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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8, May 2017

생명은 연결이다

Japan

N.S. Hardha: Charming Journey
2017.2.4-2017.6.11 도쿄, 모리 미술관

여행은 우리를 꿈꾸게 만든다. 모르던 곳은 알게 되어, 알던 곳은 반가워 여행은 매력적이다. 우연한 발견 하나만으로 여행은 즐겁다. 미지의 작가와 작품을 우연히 만났을 때의 기쁨도 이와 같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낯선 예술가의 명작을 발견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행복이다. “모리에서 어마어마한 전시가 있다던데, 꼭 보고 와요”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의 문자 메시지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도쿄의 3월은 서울보다 따뜻하나 비오는 날이 잦아 공기는 차가웠다. 미세먼지가 덜해서 높은 곳에 오르면 하늘은 멀리까지 보였다. 모리 미술관(Mori Art Museum)은 도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 눈이 시원했다. 인도의 토속성이 물씬 풍기는 현대예술가 N.S. 하르샤(N.S.harsha)의 개인전 '매력적인 여행(Charming Journey)'이 이런 초고층 빌딩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언뜻은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는데, 전시를 보고 나면 묘한 메시지가 만들어졌다.
●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 사진 Mori Art Museum 제공

'Punarapi Jananam Punarapi Maranam (Again Birth, Again Death)' 2013 Acrylic on canvas, tarpaulin 365.8×2407.9cm Installation view of 'N. S. Harsha: Charming Journey' at Mori Art Museum, Tokyo, 2017 Photo Shiigi Shizune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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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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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지역성과 보편성 


좋은 전시는 시대의 담론을 형성한다. 전시는 그림, 조각, 사진, 설치 등의 작품을 통하여 당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람객은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래서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여가를 보내는 공간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에서 시대에 필요한 (혹은 부합하는) 의미를 찾고, 작품으로 맥락을 형성하고, 메시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야 한다. 상설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은 그에 기반하여 기획전과 특별전으로서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이 없는 아트센터는 보다 자유롭게 전시를 기획할 수 있기에 콘셉트와 캐릭터가 중요하다. 


모리 미술관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이나 빌 비올라(Bill Viola) 같은 서구 작가의 전시도 꾸준히 소개하지만,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 흐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주요 거점이다. 지역적으로 아시아는 어떻게 정의내리고 그 지역성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중국, 인도, 일본, 필리핀, 태국, 베트남, 한국과 북한 등은 모두 아시아에 속하나, 현대 한국의 문화는  태국보다 미국에 더 가깝다. 문화적 차이가 지역을 넘어서는 요즘, 예술작품의 현대성과 국제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는 예술가와 미술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인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고 작업하는 하르샤의 70여 점을 총 10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소개하는 야심만만한 개인전을 통해, 나는 작품에 깃든 작가의 지역성과 문화적 보편성의 관계에 대한 오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Come Give Us a Speech>(detail)

 2008 Acrylic on canvas 182.9×182.9cm(×6)

 

 


생명과 관계에 대한 통찰 


첫 작품이 중요하다. 특히 모르는 작가의 개인전일 경우, 전시장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이 첫 인상을 결정한다. 첫 번째 작품<무제(Untitled)>는 단순명료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색, 다른 나무에서 잘라낸 실제 나뭇잎 두 개를 실 바느질로 연결했다. 예술작품은 서로 다른 자연물들을 잘라서 인위적으로 하나로 연결시킨 것과 같다? 정확한 뜻을 간파하기는 어려웠지만, 하르샤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으로 구성된다고 알려주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돌리니 왼쪽 아래 바닥에 말라버린 잎사귀(<무제(Untitled)>)가 놓여 있었다. 두 작품을 연결하여 생각하면, 초록 잎사귀도 차차 말라갈 테니 잎의 현재()와 미래(죽음). 첫 작품이 자연의 일부를 떼어다 인위적으로 설치한 표본이라면, 마른 잎을 넣은 투명 아크릴 상자는 관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서 생명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가? 이것은 인위적인 꽃꽂이와 자연스런 드라이플라워에도 해당되는 질문이다. 혹은 자연의 생명은 시간의 흐름으로 소멸되지만 예술작품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종교성이 강한 인도인답게 자연으로는 죽고 예술로 부활했다는 뜻으로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있다는 뜻? 더 나아가 액자에 끼워진 채 미술관에서 조명을 받고 있으니, 나는 자연에서 채취한 나뭇잎을 생명과 관련해 해석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앞으로 하르샤가 던지고 싶은 질문일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말처럼 도시의 현대인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환기되었다. 그래서 자연의 나무라면 거의 도달할 수 없는 52층 높이의 미술관에서 보는 이 작품은 질문으로 강하고, 울림으로 깊었다. 우리는 지금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하르샤 식으로 던지는 질문으로 나는 이해했다. 마치 암시로 가득한 시구로 시작하는 소설 같았다. 기대감은 급격하게 높아졌다. 

 




 <Nations> 2007-2017 193 foot-operated sewing machines, 

acrylic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of

 <N. S. Harsha: Charming Journey> at Mori Art Museum, Tokyo, 2017 

Photo Shiigi Shizune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보편성과 일상성 


1995년에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하르샤의 작품 <내 엄마의 사리에 그린 자궁(Womb on My Mothers Sari)>은 자신을 임신한 동안 어머니가 입었던 사리(남부 아시아 여성들의 전통 복장)위에 겹쳐 그렸다. 아이가 자라고 있는 자궁은 붉어서 생명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강하고 금빛의 버팀목은 신성한 기운을 불어 넣는다. 인간의 신체 내부에 벌어지는 생명 작용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이후의 작품들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나뭇잎으로 암시하던 메시지가 점차 뚜렷해졌다. 자연은 생명이고 생명은 연결이다. 어머니와 아이처럼, 신과 인간도 서로 연결되어 함께 현재를 살아간다. <천개의 손과 텅 빈 공간(1,000 Hands Void Space)>에서는 다양한 종교의 많은 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도인으로서 하르샤의 지역문화의 정체성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지식과 부를 관장하는 인도 신 가네샤(Ganesha)는 코끼리 머리와 네 개의 팔로 형상화된다. 


하르샤는 가운데 빈 공간을 중심으로 가네샤의 팔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천 개를 그려 촘촘히 겹치고 이어 붙였다. 중앙의 허공은 가네샤 신의 손들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신성하다. 이 작품들처럼 인도의 독특한 지역성은 하르샤 작품 전체에 짙게 깔려있는데,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식은 일상성에 있다. <우리는 와서, 먹고, 잔다(We Come, We Eat, We Sleep)>처럼 먹고 자고 살고 죽는 일상의 행위를 저마다 다르게 하는 모습을 전형적인 인도인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먹고 자는 모양새는 다를지언정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고 자야 한다. 





<They Will Manage My Hunger

(from the Charming Nationseries)> 2006 

Acrylic on canvas 97×97cm Collection: 

Bodhi Art Limited, New Delhi  





특히 160개의 침대에서 저마다 다르게 자는 모습은 모두 하나의 하얀 이불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저마다 혼자 살아가지만 위(신의 관점)에서 내려다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메시지는 길이 24m가 넘는 초대형작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고(Punarapi Jananam Punarapi Maranam)>에서 절정에 달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내용으로 충만하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한 번의 붓질로 그려낸 뫼비우스 띠처럼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안에 은하수와 행성 등 우주의 푸르른 풍경이 세밀하게 깃들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식간에 삶과 죽음의 문제가 무한대로 이어져 영원으로 초탈하는 듯하다. 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를 위해 만들었던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Sky Gazers)>은 바닥에 사람들이 빼곡히 겹쳐 그려져 있는데, 신발을 벗고 관람객이 그 위에 앉아서 위로 올려다보면 천장에 설치된 거울이 바닥을 비추고 있다. 하늘을 보듯이 거울을 올려다보면 내가 우주의 한 점처럼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겹쳐진다. 이런 세계 속에서 나란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구나, 이렇게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고 현실의 공간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이외에도 인도 남부 지방의 문화와 자연 환경, 인간과 그 지역의 동식물군상의 관계를 통해 인도적인 지역적 특수성도 떨어져서 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임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흥미롭다.   

 




<We Come, We Eat, We Sleep>(detail) 

1999-2001 Synthetic polymer paint on canvas 

172.1×289.3cm, 169.7×288.5cm, 172.2×289.2cm 

Collection: Queensland Art Gallery, Brisbane  

 




생명은 연결이다.    


내게 하르샤의 <매력적인 여행>전의 키워드는 연결과 삶으로 모아졌다. 연결은 생명의 잉태에서부터 마을과 도시 형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다. 나무와 잎의 연결이 끊어지면 죽게 되고 그 죽어가는 잎을 바느질로 연결시키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연결은 자본을 중심으로 국가들도 묶고 있다. 해외 백인의 자본이 하르샤의 고향 지역까지 밀려 들어와 어떻게 농촌 마을의 모습을 바꾸어 버리는지(<미수르와 세계(Mysuru and the World)>(미수르는 하르샤의 고향지명이다)와 ‘매력적인 국가(Charming Nation)’시리즈, 유엔(UN) 193 회원국의 국기를 재봉틀로 박은 실들이 돌고 돌아 서로 연결되어 있는<국가(Nations)>는 인도의 아주 작은 마을까지도 세계화의 광풍에 포획되어 빠져나갈 수 없음을 폭로한다. 


다양한 언어, 인종,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에서 국가는 어떤 의미인지 묻는 듯한데, 분단과 갈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에도 유효한 질문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관계의 단절을 전제하고, 지구화는 모든 국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서양미술이 종교와 역사를 통해 인간에 관심을 많이 할애하여 개인과 존재의 특수성에 대한 고찰로 흘렀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작가들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요시하여 생명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연결이 인터넷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되어버린 알파고 시대에 우리는 더더욱 생명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주 현대적인 빌딩 안에서 전시된 하르샤의 작품은 몹시 이질적이면서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도 읽혔다.  



글쓴이 이동섭은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 제 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그림과 사진, 설치와 현대미술, 뮤지컬과 패션 등 폭넓게 공부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SBS 컬처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반고흐인생수업』, 『그림이야옹야옹 고양이미술사』, 『파리로망스』,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등 10여 권의 책을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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