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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7, Feb 2018

김주리
Kim Juree

소멸되는 것들의 풍경

조각을 전공한 김주리의 작업에서는 오랫동안 지속해 온 ‘휘경’(2009-2017) 연작이 굵은 뼈대 노릇을 하면서 다양한 함의를 구축해 왔다. 창파와 서준호가 공동기획하고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던 그룹전 [揮景: 휘경, 사라지는 풍경](2009, 보안여관)에서, 작가는 점토와 물을 이용한 [휘경동 124번지]로 ‘휘경’ 연작에 대한 제작 동기와 개념적 틀을 앞서 제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살던 서울 휘경동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일상의 거대하고 오래된 풍경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시간의 현전”에 주목했다. 이는 이후 “휘경동(徽慶洞)”이라는 구체적인 위치에서 “휘경(揮景)”이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보다 극대화된 시각적 경험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그는 [휘경동 124번지]로 시작한 다수의 휘경동 주택 연작과 한남동 연작을 거치면서 줄곧 현실에서 도시 재개발에 처한 80년대의 다세대 주택을 작업에 끌어와, 그 전형적인 형태를 그대로 축소시켜 점토 모형으로 만든 후 그것을 일종의 휘경, 즉 사라진 풍경의 메타포로 사용해 왔다. 김주리는 오랜 시간 공들여서 점토로 재연한 주택 모형들을 견고하게 굳은 상태로 전시장에 갖다 놓았다가, 전시가 시작되면 그 바닥면에 조금씩 물을 부어 그것이 아래로부터 서서히 붕괴되어 차츰 제 형태를 잃어가는 과정과 변화를 보여줬다.
● 안소연 미술비평가 ● 사진 서지연

'일기(一期)생멸(生滅)' 2017 흙, 물, 백묘국, 들쑥, 사운드, LED조명, 덩굴, 가변크기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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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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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주리는 ‘휘경’ 연작에 앞서 두 차례의 개인전 <Room#203>(2005, 가갤러리) <조용한 침범>(2008, 가갤러리)에서도 점토와 물을 활용해 형태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유기적인 순환 과정을 환기시켰다. 그 과정은 흙으로 잘 본 뜬 일상의 사물과 인체의 부분 형상에 물이 스며들어 본래의 형태를 완전하게 소멸시키는 순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의 손을 빌어 실제의 대상과 정교하게 닮아 있는 각각의 조각적 형상들은 전시라는 환경 안에 들어와 완전한 형태로서의 조형성을 충족시키지만, 곧 물과 만나게 되면서 물리적 변화의 과정 속에 들어가게 된다. 마침내 완전한 형태의 구축으로부터 진흙 덩어리로의 소멸을 보여주는 전시의 시공(時空)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존재의 흔적들을 환기시키게 된다. 이처럼 그는 작업의 물질적 조건에 주목해 조형적 형태가 구축되고 소멸되는 일련의 이중적 상황을 일시적으로 공존시켜 놓았다. 이후 사물, 인체, 건축, 장소, 풍경 혹은 환경으로 이어져 확장된 작업의 대상들은 일련의 물질적 존재에 관한 주체의 다양한 경험과 개념적 인식 안에 놓이게 된다.




<휘경;揮景 Falcon Pottery> 2017 

브리티시 세라믹 비엔날레(British Ceramic Biennial) 

Korea/U.K. Exchange (Spode Factory: China Hall) 

Stoke-on-Trent




김주리는 최근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레지던시에 들어가 있으며, 2017 브리티시 세라믹 비엔날레(British Ceramics Biennial 2017)’에 참여해 영국 도자산업의 중심지였던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의 폐쇄된 한 공장 건물을 흙으로 재현해 전시했다. 또한, 미들포트 포터리(Middleport Pottery) 공장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주택단지로 현재 리모델링을 앞두고 문을 닫은 건축물을 작업에 끌어 오기도 했고, 최근에는 런던 빈곤층의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1960년대 말에 설계해 1970년대 초 완공한 임대아파트 로빈 후드 가든(Robin Hood Gardens)의 철거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에 주목해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모두 ‘휘경’ 연작에 놓여 있으며,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라진 풍경”의 물리적 존재 뿐 아니라 때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슈와 직면하기도 하고 주관적이거나 추상적인 사유로까지 확대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층위를 아우른다. 


이처럼 김주리는 2009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휘경’ 연작을 통해 “소멸되고 말 것들”에 대해 관찰하고 조사하며 실측하여 기록하는 일련의 소모적인 수행 과정을 되풀이 해왔다. 이때 그는 여러 지역에 머무르며 자신이 직접 관찰하면서 경험한 맥락들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단지 그 건축적 외형을 복제하여 점토로 재현해 놓고 다시 소멸시킴으로써 도리어 그 “완벽했던 형태들”이 지닌 현재의 부재 혹은 남겨진 것들의 불확실성을 알렸다. 김주리의 ‘휘경’ 연작은 이미 현재 안에 서서히 무너져 내려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이 뭉뚱그려 있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감각적인 인식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작년에 여러 전시를 통해 몇 개의 버전으로 소개한 바 있는 <일기(一期)생멸(生滅)>(2017)로 우회하며 또 다른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냈다. 





<휘경;揮景 landscape-scene 03> 2015 점토 

360×330×55cm 2015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김주리의 네 번째 개인전 제목은 <일기(一期)생멸(生滅)>(2017)이었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설치 작품인 <일기생멸>은 전시장 전체의 조명을 꺼두고 짙은 어둠 속에 흙, , 백묘국, 채취된 식물, 조명, 사운드 등으로 낯설고 모호한 풍경을 연출해 놓았다. 공간을 가득 채운 어둠 속에서 평소보다 예민해진 신체의 감각들은, 그 풍경이 보내오는 크고 작은 신호들을 능동적으로 감지하고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해야만 한다. 이 풍경에는 서로 다른 시공에서 작가가 발췌해 온 수수께끼 같은 요소들이 공존한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개인전에 부쳐 내가 쓴 글 「어느 사라질 풍경과의 교신」(2017)에 자세히 언급한 적이 있어,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단락을 부분 인용해 본다. 


“유럽의 한 작은 도시를 여행하던 중 유난히 창백한 잎이 인상적이어서 한줌 채취해 온 식물을 그는 서울의 한 골목길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그것이 백묘국이라 불리는 야생화라는 것을 알아내 직접 재배하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그에게 어떤 유령 같은 신호로 작용했고 죽은 듯 창백한 이파리가 물이 많으면 오히려 선명한 녹색을 띠며 죽어가는 백묘국의 언캐니한 모습에서 물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휘경”의 맥락을 감지했다. (중략) 김주리는 도시로부터 외딴 곳에 떨어져있는 한 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그 주변에서 서식하는 들쑥을 보며 반복되는 낯선 풍경들 속에서 비현실적 차원의 상상과 마주해야 했다. 일체의 무언가를 감추듯 강한 향으로 위장하고 서 있는 이 식물은, 낯선 풍경에 잠재된 원초적인 것 혹은 사라진 기억을 다시 불러들일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신호체계다





<휘경;揮景 landscape-scene 03> 2015 점토,  

360×330×55cm 2015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한편 공간을 소리로 가로지르는 수많은 음의 파장들은 대체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중략)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 같다가도 거대한 원시림에서 무언가가 생성되고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중략) 사실 가늠할 수 없는 이 비현실적인 소리의 정체는, 작가가 ‘휘경’ 연작에서 흙으로 만들어낸 현실의 완벽한 풍경이 물에 의해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동안 그 휘발하는 풍경에서 채집한 미세한 소리의 파장이다. 그 미세하고 비밀스런 소리가 이번 전시에서는 또 다른 경험의 실체들과 교차하면서, 이 낯선 풍경에 잠복되어 있는 생성과 소멸의 표상을 환기시킨다.” 하나의 풍경으로 제시된 “일기생멸”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삶의 지속성과 순환하는 시공간의 역동성 속에서 구체적인 감각의 경험을 통해 타인들과의 공감을 얻게 된다. 이렇듯 ‘휘경’ 연작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온 풍경에 대한 관심은 <일기생멸>을 통해 좀 더 추상적인 사유로 조명되면서, 물리적 변화에 대한 시지각적 경험을 초월하여 감각적 차원의 공감과 소통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요컨대, 김주리가 ‘휘경’ 연작에서 점토 모형의 물질적 변화를 통해 생성과 소멸, 물질과 비물질, 형태와 비정형,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것 등 이중적인 가치가 공존하는 현실의 풍경에 주목해 왔다면, <일기생멸>을 통해서는 보다 복합적인 감각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실의 마술적 풍경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이다. 

 

 


김주리





작가 김주리는 1981년 생으로 경희대학교 미술학과를 조소전공으로 졸업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가갤러리 등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경기도 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송은아트스페이스, 성곡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소버린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 수상 및 2010년 제 10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경기창작센터 및 프랑스 파리국제예술공동체 등의 레지던시에 참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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