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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7, Feb 2018

루바이나 히미드
Lubaina Himid

화폭을 꿰뚫는 서늘한 아름다움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는 자신을 ‘흑인 예술가’, ‘페미니스트’라 강조한다. 이런 수식어가 없다면 자신의 작업은 아무 의미가 없단다. 그는 흑인 여성으로 영국에서, 유럽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겪어 왔음을 밝혔다. 필요에 따라 사회적 지위(Status)가 시시각각 바뀐다는 사실을 예술가인 자신이 어떻게 다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적 공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는 매일 고민한다. 작가는 이러한 신념을 지난 50여 년간 외골수처럼 이어오고 있다. 그렇기에 그만의 예술적 맥락과 타당성, 그리고 작품과 작업 과정 전반에 함의된 메시지는 그 누구의 것보다 견고하다. 아주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이어온다면 그 어떤 것보다도 탄탄한 기반을 만들 수 있음을 히미드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 정송 기자 ● 사진 홀리부쉬 가든스(Hollybush Gardens) 제공

'Freedom And Change' 1984 Plywood fabric, mixed media, acrylic paint 290×59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Photograph by Andy Ke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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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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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나 히미드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소설가’라 답하겠다. 역사를 중점적으로 시각화하는 작가는 자기 작업을 ‘역사적 회화’라 부른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맥락과 이야기인데, 히미드는 역사로부터 시작해 스토리를 풀어낸다. 다만 보편화하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흑인,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아프리카인 그리고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이자 그동안 숱한 차별과 멸시를 받아 온 소수인에 집중한다. 이는 작가 자신에서 출발한 주제다. 그 역시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영국에 이민 온 흑인 여성으로, 타지(유럽)에 살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느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작업을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에 사는 흑인들과 여성들로 그 범위를 확장했다. 이런 작업 설명은 무척이나 명료하게 들린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히미드는 역사와 특정 사건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 써 내려가는 등 다른 예술가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Le Rodeur: The Exchange> 

2016 Acrylic on canvas

183×24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Photograph by Andy Keate





작가는 대중 혹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소명이라 얘기한다. 작품을 통해 이러한 개인의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로 끌고 들어올지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에 작가는 주목한다. 1980년대 야아 아산테와(Yaa Asantewa), 해리엇 툽맨(Harriet Tubman),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등과 함께 흑인예술 운동(The Black Arts Movement)에 참여한 그는 당시 흑인이 아닌 예술가, 정치인, 그리고 작가 등이 이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데 소극적이었다는 사실과 다른 이슈들에 비교해 이 주제가 대중에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래서 히미드는 이러한 인식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작은 문제들 역시 사회적으로 다룰 만큼 가치 있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 집단이 아닌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을 다시 한번 피력하고 싶다


히미드는 역사를 다루지만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난 일 속 실존한 사람들의 일생을 재건해내는 것이 바로 그가 사명감으로 해내고 있는 일이다. 예술가 특유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미해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적절히 믹스매치해서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흔히 디아스포라 흑인을 한 카테고리에 묶어 집단으로 다루고는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목수, 의사, 정치인, 상점주인, 기자 등 이들 역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임을 알려준다.





<Plan B: Everybody Is> 1999 

Acrylic on canvas 122×30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Photograph by Andy Keate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흑인 여성이다. <Freedom and Change>에서 드러나듯이 처음 그가 이 주제를 다룰 때 작품에 두 명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그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 한 명은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 명은 침묵을 지키는 식이다. 여기서 그는 직물(Textile)을 다루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패턴을 비롯해 옷의 디자인 및 디테일에 신경 쓴다. 작가는 이러한 직물 디자인을 통해 여자들끼리 비밀과 시각적 언어 등을 공유한다고 여겨, 그의 작업 전반에 직물 패턴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의미는 단순히 복잡한 도형을 넘어 점차 환상, 움직임, 색깔,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함의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한편 히미드 작업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컷아웃(Cut-Out)’은 실제 사람의 크기로 만들어졌는데, 일반적으로 벽에 걸리는 그림이 아닌 ‘가구’와 같은 역할로서의 회화를 제시한다. 그는 대학에서 무대 미술을 공부했는데, 이러한 백그라운드가 작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관람객들은 방안 곳곳에 놓인 컷아웃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사방에서 작업을 세세히 뜯어볼 수 있다. 이런 역동적인 관람 형태는 사람들 사이에서 히미드 작업에 대한 담론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중시하는 관람객과의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다. 컷아웃 작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소개된 것은 바로 <Naming the Money>. 작가는 100개나 되는 컷아웃 회화를 선보였는데, 모두 18세기 유럽의 로열 재판소(Royal Courts)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노예들을 담고 있다. 작업에는 사운드 트랙도 포함돼 이들의 목소리를 비롯해 원래 아프리카식 이름에서부터 노예 무역상을 거친 후 유럽에서 새 이름을 갖게 되는 험난한 여정을 들려준다.





<Le Rodeur: The Pulley> 2017

 Acrylic on canvas 183×24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ollybush Gardens

Photograph by Andy Keate 

 



히미드는 지난 50여 년간 ‘흑인’을 필두로 유색 인종과 여성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그들의 정체성에 집중해 왔다. 그리고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지닌 각각의 적응 방법과 사회적 통념과 개인의 가치 등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다. 본인이 속한 커뮤니티가 가진 정체성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이들의 지위는 늘 충돌했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히미드는 이러한 사실을 짚어내 그 속에 담긴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지나간 일들에 대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히미드가 지속해온 ‘Negative Positives: The Guardian Archive’ 시리즈는 이러한 그의 노력이 잘 반영된 작업이다. 작가는 약 10여 년간 영국 신문 『The Guardian』에서 사진과 기사 내용에 담긴 흑인의 시각적 묘사가 적절한지 검열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운동선수, 정치인, 군인, 범죄자, 영웅, 패션모델, 일반인, 그리고 심지어 죽은 사람들까지 그가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는 이토록 다양하다. 그가 선택한 기사와 페이지 레이아웃을 여러가지 패턴과 기하학적 모형들, 광고에 나오는 상징적 이미지 등으로 어지럽힌다. 작가는 이 작업을 ‘회화적인 중재’라 부르고 한 사람의 초상과 사회적 입지의 균형을 재건해낸다.





<Naming The Money> 2004 100 life size figures and audio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Navigation 

Charts Spike Island Bristol 2017 Courtesy of the artist, 

Hollybush Gardens and International 

Slavery Museum Liverpool Photograph by Stuart Whipps





히미드의 모든 얘기는 결국 ‘나’로 귀결된다. 흑인과 아프리카인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는 흔히 개개인을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지난 수십 년간 아프리카 디아스포라가 겪은 일이 결코 집단적으로 다뤄질 일이 아니며,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사연을 갖고 있음에 포커스를 맞춘다. 바로 작가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이 모든 것이 시작됐다. “말은 많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Say a lot but do nothing).” 작가는 스스로 인종차별을 경계하자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태도에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다. 그래서 그는 만약 자신의 작업에서 위선자들에 대한 조롱, 풍자,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해학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모든 이에게 이 차별이 분명 잘못됐음을 알리는 알람(wake-up call)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작업을 보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진실에 다가가기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히미드는 오늘도 붓을 든다. 

 

 

 

루바이나 히미드

Lubaina Himid Photo: Edmund Blok for Modern Art Oxford 2017 




2017년 터너상을 수상한 루바이나 히미드는 1954년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왔다. 현재 프레스턴을 기점으로 작업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는 윔블던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무대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문화사를 공부했다. 그는 네비게이션 차트, 스파이크 아일랜드, 모던 아트 옥스퍼드에서 개인전을, 노팅햄 컨템포러리, 반아베뮤지엄, 테이트 리버풀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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