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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3, Oct 2017

김인겸
Kim In Kyum

열망이 불태워버린 사유의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방법
마주하기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이 빠른 속도를 점유하며 모든 과정을 흘려보내게 되었고, 많은 것들은 각각이 요구하는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대중성’의 깃발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그 와중에 ‘예술’은 원래의 의미 무게를 놓아버리고, 점차 모두가 알기 쉬운 것 혹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 내는 것에 대한 목표만을 최대한으로 내세우고 꽤나 긴 시간이 흘러버렸다. 복기하면, 본래 예술은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술은 나름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었고, 예술가와 그들의 삶에 대한 동경과 열망은 지속될 수 있었다. 삶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선사하는 작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자유’와 ‘다름’에 대한 그들의 욕구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인정은 하나의 개인을 오롯이 완성하기 위한 외부와의 단절이나 주관성에 대한 천착과 같은, 보통의 삶과 비교했을 때 필수불가결한 거리를 둔 ‘사유’를 보장해 주었다. 그렇다. 아마도 한 사람의 정체성이 이상적으로 투영된 ‘작품’이라는 집약적인 대상을 단박에 간파할 수 있는 그 상황이 오히려 우리가 처한 크나큰 모순의 정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장진택 독립큐레이터 ● 사진 서지연

'묵시공간 9001-9007(Revelational Space 9001-9007)' 1990 합판, 스테인레스 스틸(내부) 6pcs 각 85×6×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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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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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조각가 김인겸을 만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진전했다. 많은 이들은 의외로 쉽게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의 신조들을 조금씩 수정하거나, 자신에게 그 “변화”에 따르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주기도 한다. 미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움직임은 실제로 순식간에 많은 것들을 단번에 바꾸어내는데, 이는 미술계를 구성하는 장의 계층이 구축된 특수한 형상에 기인할 것이다. 미술은 모순의 지점에서 발아한다. 미술은 세상에 대해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을 스스로 ‘현실’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떨어지도록 해 버린다. 뿐만 아니라 미술은 매우 주관적인 주제를 통해 객관적인 인식들을 형성해 내는 형식을 점유하는데, 이러한, 즉 미술이 “주관과 객관 또는 이성과 감성을 넘나든다”는 사실 자체는 곧 미술이 어느 하나의 축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 대한 자가-증명이자 전체 구조축의 방향이나 위치를 전환할 수 있는 극단적인 영향력 역시 행사할 수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러나 결국 미술이라는 개념 속에서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분명한 요소는 ‘작가’라는 명패를 앞세운 한 명의 ‘개인’이다. 다만 그 ‘개인’의 이름을 어떠한 방식으로 짊어질 것인가 하는 태도에 대한 쟁점은 다시금 그 ‘개인’이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진실성’ 반영 여부나 그 정도 차이의 문제로 회귀한다김인겸이 살아온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마주하면서, 내가 한동안 망각했던 예술의 ‘정수’와 같은 단어를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 이후, 나는 “예술적”이라는 형용사의 사전적인 정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묵시공간(Revelational Space)> 1990 석고안료흙 각 148×28×34cm

 

 


“태도-방법론”의 구현 예시 1


작업 세계를 형성하는 축조의 형식은 이를 다루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편집적으로 “다름”을 욕망했던 김인겸이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곧 그의 작업 세계를 대변하는 “태도-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인겸의 작업의 출발점이었던 그의 ‘묵시공간’연작은 “공간”과 “정통성”이라는 핵심어가 이끄는 그의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에 빗대어 예술에 대한 그의 거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기나긴 “태도-방법론”의 실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발산하고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최초의 준비 단계, 다시 말해 작가로서 시작할 사소하고도 담대한 담론에 다가가기 위해 김인겸은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정체성을 아우를 수 있는 “근원”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애초에 세계와 자아의 관계 인식을 위한 일종의 보고서적 의미를 지녔던 본 작업은 동서양의 서로 다른 관념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을 발견하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김인겸은 인간계에 존재하는 이 모든 현상들은 바로 (내면적 혹은 물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명제를 끌어들였다. 자아의 행위, 또한 포괄하려는 그 대상,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공간”이 있기에 현존할 수 있다. 작가가 주목한 시작과 끝, 천지창조와 종말을 이르는 혼란과 파멸의 “묵시공간”은 모든 것의 끝, 그 뒤에 찾아올 새로운 시작의 단계로 전진하려는 그의 의지를 담아내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이렇듯 김인겸의 ‘묵시공간’은 마치 견고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선명한 청사진 위에 각각의 선이 관통할 방향에 대하여 밑점을 찍는 것과 같은 시발점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또한 작가의 관념에 접근하는 자가적 계기가 된다. “묵시성”의 인용을 시작으로 다다르게 될 어떠한 궁극적인 개념을 맞이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 이것이 김인겸의 ‘묵시공간’이면에 숨겨진 중요한 하나의 의미이자, 나아가 그의 “태도-방법론”이 이루는 형상을 완성하게 할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묵시공간(Revelational Space)> 1996 브론즈 각 240×40×50cm, 220×60×70cm 




“태도-방법론”의 구현 예시 2


이후 <프로젝트-사고의 벽>, <드로잉 스컬프쳐>, <빈 공간>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작업들은 그의 관념을 구현하는 조형적인 실험의 중간 과정을 꼼꼼히 메워주었다. 매체성을 적극 활용하며 조각의 물리적 정점에 이르는 이러한 실험의 시간을 거친 후 김인겸이 안착한 사유는 생각보다 아주 담박한 것이었다.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벼운 것’,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으로 점차 나아가는 작가의 작업은 “묵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종국엔 “-LESS, 다시 말해 “없는 것”에 도달한다. 그의 근작 <SPACE-LESS>는 ‘작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요소들, 미술이라는 시각 예술의 범주에서 작품을 구성하는 매우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점, , 면’이 만들어내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미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을 소거하고, 비워내어야만 진실한 성취의 정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김인겸 사유의 잠정적인 결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간결한 평면성과 단조로운 색상의 본 작품은 주로 스테인리스스틸과 같은 견고하고 불변하는 소재를 사용하여 구현되었지만, 최근 작가는 작업이 말하는 “영혼성”의 본질적인 의미에 스스로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연약하고 변형 가능한 종이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어쩌면 단순한 미디엄의 변형 정도로 인식될 수 있는 김인겸의 이런 태세 전환은 이를 통해 작품을 더 완벽하게 개념을 표현해내는 중간자적 매체를 찾고, 활용하려는 그의 “태도-방법론” 유지를 위한 극단적인 수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SPACE-LESS> 작업은 작품과 개념, 이 둘 사이를 잇는 매체와 이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가 합치되어 발현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좇아가며, 김인겸이 집중하는 ‘인정’의 “태도-방법론”을 더욱 두텁게 만든다그리고 이 “자연스러움”은 진정성이 담긴 예술의 실천만이 끌어낼 수 있는 특정한 공감의 장으로 자신과 관람자를 인도한다. 이러한 김인겸의 의지와 맞물려 이제 그의 작업은 과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던 의미들을 외면하는 이들을 향해 외치는 절박한 외침처럼 다가온다. 




<프로젝트-내츄럴네트(Project-Natural Net)> 

1995/2017 일부 재현 아크릴벽아크릴박스에어버블

에어컴프레셔 305(Height)×800(Circle)cm

 



상호 영향의 징후


정보 저장 기술의 발전이 선도하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는 이를 유지하는 인간들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이곳에서도 사유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또 저장되지만, 새로이 등장하는 수많은 사유들의 유효성에 따르는 유통기한은 이전보다 짧아진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이 빠른 격차로 샘솟는 시작과 끝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것을 강요받는다. 하나의 “태도-방법론”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김인겸의 “태도-방법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이 내포하는 초현대적 예술의 맥락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부각시킨다. 작가가 추구해 온 ‘진실성’이나 ‘진정성’과 같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예술성의 개념이 내포하는 핵심 개념은 무엇이든지 쉽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버려지는 작금의 사회 흐름 속에서 예술 혹은 미술이 수행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역할의 새로운 가능성과 맞닿아있다.


“작업을 끌어가는 것이 곧 작가의 삶이고, 그 삶이 곧 작업”이라는 김인겸의 말은 ‘태도’가 곧 ‘작업의 형식’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를 쉽게 변화시키지 않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당대의 “다름”을 실천하는 예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자, 예술이 소멸의 사회를 향해 울릴 수 있는 경종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강한 책임감과 자존감으로 예술의 진정성을 실현하려했던 김인겸의 자아, 그리고 이를 반영하는 작가의 “태도-방법론”을 주체성의 회복이 요하는 완벽한 해답일 것이라 성급히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를 통해 예술적 자아의 역할 수행에 대한 동시대 의미의 중요성을 되새김에 있어 우리는 충분한 조력을 구할 수 있으리라.     





 <스페이스리스(Space-Less)> 2017 

스틸위에 분체도장 200×17×193cm


 


구출의 정황: 다시, 마주하기


“다름”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 남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자 ‘사이 공간’을 부유하는 김인겸의 정체성은 타인의 “다름”을 관조하는 단계에 이르러 진실로 “양면성”의 인정을 추구하는 한 자아의 “태도-방법론”으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그가 지금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모든 대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말처럼 너무나 당연한 차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다시 시작되는 오늘의 미술을 실천하려 할 때, 김인겸의 작업이 우리를 흔들어대며 피어오르는 환기의 자세는, 점차 고도화되는 사회가 요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준들 가운데서 동시대 미술의 기조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우리를 눈뜨게 한다. 이처럼 새로운 묵시의 공간 속에서 혹여 작금의 예술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아의 진실한 발산’이라는 예술가의 숙명적인 과제를 일부러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김인겸




작가 김인겸은 1945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가나화랑에서 첫 개인전 <묵시공간>을 선보인 후 2005년 대구 시공갤러리의 <빈 공간>, 2009년 서울 표갤러리의 <스페이스리스> 등 10여 차례 국내외 개인전을 연 작가는 올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대표작들을 총망라한 <김인겸 공간과 사유>전을 개최했다. 1995년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 대표 작가였으며 1996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초청기획전에도 참가한 바 있는 그는, 지금도 “조각 같지 않은 조각”과 “조각을 떠난 조각”을 끊임없이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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