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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7, Aug 2020

김근태
Kim Keun Tai

정지와 호흡의 오케스트레이션

그림은 깊고 적막하다. 고요하고 쓸쓸한 몰입이 이끄는 세계는, 보통의 유화나 아크릴이 지니는 반들반들하거나 촉촉한 느낌과 달리 그의 건조한 화면이 품고 있는 아우라 속으로의 투입을 유도하는데, 이는 메마른 듯 팍팍하거나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다. 질료의 굳기를 가늠해 윤기를 덜어내는 나름의 프로세스 때문이며 순수 돌가루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건조함이기도 하다. 결국 작품엔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감상과 심리상태 지향이 반영되는데 김근태 화백은 그것을 더욱 본질적으로 들이파, 단순한 적막이 아닌 폭풍우가 치기 직전의 숨찬 고요, 소멸과 생성이 억겁을 거듭해 이뤄낸 바위 같은 단단함까지 캔버스에 옮겨놓으려 한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아트조선 제공

'김근태: 숨,결' 전시 전경 2020 조선일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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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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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회화의 멋은 우선 색과 결, 그리고 작업의 호흡에서 온다. 그의 그림은 캔버스에 색을 올리고 겹을 더하는 것인데, 기법의 운용이 최근작에서 더욱 강인해지고 있다. 물감의 터치들이 길게 뻗으며 응축해 만들어내는, 시원하게 하나로 장악된 공간의 독특한 재질. 그 사이 혹은 그 위로 유령처럼 어른거리거나 혹은 뜻밖의 방식으로 겹쳐진 모호한 형상들은 그의 작업 시간과 운동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업엔 몸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삶 속에서 사물의 두께가 보이기 시작한다. 심각함과 엄숙함의 관념적인 상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물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표현양식에 눈을 돌리면서 점차 사물은 내게 새로운 인상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가 찾고자 했던 사물의 객관적 리얼리티와 미학적 평등은 새로운 질서를 찾았다. 결국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나 혹은 나의 심증에 담긴 것으로부터 단 하나도 멀어지게끔 강요받지 않는 그런 구성을 창조하는 것에 몰두한다는 작가는 대상과 몸 사이의 대화, 그 양자를 오가는 운동의 반복, 몸이 반영된 속도, 대상을 마주하는 몸의 기운 혹은 호흡과 태도들로 그림을 완성한다.





 <2016-115> 2016 캔버스에 유채 91×72.7cm





미디어로 포화된 현대세계와는 거리가 먼, 제스처 방식의 추상화를 완성하는 김근태. 관습적인 내러티브 묘사를 배제하지만 음악과 시, 역사 등에서 영감을 얻는 그는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그 시기 극사실주의 같은 구상 회화와 민중미술 흐름에 몰입돼 있던 대다수 젊은 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성정과 관심이 이끄는 사물의 물질적 속성의 세계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은 색과 형엔 제한이 없지만 내러티브의 즉각성은 배제된 추상화로 표현됐다그러다 현재의 김근태를 대표하는 경향은 1990년대 초반 경주 남산을 여행하며 본 석탑, 불상, 부조가 품고 있는 돌의 질감을 캔버스로 옮겨보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돌의 속성을 재현하기 위해 유화 물감을 그대로 쓰지 않고 돌가루를 접착제와 섞어 독자적인 매체를 만들었다. 캔버스도 광목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대체 물감과 광목 캔버스의 결합이 바로 그가 원하는, 돌이 주는 거칠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창출하는데 가장 근접한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집요하게 자연 생체의 일부인 돌로 만든 대상에 가감 없는 낯선 실체를 구현하려 했다. 그 세계는 물질계의 짜임에 바탕을 두면서 물질이 결정화된 구체적 형태에는 굳이 얽매이지 않는 유동적인 세계이다.





<1995-136> 1995 캔버스에 유채 112×145.5cm 





정제된 장면 속, 흙 같기도 불같기도 한김근태스러운 그 무엇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림과 마주선 이들은 환시, 유령, 바람결에 스친 듯한 망연함과 적막감, 심리적 긴장 같은 것을 느끼는데, 이는 작가가 화면에 어떤 은유나 심리적 긴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꽉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빈 것 같기도 한 그림을 완성하는 작가는 말한다. “개념적 사유나 양식적인 패러다임은 풀어지고 열리며 일상적인 삶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조형언어와의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의 언어는 수다스런 소음에 대항하는 담론이며 막다른 길에서 다시 찾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나의 질문 혹은 문제 제기는 저녁 어스름한 황혼의 시간, 상황들에 제기된 그 모든 주변을 감지한다. 역설적이게도 심성의 일루전에서 벗어나 조형언어가 객관적이 되어갈수록 내 그림에 있어서의 무조의 평면은 점차 깊이를 갖게 되었다. 점차 화면과 감정이입간의 일체 가 되어간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이러한 변화는 서양화로 시작한 그림이 점차 내면적 아름다움과의 만남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겐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_2019_04> 2019 캔버스에 유채 90.7×72.7cm 





커다란 색면과 모호한 겹으로 생성된 불분명한 형태들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캔버스는 절망부터 환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의 물결들을 불러일으킨다. 1990년대 김근태는 재현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추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즉 거대한 캔버스를 단일색으로 가득 칠하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엔 바다 속을 떠도는 생물이나 미시계의 세포처럼 소소하면서도 그것 자체의 존재에 대해 강렬한 확인을 요구하는 듯 명확한 윤곽을 지닌 형태들이 있다. 이들의 존재감은 개별적인 색면들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이 윤곽들의 겹침, 다층적인 레이어의 교차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체들이 시각적으로 동일한 색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독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레이어들 사이로 점점 깊어지는 시각적 깊이에 의한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 붙여진 이라는 제목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연속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전체집합을 구성한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연속체의 단면이며, 이에 대한 은유를 작가는 생명으로 은유한다.


<_2018_36> 2018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화가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것은 정말 알기 어려운 사실들 가운데 하나다. 화가들 가운데는 재현과 현존의 명멸을 끊임없이 따라잡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김근태는 작업 내부에 여전히살아있기를바라며 일련의 진화를 이룩하고 있다. 미학의 복잡한 구조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정갈하게 완성된 김근태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가장 크게 좌우되는 것은 그 안에서 얻은 힘이다. 수많은 가능함 속에서, 가장 단순하게 색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가장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의사소통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시적인 에너지 말이다김근태의 예술은 특정한 기교에 그치지 않고, 어디에서 행동해야하는지,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중지할 것인지에 대한 이전의 체계화에 매몰되지 않은 개인규칙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바탕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형상은 아직 분명한 이미지나 기호로 완성되지 않았으며 진화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형상화하려는 순간순간 속에 그의 그림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생성은 깊고 오묘하며 위대하고 쓸쓸하다.


* 참고문헌: 케이트 림 「물감의 마음을 담은 연금술」 2020. 2 조선일보미술관 <김근태: ,> 전시도록 서문




 김근태




작가 김근태는 1953년 생으로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서울 청년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1997년 사비나갤러리 <Discussion Or Encounter>, 2000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전을 비롯 지난 2월 조선일보미술관에 마련된 <,>까지 총 열 번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10회 한국미술청년작가회전’, 2017년 독일 초이앤라거갤러리 <3 3>, 2018년 서울 리안갤러리 <한국의후기단색화>, 2019년 주홍콩한국문화원 <한국현대미술작가>전 등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막다른 길목의 끄트머리에서도 나의 그림은 늘 존재의 생성을 멈춘 적이 없다며 왕성하게 작업하는 그의 작품은 성곡미술관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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