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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6, May 2016

이채영
Lee Chae Young

하늘과 바람과 땅 그리고 나무

Public art NEW HERO
2016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회화의 역사는 손의 역사다. 하지만 그리기에 관해 말할 때 손은 자주 제외된다. 그리기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가슴 아니면 뇌이고, 그리기의 도구는 형과 색이라는 인식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정작 모든 그림을 손으로 그리면서도 손에 관한 언급은 흔치 않다. 그리기의 발원지가 가슴에서 뇌로 빠르게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종이에서 캔버스로, 먹에서 물감으로 옮겨지는 그리기의 과정에서도 손의 노고에 대한 성찰은 많지 않다. 쓰기의 현장은 원고지에서 모니터로, 필기도구 역시 펜에서 키보드로 옮겨졌지만 쓰기의 근간은 여전히 손이 관할하듯 그리기 또한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손에 많은 것을 내맡긴 채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가 있다. 아직 어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런 작가 이채영. 삶에서 불현듯 느껴진 이질적 대상과 감정을 화폭에 담는 그는 단언한다. “일단! 그린다”고.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새벽3시 30분' 2011 장지에 먹 71×9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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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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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니는 길이 있다. 걷거나 혹은 버스와 자동차로 왕래하는 그곳은 무심하게 보아도 지나치게 익숙하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장면이 포착됐다. 매일 보던 건물이 사라지고 가림막이 설치된 것이다. ‘무슨 일일까? 대체로 의문은 여기까지이다. 이동하던 길 중간 버스에서 내려, 갑자기 변화된 공터를 들여다볼 사람은100명 중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이채영은 그랬다. 가던 길을 멈추고 버스에서 내려, 허술한 골조와 천으로 휘휘 둘러싸진 공간을 들여다봤다. 해까지 어스름 진 저녁이었다. 조그만 여자가 영문 모를 공터에 들어서는데까진 예상보다 강한 용기가 필요했다. 허나 그 시도가 이채영의 근간을 흔들었다. 의식에 아직 또렷이 남은 건물은 사라지고 상처 입은 듯 거친 땅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그에게 색다른 주제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세밀한 풍경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재생> 2015 장지에 먹 180×230cm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왜 사과는 사과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까?” 아무렇지 않게 인식했던 사실에 의문이 들 때 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과’라고 알았던 사물의 이름이 대단히 낯설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이채영은 불현듯 미묘한 이질적 요소들을 캐치한다. 물론 호기심과 언캐니한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만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이므로 작가의 작업은 한 인간을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코어를 옮겨간다. 다시 이채영의 작업으로 화제를 돌리면, 그는 한번 포착한 공간을 여러 차례 곱씹는다.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다시 본 후 망막에 레이어처럼 쌓인 외형과 뇌에 축적된 기억들을 모아 그림으로 옮긴다. 종이와 먹만으로 화면은 재현된다. 실재와 좀 다른 작가적 현실로 각색된 그림은 그가 느꼈을 먹먹함과 괴리감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무언가 사라진 장소에선 어김없이 다른 것이 생겨나는데 아이러니하게 작가는 이런 사실에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낮달> 2015 한지에 먹 97×320cm 

 




번잡하고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사라지고 폐허가 되어가는 장소들, 인적은 사라지고 무성한 풀숲만이 자리해 한낮에 정지되어 있는 공간, 활발했던 낮과는 다른 고요한 밤 정적을 품은 거리들.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더러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는 공간에 이채영은 집중하고 있다. “도시의 주택가와 낡은 건물들의 주변의 풍경들 사이 속에서 느껴지는 비정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고독하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변의 풍경들 사이 속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 대변하듯 그는 자신이 구사하는 화면을 통해 색다른 차원을 선사한다. “장면을 재현하는 당신의 작업이 사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이채영은 가장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무구하게 웃으며 그는 대답한다. “사진과 다르기 위해 애쓰지 않아요. 그러나 손으로 그린 그림이니 분명 사진과는 다르죠”라고. 사진과 차별되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듯, 그는 작업에 어떤 원칙과 제한도 두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뿐이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 풍경을 그리는 그는 어느 순간 마이크로 한 그 어떤 오브제로 주제를 바꿀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 깜깜한 밤 공간을 그렸다. 





<황망한 여행길> 2015 장지에 먹 130×162cm 




건축과 건축 사이의 자투리 공간, 어둡게 놓인 승용차 등 모두 잠든 후의 도시 얼굴을 포착했던 것이다. 지금보다 분명한 이론과 철학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이전 작업들 역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쓸쓸함과 적막함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적막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사실이다. 그림은 어둡고 조용하지만 어쩐지 따뜻하다. 그것은 아마 누구나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이채영은 앞으로 먹에서 좀 벗어나 연필, 목탄 등을 이용한 드로잉 작품을 만들고 싶단다. 마침 근래 들어 ‘숲’에 집중한 그는 각 숲이 지닌 외로움, 낯섦, 고립감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을 표현할 계획이다. 작업을 숙명으로 여기고 그것에 매진함으로써 자아를 확립하고 싶다는 이채영. 그가 열중하는 다음 주제는 또 어떤 뉘앙스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이채영




2016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작가 이채영은 1984년 생으로 덕성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포스코미술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갤러리 도올, 신한갤러리에서 총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갤러리그림손, 갤러리룩스, 세종문화회관 등의 기획전에 참여한 그는 현재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새로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2015년 에트로 미술대상, 종근당 예술지상 작가 선정 등 수차례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에트로, 미술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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