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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5, Oct 2018

김실비_회한의 소굴

2018.8.24 – 2018.10.13 합정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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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범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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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과하는 표면과 체험을 구축하는 형식



회한은 시간과 관련한다. 그것은 지금이 아닌 다른 때에 대한 상상이거나, 지금, 이 순간을 향한 절대적인 거리 두기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회적 죽음이라는 숙명으로 인해 시간 안에서 언제나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필연이며 그리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을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태초의 이미지는 언제나 그와 같은 두려움과 관계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고 승리하기 위해 신화 혹은 종교라 불리던 허구는 예술의 형식과 융합하였고 삶이 관계 맺는 문화의 양식이 된다. 죽음을 내포하는 인간의 시간성과 존재론, 그리고 그것이 유구한 세월 동안 조형해 온 예술의 형식과 문화적 양식을 오늘날의 기술 매체에 뒤따르는 체험으로 구조화시키는 것이 김실비의 회한(regret) 3부작’1)의 핵심일 것이다.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다른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사리가 모셔진 탑과 그곳으로 향하는 동선만을 가져온 것이 <회한의 동산> 전시 구조였다면,2) <회한의 소굴>에서 우리는 상징과 도상, 제의가 뒤섞인 지상층의 삶의 시간을 지나 시신이 안치된 고인돌의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게 된다. 먼저 지상층부터 살펴보자. 쇼윈도를 통해 전시장 바깥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실재계 길목의 제단>에 등장하는 손은 물을 떠 놓고 달의 표면을 향한 정성스러운 기도를 연기하는 한편, 화면(그리고 화면에 드러난 우주와 지구, )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긴 줄자를 접었다 펴는 행위를 반복한다. 지상층 전시장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다국적 기업의 로고나 유대인을 의미하는 별 등 수종의 상징이 콜라주 된 도형으로, 자본주의의 수열적 생산 체계를 암시하는 듯 반복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프린트되어 있다. <공염불>은 이 프린트 위에 설치된 단 채널 영상 작업으로, 텍스트와 함께 초록색 화면 위에 고인돌과 관련된 기록 푸티지들을 병치한다.





 <실재계 길목의 제단> 2018 단채널 영상

4K HD 변환, 3D PLA 프린트

아크릴 자스티로폼 줄모조 금화 줄

전기 연장선, 9:16 241초 가변 크기

 



지상층 전시장의 밝음을 뒤로 하고, 지하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마치 길 안내를 해주듯 한쪽 다리가 기이하게 긴 <고인돌 2>가 놓여 있다.  <고인돌> 조형물은 지상과 지하 전시장 안에서도 우리를 맞이한다. 10여 분 가량의 단 채널 영상 <빈 무덤>은 이 전시의 메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업의 흥미로운 부분은 끊임없이 표면에 천착하려는 시도에 있다. 김실비의 이전 작업이 디지털 이미지의 구조적 규칙을 다루는 것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업에서 그가 집중하는 것은 디지털 문화가 조건 짓는 이미지의 표면 그 자체인 것 같다. 3D 모델링 된 스톤헨지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기 위해 스크린을 조작하는 손가락, 이끼가 낀 고인돌을 클로즈업하여 천천히 훑어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결국 우리의 기술 문명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표면일 뿐임을 암시한다. 


두 손이 쉽게 뭉치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초록색의 모래로 고인돌을 쌓아 올리고자 할 때, 그 재료의 질감은 불현듯 합성된 이미지로 대체되고 손은 그 편편함 위에서 무용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영상의 도입부에서 등장하는 회전하는 3D 조형물의 표면은 <고인돌> 시리즈의 표면과 상통하는데, <고인돌>의 조야함과 기묘한 색감, 그리고 미끈한 표면의 질감은 디지털 이미지의 표면이 육화되었을 때의 그로테스크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마도 <회한의 동산>에서 뱀이라는 도상의 표면을 여러 기술 매체를 사용하여 강조하듯 보여주었던 것과 이어질 것이다. 다른 한편 대조되는 표면은 <회한의 소굴> <회한의 사당>에서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열네 개의 <문지기>. 투명한 합성수지(PET)에 프린트되어 커튼처럼 설치된 인물들의 출처는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에 틈입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는 인쇄물에서 발췌되었다고 한다. 


인물의 형상에는 잠재된 내러티브가 없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이미지를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 투명함을 관통하여 다다르는 곳은, 언제나 이 <문지기>들과 중첩된 거울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표면의 결집과 체험의 구조는 결국 그 표면들과 중첩되거나 병치된 거울의 표면에 비친 관객으로 수렴된다는 듯이 말이다. 회한이라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언제나 부재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하지 못함에 대한 자책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역사가 나아가게끔 추동했는지도 모른다. 망각과 이상향으로의 발전에 대한 열망이 교차하는 역사 말이다. 오늘날의 생산 양식과 지배적인 문화적 규칙이 표면에 대한 지각을 강조하고 깊이로서의 시간을 거세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를 어떠한 역사로 추동할 것인가? 

 

 [각주]

1) ‘회한 3부작 <회한의 동산> (2018, 신도문화공간), <회한의 소굴>(2018, 합정지구), 그리고 <헬로!아티스트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 가공할 헛소리>에서 전시한 <회한의 사당>(2018)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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