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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정현

2018.4.10 – 2018.5.22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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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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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축된 시간, 확산하는 에너지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의 곧게 자라는 나무들 사이에 선 그의 작품은 자연 일부처럼,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나무들 사이에 선 나무, 침목으로 만들어진 형태는 누구에게나 인간을 연상시켰고, 그것은 부드러운 자연에 비해 엄청나게 강인한 어떤 힘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그 군상의 일부가 설치된 미술관 전시실을 지나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기름 냄새와 표면의 상처들이었다. 그것은 물질의 성격을 바꾸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했는데, 나무가 쇠와 같은 색과 단단함을 얻는 단련의 과정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삶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낭만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조각가 정현은 힘, 에너지의 방향과 존재 방식에 대한 연구를 해온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초기의 뼈대를 드러낸 인물상에서부터 각목으로 석고를 두들겨 만든 인간 형태나 강한 팔의 움직임에 의해 나타난 동양화의 비백과 같은 공간이 존재하는 그의 드로잉 등 어디에서나 힘의 균형과 그에 의한 에너지의 파장을 발견한다. 몇 해 전의 전시에서 쇠를 부수는 쇠공을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도 다른 물질에 맞서는 물질이 가능하게 하는 그 힘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었다. 침목과 전신주, 돌멩이를 떠낸 작업에서는 분명 상승, 분출하는 힘의 양성으로서 수직성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깨진 아스팔트를 바닥에 늘어놓은 작품조차 바닥의 수평적인 성격보다는 솟아난 물질의 양감에 눈길이 머물렀었다.  

 

금호미술관에 들어서 처음 만난 것은 푹푹 찌는 더위 속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던 장마철 그의 작업실 바닥에 놓여 있던 커다란 대들보였다. 향교에서 가져온 것을 목재소에서 발견한 뒤로 그대로 가져왔다는 그 엄청난 크기의 대들보는 단청도 지우지 않고, 심지어 반창고처럼 붙어있던 청테이프도 떼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길고도 큰 대들보 위에는 구멍 뚫리고 삭아져 가는 곳에 마치 거기서 자라나는 것처럼 검은빛의 침목들이 박혀 있다. 침목은 아래에, 대들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수평재들이다. 이들이 만나는 방식은 위아래의 위치가 바뀐 수평과 수직이다. 세월이라는 대들보를 뚫고 올라가는 단련의 시간으로서 침목은 고래의 숨처럼, 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용오름처럼 보이기도 해서 대들보라는 건축 부재에서부터 이 크고도 장한 나무를 자연으로 회귀시킨다.  

 

오랫동안 작업실이 위치하던 동네가 수용되면서 찢겨나간 근처 집들에서 나온 잔해를 그는 작업장에 들였고 다시 전시실로 옮겼다. 그 폐자재가 들고난 사이에 일어난 사건은 구축과 재구성이다. 그는 포크레인으로 찢긴 건축의 부재들이었던 나무토막들을 기름 먹이고 검게 만들었다. 전시장에 쌓아 올려진 이들 나무토막들은 못이나 나사를 가슴에 안은 채였다. 마치 마을 입구에 선 돌무지처럼 견고하고도 장엄한 장면이었지만 그 예리한 단면들이 찰과상을 넘어선 상처처럼 공간을 찢고 지난다. 바닥에 흰 캔버스 위를 타고 흐르는 나무토막들도 어느 위치에서는 바닷물에 흔들리는 배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처음 보이는 신작들은 버려지는 폐자재를 이용한 이유를 드러내듯이 바닥에 뉘인 경우가 많다. 우연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설치방식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꿈틀대는 몸짓을 담고 있다. 하잘것없는 것에 대한 경의. 그것은 솟아오르는 힘보다 강한 요동이며, 강렬한 생명 에너지의 현상화이다. 엄청나게 커다란 화면은 괴석에 난초라는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푸른 줄기는 분명 대파를 연상시켜서 괜한 웃음을 흘리게 한다. 윗대를 잘라도 잘라도 자라나는 그 생명에 대한 은유, 점잖은 것을 비트는 해학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대단한 것들에 대한 찬사가 아니던가.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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