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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홍이현숙
Hong-Lee HyunSook

홍이현숙의 수행일기

“1980년에 대학을 졸업한 내가 지상에서 작업실을 갖게 된 지는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집, 거실, 베란다, 남의 작업실, 공장 등 공간이 주어지면 어디서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저쪽 너머 어디쯤에 나만의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곳이 먼 우주의 어떤 별쯤이려니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금성이었다. 금성은 흔히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자주 보여 샛별이라고 부르는데, 저녁에는 서쪽 하늘에서 도 볼 수 있다. 난 그곳에 있는 시간이 정말 좋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는 건 아니다. 나는 거의 매일 새벽, 그곳에 가고 오는 것을 반복한다. 이 왕복달리기로, 나는 내 몸으로, 지구와 금성 사이, 그 허공에 수많은 선을 긋는다. 그것이 나의 어떤 ‘리듬’인 것 같다.” (홍이현숙, 『금성까지 왕복달리기』 ‘여는 글’ 중에서)
● 박수진 2018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감독 ● 사진 서지연

'비닐 장판 바닥에서의 항해' 2008 비닐 바닥재, 채소화분 2250×360×2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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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8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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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자


홍이현숙은 조각·설치에서부터 퍼포먼스, 영상미디어, 공공미술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전시장은 물론 도심 한복판, 개천, 강가, 철거촌 등 지붕이 없는 곳, 허공과 가상 등 장소도 가리지 않으며, 작가, 미술가, 활동가, 기획자 등 다양한 역할로 변신하면서, 거칠 것 없이 작업을 수행해온 전 방위 예술가다.홍이현숙은 예술가로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을 “수행하는 자”라 규정한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작업을 시작하던 시기, 아내며 엄마이며 동시에 작가로서 작업을 시작하는 젊은 여성작가의 시간은 마치 도를 닦기 위해 고된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행자(行者)’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가 매일 새벽 금성까지 왕복달리기를 하고,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사자가 되기도 하며, 자기 신체 안에 존재하는 단세포의 신체기억부터 수많은 생명체들과 공유하는 신체기억들을 들여다본다. 다른 신체가 되는 수련을 통해서 자기 안의 낯선 것들과 관계 맺고 공생하는 방법을 수행한다. 이렇게 상상하고 변신하면서 30여년의 긴 시간을 성실하게 수행해온 그는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수행의 내공은 다양한 술수로써 펼쳐진다.



 

〈폐경의례〉 2012 골방 설치 작업, 복합문화 공간 에무





애도, 은닉된 에너지, 사라지는 것들


다양한 매체와 역할을 넘나드는 작가지만, 홍이현숙의 주제만큼은 초기 작업에서부터 다뤘던 것들이 계속해서 진화돼왔다. 그가 다루는 첫 번째 주제는 ‘애도’와 ‘의례’이다. 첫 개인전에서의 버드나무에 대한 애도(<홍현숙의 은닉된 에너지전>, 일갤러리, 1988), 작가로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조각가 전국광의 죽음에 대한 애도(<아직 못다 한 애도>, 1990),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옷들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은닉된 에너지전 : 벗어놓은 옷들>,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5)을 보여준다. 그에게 애도와 의식(儀式)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이웃 언니의 죽음에,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형제의 죽음에 애도의 표시로 손가락을 자르기도 한다면서, 삭발을 통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례(<물주기>, 2005)를 치른다


몽골의 남고비 초원에서는 찰나생멸하는 것들을 애도하며 인간 신체가 하나의 돌이 된 듯 의례(<무빙 어워(Moving Ovoo)>, 2011)를 한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무덤을 돌면서 그녀의 질곡진 삶에 <조촐한 추모>(2017)를 한다. 이런 애도와 의식은 자신의 완경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폐경이 어떤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문이 열리는 것으로 보고, 그 경계의 담을 뛰어넘는다(<폐경의례>, 복합문화공간 에무, 2012). 이처럼 그는 은닉된 에너지들을 밖으로 드러내고 풀어냄으로써 마치 살풀이 한 판을 하듯 의례를 치루며 응어리진 에너지들이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 한 끝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중년의 여자가 남고비 사막, 도심 한복판, 철거지역 등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4개의 기둥과 12개의 창문〉 2009 

1.5톤의 옷옥수수씨앗, Stiftelsen 3,14갤러리노르웨이베르겐 




그녀의 몸, 그녀의 방, 우주에 접속


홍이현숙의 작품에서 신체는 중요한 주제이다. 그의 작품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미지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중년의 여성, 그의 신체’일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또 어디에도 있는 중년의 여자는 <풀과 털>(대안공간 풀, 2005)에 이어 <비니루방>(관훈갤러리, 2006)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때때로 집이라는 공간은 거의 내 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는데, 작품 속 중년의 여성은 작가일 수도, 그의 친구, 이웃일 수도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들의 일상은 비디오 속 에어로빅 체조를 따라 움직이는 신체로, 겨드랑이에서 털이 날개처럼 난 신체로, 비닐장판을 온몸에 감고 방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복해서 구르는 ‘비니루방’이 된 신체로 보여준다. 


방과 집이 된 듯 내 안의 공간에 갇혔던 중년 여성들은 ‘꽃무늬 원피스’를 전투복처럼 입고 집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모두 떠난 철거촌을 서성거리고(<북가좌동 엘레지>, 2009) 광화문에서 헤매며(<다른 풍경-‘광화문에서 길을 잃다’>, 2011) 청와대 앞 건널목에서 춤을 춘다(<피케팅>, 2017). 그녀의 신체는 개인의 것에서 사회에, 사물에, 자연에, 우주에 접속한다. 자신의 체온을 주변의 것들과 나눈다. 매일 금성까지 왕복 달리기를 하고 신체 변신술을 수련하던 그녀는 공중부양을 수련하고 축지를 수련하며 또 다른 경계(<폐경의례>)를 넘는다. 그렇게 수행했던 내공은 오랫동안 폐쇄됐던 매봉산과 석유비축기지 건물의 표면 구석구석을 자신의 신체로 닦으며(<Momen-tum of the Tank>, 2017) 또 다른 종들과 반려하며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바람의 주문(呪文) 2008 

비닐봉지광안리 해변부산 ‘2008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낯선 것들과 이웃되기


홍이현숙의 공공미술 작업들은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의 총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해온 모든 작품이 공공미술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언제나 외부와, 이웃과, 낯선 것들과의 관계 맺기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아닌 것들과의 공생, 경계를 허물어 공존하고 공공성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작업과 삶에서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공에까지 관계의 선분을 긋는 그이니 말이다. 그래서 전시장의 작품들은 항상 전시장 밖으로 나왔고, 어느 순간 전시장이 안이든 밖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가 있는 곳은 항상 현장이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항상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생각을 행동으로 수행한다. 전시장에 켜켜이 쌓아 올렸던 옷가지들은 국립극장 계단의 딱딱한 화강한 계단 사이사이로 들어가 켜켜이 곡선을 이루는 퇴적물이 되기도 하고, 광장의 틈과 골을 채우기도 하며, 광화문 지하철역에 옷의 기둥이 되기도 하며, 은닉된 에너지는 더 큰 에너지로 발산된다. 겹겹이 쌓이던 옷가지들은 적극적으로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과자 알맹이를 보호했던 껍질들이 과자 대신 육교를 포장하고, 통일전망대에서는 꼬리를 흔들며 변신한다. 버려진 비닐백은 바람의 주문을 담아 부산 광안리 해변을 채운다위의 작업들이 조형성이 강한 작업이라면, 일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적극적으로 공공성과 낯선 이웃과의 공생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특히 불광천 다리 아래에 모여 이방인처럼 장기와 바둑을 두던 중년의 남성들과 함께했던 ‘장기방 프로젝트’(<불광천에 물 오르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서울시 도시갤러리의 ‘개천 프로젝트’, 2007)는 공동체 테두리에서 빗겨나듯 주변을 돌던 이들에게 역할이 주어졌을 때, 그들의 변화와 어떻게 이웃이 되는가를 훌륭하게 실험했던 커뮤니티 프로젝트였다. 


나아가 ‘우리집에 왜 왔니, 연희동 볼테르’(2013)는 일종의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로 30대에서 60대까지 연희동 주변에 사는 여성들과 ‘집’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더욱더 내밀하게 마주한 작업이다. 홍이현숙이 그동안 다루었던 ‘꽃무늬 원피스의 언니들’이 이제 자신의 신체, 자신의 공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 이웃이 된다홍이현숙의 이웃은 사람만이 아니다. 그가 첫 개인전에서 버드나무와 체온을 나눴던 것에서부터 이후 갤러리에서 옷과 흙과 씨앗으로 밭을 만들고, 광화문에서 들깨를 심으며 자연의 정령을 불러내며 그들과 공동체가 되는 실험을 한다. 동시에 예술가들과 우정의 공동체를 부단히 실험하고 있다.     



 

<몸의 기록 01 2006 단채널 비디오 0203” 관훈갤러리




수행의 간격


그는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Ne-Maf 2017)’에서 특별전 작가로 선정되어 <홍이현숙 작가전X: 수행의 간격>전을 선보였다. 작가는 이 ‘간격’에 대해 작업과 수행 그 사이에 있는 ‘간격’을 의미하며, 수행과 일상생활과의 간격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수행의 간격’을 좁히고자 오늘도 금성을 왕복달리기를 하고 변신수행을 하며 낯선 것과 반려종이 되는 수행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홍이현숙의 일상은 그 자체가 수행이며 작업이며 그의 예술이다.  

 

 


홍이현숙




작가 홍이현숙은 1958년 경북 출생으로 조각을 전공했으나 현재는 설치와 영상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988년 일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연희자치회관인사동 육교오두산 통일 전망대 등에서 열린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공공미술여성미술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는 <가상의 딸>, <BAGGAGE LIMIT>전 등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2013년에는 그간의 작업노트를 『금성까지 왕복달리기』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하기도 했다작가 스스로 “딱딱한 것들 말랑하게 만들기수직적 권위에 틈내기지루하지 않게 살기유머를 남발하기경계 부수기아무 데서나 전시하기여럿이 같이 미술하기를 지향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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