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손선경_완벽한 인생 2019.08

분주하고 산만한 자멸의 삶
<손선경_완벽한 인생>전


6.14-7.14 아웃사이트
                                                                                                                     

 

2019 4채널 연속 애니메이션 비디오 HD모니터(1920×1080) 스테레오 사운드 사운드: 정상인



 
오랜만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면 될 것을 굳이 몸을 일으켜 부암동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 메이트도 나도 부암동에 살지 않거니와 딱히 그곳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다분히 의도적 산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시를 기약해둔 산책 시간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산책의 본질에서 위배된다. 여하간 ‘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어떻게 여기는지?’라는 질문에 산책 메이트는 곧장 ‘어떤 시간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질문에 함몰되지 않는 좋은 화술이라고 여기며 동시에 탁월한 간파였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노동의 가치는 끊임없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행위해야 한다는 강령으로 실현된다. 이 강령은 ‘사색 없음’이라는 모종의 음모론적 지향점을 가지고 사회 전반에서 작동한다. ‘활동적 삶(vita activa)’은 이제 ‘트렌디한 액션을 너도 나도 이행하기’로 탈바꿈되었다. 15초짜리 셀프 광고가 놀이문화가 되는가 하면 SNS를 넘나들며 가뜩이나 산만한 정신 상태를 각종 계정에 흩뿌리느라 다들 너무 바쁘다. 수행적 성격이 결여된 수행성이랄까, 내용 없는 역할극 같달까. 한가로움과 ‘사색적 삶(vita contemplavita)’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제 영원히 글러먹었다.
작품 (2019)와 (2019)로 구성된 손선경의 <완벽한 인생>은 사실상 ‘쓸 데 없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멀티채널로 무한 루프하는 애니메이션에는 철봉에 매달려 도는 사람, 뺑뺑이를 타는 사람, 원심력으로 돌아가는 의자에 탄 사람, 킥보드를 타고 원형을 그리는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의 움직임은 저마다의 속도를 각자의 구심점을 가지고, 돌거나 회전한다. 그 어떤 외부의 힘도 그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쓸 데 없는’ 고유한 속도를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그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도 오직 그들의 것이다. 홀로 고요히 반복하는 그들은 멈추지도 않고 ‘길게’ 논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 게으름뱅이들의 세속적 부도덕성은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유일한 출구가 된다. 각자의 회전은 조급하지 않으며 그들은 적어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이것조차 생산적 노동이라는 행동강령에 위축된 세속적 금욕주의 같은 발상이고 그들은 사실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 없음’이 ‘사색 없음’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무엇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는 그들의 사색적 움직임이 부러워진다.
문 하나로 분리된 전시공간의 한켠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개가 한 두 마리가 아니다. 그려진 숲에서 뛰어다니고 모니터 속에 갇혀 있는 것이 틀림없으니 내게 달려들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복식으로 짖는 소리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게다가 차분하거나 단정치 못하고 이리저리 산만하게 움직이는 꼴은 오래 지켜보기가 쉽지 않다. 이로써 짖는 개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그 성난 음성뿐만이 아니라 방향성 없이 날뛰는 산만한 움직임도 한 몫 한다는 것을 새삼 알아채게 된다. 테두리가 분명하지 않고 생김을 알 수 없는 이 익명의 개들은 내가 전시장에 계속 방문한다 하더라도 결코 짖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짖는 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익명의 짖는 개들은 사실 소통 불가능한 타자의 위치에만 놓인 것이 아닌 사색, 방향성, 느림이 결여된 채 하루하루 일단 짖고 보는 우리와 동일하다. 이로써 시간은 영원히 내게 귀속될 수 없으며 무한히 반복되는 분주함만 남는다. 분주함은 구심력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힘으로 결국 스스로를 소진시키며 자멸한다. ‘쓸 데 없어서’ 다행이었던 손선경의 ‘완벽한 인생’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박수지 독립큐레이터/AGENCY 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