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019 생생화화: 가능성의 기술 전

불가능의 기술(記述)
<2019 생생화화: 가능성의 기술>전


10.23-12.1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가능성의 기술’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체계적으로 표상되는 것(記述)과 그것을 매개하는 기술(技術)이 열어 온 가능성에 관한 서문과 함께, 전시 앞에서 달뜬 긍정성의 기운을 기대하게 한다. 확실히 오늘의 풍경 속에 인간이 매개 하지 못할 불가능의 영역은 없어 보인다. 휴머니즘과 자본주의의 기술(技術) 안에서 모든 존재는 의미 있는 것으로 기술(記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는 이미 통제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지고 빈틈없이 채워져, 가능성의 일부로서 아주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암묵되고 있다. 그렇게 경계의 바깥이 일상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지금, 우리는 가시적인 영역 내부에서 종종 목격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만 전체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기획의 저 낙관적인 언어를 뒤집고 전시가 사실상 보여준 것은 가능성으로 포화한 유토피아적인 오늘이라기보다 그런 현실의 틈에서 찾은 그 모순의 가능성이다.
북한산에 사는 들개를 담은 권도연의 사진이 들춰내는 틈을 보자. 눈에 익은 바위산에 목줄 없는 개들이 서 있다. 은평구 재개발을 계기로 버려져 산으로 내몰린 그 개들의 생명은 고유종으로 분류되는 우리와는 다른 윤리적, 사법적 층위에서 다루어진다. 생태계의 교란을 막는다는 공익을 위해 포획되어 죽임을 당하는 이 내부적 외래종은 “인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하는(권도연, 전시 핸드아웃)” 이 세상 밖 존재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산 들개는 동물원 밖으로 걸어 나와 사살되고 마는 퓨마나, 죽는 날까지 유예될 사형 집행일에 메여있는 사형수처럼 현실에서 눈감아져야 하는 것들의 영역에 있다. 그래서 선명한 흑백의 이들 사진은 고요하게 일상적이지만 이질적이다.
일상적 의미 체계에 균열을 내어 모순을 설계하는 신동희의 시선은 조금 더 유희적이다. 그는 실패와 성공이 접합부의 암수처럼 빈틈없이 맞대고 있는 지점을 파고든다. 완벽하게 짜 맞춰진 목구조의 이음새 위에는 실패를 이야기하는 텍스트가 붙어 있다 (“실패가 완성되었습니다. 실패가 보이십니까?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였습니다.”-<조이너리>,   <솟대>). 반듯한 이미지들이 실패를 이야기할 때, 텍스트는 성공적으로 실패의 논리를 완성한다. 실패와 성공은 서로의 지평에 자취를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건만 ‘성공’과 ‘실패’는, 그 말의 의미를 내려놓음으로써, 작품이 정갈하게 배열된 공간 안에 무질서하게 뒤섞여 버린다.
성스러움과 부정이 혼재하는 박웅규의 그림도 유사한 층위에서 현실의 합리적 모태를 교란한다. 성과 속의 기호에서 껍데기만을 취해 썩어 들어가는 것의 질감과 성화의 도식이 불경하게 이종 결합된 그림을 그리자, 결코 타협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모순되는 기호들이 한 폭에 담겼다. 수행적인 붓질의 무게가 울리는 껍데기 기호들이 신성하면서도 불결하게 공명한다(). 현실과 반-현실의 경계에서 모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박성소영, 강건, 김희욱, 최혜경, 임정수 또한 비선형적 시간, 타자 안에서 언제나 불투명하게 표상되는 자아, 비언어적 정서, 타자의 역사와 같이 현실 구조의 내부적 언어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들을 표상한다(표상되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것 자체는 이미 모순적이다). 가능성의 기술(技術)이 정지되는 틈을 찾아 그 사이로 불가능을 기술한다.
동선의 끝, 다시 전시 밖 현실과의 경계에 박은태의 그림들이 있다. 작가는 건설 현장의 풍경에서 먼지 나는 것들과 시끄러운 것들을 지워내고 비계의 그리드 위에 노동자의 몸만 덩그러니 남겼다. 이 텅 빈 기하학의 공간은 노동을 하는 인간이 그 결과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의 구조가 역전되어버린 일종의 유토피아적 공간이다. 하지만 이 풍경 안에서 노동은 무게도, 시작도, 끝도 없는 것으로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림으로써 더 이상 현실 안에서 노동자의 존재를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의 결과물이 투명해짐에 따라 더 많은 노동자가 그 투명한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버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오늘의 풍경이기도 하다.
‘생생화화’ 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업한 작가들이 그 성과를 발표하는 연례 기획으로, 2019년 사업 수혜자 9인의 작업을 선보인 전시 <가능성의 기술>은 그러니까, 사실 아홉 개의 병렬된 개인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들의 작업에서 공통으로 감지되는 경향성으로부터 동시대의 징후를 알아차리는 것은 매끈한 주제로 봉합된 전시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날것의 흥미를 돋운다. ● 임진호 아웃사이트, os큐레이터




김희욱 <정체성 만큼이나 기만적인, 실제 만큼이나 잔인한> 2019 목재, 천, 조명, 영상 가변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