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강호연_About Ground, Water, Light and Air>전 2019.04

생활 우주의 오디세우스와 뜨뜻한 덩어리
<강호연_About Ground, Water, Light and Air>전


3.8-4.7 아웃사이트
                              


                        
                      전시 전경                            
 


 
전시는 외부의 시야(out-sight)에서 인간의 생존 조건을 관찰한다. 2017년부터 시작해서 이번 전시로 이어지는 강호연의 ‘백과사전 프로젝트(project ENCYCLOPEDIA)’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한다. 전시의 제목인 ‘흙과 물과 빛과 공기 그리고’는 흙, 물, 빛, 공기를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흙, 물, 빛, 공기와 같은 보통 명사는 의미의 보편성을 내려놓는다. 더불어 인간의 인식 바깥에 자리하는 우주 세계를 바탕으로 ‘그리고’ 이후의 것들을 상상한다. 강호연의 프로젝트는 ‘동시대판 오디세이아’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Odysseus)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묘사하는 서사시는 지략을 사용해 괴물, 마녀, 주술 등 신화적 힘으로부터 도망치는 한 명의 합리적 근대 주체를 그린다. 신화적 서사를 바탕으로 자신을 인식주체로 위치시키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전시는 오디세이아의 서사와 만난다. 특히 그중에서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Polyphemos)를 만나는 에피소드와 공명한다. 이 만남을 서술하기에 앞서 강호연의 작품을 먼저 떠올려보자.
입구에 들어서면, 새까만 어둠에서 별똥과 같은 형상을 한 두 개의 낯선 덩어리들이 둥둥 떠 있다. 이 두 덩이는 각각 (2019)와 (2019)라는 제목으로 흙과 물을 표상한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전자는 방바닥에 깔리는 장판이 표면을 감싸는 형체이고, 후자는 방수 처리된 타일로 뒤덮여있다. 그의 작품에서 방바닥의 장판은 인간의 온기를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영역이자 현대인의 흙처럼 보인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이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제시되어 있으며, 안쪽에 열선이 설치돼 있어 뜨뜻하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판판한 바닥을 묵직하게 만지는 굴곡진 경험을 하게 한다. 한편, 뒷쪽에 자리한 작업은 대기의 유성 같이 일그러진 구체의 형상으로 떠 있다. 그리고 욕실용 샤워호스가 이 형상을 뒤감아 얇은 물줄기를 분사한다. 옆 공간으로 이동하면, 물과 흙보다 거대한 구 형상의 빛과 공기가 있다. (2019)라는 제목의 작품이 덩그러니 공기 중에 놓여있고, 공기를 매개로 클래식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벽지로 덧붙인 이 작품 위로 전등이 쨍하게 들러붙어 있다. 전시장 구석에는 킥보드가 놓여있는데, 전시는 관람객에게 이 킥보드를 타고 작품 주변을 빙글빙글 돌도록 제안한다. 멋쩍게 킥보드를 타고 작품 주변을 돌다보면, 형광등의 인공적인 빛과 차가운 공기가 적극적으로 감각된다. 강호연은 생활품을 사용해 흙, 물, 빛, 공기를 제시한다. 그러나 자연의 그것들과 온전히 동치 되지 않는 방식으로, 무질서한 비자연 생활 우주를 구축한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이 생활 우주와 폴리페모스 에피소드의 공명을 해명해보자. 오디세우스는 항해 중 외눈박이 거인 족 폴리페모스를 만난다. 그는 이 괴물로부터 도주하기 위해 책략을 세우는데, 그 꾀는 폴리페모스가 자신에게 정체를 물을 때 자신의 이름을 ‘우데이스(Udeis (Nobody))’라 소개하는 것이다. 이후 거인이 잠든 틈을 타 괴물의 외눈을 찌르자, 괴물은 고통을 호소하며 부하들에게 ‘우데이스’를 잡으라고 외친다. 이는 아무도 잡지 말라는 외침과 다름없으며, 부하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오디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괴물로부터 도망친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는 특수한 영역으로 이번 전시의 배경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생활 우주의 덩어리들과 맞닿는다. 카이퍼 벨트는 태양계에 속하지 않으며, 행성이 되지 못한 소행성들의 영역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이는 태양을 둘러싼 경계(Solar System) 밖에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영역에 대한 이름, 즉 바깥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부정의 이름으로 괴물로부터 생존한 것처럼, 작가는 이름 없는 지대에 부여된 이름으로 세계 바깥의 영역을 수호한다. 존재는 언제나 자신의 고유명사를 취하며, 인간은 지속해서 대상에 이름을 부여한다. 이런 언어의 교환 속에서 인간은 세계의 테두리를 긋는다. 그러나 강호연은 자연의 조건들(흙, 물, 빛, 공기)을 인공의 덩이로 뭉치면서, 하나의 기호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는 현실의 기호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리고, 숱한 보통 명사들을 적당한 온도의 추상 명사로 응축한다. ● 이민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