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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6, Jan 2018

이웅배_미완료의 기쁨·공동체

2017.11.15 - 2018.11.26 김세중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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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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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함께-있음을 경험하기



곡선(曲線): 모나지 않고 굽은 선, 평면 위나 공간 안을 잇는 선으로 그중에서 직선이 아닌 것을 포괄하여 말함. 곡선은 두 점 사이를 잇는 가장 짧은 거리인 직선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그 수많은 가능성과 변주들이 모여 면을 이룬다. 여기 다양한 곡면의 형상은 사실 배관들의 이음이다. 엘보, 십자, T, 레듀서와 같은 배관의 단위들은 본래 물 또는 증기, 가스 등을 전달, 배출할 용도로 만들어진다. 배관은 단선의 거리 창출과 기능적인 방향전환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웅배는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형상미를 실험하듯 자유롭게 배관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가장 효율적인 배관 형태가 직선이었다면, 이웅배의 배관 작업은 오히려 무한으로 확장되는 곡선에 가깝다.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에 존재했던 거친 이음새는 사라지고 이제 매끈한 하나의 모습을 이룬다. 더 이상 그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을 개의치 않고 파이프는 크거나 작게 휘어지고, 솟아나거나 흘러내리고, 때로는 똬리를 틀며 그 자체로 안정감 있는 하나의 개체가 된다.

 

부분과 부분이 연결되어 하나가 된 개체는 옆에 놓인 또 다른 하나의 개체와 조화를 이룬다. 서로 다른 높낮이와 모양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제각각의 선연한 색을 발현한다. 이들 하나하나는 분명 독자적인 개체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들은 김세중미술관의 고즈넉한 공간을 공유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작고 낮은 개체는 또 다른 작고 낮은 개체와 가까이하며 연대를 형성하고, 지면을 어루만진다. 강렬한 원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개체들은 공간 사방의 지점에서 무게 중심을 잡으며 허공을 향해 뻗어간다. 이러한 모습은 비슷하지만 다르고, 따로 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를 이루는 우리 인간 군상 같다. 힘 있는 자들은 더 높이, 더 넓게 세력을 확장하며 위용을 뽐내는 한편, 힘없고 약한 이들은 연대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배관의 군상에 관람객이 들어오면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된다. 이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은 형상들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바닥에 앉기도 한다. 육중한 금속성을 가리운 찬란한 색감과 그곳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을 손으로 직접 더듬어 만지고픈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웅배는 차가운 조각에 온기 있는 사람의 손길을 허락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올라타거나 매달리고, 누군가는 기대어 커피를 마시는 게 오히려 기쁘다고 말한다. 향유하는 사람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편안한 휴식처가, 때로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 주는 게 그의 조각이다.

 

이웅배의 배관이 형성하는 공간에서는 부분과 부분이 연결되고, 개체와 개체가 어우러지며 조각과 사람이 만나 공동체를 이루는 연쇄작용이 끊이지 않는다. 작가가 전시의 제목으로 삼은 미완료의 기쁨·공동체가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배관이 수행하는 본연의 역할, 즉 서로 떨어진 공간을 연결하고, 생명수를 공급하고, 쌓인 것을 배출함으로써 나타나는 정화와 순화의 효과가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이웅배의 배관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공동체>를 찾아와 눈을 맞추고 손을 가져다 대는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작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목적의 결과가 아니라, 나타난 효과인 것이다. 이 공동체는 어떠한 구도도, 목적도, 기획도 가지지 않은 규정되거나 고정되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 뤽 낭시(Jean-Luc Nancy)의 표현 무위(無爲)의 공동체(la communauté désœuvrée)’와 유사하다. 무위의 공동체는 이상주의적 전체주의적 사회를 완성하고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자연적인 평등을 허락받은 우리라는 존재가 서로 소통함으로 만드는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무위는 불어로 작품을 뜻하는 œuvre에 부정의 접두사를 붙여 표현한다. 작품을 완성하지 않음, 즉 미완료의 기쁨이 무위에 있다. 존재들의 함께-있음으로 수많은 긍정의 관계들을 만들어내는 무위의 공동체가 이웅배가 제안하는 미완료의 기쁨이다.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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