씨 회화(Weather Painting)'(2013-2016)나 'Sun Drawing'(2016)과 '하드보일드 티'(2017-2018) 등. 외부 환경에 마주할 때의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려 한다는 작가 노트의 소개말과 함께 생각해보면 추상은 표현의 방법이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표현 이전에 작가가 정의한 세계에도 관계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를 둘러싼 세계 또는 적어도 작업에 관련지어 바라보기로 한 환경 자체가 특수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나 사건의 영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세계를 사건이나 타자 없이 혹은 그것을 초월하여 날씨와 계절이라는 시간 감각으로 추상적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민한 감수성이나 민감한 신체 감각과 관련되는 것일까. 번잡한 일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거나 한 숨 돌리며 빠져드는 한가로움에 관련되나. 도시보다는 전원생활에 친근한 감각일까. 어느 쪽이든 인간의 감성적 성향이나 특수한 생활환경에 관한 것이라면 이런저런 짐작이 있을 뿐 더 알 수 있는 건 없다.
● 김정현 미술비평가 ● 사진 서지연

'가장자리들' 2018 A4 종이, 스프레이, 황동봉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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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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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사고의 투과 경로가 그저 한 인간의 정신이 아니라 회화의 표면까지 이어져 흔적을 남겼다면 어떤가. 회화의 현대화 과정, 즉 추상 회화에서 대기에 대한 감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와 계절이란 단지 감성적 판단의 소재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빛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의 어느 화가들은 화폭 위에 변화무쌍한 빛의 효과를 포착하려 하며 회화에서 오랫동안 선적인 요소에 비해 부차적으로 치부되어 왔던 색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모네(Claude Monet)가 그린 루앙 대성당의 파사드는 더는 성당 건축물의 세세한 묘사가 아니라 태양광을 반사해 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평면으로 역할을 하며 캔버스의 평면과 거의 평행을 이룬다. 빛의 시각적 효과를 관찰하려는 회화는 연작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화폭마다 다른 색의 차이를 감상하게 했다. 실험은 계절과 날씨를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발생기의 추상 회화에서 화가는 자신과 감상자가 눈을 크게 뜨고 사물에 반사되는 빛을 바라보도록 했다. 




<날씨 회화 - 아카이브> 2013-2016 

캔버스에 스프레이, 앵글 구조물, 나무 약 25X200X180cm

 




반면 신현정은 눈을 감고 빛을 신체적으로 느끼려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 회화>는 캔버스에 스프레이를 뿌려 그린 것이다. 매일 다른 날씨의 피부 감각과 정서를 작가가 온몸으로 집중해서 느끼려고 하면서, 색을 정하고 스프레이 통을 흔들어 캔버스 측면에 몇 초 정도 분사한다. 좁은 측면을 넘어 앞뒷면에도 스프레이 입자가 날아가 박힌다. 이것은 그리는 사람의 신체 감각을 회화의 신체에 옮기려는 시도인가? 캔버스 표면에 몇 가지 색의 입자가 알록달록하게 뒤섞인 작품에서 색은 빛의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작가가 느낀 날씨의 관념적인 감각을 물질적으로 형상화한 결과가 될 것이다. 작가가 날씨의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려 시도하며 그려낸 그림은, 그러나 작가의 감각과 유사한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주지 않는다. 작가가 본인의 신체로 특수하게 감각하고 그려낸 날씨는 추상 회화의 신체를 입으면서도 개인의 주관적인 것으로 남는다. 





<적응과 회피의 메들리-Colors you can eat and sweat> 2018 치자, 

믹스베리, 파워에이드, 다양한 식물들, 우유,식초, 실크, 황동봉 가변설치  





일기를 쓰듯 작은 사이즈의 캔버스에 작가가 약 4년간 꾸준히 그린 스프레이 회화에서, 개별 캔버스가 눈에 띄는 미적 가치를 지니거나 조형적으로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한데 모여 전시될 때에는 집적된 시간이 그 자체로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매일 수련을 하듯 절제된 작업을 지속한 화가들의 전례가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온 카와라(On Kawara) 오늘(Today)’ 연작은 매우 몰개성한 방식으로 화폭에 날짜만을 그려 넣음으로써 회화의 무거운 침묵을 느끼게 한다. 그에 비하면 신현정의 날씨 회화는 꽤 기교가 섞인 표현적인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철제 선반에 거의 캔버스의 측면만 보이도록 수북이 쌓아놓는 전시 방식은 다시 날씨 회화의 익명성을 강화하는 듯하다. 작가 개인의 주관적 감성을 표현하면서 그것의 고유성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익명화시키는 논리는 주관의 객관화와는 다르다. 





<가장자리들> 2018 A4 종이, 스프레이, 황동봉 가변설치    





기상청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보도하는 일기예보가 가장 객관적인 일간 정보라면, 누군가 하루의 소회를 적은 일기의 내용은 가장 주관적인 일간 기록이다. 개인의 내밀한 기록은 그 비밀스러움으로 인해 주관적 존재론을 보장받지만, 가장 개인적인 표현조차 공적인 형식으로 드러날 때는 그 성질이 변화하고 만다. 전시장의 그림 앞에서 고독하게 몰입하는 감상법은 공공 미술관이 등장하던 시기부터 기만적이었고, 공공의 세기에 주관의 표현은 익명화 단계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스프레이는 주관을 익명에 의한 것으로 변환하기에 적절한 재료처럼 보인다. 간단한 조작으로 다룰 수 있으며 아주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표현이 가능한 기능적인 산업 재료다. (스프레이 회화조차 복잡한 기교로 미학적 도구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으나, 신현정의 회화는 능숙하게 조형되었을지언정 과시적인 제스처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하드보일드 티>와 같이 비교적 최근에 시작한 천 그림은 천 조각을 겨울 찻물에 끓여 염색하고 손질해서 만든 작업으로 작업 시간이 길고 복잡하다. 표현 속도의 차이는 사소해 보인다. 





<물과 철 2 (형광 파랑과 창백한 올리브)> 

2018 종이에 아크릴 41.8×29.5cm 5세트





이런 작업에서 수공 제작이나 노동의 번거로움이 작업의 의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날씨 회화>가 신속한 스프레이 회화로 축약될 수 없는 것처럼. 신현정 작업의 시간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재료의 작동 시간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이 발동하는 시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업실에서 텅 빈 캔버스와 스프레이 몇 통을 앞에 두고 대기의 온도나 습도나 분위기를 감지하려 애쓰며 명상하는 시간과, 겨울 찻물을 직접 마시는 대신 천을 넣고 느긋하게 끓이며 증발하는 향을 맡으며 지난 계절을 조용히 돌아보는 감각. 관객에게 그것이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 전달되기 어렵고 대체로 개념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신현정




신현정은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했다. 일민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스페이스 오뉴월, 제주도립미술관, 프레임레스 갤러리 등 한국과 영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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