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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0, May 2018

큐레이팅 방법론

Curating Methodology

‘큐레이팅’이란 주제어를 두고 ‘무엇을’이나 ‘왜’를 묻는 자리는 꽤 많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를 묻기로 했다. 방법론이란 문자 그대로 방법과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작가를 선정하고, 작품을 선별해 내보이는 기본적인 방식에서 나아가 미술을 매개로 담론을 형성하고 그것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실천들이 모여 지금까지 큐레이팅의 역사를 써왔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책, 퍼포먼스, 워크숍 등 전시보다 ‘프로젝트’라는 명칭에 익숙해질 만큼 기획자들의 영역은 창작, 저술, 편집 등으로 넓어진 지 오래다.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나 루시 R. 리파드(Lucy R. Lippard),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후 한루(Hou Hanru)부터 지난 9번째 ‘베를린 비엔날레(9th Berlin Biennale)’에서 디지털 제조건과 모순을 파헤친 발칙한 전시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콜렉티브 DIS까지 많은 기획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의 근거지를 벗어나 개념적인 구조를 변경하고 있다. 지금부터 당신이 읽게 될 것은 규모에 상관없이 전시 방식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관습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들을 주목한 ‘방법의 이야기’다.
● 기획 편집부 ● 진행 이가진 기자

2015 베니스 비엔날레 'Sala Chini' 사진 G.주키아티(G. Zucchi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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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큐레이터,김주원 미학,김성우 큐레이터,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심소미 큐레이터,양지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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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전문성과 접근 가능성을 향한 리서치와 큐레이팅_이숙경

 

SPECIAL FEATURE Ⅱ

큐레이팅 방법론 : 독립 vs 그룹_김주원

 

SPECIAL FEATURE Ⅲ

4인의 큐레이터, 4권의 책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_김성우

Harald Szeemann : Individual Methodology_ 김해주

『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_심소미

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_양지윤




조세핀 프라이드(Josephine Pryde) Vordergrund: 

<The New Media Express> 2014 Electrical components,

 batteries, powder-coated steel, paint, MDF, vinyl Courtesy 

Josephine Pryde; Galerie Neu, Berlin  Hintergrund: 

<Hands ,,Für mich"> 2014-2016 C-Prints C-type prints, 

glicée prints Courtesy Josephine Pryde; Galerie Neu,

 Berlin Installation view Photo: Timo Ohler





Special feature 

전문성과 접근 가능성을 향한 리서치와 큐레이팅

● 이숙경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수석 리서치 큐레이터

 


큐레이터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아카이브 등 컬렉션을 보유한 문화 기관의 전문가를 지칭해왔다. 라틴어 ‘cura’에 바탕을 둔 어원이 지칭하듯이, 큐레이터는 어떤 대상물을 ‘보살피는’ 사람을 의미하면서 특정 컬렉션의 내용적 전문가를 뜻하는 용어로 등장하였다. 영국에서는 ‘keeper’라는 용어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큐레이터를 뜻하는 전통이 생긴 것도, 컬렉션의 보존과 연구에 관련된 큐레이터의 역할을 중시하는 맥락 때문이었다. 컬렉션의 대상을 선택하고 이에 대해 연구하며 전시와 출판을 통해 이를 관람객과 공유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주된 활동으로 인식되었고, 기관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시대, 지역, 학제, 매체에 따른 전문 영역이 분화되기도 하였다. 


미술관의 전성시대라고 할만한 20세기에 접어들어 박물관과 미술관의 종류와 역할이 다양해 지면서 큐레이터의 역할과 의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특히 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들의 성장은 전시와 관련된 큐레이터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말과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컬렉션 없이 전시만으로 운영되는 ‘쿤스트할레’ 모델의 미술관들이 등장하고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기관에 묶이는 대신 특정 도시에서 한시적으로 개최되는 비엔날레 형식의 메가 전시가 세계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전시 기획, 문화 행정, 네트워크 개발 등의 확장된 분야로 그 중요성이 이동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컬렉션을 물리적으로 보존하고 그 고고학적, 미술사적 의의를 연구하던 초기 큐레이터 개념과 비교할 때, 기획력과 실천력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큐레이터 개념은 미술 자체의 변화만큼이나 큰 시대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 또한 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등으로부터 문화학, 시각문화, 큐레이팅 전문 과정 등으로 확장되었고, 더 이상 하나의 전문분야가 큐레이팅의 유일한 학습 과정으로 인식되지는 않고 있다. 





Exhibition views of <MIRALDA MADEINUSA> 

at MACBA 2016-2017 사진: 미켈 콜(Miquel Coll)  

 




1990년대 이래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아티스트-큐레이터’는 이런 변화의 폭을 더욱 심화시키는 모델이 되었다. 1989년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동료 아티스트들과 함께 선보인 <프리즈(Freeze)>전은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의 틀을 벗어나 미술가들 스스로 자신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최근 몇 년간은 상파울루, 요코하마, 코치 등 비엔날레 형식의 전시들도 미술가들을 예술 감독으로 선정하여 새로운 방식의 큐레이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식 대신 경험, 전문성 대신 다학제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큐레이팅 풍토는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함께 또 하나의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시라는 물리적 공간의 산물 대신 온라인 환경 내의 산물을 고민하는 오늘날, 관람객이라는 개념 또한 가상의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확장하며, 이들이 경험하는 미술의 형식과 내용 또한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개념은 이와 같이 나날이 다양화되고 미술과 시대의 변화에 민감히 대응하지만, 컬렉션과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큐레이터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그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 컬렉션을 보존, 발전시키고, 전시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미술가들과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문성’이 여전히 큐레이터의 중심적 자질임을 의미한다. 리서치에 바탕을 둔 큐레이팅이라는 개념은 이런 의미에서 모든 큐레이터에게 해당하는 개념인데, 리서치의 범주와 폭은 물론 경우에 따라 다양하고, 리서치 자체가 얼마만큼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는지도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달리 결정된다.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 

<The Source> at Liverpool Biennial 

2012 Curated by Sook-Kyung Le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제공: 이숙경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들에게 있어 자신의 컬렉션을 연구하고 이의 발전 방향을 수립하는 것은 기본적인 역할이다. 컬렉션에 포함될 새로운 작품들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이 컬렉션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이 전략은 미술사에 대한 이해와 미래의 미술관이 어떤 모습의 컬렉션을 보유해야 할지에 대한 문화사적, 시민 사회적 입장을 통해 도출된다. 개별 미술가에 대한 연구와 특정 작품에 대한 분석적 연구가 전략의 연장 선상에서 상세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작품의 시장 가치에 대한 연구, 매매자와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과 네고시에이션(negotiation)이 이를 뒤따른다. 일단 작품이 컬렉션에 포함된 이후에는 이것이 기존의 컬렉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이를 어떤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리서치가 이루어지며, 이 작품 이후에는 어떤 작품들이 컬렉션에 포함되어야 할지에 대한 연동적 리서치가 다시 시작된다. 


테이트(Tate)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미술관은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들을 다시 매매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컬렉션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이 큐레이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매의 단계에서 작품이 미술사의 장기적 검토를 이겨낼지에 대해 고민함과 동시에 기존 컬렉션 작품들을 구입 당시의 시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컬렉션 전시를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삼는 테이트 같은 미술관의 큐레이터에게 필수적인 역할이다. 미술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현대미술의 국제적 동향에 대한 분석과 예측 능력은,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큐레이팅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미술시장의 역할이 전폭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오늘날, 마켓 가치와 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전문적 비교 능력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주의가 확산되는 현실은 전문성과 원초적인 향유 사이의 균형에 대한 리서치를 요구한다.





Symposium: Gender in Chinese Contemporary Art 

at Tate Modern February 2018  

Jacob Perlmutter Photo:  Tate Research Centre: Asia  





기획전시를 비롯하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리서치는 큐레이팅의 시작점이다. 한 미술가의 개인전이든 주제를 지닌 그룹전이든, 전시의 개념을 설정하고 큐레이팅의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리서치가 필수적이다. 통상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여겨지는 미술가의 개인전을 예로 들더라도, 이 미술가 작업의 어느 부분을 중심 대상으로 삼을지, 이전 전시들과 구별되는 이 전시만의 특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오늘날의 변화하는 관람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테마로 설정할 것인지 등, 리서치를 통해 추출해 내야할 답들이 무수하다. 미술사적 의미에서 발굴의 대상이라고 할 만한 미술가의 개인전인 경우, 이 전시의 의도와 명분 자체를 규명하기 위한 리서치가 수년 간에 걸쳐 진행되곤 한다. 주제전인 경우 큐레이터의 에디터 적인 역할은 더욱 커지며, 내러티브의 구축뿐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시 방법론 측면에서도 연구할 부분이 많아진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때, 한 미술관의 연속적 프로그램, 한 시대 단면의 일부로서의 역할, 특정 지역과 문화적 맥락과의 연관 등, 전시 프로그램이 창출하는 거대 담론은 또다시 미술사와 문화사의 일부가 되어 미래 큐레이터들의 리서치 대상이 된다. 


전시 같은 프로그램의 창출뿐 아니라 리서치는 미술 담론의 창출과 교환에서도 중요한 시작점을 이룬다. 강연, 심포지엄, 세미나 같은 담론적 행사는 물론이거니와 물리적인 출판물, 온라인 텍스트, 전시 공간 안에서의 해석 텍스트, 보도 자료 등 큐레이터가 생산하는 다양한 기능의 텍스트와 메시지는 리서치 없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미술사적으로 탄탄한 도록 기고문과 전문가들과 경쟁 가능한 심포지엄 발표문으로부터,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 텍스트 및 휴대폰 화면에서도 쉽게 소화되는 한 줄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수준과 기능을 달리하는 각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본연의 임무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문화에 대한 통찰적 이해가 동시에 확보되어야 하며, 이는 자신의 전문 분야뿐 아니라 동시대 문화와 사회 변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는 큐레이터의 태도를 통해 얻어진다.





리우 지엔화(Liu Jianhua) <Regular/ Fragile> 

2007 Oxborough Hall (National Trust) Curated by

 Sook-Kyung Lee Courtesy of the artist  





독립 큐레이터의 경우에도 리서치는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완료, 그 이후의 레거시 성립에 이르기까지 큐레이팅의 바탕을 이룬다. 현대미술의 흐름과 세계 전역의 미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성공적으로 독립 큐레이터의 입지를 확보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면모다. 소속 미술관의 제도적 보호가 없는 대신 기관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독립 큐레이터들은 보다 자율적이고 비규범적인 리서치를 빠른 속도로 전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기도 한다. 비엔날레형 대규모 전시 또한 예술 감독의 집중적이고 상대적으로 빠른 리서치와 실현 능력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이런 독립 큐레이팅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추상적인 리서치 활동이 구체적인 미술가와 작품 선정, 시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 흥미로운 전시 디자인,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전시 프로젝트로 진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리서치와 실현 능력을 포괄적으로 겸비한 큐레이터가 요구되는 것이다.


미술관의 컬렉션과 프로그램, 독립 프로젝트, 비엔날레형 전시 행사 등 큐레이팅의 결과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상됨에도 불구하고, 리서치는 이런 다양한 큐레이팅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다. 반면, 큐레이터의 숫자나 컬렉션 면에서 규모가 큰 미술관들은 독립적인 리서치 부서 혹은 리서치 센터를 운영하기도 하며, ‘테이트 리서치 센터(Tate Research Centre)’는 이런 예 중의 하나다. 성공적인 큐레이팅이 언제나 리서치를 바탕으로 하듯이, 성공적인 리서치는 미술관 프로그램의 필수적인 일부가 될 때 가장 이상적으로 기능한다. 대학을 비롯한 연구 기관의 리서치 센터와는 달리, 미술관의 리서치 센터는 미술관의 모든 활동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전시를 포함한 프로그램을 통해 표상화될 때 비로소 그 기능을 실현한다고 볼 수 있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과 온라인을 통해 접속하는 관람객 전체를 상대로 하는 이런 리서치 센터는, 미술사적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반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과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접근 가능성과 전문성이 서로를 보충해 줄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은, 리서치를 통한 큐레이팅과 프로그램으로 표상되는 리서치가 공존할 때 가능하다.  

 


글쓴이 이숙경은 영국 테이트 모던의 수석 리서치 큐레이터로 테이트의 아시아 근현대 미술 연구와 컬렉션 전략을 이끌고 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영국 테이트 리버풀의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를 역임하였다. 백남준, 문경원 & 전준호, 리 밍웨이, 류 지엔화, 더그 에이트킨, 줄리언 오피 등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였고 2012년 리버풀 비엔날레를 공동 기획하였다.

 




<Curating Degree Zero Archive> 

at the Media and Information Centre(MIZ) 

at the Zurich University of the Arts(ZHdK)





Special feature Ⅱ

큐레이팅 방법론: 독립 vs 그룹

● 김주원 미학



온전히 ‘전시’ 자체로 관심을 돌린 ‘독립 큐레이터’의 등장은 ‘미술관’ 내지 ‘큐레이터’ 개념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시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작가주의 전시’라 불리는 스타 (독립)큐레이터들의 기획들이 미술관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큐레이터, 큐레이팅의 개념과 원리를 변화, 확장시켰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의 기획 전시들은 일정부분 ‘미술관/큐레이터’에 반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미술관/큐레이터’를 반대했다기보다는 정치적 및 경제적 기대에 의해 기가 꺾이고 제약을 받기 일쑤인 데다가 힘센 위원회 등과 씨름을 해야 하는 ‘제도(기관)’ 자체로부터의 탈출이었을 것이다. 


큐레이터 실무의 변천, 발전, 확장 등이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던 서구와는 달리, 그 역사가 짧고 그 계통학에 대한 풍부한 기록도 모자라는 우리의 경우, 큐레이팅 분야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 세계 미술지형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미술문화를 고려한다면 한두 명의 몇몇 대표 주자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이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처럼 자극을 줄 만한 인물의 부재라기보다는 더욱 실험적이고 인격화된 큐레이팅 개념의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일정한’ 조건들이 결여되어서일 수 있다. 



미술관/큐레이터의 딜레마와 독립큐레이터


ICOM에서 규정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미술품의 수집, 조사, 연구, 전시, 교육이라고 할 때, 이 모든 업무를 가능하게 할 관료적 행정업무엔 괄호가 처져 있다. 수집과 전시, 교육 등 업무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전문성을 확보하는 근래의 미술관 현실과는 달리 그것들 모두에 포괄적으로 집중해야 했던 1960년대 후반 유럽의 미술관 문화는 새로운 큐레이팅 패러다임으로서의 ‘독립 큐레이터(independent curator)’의 등장을 독려했다. 그 시작에 하랄드 제만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하랄드 제만의 신화는 그의 1969년 전시 <당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 : 태도가 형식이 될 때(Live in Your Head: When Attitudes Become Form(Works-Concepts-Processes -Situations-Information)>(이하 <태도>전, 1969)에서 기인한다. 스위스 베른 쿤스트할레(Kunsthalle Bern)를 시작으로 독일 에센과 크레팰드, 영국 런던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Lodon)까지 유럽 3개국, 4개 도시를 돌며 순회 전시되었다. 전시 자체의 미학적 의미와 출품된 작품들 개개의 미술사적 문제는 차치하고, 제만이 전시를 통해 전면화한 미술의 자유와 비평적 논쟁의 새로운 계기는 미술관 관례의 와해와 매체의 붕괴를 의미했으며,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드윈 로세노(Edwin Roseno) 

<Green Hypermarket> 2 전시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젊은 작가들 약 69명이 참여하였던 <태도>전은 모든 작품의 형식과 재료, 전시 방식의 관습, 그 경계를 없앴던 전시였다. 미술관이 지니고 있던 위상에 손상을 가하는 듯한 파격적 새로움에 놀란 대중들은 냉담했다. 건물 철거용 쇳덩이를 매달고 미술관 밖 도로를 파헤치며 도로를 파헤친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작업이나 미술관 내 공중에서 실제 타는 불을 끊임없이 전시했던 질베르토 조리오(Gilberto Zorio)의 작업 등은 대중을 가장 격분하게 했고 시 당국과의 극심한 마찰도 야기했다. 미술관 관례의 와해라는 문제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가 괄호 속에 담고 있는 재정적 지원 주체인 시 당국과 비전문가인 시민대중들의 평가와 대치되는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베른의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뿐이었다”는 당시 언론의 논평만으로도 하랄드 제만이 시도한 미학적 실험은 역설적이지만 현대미술 지형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1960년대 후반의 사회, 정치, 미학적 분위기는 아방가르드를 옹호하고 실천하던 시대지 않는가!  한편, 제만은 <태도>전 이전부터 스위스 미술가들의 전시가 충분치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쿤스트할레의 위원회에 대한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제만은 관행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이 시간과 내용의 구성상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혼자 여행하며 여러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식으로 작가들을 선정하였는데, 이에 관한 위원회의 반발 역시 거셌다. 


위원회는 여지없이 <태도>전에 외국 출신의 작가가 다수 포함된 것을 비난하면서 예정되어 있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등의 개인전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시 당국과 미술관 위원회, 후원사 등과의 원활한 관계는 ‘전시’ 이외에 미술관/큐레이터가 해야 하는 ‘수집’, ‘조사’, ‘연구’, ‘교육’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제만은 1969년 9월을 기점으로 쿤스트할레 베른의 관장직을 사임하였다. 독립을 선언한 제만은 ‘정신적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에이전시(Agentur für Geistige Gastarbeit)’를 설립하였으며, 자신을 ‘전시 제작자(Ausstellungsmacher)’로 불렀다. ‘전시 제작자’라는 용어로 제만이 자신을 지칭한 것은 소장품을 연구, 관리, 수집, 전시하고 관료적 행정 업무까지 수행하며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술관/큐레이터들과는 구별되길 원했으며, 그것은 결국 온전히 ‘전시’에만 집중하는 ‘큐레이터’의 등장을 강조한 것이다. 제만과 같은 미술관/큐레이터들의 현실적인 딜레마는, 독립큐레이터라는 새로운 큐레이터 유형이 탄생하는 계기를 일정 부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아그니에슈카 폴스카(Agnieszka Polska)

 <New Sun> HD video, 13 min., 2017 

(film still). Courtesy of Zak Branicka 

Berlin and Overduin & Co., Los Angeles





큐레이터의 딜레마 이후


제만의 <태도>전부터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독립 큐레이터들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후 한루(Hou Hanru),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들의 전시는, 큐레이터의 저자성이 강조되는 이른바 ‘작가주의적 전시’로 평가된다. 이는 미술관의 전통적인 개별 작품에 대한 온전한 설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전시를 하나의 작품처럼 제시하는 방식을 말하는 데, 이는 큐레이터가 가지고 있던 이차적인 저자됨(authorship)이 작가의 일차적인 저자됨을 대신하거나 공동 저자가 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독립큐레이터들의 이같은 ‘작가주의적 전시’의 특성이 일차적인 저자인 작가를 소외시키면서 자신의 전시 맥락을 구성하고 큐레이터의 저자됨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더니즘 미학에 저항하는 전시였던 <태도>전은 큐레이터의 저자성이 강조되면서 ‘작가주의적 전시’의 전설 혹은 선언처럼 거론되면서 모더니즘 미학을 옹호하는 모습이 되었다. 예컨대, <태도>전이 참여 작가 면면과 작품에 관한 비평적 진술과 결부된 미술사적 기술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만 해도 미술사적 기술 이전에 ‘전시’로서의 아방가르드적 의미를 먼저 떠올린다. 적어도 현대미술의 지평에서 <태도>전은 하랄드 제만의 전시로서 기록되었다. 


참여 작가였던 요셉 보이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에바 헤세(Eva Hesse) 등의 69명의 작가가 섭섭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엄존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실제적 모순은 ‘큐레이팅’의 역할과 방식에 관한 논의를 재촉했으며 새로운 방식의 비전을 모색하게 하였다. 공동의 실천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는 전지구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인 2000년대를 전후하여 등장하였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사용이나 ‘저자됨’의 억제와 이로 인한 ‘저자의 죽음’ 이후 미술지형은 물론 큐레이팅 방법론에 관한 새로운 모색을 재촉하였다. 이는 지난 세기 미술 지형의 주요한 작동 원리였던 창조적 ‘개인’의 신화 자리에 창조적 ‘협업’의 중요성이 대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다양한 학문 간의 촉매적 역할을 하는 ‘상호학제적 전시’라는 새로운 유형의 전시방법론도 부추겼고 1인 큐레이터에서 2인 이상의 콜렉티브라는 큐레이팅 방법론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실리아 에렌스(Cilia Erens) 

<workshop at the Netherlands Film Academy> 

Amsterdam, 2015  Cilia Erens





하랄드 제만(1997), 장 위베르 마르탱((Jean Hubert Martin)(2000) 등의 독립 큐레이터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해 왔던 ‘리옹비엔날레(La biennale de Lyon)’는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큐레이터의 ‘저자됨’, 즉 그 이름이 간판이 되거나 중심과 주변이 이분되는 현상을 문제시하며 전략적으로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를 시도하였다. 2001년에는 신세대 큐레이터와 평론가 등 다양한 전공의 전시기획자 7명을 커미셔너로 초청하였다. 이들은 미술뿐 아니라 영화, 사진, 무용, 음악, 연극, 문학, 게임 등을 아울렀다. 2003년에도 1인 큐레이터가 아닌 디종의 현대미술센터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의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 등의 기획단을 기획팀으로 초청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더욱 급진적인 형태의 공동 큐레이터 제도를 시도한 것은 2007년이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스테파니 므와동(Stéphanie Moisdon)을 큐레이터로 영입했고, 이들은 다시 ‘플레이어’ 개념으로 전 세계의 미술 현장에서 뛰는 49명의 큐레이터를 선정하면서 이들에게 작가를 1:1로 매칭하고 전시를 진행하는 파격적 실험을 감행했다. 새로운 세기의 예술 지형도를 그린다는 콘셉트의 이 전시는 그 방식에서 그야말로 과감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리옹비엔날레’의 이와 같은 파격적인 선택은 전 세계에 편재한 비엔날레의 상투성에 균열을 내려 하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독립 큐레이터들의 ‘작가주의적 전시’가 반복적으로 보이는 ‘전시 클리셰’에 대한 경계이기도 했다. 비엔날레 등의 국제적 대형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소개되고 전시되는 일종의 ‘전시 클리셰’는 이름 있는 독립 큐레이터들의 반복적 전시기획과 그로 인한 큐레이터들의 작가 취향의 반영이었다. 사실 이러한 ‘전시 클리셰’를 경계하는 것은 비엔날레 당국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비엔날레의 큐레이팅을 맡는 스타급 독립 큐레이터 역시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국가는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지만, 자신들이 기획한 전시들은 국제적인 행사였고 전 세계 모든 이가 관람객이 되는 셈이어서 동일한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역시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우체부의 시간(Il Tempo del Postino)>(2007)이 그것이다. 오브리스트와 파레노는 12명의 작가에게 전시 공간이 아닌 ‘15분의 시간’을 주고 무대에서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연출하게 했다. 오페라 공연 같은 이 전시는 작가들에게 작품을 설치할 공간 대신 시간을 분배해 주었던 전시였다. 즉 미술 고유의 특성인 ‘공간성’을 반미술적 성격인 ‘시간성’으로 대체시킨 이 전시는 일회성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전시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40회를 맞이한 2009년 ‘아트 바젤(Art Basel)’에서는 세 번 재공연이 되었고, 매튜 바니(Matthew Barney),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앙리 살라(Anri Sala)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주요 기획 전시가 실험적이고 참신한 이유는 자신만의 전시 스타일과 방법론의 클리셰를 경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Corderie Arsenale 2010> Photo: Giulio Squillacciotti

 Courtesy the Venice Biennale  3. Installation view of 

<Radical Women: Latin American Art, 1960-1985> 

at Brooklyn Museum (2018.4.13-7.22)





큐레이토리얼 방법론?


미술관/큐레이터, 독립큐레이터,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 각기 다른 전시 방법론 가운데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큐레이터의 딜레마’는 어떤 방법론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새로운 예술’에 대한 논의를 하던 제만은 “새로운 미술에 대한 극명한 답이 있다. 베른에서 사람들이 당시 무엇이 아방가르드냐고 물으면 난 ‘내겐 예술로 보이지만 당신들에겐 아직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존의 것과 다른 것, 비전문가들에겐 잘 이해될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새로운 미술의 필요충분조건은 경험이 아님을 역설한 제만의 언설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또다시 던지게 한다. ‘예술’ 그 ‘새로움’을 전제한 미술지형에서 ‘독립큐레이터’와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라는 큐레이토리얼 방법론들 역시 구분되거나 대치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향의 초점은 정말 무엇일까?  



글쓴이 김주원은 얼마전까지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냈다. 2003년부터 미술관 현대미술 분야 큐레이터로서 활동하면서, 한국과 일본 비서구권에서 서구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변용, 구성, 발전되고 소통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시와 연구를 병행해 왔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1945 이후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담론 연구 : 포스트식민, 국제주의,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은미술관 학예연구원, ()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 일본 CCA 기타큐슈(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t 기타큐슈) 초청 펠로우, 상명대학교 겸임교수,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했다.





Exhibition views of <MIRALDA MADEINUSA> 

at MACBA 2016-2017 사진: 미켈 콜(Miquel Coll)





Special feature 

4인의 큐레이터, 4권의 책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

폴 오닐(Paul ONeill), 믹 윌슨(Mick Wilson) Open Editions(London) & de Appel(Amsterdam) 2010 

● 김성우 아마도예술공간 책임큐레이터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 고민해야 하는 것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전시의 물리적 토대로서의 공간적인 것들에서 시작할 것이다. 말 그대로 공간을 세우는 벽과 바닥,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볼륨의 문제에서부터 화이트큐브라고 칭하며 어느 순간 갤러리의 보편적 기준이 되었던 공간의 중립적 성격, 또는 그 반대로 지난 수년 사이 서울의 새로운 미술 공간에서 종종 마주하는 환경이었던 표피가 벗겨진 폐허의 풍경 등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요소들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전시나 프로젝트, 이벤트에 특별한 인상을 부가하는 배경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조금 더 다가서면 작품을 비추는 빛과 조명의 문제에서부터 (가끔은 감각의 과잉으로까지 돌출하기도 하지만) 전시의 개념 안에서 작품에 (그리고 작품과 작품의 연결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하는 공간 디자인까지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개별 요소와 지점들은 통일된 감각을 향해 엮였다가도 흩어지고, 하나로 잡힐 듯하다가도 미끄러지길 거듭하며 의도한 감각의 충돌과 조화 속에 정해진 시공간에 구상했던 전시가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시()에 이미 설정되어있던 물리적 조건의 수용과 위반, 변주 위에서 우리(큐레이터)는 다양한 관계와 역할의 경계면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 이를테면 이미 큐레이터마다 전시 안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작가나 디자이너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거리를 조율하며 전시를 꾸려 나아가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특정 시점에서 전시를 완결, 확장, 지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 즉 관람객에 대한 고민 역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작가-큐레이터-비평가-디자이너 등의 연쇄적 대화와 실천의 과정인 전시에 관람객은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어떻게 그 대화에 동참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이다. 당연하고도 익숙한 얘기겠지만 큐레이팅은 단순히 작품을 디스플레이하는 행위가 아니며, 작가 그리고 ‘관람객’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비판적 의미를 생산, 발전시켜 나아가는 토론과 같다는 바나비 드래블(Barnaby Drabble)의 얘기처럼 말이다


폴 오닐(Paul ONeill)과 믹 윌슨(Mick Wilson)이 공동으로 에디팅한 큐레이팅 선집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은 큐레이팅과 교육의 상호관계 안에서 발생했던, 그리고 고민해 볼 만한 관련한 실천에 관한 글들을 싣고 있다. 이 둘은 동시대 큐레이팅의 특징으로서 ‘교육으로의 전환(turn to education)’을 지목한다. 그리고 교육적 포맷과 방법, 프로그램과 모델의 개발과 용어의 사용, 과정과 절차는 단지 큐레이팅의 영역에서 뿐만이 아닌 동시대 예술의 생산 전반에 걸친 비평적 프레임워크에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얘기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란 동시대의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들이 단순하게 교육을 테마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 큐레이팅 그 자체가 하나의 확장된 교육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과거 전시의 부가적 행사로 치부되었던 토론과 심포지엄, 교육 프로그램 등은 동시대 미술 전시, 특히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에 이르기까지 담론의 창안을 위한 예술 실천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적 생산은 교육과 리서치, 지식생산이나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틀지어지며 기존의 미술관 교육의 형태나 문화 교육 플랫폼과는 거리를 두며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동시대 큐레이팅의 실천 양상을 배경으로 큐레이터의 저자적 지위를 부정하는 동시에 과정으로부터 열린 결말을 담보하는 문화적 만남과 교환을 큐레이팅의 주요가치로 설정한다. 또한, 이와 같은 형태의 담론 생산은 전문가의 권위적 발언이나 거장의 숙련된 프로덕션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이어가는 비정형의 대화 과정과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질문과 그에 따른 연구의 공동생산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저자는 자신들의 논의를 가로지르는 서로 다른 관점과 태도를 지닌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 교육자의 글을 선별, 청탁, 편집함으로써 저자의 언어를 통해 최종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분산되었지만 현재 진행형의 실천과 대화가 만들어낸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자 한다. 


할애된 지면의 분량상 각 저자의 다양한 접근과 이해를 모두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테면 이릿 로고프(Irit Rogoff)는 자신이 가담했던 ‘교육’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전시와 교육의 범위 너머로 가능한 배움의 형태를 그려보고자 한다. 그리고 개인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잠재성’과 ‘현실화’에 주목함으로써 교육이 일어나는 공간과 활동의 확장을 꾀하기도 한다. 혹은 사이먼 셰이크(Simon Sheikh)는 안드레아 프레이저(Andrea Fraser)의 퍼포먼스를 경유한다. 그는 기관의 구성, 교육과 전시의 기능, 그리고 전시를 둘러싼 맥락 안에서 발생하는 위계적 관계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교육적 모델을 전시 생산과 동등한 전달의 방식으로 간주할 것, 그리고 새로운 교육적 모델의 개발을 통해 관람객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다수의 예술 이벤트가 그렇겠지만, 동시대의 큐레이팅과 교육의 복합적 결합에도 관람객이라는 대상은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애초에 생산자의 입장에서 대상이 부재하는 큐레이팅, 교육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대상을 어떻게 설정할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기서 대상의 설정이란 예술 정책과 경영의 측면에서 관람객의 연령이나 성별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술 안에서 랑시에르(Jacques Ranciere)가 말했던 것과 같이 모두가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춘 상태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며, 그래서 관람객을 창작자와 동일한 하나의 능동태이자 가능태로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관람객을 결과물에 동참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 동등한 위상에 설정한다는 것은 특정 큐레이팅으로부터 발생한 담론이 그들에 의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확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며, 그 영향력과 잠재성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 큐레이팅을 할 때 관람객을 어떠한 포지션에 위치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큐레이터가 특정 전시나 이벤트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지에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 전시에서 봐오던 예정된 성과에 저항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양상을 살피고, 전시에 주어진 시공간 이후/너머의 문제를 전시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글쓴이 김성우는 현재 아마도예술공간의 책임큐레이터로 공간의 기획 및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며, 12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다. HIAP(헬싱키)의 국제 큐레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였으며, <platform b.>(2015),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2016) 등을 기획하였다. 최근에는 장기적인 시점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엮일 수 있는 시리즈 형식의 개인전에 관심이 있으며, 자율성 아래 능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과 그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우성 개인전 <Quizás, Quizás, Quizás> 

2017 아마도예술공간 사진: 조준용





Special feature 

4인의 큐레이터, 4권의 책

Harald Szeemann : Individual Methodology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토비아 베졸라(Tobia Bezzola), 할 포스터(Hal Foster), 

-마크 푸앙소(Jean-Marc Poinsot) Le Magasin(Grenoble) & JRP|Ringier(Zurich) 2008

●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이 책이 나의 ‘큐레이팅 방법론에 영향을 미친 지침서’라는 질문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전시를 만들 때의 콘텐츠의 생산과 주제의 선정 방식, 작업의 과정에서 취하게 되는 입장들의 층위는 매번 다르고, 또한 계속 달라지고 있어서 무엇을 ‘큐레이팅의 방법론’으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단 하나의 책을 ‘지침’으로 선별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은 ‘큐레이팅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전시 만들기의 과정을 하나의 역사로 되돌아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던 어떤 시기의 결과물이라 이 특집 기획의 주제에 부합하리라 보았다이 책은 2006년 가을부터 2007년 여름까지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에꼴 뒤 마가장(lécole du Magasin)이라는 큐레이터 트레이닝 프로그램의 리서처 결과물로서 발간되었다. 나는 7명의 다른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이 책의 공동편집자였다. 


프로그램을 주관했던 마가장 국립현대미술센터가 2005년 작고한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의 유족과의 협의로 스위스에 있는 제만의 작업실 겸 아카이브를 방문하여 리서치하고 이를 책으로 정리하는 것을 참가자들의 트레이닝 내용으로 정했다. 책의 아이디어는 약50년에 이르는 제만의 다층적인 전시 기획을 그의 아카이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가정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한 큐레이터의 아카이브를 그의 생각의 원천이자 과정의 축적, 작업 결과의 보고서로 삼고 이를 분석하여 큐레이터가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떤 조사 연구의 과정을 거쳐, 어떻게 전시를 만들어내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특히 제만처럼 독립큐레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한 경우 전시 기획의 자료가 미술관의 아카이브와 달리 개인이 소장한 자료들과 혼합되어 있으며, 조직보다는 개인의 작업으로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뚜렷이 큐레이터의 방법론을 살펴볼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되었다. 



책의 제목인 ‘개인적 방법론’은 그가 자주 사용한 ‘개인적 신화(Individual Mythology)’라는 용어에서 가져왔다. 그는 작가들의 고유의 생각과 작업의 세계를 부르는  개념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고, 이는 72년 도쿠멘타(documenta)의 한 섹션의 이름이기도 했다. 제만은 독립적으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일을 구조화하는 여러 특정한 단어들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집념의 미술관(museum of obsessions)’이 시각화될 수 있도록 돕는 ‘정신적인 이주노동을 위한 에이전시(Agency for spiritual guest work)’에서 일한다고 말한다. 집념의 미술관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실제로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기획이 이 실현될 수 없는 미술관에 근접해가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작업의 아이디어는 사실 그가 작가들에 대해 지칭하는 ‘개인적 신화’의 개념과 유사하게 들린다. ‘개인적 방법론’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 연구가 큐레이터 한 개인의 신화를 조명하는 일에서 빗겨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방법론을 도출한다는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책의 부제인 ‘상황, 개념, 과정, 작업, 정보’- 1969년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의 부제를 참고한 것이다.1) 첫 장 상황은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글로 할 포스터(Hal Foster), 장 마크 푸앙소(Jean-Marc Poinsot)의 글을 실었고, 두 번째 장 ‘개념-과정’에서는 제만의 아카이브의 공간적 분석을 통해 기획의 과정과 함께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제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특히 그의 아카이브 의 여러 개의 방에 붙여진 이름들과 기능들을 통해 작업의 순차적 과정을 따라가 보려는 시도이다. 세 번째 장인 ‘작업’은 두 개의 전시를 예시로 사용하여 ‘개념-과정’이 실제 작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본다. 1972년의 ‘도쿠멘타 5’와1997년 ‘리옹 비엔날레(La biennale de Lyon)’라는 25년의 시차를 둔 두 대형전시를 통해 작업과정의 유사점과 변화를 읽는다. 마지막으로 ‘인포메이션’ 파트에서는 그가 기획한 전시와 글 목록을 실었다. 


이 책에 참여를 통해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의 현장과 연결된 자료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당시의 주요 연구주제들, 미술사적 접근으로부터 인류학, 문화연구의 접근이 혼합되는 전시 기획의 변화 양상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공부가 되었다.2) 이 과정은 또한 아카이브를 기관의 기록 보관소가 아니라 실천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게 했다. 제만은 자신의 아카이브를 ‘공장’이라고 불렀다. 그의 ‘공장’에는 자료들이 재료처럼 수집, 보관되어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작업대로 불려 나와 특정 전시를 위해 조합되는 장소도 있었다. 정리와 보관보다 작업을 위한 재료로 아카이브를 사용한다는 관점은 2014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의뢰로 기획했던 전시 <결정적 순간들: 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의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이 전시에서는 소극장 공간사랑의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는 일반적인 방법과 함께 어떻게 아카이브를 일회적인 속성을 가진 퍼포먼스와 연결시킬 것인지를 질문하고 실험하는 ‘리빙 아카이브’라는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카이브에 항상 실천적 측면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또 다른 영향이라면 아마도 작업에 있어서 힘을 쏟는 기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제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복합성과 열정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또한, 애정으로 설치되지 않은 전시를 보게 되면 바로 나가 버린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애정과 열정과 같은 단어가 요즘에는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고, 역시나 다른 상황의 산물 같지만, 전시 작업의 과정에서 생기는 회의감과 피로가 반복되는 와중에 때때로 그가 전시에 쏟았던 에너지의 양이 떠오르고 눈이 떠질 때가 있다. 다다를 수 없는 기준이다. 지난 주말 책장에 있는 책들을 꺼내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책장에 있는 대다수의)책들을 중고서점에 보내기 위해 선별했다. 이전에는 책의 제목을 일종의 인덱스로 생각하곤 했었다. 


책장에 꽂힌 책 제목을 보면서 짧게 내용을 떠올리면 이것이 생각을 끄집어내는 도구가 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인터넷 검색으로 내용을 찾거나 영상을 본다. 자신의 아카이브와 책장에서 손으로 자료를 더듬고 들춰보며 단어를 조합하면 새로운 생각의 구성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것이 기억의 지지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방 하나를 가득 책으로 채우는 일이 여전히 효율적인 방식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정보를 접하는 버릇과 정보에 다가가는 신체의 감각이 달라졌다. 제만은 끝까지 팩스 통신과 손글씨를 사용했지만 말이다. 직접 얘기하고 경험하고 바라보는 신체와 감각의 과정, 시간이 줄어든 지금의 일의 방식을 생각해보면 향후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는 기획의 방법론을 읽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각주]

1) <태도가 형식이 될 때>로 불리는 이 전시의 전체 제목은 <Live in Your Head: When Attitudes Become Form>이고 부제는 ‘Works - Concepts - Processes - Situations - Information’이었다. 

2) 제만의 아카이브는 이후 LA 게티 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에 소장되어 있고, 현재 제만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하는 첫 번째 전시가 진행 중이다. 

 

 

글쓴이 김해주는 큐레이터로 2017 7월부터 현재,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포인트카운터포인트>(아트선재센터, 2018), <무빙/이미지>(아르코미술관 2017, 문래예술공장 2016), <안무사회>(백남준아트센터, 2015), <Once is not enough>(시청각, 2014)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결정적 순간들: 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 

전시 전경 2015 아르코예술자료원 사진: 김재범





Special feature 

4인의 큐레이터, 4권의 책

『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문학과 지성사(서울) 2014  

● 심소미 독립 큐레이터

 


전시기획을 하면서 의식하지 않더라도 매번 고려되는 맥락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시대 예술의 맥락을 점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라는 현대인의 환경을 성찰하는 것과 관계된다. 오늘날 도시는 대다수 사람의 삶의 공간, 물리적 현전의 장소이다. 우리의 삶은 이제 도시라는 장소를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다. 그러한 도시 환경이 내게 의문을 증폭시키는 이유는, 장소가 일반화되어가는 세계에 있어 집단과 개인의 생활양식이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의심치 않고 가담하는 삶의 작동 방식에 있다. 그러하기에 예술이 관찰하고 있는 공간적 사유와 이에 대한 가시화에 더욱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시를 기획하는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 책으로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가 있다. 그 외에도 타 학자들의 여러 책이 있지만, 푸코가 전개한 공간의 지배 논리에 대한 전복적 사유는 읽을 때마다 다른 가능성을 내비친다.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유토피아에서부터 시작한다. 2015년에 기획한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는 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의 전이가 일어난 전시다. 당시 예술이 매핑하는 세계, 그 대안적 장소에 관심을 두고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지도제작술’을 소개하고자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는 지리적 상상력과도 관계가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사상가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책  『새로운 섬 유토피아』의 현실 비판적 탐구에서 영감한 것이다. 타락한 사회상에 대한 반향으로 구상된 섬 유토피아(Utopia)의 그리스 어원 topos(장소) ou(부정)에 주목하여, 전시에서는 현실에 위치가 없는 장소, 현실적으로 존재가 불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구글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구룡마을, 도시 재편성으로부터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장소, 정주할 수 없기에 떠도는 공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로부터 영토를 재구성한 세계지도 등이다.


<신지도제작자>는 기획의 전후가 매우 다른 전시다. 기획 이전에는 유토피아에 가까웠고, 기획 후에는 헤테로토피아에 가깝게 된 것이다. 그러한 데에는 참여 작가들이 선보인 대안적 지도제작술에 ‘현실’이라는 토대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회의 바깥으로 배치된 공간과 영역에 대한 성찰, 바로 헤테로토피아를 재해석하는 큐레이토리얼 기획은 이를 계기로 하여 본격화된다. “장소 없는 지역들, 연대기 없는 역사들이 있다.” 측정할 수 없는 장소에 대한 이 문장은 푸코가 그의 글 「헤테로토피아」를 열면서 쓴 첫 문장이다. 글의 제목이기도 한 동명의 책  『헤테로토피아』에는 「헤테로토피아」 외에 「유토피아적인 몸」, 「다른 공간들」 세 글이 함께 실린다. 


앞의 두 글은 1966년 프랑스의 라디오 채널에서 강연한 원고이며, 「다른 공간들」 은 파리건축회의의 부탁으로 일 년 후 앞선 강연을 재정리한 원고이다. 세 글에 이어서 실린 1982년 폴 래비나우(Paul Rabinow)와의 대담, 다니엘 드페르(Daniel Defert)의 해제는 푸코의 개념이 향후 공간연구의 지평을 넘어 수용되어 온 맥락을 짚고 있어 논의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푸코는 그의 글에서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을 대조하면서, 헤테로토피아에 내재된 대항성을 점차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유토피아가 ‘실제 장소를 갖지 않는 것’이라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적인 장소이자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반배치, 현실화된 유토피아의 장소들’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그가 예로 든 장소가 요양소, 정신병원, 감옥, 묘지, 극장, 정원, 동물원, 박물관, 도서관, 휴양촌, 매음굴, 청교도 사회 등이다. 이때 푸코는 공간에 대해 말하면서도 영원성(박물관, 도서관), 한시성(휴양촌, 좌판)과 같은 시간적 개념을 지적하기도 하고, 식민 사관의 작동방식, 완벽한 자율성과 폐쇄적 장소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그의 글에서 특히나 나를 동요시킨 지점은 헤테로토피아가 사회라는 총체적 구성, 균질화에 균열을 내고 이의를 제기하고 대항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2016년에 기획한 도시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Micro City Lab)(서울시 곳곳, 인디아트홀 공)은 메가시티에 대한 대항적 경로로 마이크로시티를 구상한 전시다. 


서울의 도시 공간 속 미시적 개입을 시도한 ‘마이크로시티랩’은 도시라는 거대공간에서 소외된 장소에 대한 발언, 도시를 소비함으로써 생산하는 예술의 재생산 구조에서 탈피한 자기반성적 실천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당시 도시개입을 통해 다른 장소의 가능성을 살피고자 하는 동시에 미시적 개입의 무용함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논의를 비평적으로 전개한 자리이기도 했다. 작년 가을에 기획한 <서브토피아(SUBTOPIA)>(광교 따복하우스 홍보관)는 오늘날 대도시의 재편성과 헤테로토피아의 전염적 경로를 용인이라는 특정 도시를 바탕으로 접근해본 전시다. 용인을 리서치하면 할수록 도시 공간의 특수함보다는 한국의 도시 공간에 대한 보편적 얼굴을 마주했다. 이로부터 전시의 주제를 ‘서브토피아’로 두고 “오늘날 주변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간재배치”의 파편을 추적해 보고자 했다. ‘서브토피아’는 한국의 도시의 변형과정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기제로, 서울의 주변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중심에서 내몰린 욕망의 발현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주변에 방치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인간의 필사적인 정주 의지이기도 하다. 


중심에서 충족할 수 없는 장소들을 주변에서 현실화하는 서브토피아는 광역권의 헤테로토피아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양립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여러 공간을 실제의 한 장소에 겹쳐놓은’ 광범위한 영토와 같다. 이를 지리적으로 접근해보자면,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서브토피아가 주변에서 중심을 향하지만은 않는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향할 때 서브토피아의 세계는 중심과 주변을 관통하며 퍼져나간다. 이를 더욱이 활발히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이로부터 올해에 선보일 기획은 <서브토피아>의 연장선에서 수도권의 공간 지형도로 확장하여 그 추적의 여정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글쓴이 심소미는 건축과 예술학을 공부하고,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도시지형도와 예술의 역학 관계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주요 전시 기획으로 <건축에 반하여>(SeMA 창고, 2018), <오더/디스오더>(탈영역 우정국, 2017), <2017 공공하는예술 아카이브전시>(공동기획/ 경기문화재단 주최, 2017), <마이크로시티랩>(인디아트홀 공, 2016),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등이 있다.

 

 


<SUBTOPIA> 2017 

광교 따복하우스 홍보관 전시 전경





Special feature 

4인의 큐레이터, 4권의 책

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

루시 R. 리파드(Lucy R. Lippar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Oakland) 1973

●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1990년대 후반 뉴욕에서 공부를 시작한 내게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는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1970년대 리파드는 뉴욕에서 아티스트 북을 출판하는 서점이며 예술 공간인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의 창립 멤버이자 페미니즘 정치 예술 집단인 헤러시스 콜렉티브(Heresies Collective)의 창립 멤버 등으로서 예술적 실천과 현실 정치, 문자 언어와 시각 언어 사이에서 고유한 영역을 개척했다. 이후 뉴욕의 개념미술과 여성주의 미술의 실천에 앞장섰던 그가 1990년대 초 홀연히 뉴욕을 떠났고, 이는 전설처럼 오래 회자되었다. 하지만 뉴욕 아트신을 떠났다고 그의 예술적 실천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거주지인 뉴멕시코 인구250명 규모의 작은 마을에서 리파드는 현대 예술에 있어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 대안을 실천했다. 대지미술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공미술, 서부 개발의 역사에서 기인한 토지를 바라보는 미국식 관점의 문제, 생태 관광의 정치적 위치들에 대한 흥미로운 글들을 썼으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의 정치적 실천을 계속한다. ‘왜 떠났는가’에 대한 대답은 90년대까지 리파드의 활동들과 뉴욕 아트신의 변화에 있을 것이다. 


1937년 뉴욕 태생의 리파드는 미술사를 전공한 후, 1958년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모마, Museum of Modern Art)의 도서관에서 1년 반 동안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직 근무를 했다. 이곳에서 그는 큐레이터가 요청한 자료들을 리서치 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모마에서 야간조로 근무했던 솔 르윗(Sol Lewitt)을 만났고,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댄 플래빈(Dan Flavin)과 같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뉴욕 다운타운의 바워리 가에서 솔 르윗, 실비아 맨골드(Sylvia Plimack Mangold), 에바 헤세(Eva Hesse)를 중심으로한 예술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예술의 비물질성에 천착하여 문자언어와 시각언어를 연결 짓는 개념미술을 만든다. 언어적 전략을 통해 예술을 정치적으로 만든다는 개념미술은 리파드의 예술적 실천의 기반이 된다. 이후 1964년은 리파드에게 중요한 해가 되었다. 첫 전시를 기획했고, 첫 강의를 열었고, 두 권의 책을 처음 출판했고, 여행을 시작했다. 또한 인생의 파트너가 되기도 했던 세스 시겔롭(Seth Siegelaub)을 만난다. 


시겔롭은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로버트 베리(Robert Barry),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와 함께 ‘아트 딜러’의 역할을 재발명했다. 이러한 삶의 경험들은 루시 리파드가 1973년 출판한 『6: 1966-1972 예술 오브제의 탈물질화(Six Years: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에 고스란히 담긴다. 제 관점이 여성주의적이며 좌파적임을 서두에 밝히며, 1966년부터 1972년까지6년이라는 기간 동안 출판된 책, 기획된 전시, 아티스트 인터뷰, 심포지엄, 글 조각들을 선별한 출판물이다.





<De Appel Curatorial Programme:

 Weak Signals, Wild Cards> 2009





사실 이 출판물은 ‘책’이라기 보다는 ‘전시’에 가깝다. 솔 르윗이 1969년 쓴 “개념 미술가들은 이성주의자라기보다는 신비주의자다. 이는 논리가 도달하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하고, 비논리적 정의는 새로운 경험을 생성한다”로 시작하는 이 출판물/전시의 주제는 개념 미술이 갖는 미적/정치적 경계들이다. 이를 위해 미니멀 아트, -정형 예술, 대지미술, 과정미술에 대한 선별된 작업들과 텍스트들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리파드는 이런 예술적 실천들이 정치적 실천이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을 말한다. 개념미술의 시대는 베트남 전쟁과 시민운동, 여성 해방 운동과 대안 운동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출판물의 형식과 구성은 지금까지도 주를 이루는 ‘남성적’이라고 분류되는 형식주의적 미술 비평과 상반된다. ‘저자’의 위치가 아닌, ‘편집자’의 위치에서 리파드는 미술사를 쓰는 새로운 방식을 발명한다. 이는 ‘여성적’ 글쓰기의 새로운 대안이 된다. “이론은 학문적으로 이상화된 개념들이 아닌, 실재 경험으로부터 발전된다”라고 리파드는 말한다. 


이 출판물은 객관주의적 비평이라는 환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 미술 비평에 대한 비평이다. 이 책이 출판된 지 3년 후부터 개념미술은 화랑에서 미술품으로 높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한다. 1970년대까지 유럽 미술계에 비해 지역적이었던 뉴욕 아트신은, 1980년대 자본의 막강한 유입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1-2년 사이에 100여 개의 신흥 화랑들이 소호에 생겨났고, 뉴욕 아트신은 전례 없는 상업적 호황을 맞는다. 2013, 뉴욕 뉴스쿨(The New School)에서 리파드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2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대강당을 메웠다. 


강연의 제목은 <변화하기: 미술 ‘비평가’가 되지 않는 것에 관하여>이었다. ‘미술 비평가’라는 용어는 예술가에 대한 적대적 존재로 비춰지기 때문에, 리파드는 ‘저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예술에 대한 저자로서 리파드는 전통적인 형식주의 예술 비평이 아닌, 실천적이며 운동가적인 글쓰기와 큐레이팅을 만들어 낸다. 그가 행한 일련의 생각들과 예술에 국한되지 않는 많은 사회적 연대는 우리 모두가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역사가 아니다. 큐레이터와 예술가의 협업은 새로운 예술사를 만들어 낸다. 한국 현대미술과 같이 주체적인 역사와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시장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나 자본에 대한 무의식적 경도에 휘둘리는 한국 현대미술 현실에 많은 참고와 교훈을 주는 건 물론이다.  

 








글쓴이 양지윤은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코너아트스페이스(서울 신사동)의 디렉터이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파주출판도시)의 수석 큐레이터로 일한 바 있다. 2008-2009년 암스테르담 데아펠 아트센터 큐레이터 과정에 참여했다. 주요 기획 전시로 <플라스틱 신화들>(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그늘진 미래: 한국 비디오 아트> (부카레스트 현대미술관), <예술의 이익: 2011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기념전시>, <Mouth To Mouth To Mouth: Contemporary Art from Korea>(베오그라드현대미술관), <Now What: 민주주의와 현대미술>(공간 해밀톤, 인사미술공간) 등이 있다. 2007년부터 바루흐 고틀립과 함께 ‘사운드이펙트서울: 서울 국제 사운드아트 페스티벌’을 디렉팅했고, 2017년 아르코미술관에서 그 10주년 전시인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를 개최했다. 기존 현대미술의 범주를 확장한 시각문화의 쟁점들에 천착하며, 이를 라디오, 인터넷, SNS, 디지털 사진 등을 활용한 공공적 소통으로 구현하는 작업에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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