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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8, May 2017

전시의 A to Z: 테크니컬 라이더

Exhibition A to Z: Technical Rider

작품이 완성됐다고 끝이 아니다. 제작만큼이나 중요한 화이트 큐브에의 구현이 남았기 때문. 설치는 작품 제작의 마지막 단원이자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략의 시작이다. 이때, 작가와 기획자는 촉수를 곤두세워 공간을 탐색한다.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작품을 설치하고 주변 작품과의 관계도 고려한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설치를 위해 전시 공간을 재보는 과정이 없다. ‘한번 가봐야 아는’ 작가의 ‘감’도, 작품을 싣고 나르는 수고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테크니컬 라이더(Technical Rider)’ 하나로 과정이 모두 생략된다. ‘전시 세부 지침서’ 정도로 의역할 수 있는 이 문서에는 작품을 위한, 전시를 위한 구체적인 사항이 기재돼 있다. 즉, 누구나 보고 그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해 놓은 문서다. 작업의 악보이며, 오차 없이 실현되도록 설명해주는 매뉴얼이다. 그대로 풀어놓으면 전시는 작동한다.
● 기획·진행 한소영 기자

Exhibition view of the Bruce Nauman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2015 Visuel ⓒ Luc Boeg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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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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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diagram)이 곧 작업이 된 것은 미니멀리즘에서 시작한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댄 플라빈(Dan Flavin)을 대표 주자로 하는 이들은 도안을 넘기는 것으로 작품을 판매하기도, 전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에도 ‘지침(instructions)’이 담긴 ‘증명서(certificate)’는 핵심이었다. 작품을 실제로 구현한 사람은 작가가 파견한 ‘제도사(draftsman)’였고 증명서 안에는 그들의 이름을 넣어 작품 제작의 일원임을 명시했다. 오늘날 선보이는 그의 벽화 작업에도 필수 정보는 첫 설치 장소(first installation)와 처음으로 그려낸 사람(first drawn by)이다런던의 리슨 갤러리(Lisson Gallery)에서 「퍼블릭아트」에 제공한 그의 작품 설명 역시 처음 그린 장소(2004, 리슨 갤러리) 6명의 제도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6명의 제도사 중 솔 르윗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누구든 작업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한 작품이 여러 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술가는 ‘사무원’이었다. 감을 발휘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이처럼 원본의 아우라에 상당히 관대했으며, 작가의 손을 거쳐야 ‘인증’되는 기존의 관념을 깼다. 한편, 도안을 이용하더라도 그와는 달리 엄격한 작가도 있다.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품을 구매한 판자 백작(Count Giuseppe Panza di Biumo)을 비난했다. 작품을 허가 없이 설치했다는 이유에서다. 댄 플라빈과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을 포함한 다른 작가도 같은 이슈를 제기하기도 했다. , 이들에게는 도면을 구현하도록 허락한 작가의 의지에 진품성이 담보된다고 본 것이다.





뵈르 세트르(BØrre Sæthre) <Untitled(Arches of Solaris)> 

2014 Fluorescent light arches, reflective black base, 

soundtrack 1000×80×70cm Courtesy : Børre Sæthre 

Galerie LOEVENBRUCK, Paris  Pauline Guyon / Louis Vuitton

 




현대에 이르러 이와 같은 ‘문서 작업’은 더욱 정교해지고 많은 작가가 지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의 성향과 필요에 따라 정교함이나 정보의 세세함은 달라진다.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이동할 ‘물질’이랄 것 없는 미디어아트에서다. 화면의 비율, 프로젝터 투사의 밝기를 나타내는 안시 루멘(ANSI-Lumens) , 화면이 투사되는 방향, 관람객의 동선 등을 도면에 담는다. 규격에 맞추기만 하면 어디서도 주문할 수 있는 좌대, 벽에 칠할 페인트 색 등 준비물이 나열된 작품 안내서를 전시장에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선의 두께나 나사 규격 등 세세한 것까지 담는 작가도 있다. 이 안내서에 따르면 작가 없이도 작품을 완벽히 구현해낼 수 있다. 한편, 작가가 미디어 플레이어를 직접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케이블 길이, 프로젝터에 맞는 콘센트 규격을 미리 문서화해 보내기도 한다. 건축 설계 도면처럼 구체사항을 모두 담아 보내면 미술관은 그것을 받아 준비할 수 있다. 준비가 완료되고 화룡점정으로 작가의 플레이어를 연결하면 이론적으로 전시 준비는 끝이다. 


대부분의 작가와 기획자는 지침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 해외 전시에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세팅 방식이 해외 전시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작가 주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소품이 전시 장소에서는 낯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미리 준비물을 요청해놓을 경우 구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올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설치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구성품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도 얻을 수 있다. 사실 테크니컬 라이더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공연이다. 무대의 형태, 세트설치에 필요한 사항, 음향을 위한 기기 등 기획부터 실현까지 관련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쓰인다. 무대 위와 뒤, 관객석까지 챙기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을뿐더러 여러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여러 공간에서 같은 레퍼토리를 펼쳐야 하는 경우에 매우 효과적이며 이는 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댄 플래빈(Dan Flavin) <untitled (to Sonja)> 1969 

Yellow and green fluorescent light approx. 

32 ft. (976cm) long overall left section:

modular units, each made with two 4-foot(122cm)

 vertical fixtures and two 4-foot (122cm) horizontal

 fixtures right section: modular units, each made 

with two 8-foot (244cm) vertical fixtures and two 8-foot 

(244cm) horizontal fixtures Courtesy David Zwirner





그러나 분명 한계도 있다. 공간을 전혀 보지 않은 채로 도안만을 보낼 경우 공간과의 미묘한 리듬이 깨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전시가 기계적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세밀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작가의 손을 타야만 하는 섬세한 작업에서 이런 방식은 불가능으로 수렴한다. 작가의 조망 아래 끝까지 끈을 붙잡은 전시일수록 완성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공간 측에 요청해서 사용해야 할 기기들의 정확한 목록을 전달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작가가 직접 설치하는 것이 만족도를 높인다는 의견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더욱이 전시 공간과 사전 의사소통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도 있다. 작가 스튜디오 내에 설치 팀이 따로 있는 경우다. 전문 테크니션으로 구성된 팀이 방문해 A부터 Z를 진행한다. 설치가 완성되면 직접 작가가 와서 마지막 디테일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전시 오픈 신호가 떨어진다특히 최근 국내에서 두 차례 큰 전시를 치른 바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전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꼼꼼한 일 처리에 대해 설명했다. 설치는 작가 스튜디오 소속 테크니션 팀이 진행했다. 모든 장치적 실험은 이미 스튜디오에서 검증을 거친 후였다. 마지막에는 작가가 직접 찾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 과정 중 전시장 측에서 제공한 것은 공간의 특징을 설명하는‘도움’뿐이었다. 단 한 점만을 출품하는 경우에도 작가가 직접 전시장을 찾는다고 하니, 작품의 완결성은 마지막 순간 작가의 손길에서 나온다고 여기는 듯하다.





 드니 방장(Denys Vinzant) <DOre et despace>

 installation view of <Through the listening Glass>

 at Total Museum 2016 





반면, 어떤 작가는 방의 크기를 정확히 지정하고 설치를 세세하게 기록하는 등 머릿속 계획으로 전시를 완성하기도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의 경우 프로젝터의 해상도, 비율,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작품에 포함한다. 그렇게 ‘독립된 하나의 방’을 만들어 장소 불문, 시간 불문 항상 같은 영상을 관람할 수 있도록 지침서를 작성한다. 지난해 열린 리옹 국립음향멀티미디어창작센터(이하 GRAME)와 토탈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전시, <듣기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istening Glass)>는 테크니컬 라이더 기반으로 준비됐다. 당시, 설치는 철저하게 도면에 따라 계획되었다. 전시 리포트에는 GRAME에서 준비할 디테일한 물품과 미술관에서 먼저 준비해놓아야 할 비품, 작품 설치 도면이 기재되어있다또한 설치에 필요한 인원과 기간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미술관 측이 모든 설치 가능(all can be set by museum)’이라는 문구를 넣어 작가 본인은 방문하지 않은 채 GRAME의 테크니션과 미술관의 인력이 설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시에 참여한 9명의 작가 중 전시장을 직접 찾은 이는 단둘뿐이었다.





드니 방장의 테크니컬 라이더 

 




이 전시에 참여한 드니 방장(Denys Vinzant)은 제작해 둔 200여개의 유리 작품 중 몇 개를 선택해 설치 작품으로 선보이는 작가다. 그는 매번 전시 장소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아 꼼꼼히 도안을 작성한다. 예를 들자면, 스피커 연결선은 ‘흰색’이어야 한다고 명기하고 벽의 색도 팬톤(Pantone)에서 선택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엔 사운드가 함께기 때문에 연결을 위한 많은 케이블을 보이지 않는 곳에 어떻게 처리할지도 포함된다. 전시는 이것 ‘그대로’ 전시장에 구현된다. 그럼에도 전시가 오픈되기 전 그의 전담 테크니션, (Jean Cyrille Burdet)과 함께 전시장을 찾아 마지막 설치를 지휘한다. 수십 톤이 되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이 거대한 트럭으로 옮겨지는 과정은 매번 뉴스거리다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진풍경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전시는 작품 ‘존재감’의 드나듦 한번 없이, 낱낱의 재료만이 미술관에 도착한다. 그 안에서 조립되고 나올 땐 다시 해체된 상태다. 도안으로 된 작품과 그 설치는 점점 정교해졌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대로 원본성, 일회성, 진품성의 아우라는 폐기된 지 오래다. 작가가 없이도 그의 의지와 꼭 같게 작품이 제작되고, 복제를 여럿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계 어디를 가든 작품 감상의 환경조차 같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곳이 어디냐는 전혀 영향도 없고, 1cm의 오차도 없이. 이것은 동시대 미술을 가늠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Installation view of Sol LeWitt New Work at Lisson Gallery 

London (September-October 2004).  Sol LeWitt Estate

 Courtesy Lisson Gallery The first installation was at Lisson 

Gallery London for the 2004 exhibition First Drawn

 by Jack Duplock, Stephen Little, Wim Starkenburg, 

Sam Steer, Lynton Talbot, Mark Tu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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