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잔의 깊음 2017.05

잔의 깊음



김서연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핸드컷 162×130cm   

 
예술의 본질이란 생산-자본-재생산에서 비껴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잊히는 것을 가엽게 여기고, 쓸모없어진 것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일 것이다. 여기, 사회가 정립한 기준에 의해 사라지고 버려진 것을 찾아내는 예술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의 타이틀, ‘잔(盞)’은 액체를 담아 마시는 용기를 일컫는다.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그 잔이다. 그렇다면 ‘깊음’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가 인식하는 용기의 외부가 아닌 잔 안의 속성을 말한다. 즉, ‘잔의 깊이’는 잔의 본질이다. 용기 안 빈 곳이 잔의 본래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에 가려지고 잊힌다. 우리 기준이 유용성이나 쓸모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잊은 채 인간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쓸모와 중요도를 가르는 것을 꼬집어 전시는 마련됐다. 여기에는 네 작가가 함께한다. ‘비누 작가’로 잘 알려진 신미경은 단단한 재료가 아닌 무르고 약한 비누에 천착해왔다. 그는 비누를 이용해 다양한 동서양의 고대 유물을 재현한다. 이번 전시에는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 설치 돼 호평을 받았던 을 다시 선보인다. 이병호는 박제를 탐구한다. 박제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생명 없는 인체를 표현해 형태와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연기백은 사람이 살지 않아 버려진 공간, 수명을 다한 아파트에서 사물을 수집, 그것을 새로운 미학적 토대 위에 설치한다. 여기에 김서연도 합세한다. 그는 캔버스 표면을 손으로 한 조각씩 잘라내어 이면의 공간을 드러낸다. 전시는 남겨지고 소모되고 결여된 것으로부터 느끼는 숭고를 담는다. 남겨진 것들의 장엄을 담아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4월 7일에 시작해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수애뇨339 02-379-2970